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절 유행에 관한 이론적 고찰

유행(패션)은 개인의 생활 양식을 나타내 주는 상징이며 인간의 사회적인 상호 관계의 징표이고, 개인의 자기 표시의 수단임과 아울러 사회·문화적 환경 변화의 표출이다. 이러한 유행현상에 대해 사회학, 의상학, 심리학 등 다방면의 연구가들이 언급하고 있는데, 특정 스타일과 역사적인 패션형태에 대한 것으로부터 복잡한 이론 연구와 소비자 행동에 관한 연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유행현상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는 그것이 다루어지고 있는 연구 영역의 제한성으로 인해 의상(의복)에 있어서의 유행으로 국한되거나 패션지향적인 소비자 행동 즉 소비자의 수용 과정이나 그것의 사회적 확산 과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래서 유행의 대상에 '의미'가 부여되는 것을 수용자의 '채택 과정' 속에서 다른 사람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가능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광고'라는 매개변수가 배제된 상황에서의 설명이다. 물론 광고가 개입되지 않는 경우라면 그러한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유행대상의 창출과 그것의 수용·확산의 기제로서 광고를 개입시키게 되면 유행현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점을 두어야 할 사항은 '과정'으로서의 유행이기 보다는 '대상'으로서의 유행이다.

이제 유행에 관한 일반적인 개념적 정의들을 이론적으로 고찰하고 그것을 토대로 '유행'이 갖게 되는 몇 가지 특성들을 도출시켜 보고자 한다. 그리고 총체적 사회 현상인 유행에 대한 기존 연구의 접근방식을 정리하고, 나아가 본 연구자의 분석의 차원을 좀 더 명확히 함으로써 유행과 광고의 관련성에 관한 근거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유행에 관한 일반적 정의 및 속성

패션에 관한 구체적인 정의는 그것을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상이하고 다양하다. 스프롤즈(George B. Sproles)는 패션에 대한 일반 정의를 내리기 전에 패션에 관한 상반된 정의들을 검토하고 있는데 그 예들은 다음과 같다.⁶⁾

·일군의 인간들이 선택하는데 있어 일련의 재현되는 변화로 그 선택은 효용(utility)이 수반되기도 하지만 효용에 의해서 결정되지는 않는다.

·특정 기간의 지배적인 스타일.

·시대적으로 적절하다고 인정되는 발상과 구상.

·특정 사회적 역할에 적절한 것으로 사회적으로 규정되거나 수용되는 특정 스타일.

·새로움 그 자체를 추구하는 것.

·집단 행동의 기본 형태.

·새로운 스타일이나 제품이 상업적으로 소개된 후, 소비자들이 수용하는 사회적 전염과정.

그리고 나서 스프롤즈는 그 중 다음의 몇 가지 공통점을 이끌어 낸다.⁷⁾ 첫째, 패션은 대상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몇 정의에서 보듯이 패션의 대상으로서는 의복의 스타일이나 가구의 스타일, 또는 어떤 신기하거나 새로운 품목을 들 수 있으며 또한 가장 일반적인 견지에서 패션은 하나의 행동 양식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패션 행동은 인간이 다양한 소비재를 사용하거나 다양한 사회적 행동을 함에 따라 발생되는 인간 행동의 한 현상이다. 특히 의복은 패션 지향적인 행동의 전통적인 대상이며 또한 패션이라는 용어와 더불어 가장 빈번히 사용되는 상품이다. 둘째, 패션이라는 것은 일시적으로 수용되는 대상이다. 어떤 특정 모드(mode)나 현대적인 추세 및 유행하는 스타일 등은 일시적으로는 수용되지만 궁극적으로는 바꿔는 것이다. 셋째, 특정 패션의 수용은 패션의 사회적 적합성에 대한 소비자의 이해를 기초로 한다. 패션은 그것이 특정 사회 환경이나 개인적 역할에 시의 적절하기 때문에 대중의 인기를 얻을 수 있다. 어떠한 경우라도 패션이라는 것은 특정 시기의 대중이 사회적으로 적합한 행동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에 선택되는 현상이다. 마지막으로 패션은 특정 사회 집단이나 또는 그 집단 구성원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적지 않은 비율에 의해서 수용된다. 여기서 사회 집단이라는 것은 한 사회의 전 구성원 혹은 특정 하위 문화 집단의 구성원일 수도 있고 친구 사이와 같은 비공식적 집단일 수도 있다. 이와 같이 사회 집단에 따라 각기 다른 패션을 수용한다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현대 사회에 있어서는 다수의 상이한 집단들이 동일한 유행패턴을 수용하는 것이 보다 일반화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그는 유행을 '그 선택행위가 시간과 상황에 따라 사회적으로 적합한 것으로 인식되어 다수의 사회집단 구성원들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수용되는 하나의 행동양식'이라고 정의한다.

