1. 화행이론의 변천

화행에 관한 수많은 정의가 제시된 바¹⁾ 있으나, 이제까지의 여러 설 가운데 화행론 직접적인 관련을 갖는 대표적인 몇 가지 이론을 들면 다음과 같다.

1. 비트겐쉬타인(Wittgenstein, 1953)의 사용론

2. 퍼스(Firth, 1957)의 맥락론

3. 오스틴(Austin, 1962)의 화행론

비트겐쉬타인(Wittgenstein)의 사용론은 당시 일상언어의 부정확성과 점검불능 및 불신에 대한 관심이 팽배했을 때, "의미란 곧 사용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당시 만연하였던 논리 실증주의자들의 이론을 공격하였다. 그가 "의미를 묻지 말고 용법을 물어라."라고 한 말은, 어떤 표현이 나타내는 개념의 용법은 그것이 표시할 것으로 생각되는 어떤 사물이나 사람 혹은 사건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해서 수행해 내는 역할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는 그의 후기 저서 '철학적 탐구(Philosophical Investigations)'에서 의미의 사용과 언어게임(language-game)을 말했는데, 발화행위를 그것들의 역할을 담당하는 언어게임과 관련지어 해명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의미 있는 발화의 표현을 장기와 같은 놀이에서 말의 쓰임새에 비유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비공간적이며 비시간적인 환상에 대해서가 아니라, 시공간적인 언어현상에 대해 말하고 있다. …… 그러나 우리가 게임의 규칙들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그것이 갖는 물리적 성질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다. 장기의 말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어에 대해 말할 때도 그러하다. "실제로 한 단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장기에 있어서 말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꼭 같은 것이다(Wittgenstein, 1953:108).

예를 들면, 밥, 진지, 수라의 경우는 동작주나 피동작주의 <계층>이 게임에서의 규칙처럼 사용조건의 규칙이 된다. 사용으로서의 의미이론은 표현의 일반성 또는 관습적 용법들을 결정해 주는 규칙들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생성 언어학자에게는 잘 알려진 이론이다. 이 이론은 어떤 부류이든 유의적 표현이면 그것이 지시대상이나 심상이나 독특한 반응을 불러 일으키지 않더라도 그들의 다양한 사용이 의미 파악에 결코 배제되지 않는다는 장점을 지닌다. 그러나 이 이론은 너무 광범위하여 효용성이 없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 문제점이었다. 곧 주어진 표현의 여러 가지 사용들 중에서 어느 것들이 중심적 사용이며 전형적인 것들인지 그 기준 설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 역시 의미 설명을 위해 다시 의미의 개념을 이용해야 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의미의 특성을 설명하려면 어떤 본유의 사용규칙들을 의중에 두고 있는지 명시해야 하고, 이러한 의도를 화행론에 의존하지 않고 적절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 퍼스(Firth)의 맥락론을 보자.

언어사용의 실제적 장면에서 추출되는 상황을 상황맥락(context of situation)이라고 한다. 발화된 하나의 표현은 이 상황맥락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의 표현이 의미를 지니려면 상황맥락 속에서 적절히 쓰여서 그 상황맥락의 여러 요인들에 의해 그 표현에 적절한 기능이 주어져야만 한다. 상황 맥락이 발화된 문장의 의미를 결정해 준다고 하면, 의미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빈틈없는 상황맥락의 기술이 우선하여야 한다. 그러나 의미분석에서 상황 모두를 기술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데다가 자칫 무한히 복잡한 상황맥락 속에 헤맬 우려가 있으므로, '발화에서 문제가 되는 상황만을 기술'하는 것으로 수정되었다. 이 사용설 역시 사용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오스틴(Austin)의 화행설은 1930년대에 대두하였다. 그 때는 철학적으로 편향된 언어관이 팽배하던 때로서, 문장의 의미는 원칙적으로 그 진리 조건이 검증될 수 없다면 무의미하다고 하던 때였다. 그의 사후에 출간된 강의록 '어휘 사용법'(How to do Things with Words,' 1962)에 그의 화행설이 나타나 있다. "전체 담화상황에서 전체 화행이란 그 해명에 우리가 참가할 수 있는 유일한 실제적 현상"이라는 주장 아래 진리조건의 언어관을 번복했다. 곧 모든 발화들은 스스로 독특한 효력을 지님으로써 특정행위를 수행한다고 주장하였다. 진리조건에서 무엇이 서술적 발화를 참되게 만드는지를 결정하듯이, 적정조건에 의해서 문장들의 적정성과 비적정성을 가늠할 수 있다고 하였다. 오스틴은 이 이론들을 기초로 곧 어떤 문장들은 그것들이 발화될 때 단지 말하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뭔가를 행하는 것이라 하고, 이런 문장을 수행적(performative) 발화라 하였다. 이 수행적 발화는 그에 상응하는 행위를 성립시킴에 있어, 어떤 제도적 절차와 관련된 특이한 관례적인 것이 있다고 했다.

오스틴의 입장을 서얼(Searle, 1969, 1975)과 그라이스(Grice, 1975)가 이어받아 화행이론을 정교화하려고 했다. 서얼(Searle)은 오스틴의 이론을 체계화하고, 더욱 공고히 하면서 여타의 철학적 쟁점들을 점검하였다. 그는 발화를 명제적 내용과 발화력으로 나누고, 이를 구조와 관련시키고 있다.²⁾ 한편, 그라이스(Grice)는 발화력을 의사소통의 의도에 관련시켜 대화적 함축을 풀이해 내려고 시도하였다.³⁾

이렇게 Austin의 개념은 Wittgenstein과 비교되면서 Searle과 Grice로 이어진다. 한가지 유의할 점은 화행론이 마치 논리실증주의자들의 진리조건 의미론의 대체물인 것같이 옹호되거나 비판되고 있지만, 이 두 이론은 상보적이긴 하나 서로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발화행위는 화자가 발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청자에게 전달하는 행위까지 포함한 개념이다.⁴⁾ 화행의미론에서의 발화는 일정한 의도⁵⁾를 가지고 이루어지는 발화행위의 단위이다.

2. 오스틴과 화행이론

비트겐쉬타인(Wittgenstein 1953)의 '언어는 사회적 게침'이라는 관점의 영향을 받아 전통적 의미론, 특히 진리 조건에 의거한 의미론은 19세기 후반 논리학에서 진리표(truth table)를 발견한 이래 많은 논리학자들의 진리분석을 위한 진위의 개념으로 파악해 왔다. 그러나 그들이 다룬 대부분의 문장들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문장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말의 참과 거짓을 논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설정해 놓은 논리적 문장들이어서, 진위 해명의 문제 자체가 과연 언어의 의미규명에 적합한 것이냐 하는 의혹을 끊임없이 야기하여 왔다.

이러한 이론의 비판에서 출발한 것이 화행이론 또는 언어 행위이론이다. 이 이론의 창시자인 오스틴(Austin, 1962)은 사람들이 단순히 의미하기 위하여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 행위를 수행하기 위하여 언어를 사용한다고 주장한다. 즉 언어 사용자는 언어 규칙을 맹종하며 의미전달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언어 사용의 규칙을 적절히 이용하여 자신의 '뜻한 바'를 달성하려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어진 발화(utterance)의 진정한 의미는 그 말이 지이 되는 조건이 아니라, 그것이 수행하는 사회적인 행위에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무엇이 진으로 발화되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행위가 수행되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어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언어를 통하여 수행하는 사회적 행위, 즉 화행(speech act)의 종류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스틴(Austin)은 화자가 무엇인가를 말하면서 무엇인가를 행한다는 점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화행을 들고 있다. 언표적 행위, 언표내적 행위, 언향적 행위가 그것이다.

언표적 행위(locutionary):

일정한 의의(sence)와 지시(referance)를 가진 문장의 발화.

언표내적 행위(perlocutionary act):

문장을 발화하여 화자측에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 이 영향은 발화의 상황에 따라 특수성을 갖는다.

언표적 행위란 내용과 지시를 사용하는 명제 행위로서 단어나 문장을 단순히 발화하는 발화행위와 구별된다. 일정한 뜻을 가진 문장을 발휘함으로써 그 발화내용을 전달하는 행위이다. 표면구조로 나타나는 어구대로의 뜻을 전하는 것으로서, 다음 예문과 같이 단순한 언어적인 의미의 추측을 나타내는 경우로 보았다.

1) 비가 올 것이다.

2) 비가 오겠다.

언표내적 행위란 담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관습적 행위로서 경고하고 약속하고 명령하기 위하여 말을 하는 행위이다. 표면적인 뜻과는 달리 수행력을 가지는 어떤 부류의 발화와 관련된 효력에 의해 직접 달성된다.

3) 개가 있어요.

4) 거기 물 있어요.

5) 넌 해서는 안돼.

예문 3)은 단순히 개가 있다는 축자적인 언표적 행위일 수도 있지만, 개가 있으니까 조심하라는 경고조의 언표내적 행위를 수행할 수도 있다. 예문 4)는 거기 물이 있다는 축자적인 언표적 행위와 함께 조심하라고(옷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주의를 주는 언표내적 행위를 수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오스틴(Austin)은 언표적 행위와 언표태적 행위가 분리될 수 있으며, 의미 연구는 독자적으로 진행될 수 있지만 언표내적 행위에 의해 보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그의 관심을 언표내적 행위에 있었다.

언향적 행위란 텍스트 수용자에게 효과를 내게 하는 반화행위이다. 어떤 사람에게 어떤 일을 하도록 설득하거나, 어떤 사람을 괴롭히거나 잘못을 깨우쳐 주는 행위이다. 청자에 대한 결과의 효과로서 의도적이든 의도적이 아니든 종종 단호한 효과, 즉 특수 환경에서 어떤 특수발화가 야기할 수 있는 모든 효과들을 망라한다. 예문 5)는 '넌 해서는 안 돼'라는 경고 외에 설득과 강요란 언향적 효과를 지닌다.