스프롤즈에 의하면 패션과정이란 잠재적인 패션대상이 창조되는 시점으로부터 대중에게 소개되고 대다수 대중에게 수용되며 결국 폐기되기까지의 동태적인 변화구조 이다. 제1단계에서는 새로운 대상이 소개되고 일군의 선도적인 소비자나 패션 리더에 의해서 수용된다. 제2단계에서는 다수의 패션 리더와 기타 초기 수용자들이 새로운 대상을 수용함에 따라 새로운 대상의 가시 도는 크게 증가하고 그것은 소비자들에게 폭 넓게 전파된다. 제 3 단계에서는 패션이 다수의 상이한 사회 집단에 의해 보다 광범위하게 수용되는데 그 주요한 원인은 사회적 동조이다. 제4단계는 한 패션이 폭 넓게 대중적으로 수용되고 과다 사용됨으로 해서 사회적 포화상태에 이르게 된다. 한 패션의 과다 사용은 그것의 쇠퇴와 폐기의 시기인 제 5 단계로의 이행을 유발하게 된다. ⁸⁾

레이놀즈(William H. Reynolds)는 '패션은 개인이 다른 사람에게 상대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제시하기 위하여 일차적으로 상징을 수용하는 과정'이라고 보고 있고⁹⁾, 사피르(Edward Sapir)는 패션의 의미를 기타 관련 용어와 비교, 대조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패션이란 용어의 의미는 유사한 의미의 수많은 다른 용어들과 함축된 내용이 어떻게 다른가를 규명함으로써 명확해질 수 있다. 패션은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개별적으로 선택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일부 집단에게 어느 정도의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취향과는 구별된다. 특정 인간이나 집단이 그들 자신의 패드(fad)를 가지는 반면 패션은 보다 규모가 크고 대표적인 집단들의 소유력이다. ¹⁰⁾

다른 한편 밀러, 맥킨타이어와 맨트랄라(Christopher M. Miller, Shelby H.Mclntyre, and Murali K.Mantrala)는 패션을 타자와의 관계성 속에서 특정 개인에게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한 '상징(symbols) 채택의 과정'으로 이해해야 함을 강조한다. 주워진 상황 속에서 사회적 상징으로 제공되어지는 항목 (items)에는 제품(products), 제품속성(product attributes), 서비스(services) 그리고 행위(actions) 등이 포함될 수 있다. ¹¹⁾ 그리고 그러한 항목들은 소비자에게 유용한 가치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그것들에 내포된 상징적 의미들은 유용성 외의 부가적 가치들을 제공한다. 항목들이 갖는 유용한 가치가 유사할 때 그들의 상징적 의미들은 주요한 선택의 결정요인이 된다. 꼭 끼는 코르셋이나 높은 하이힐, 엘리자베스식 가발과 같은 경우와 같이 상징적 의미는 유용성이 갖는 단점들을 극복할 수 있다.

밀러 등은 패션의 수용 과정으로서의 '과정'이 아니라 패션 자체의 변화 과정에 대한 몇 가지 특성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패션경향에 있어서의 연속성(continuity)'으로 하나의 사회 안에서 채택되어진 스타일들은 시간적으로 바로 그 이전의 것들과는 연속선 상에서의 차이를 갖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패션경향에 있어서의 주기'이다. 패션에 관한 문헌들에는 하나의 사회 안에서 두 개의 주요한 패션경향의 형태들이 나타난다고 언급하 고 있는데 그 하나는 일정한 주기를 갖고 순환하는 형태이다. 이 때 그 순환의 빈도나 크기는 일정하지 않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나의 스타일이 오랫동안 유지되면서 고정화되는 형태이다. 이에 대해 마르고 알랭 데깡 (Marc-Alain Descamps)은 이러한 단계에 도달한 경우는 이미 패션의 상태가 아니라 하나의 관습화 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고 언급한다. ¹²⁾ 패션은 일시적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패션경향에 있어서의 속도'이다. 패션경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양한 비율로 변화한다. 그래서 아주 급격하게 형성되었다가 사라지는 경우에는 패션(fashion)이라는 용어대신 패드(fad)라는 용어로 개념화한다. 넷째는 '패션의 전환점'으로 패션의 점진적인 확대가 포화상태에 이르면 패션 경향은 하나의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특성은 패션은 '사회적 경향에 대한 개인적 차원의 수용'이라는 것이다.¹³⁾

그리고 황병일은 패션은 어떤 스타일이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 사회에 소개 되어 점점 이를 수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급기야는 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아들인 다음에는 상징적 의미가 없어져 이를 수용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특성을 보인다고 요약하고 있다. 여기에서 황병일은 '패션은 어떤 스타일을 갖는데 그 스타일이 사회에 상징적 의미를 가질 때 수용가능성이 크다' 라는 점을 강조한다.¹⁴⁾

이상의 이론적 논의들은 유행의 개념적 속성 및 정의들을 규정하는데 있어 유행이 일시적이며 집단적이고 상징적, 현시적임을 공통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제 본 연구자의 연구영역을 어떻게 제한할 것인지에 대해 언급하고 유행이 갖는 이러한 속성들을 좀 더 명확히 하고자 한다.

(2) '대상'으로서의 유행과 '과정'으로서의 유행

유행이라는 현상에 보다 명확히 접근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대상으로 분석하는 것과 소비자 행동의 과정으로서 분석하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¹⁵⁾ 유행에 관한 기존의 연구는 '대상'으로서의 유행보다는 '과정'으로서의 유행에 중점을 두고 전개되어 왔는데. '과정'으로서의 유행 연구는 그 분석의 대상이 '유행의 대상' 자체에 있기 보다는 유행의 대상이 개인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또 사회전체에 어떻게 확산되어 왔느냐를 분석하는 데 있었다.

먼저 개인이 패션을 수용하는 과정에 대한 연구는 혁신 연구의 선구자인 로저스(Everett M. Rogers)로부터 출발한다.^l6) 그것은 한 사회에 새로운 어떤 스타일의 패션이 도입되게 되면 이는 그 사회에 새로운 의미를 제공한다는 면에서 하나의 혁신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로저스는 개인의 패션수용은 인지(awareness), 관심(interest), 평가(evaluation), 시험(trial), 수용 또는 거부 (adoption or rejection)의 단계를 거쳐 수용된다고 보았다. 즉 패션이 처음 소개되면 개인은 새로운 패션에 대한 최초의 지식을 접하고, 그 다음 보다 상세한 정보를 획득하게 되며,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혁신 및 혁신의 특성에 대한 태도를 형성하고, 가능한 경우 제한된 범위 내에서 혁신을 시험하고, 이를 수용할 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을 밟는다.

그 다음으로 로버튼(Thomas S. Roberton)은 개인의 심리적 요인만을 고려했던 로저스 모델의 한계를 지적하고 이 보다는 더 포괄적인 대체 모델을 제시한다. ¹⁷⁾ 이 모델은 인지, 태도, 행동이 상호 중복되는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인지 단계에서는 정보가 획득되고, 태도 단계에서는 호의적이거나 비호의적인 견해 또는 신념이 형성되며, 행동 영역에서는 지식과 태도가 행동 시험 및 수용을 유발시키고 그리고 행동의 결과가 평가된다. 이 모델은 로저스의 모델보다는 수용자의 복잡한 수용과정을 더 잘 설명하고 있는데 이 모델에 의하면 인지 단계에서는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새로운 패션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며 이해 단계에서는 새로운 패션의 특성을 알게 되며 이로 인해 태도가 형성된다. 이 때 태도가 긍정적일 경우는 소비자는 곧바로 시험 단계로 가거나 정보를 좀 더 수집하여 결정에 적법성을 추구할 것이다. 시용 단계에 접어든 소비자는 그로 인한 만족을 근거로 수용 및 구매 단계로 이행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개인은 자신의 결정이 옳았는지에 대한 인지적 부조화를 경험하게 된다. 이 모델은 이러한 과정이 대체로 순차적으로 일어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어떤 단계는 뛰어넘거나 되돌아가기도 한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이 모델은 사회·심리형과 충동형의 두 가지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고 의사결정 형태를 이 두 가지로 구분하여 이를 수용 단계와 연결시키고있다.