본고에서는 청자가 광고의 헤드라인을 해석하는 과정을 3 단계로 나누어 보고자 한다. 언표적 행위를 1차적 해석, 언표내적 행위를 2차적 해석, 언향적 행위를 3차적 해석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실제 담화에서는 청자가 1차, 2차, 3차의 과정을 단계적으로 거치는 것이 아니다. 한 문맥이 발화되는 상황에서 청자는 그 중 어느 한 해석을 즉시 선택하는 것이다.

다음 예문을 통해 언표적 행위, 언표내적 행위, 언향적 행위의 구분을 설명해 보자.

6) 나는 네 책을 가져가지 않았어.

7) 영희는 거짓말할 아이가 아니야.

6)은 발화행위 자체로 그 의미가 전달될 수 있다. 이것은 언표적 행위이다. 그리고 6)의 발화가 청자에게 협박이나 경고의 뜻을 전한다면, 그것은 언표내적 행위로서의 발화가 된다. 그러나 6)의 발화로 말미암아 청자의 오해가 풀리거나, 6)이 거짓일 경우 청자가 속게 된다면 이것은 언향적 행위의 효과인 것이다.

7)에서도 언표적 행위는 "영희는 거짓말할 아이가 아니야."라는 문자 그대로의 명제행위이다. 그리고 그 발화가 설명 충고 등의 뜻이라면 언표내적 행위이다. 그러나 그 발화를 들은 청자가 영희에 대한 믿음이 생기게 된다면 그것은 언향적 효과인 것이다.

언표내적 행위의 경우, 한 문장의 발화가 다양한 행위를 수반할 수 있다고 하지만 상황 맥락 안에서의 발화는 오직 한 가지의 행위만을 뜻하게 된다. 화자가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행한 발화는 그 상황 속에 화자의 얼굴 표정, 몸짓, 어조, 눈빛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의사표시를 분명히 하는 사람은 하나의 발화가 여러 가지 발화행위를 수반하도록 행위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3. 화행이론과 광고

"너 콩밥 먹어 볼래"

위와 같은 발화는 일정한 상황에 주어지지 않으면 말의 뜻을 파악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화자와 청자의 신분, 입장, 의도 등이 분명하면 위의 문장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발화가 가정에서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라면 권유의 표현이 될 것이고 경찰서에서 수사관이 범인에게 하는 말이라면 협박의 말일 것이다. 이처럼 하나의 발화는 그 상황이 주어지면 얼마든지 분석할 수 있다.

광고는 화자와 청자가 분명하고 청자가 이미 화자의 의도를 알고 있는 상황 안에서 발화되는 텍스트이다. 특히 광고 문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헤드라인에는 화자의 의도가 더욱 분명히 드러나 있다. 카피라이터는 먼저 헤드라인에 매력적인 혹은 경이로운 표현을 써서 소비자에게 접근한다. 소비자는 그 문구를 통해 그 헤드라인이 가지고 있는 말의 힘을 경험하게 된다. 때로는 상품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는 경우가 있으나, 그것은 대개 기업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기업광고들이다. 기업광고는 상품에 관한 정보 대신에 소비자에게 기업의 좋은 이미지를 심어서 그 기업에서 만드는 상품에 대한 신뢰감을 높이기 위한 광고이다. 다시 말하면, 기업광고는 기업의 좋은 이미지와 그 제품을 동일시(identity)하는 효과를 내기 위한 광고이다.

전통적인 의미론인 형식의미론에서는 문장이 지시하는 상황이 진실적 조건에 합치하는가에만 관심을 쏟고, 그 문장이 가지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나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상황 또는 맥락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다. 반면 상황의미론은 상황이나 맥락과 같은 동적인 특성을 언어의 효율성으로 받아들인다.

상황이론은 의미를 정보의 전달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먹구름을 보고서 상황1(-여름이라고 하자-)에서는 비가 곧 올 것이라는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상황2(-겨울이라고 하자-)에서는 눈이 곧 올 것이라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한 동일한 상황(-상황1이라고 하자-)안에서도 먹구름은 그것을 보는 사람에 따라 상이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즉, 그것은 A에게는 비가 올 것이라는 정보를 전달할 수 있지만, B에게는 단순히 날씨가 궂다는 정보만을 전달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먹구름이 동일한 상황 S 안에서 동일한 사람 A에게 전달하는 정보의 양이 달라질 수도 있다. 즉 사람 A는 먹구름을 보고서 단순히 곧 비가 올 것이라는 정보만을 얻을 수도 있고, 곧 비가 온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이라는 판단까지 할 수도 있다. 그것은 사람 A가 그 먹구름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정보가 그에게 어느 정도로 중요하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먹구름이 전달하는 정보는 다양한 상황에 따라 질적 또는 양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이 때 먹구름은 우리에게 전달되는 정보, 비나 눈이 올 것이다, 날씨가 궂다,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 등의 정보를 의미한다는 것이 상황이론의 설명이다.

이런 상황 이론을 광고와 그 헤드라인의 분석에 적용하면, 광고주의 의도와 소비자의 반응을 쉽게 예측할 수 있고,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광고를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와 같은 이론의 적용과 분석이 원만히 수행된다면, 광고의 화행이론적 분석의 타당성도 입증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