한편 밀러 등은 개인적 차원에서 패션 수용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몇 가지 요인들을 제시하는데¹⁸⁾ 첫째는 '선호성의 강도'(strength of a priori preference)이다. 사회적으로 상호 작용을 하기 이전에는 어떤 스타일에 대한 선호성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상징적 의미가 어떤 스타일에 부여되어서 사회적 상호 작용이 생기게 되면 강한 선호성이 형성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상징적 의미는 사회적 상호 작용으로 인하여 발생하기 때문에 기능적으로 동등한 스타일에 대한 선호성의 차이는 그 사회 체계 내에서 상징적 의미가 발생되는 배경 하에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상징적 의미가 발생하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스타일에 대한 선호성의 정도는 개인이 패션을 수용하는 데 중요한 동기 유발 요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선택적 영향'(selective influence)이다. 개인은 다양한 수준에서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매체들과 상호 작용하면서 대체적인 스타일에 대해 적절한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그리고 개인과 개인간, 개인과 매체 간의 영향력의 넓이와 깊이의 정도에 따라 선택적인 영향력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셋째는 '집단에의 동조성'(group membership/conformity)이다. 인간은 항상 어떤 집단에 소속해 있게 마련인데 그 집단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상호작용을 회구하는 집단이 있는가 하면 참여하기를 기피하거나 경멸하는 회피집단이 있기 마련이다. 자신이 속해 있거나 소속하기를 희망하는 집단은 하나의 준거 집단으로서 개인의 패션 선택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넷째는 '차별성'(individuality/ differentiation)이다. 집단의 동조성 범주 내에서 개인은 한 사회 집단이 수용한 스타일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차별성이 너무 강하면 오히려 집단에의 동조에서 벗어날 위험(risk)이 커지기 때문에 적절한 수준에서의 차별성을 추구한다. 다섯째는 '현재화에의 갈망'(desire to be current)이다. 개인은 어떤 특정 상황 하에서 자신들이 존경 할만한 사람들을 본받으면서 자신이 현대적인 사람으로 인식될만한 스타일을 수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어떤 스타일에 대해 부여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개인은 지속적으로 자신이 수용한 스타일에 대한 의미를 재평가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여섯째는 '변화에 대한 태도'(attitude toward change)이다. 어떤 변화를 감내하고 이를 즐기는 정도는 사람마다 상이하게 나타나는데 이러한 변화에 대한 태도가 패션을 수용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이러한 요인들의 상호관계를 하나의 모델로 제시하는 데, 그는 그의 모델에서 개인적 차원의 수용과 사회적 차원의 확산을 결합시키고 있다.

다음으로 사회적 차원의 확산에 관련된 연구들을 정리해서 살펴보면 확산의 방향과 관련하여 크게 3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l9) 그 하나는 '하향 전파 이론'(trickle down theory)이고 다른 하나는 '상향 전파 이론'(percolating up theory), 그리고 수평적 과정으로 확산되는 것과 관련된 '집합적 선택 이론'(collective sellection theory)과 '대중 시장론'(mass market theory) 등이다.

먼저 '하향 전파 이론'(trickle down theory)은 상류계층에서 중류와 하류계 층으로 하강 흐름을 수반하는데 과시적으로 소비하려는 유행 추종자들에 의한 욕구가 그 동기가 된다. 그리고 '상향 전파 이론'(percolating up theory)은 많은 스타일이 대중이나 하위문화로부터 나타나서 그 다음에 상향 전파로 패션 산업에 의해서 모방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집합적 선택 이론'(collective sellection theory)과 '대중 시장론'(mass market theory)에서는 둘 다 유행이 수평적 과정으로 널리 퍼지면 그 과정을 통해서 비슷한 사회계층의 사람들이 서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세 과정들은 상호간 배타적이지 않다. 유행 전파 과정은 변화하는 시대정신이나 사회적 가치관, 인구통계 유형, 대량생산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합적 선택이 가장 보편적이라고 할지라도 이런 전파 과정 중에서 어느 것이 주목될 지는 유행현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이상으로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에서 유행이 어떻게 수용되고 확산되는 지에 초점이 맞추어진 기존의 이론적 접근들을 개괄적으로 살펴 보았다. 그러나 본 연구자는 이상과 같은 '과정'으로서의 유행 보다는 '대상'으로서의 유행에 초점을 두어 접근하고자 한다. 그것은 광고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지금의 유행현상을 더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광고가 개입되고 있는 지점에 대한 접근이 필수적이고 그 지점을 분명히 드러낼 수 있는 차원은 '과정'으로서의 유행에 대한 분석이기 보다는 '대상'으로서의 유행에 대한 분석이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과정'으로서의 유행이라는 차원에서도 광고의 역할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정'으로서의 유행이라는 분석 차원에서의 광고의 역할이라는 것은 유행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광고가 담당하는 본질적 역할은 아니다. 지금의 유행현상에 있어 광고의 역할은 단지 유행패턴의 전파에 기여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전파의 매개자로서의 역할보다는 유행패턴의 제시자로서의 역할이 좀 더 근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광고는 유행현상의 물질적 대상인 유행패턴을 전파 시키기도 하지만 전파 이전에 그러한 유행패턴에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상'으로서의 유행이라는 분석차원이 좀 더 유용한 것이다.

그리고 유행을 대상으로서의 유행, 좀 더 구체적으로는 '유행패턴'에 초점을 맞추어 접근해 가는데 있어 한 가지 명확히 해야 할 점이 있는데 그것은 유행패턴이 갖는 '상징적 속성'에 대한 것이다. 유행패턴이 갖는 기본적 속성에 대해 스프롤즈는 물리적 특징을 분석하는 것으로 제한하여 언급하고 있다.²⁰⁾ 즉 일반적인 의복 스타일이나 스타일의 특정 디테일, 각 시대에 따른 스타일, 구성기법 또는 섬유나 직물의 디자인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본 연구자는 여기에 대상의 '물리적 속성' 뿐 아니라 '상징적 속성'을 덧붙여 언급하고자 한다. 그것은 유행이라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은 특정 양식의 스타일이 하나의 물리적 대상으로서 뿐 아니라 그 양식이 갖는 상징적 대상으로서 특정 시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수용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유행을 그 '대상'에 초점을 두고 접근해 가는 데 있어 대상이 갖는 물리적 속성만으로 제한 한다면 유행이 갖는 본질적 속성의 하나인 상징적 속성을 배제시키게 되고 그럼으로써 핵심을 비껴가는 오류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행의 대상이 갖는 '상징적 속성'에 대한 고려는 광고와 유행 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전제가 된다. 광고가 하나의 스타일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함으로 써 새로운 유행패턴의 창출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연구자는 이상과 같은 근거를 가지고 연구의 영역을 '과정'으로서의 유행이 아닌 '대상'으로서의 유행에 국한시켜 유행패턴에 초점을 맞추어 접근하고자 한다. 즉 유행을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심리적 요인이나 사회적 확산의 여러 변인들에 대한 고려를 배제하고 유행을 하나의 물리적 ·상징적 대상으로서만 접근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분석의 차원을 정리하면

유행선도자²¹⁾ - 유행대상(유행패턴) - 유행수용자라는 단선적 관계가 성립되고 유행과 광고 간의 관계는 좀 더 명확해진다. 유행과 광고 간의 관계가 유행대상(유행패턴)과 유행선도자 간의 관계로 구체화되기 때문이다. 이제 이러한 단선적 관계를 중심으로 유행과 광고간의 관련성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3) 유행패턴의 광고에의 적용가능성

앞의 이론적 논의들을 근거로 분석대상을 '유행패턴'으로 제한하여 그 기본적 속성을 정리하고, 광고와의 관련성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아래에 정리된 유행패턴의 기본적 속성은 다음 단계의 분석연구를 위한 근거가 되는 것으로 유행패턴의 정적인 속성과 동태적인 변화 과정을 포괄적으로 포함하여 정리한 것이다.

첫째, 하나의 유행패턴은 '일시적'이다.

둘째, 하나의 유행패턴은 '집단적'으로 공유된다.

셋째, 하나의 유행패턴은 '현시적'이다.

넷째, 하나의 유행패턴은 '상징적'이다.

하나의 유행패턴은 그것의 지속 정도에 있어서의 길고 짧음, 확산 정도에 있어서의 급격 ·완만의 차이는 있지만 항상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그 양상은 다양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바뀌는 것이다. 처음에는 유행처럼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하나의 스타일이 오랫동안 유지되면서 고정화되는 패턴인 경우에는 이미 유행이 아니라 하나의 관습화 된 상태로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유행 패턴의 '일시성'을 광고는 적절히 이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제품의 수명주기 전략'과는 구분되는 것이다. 제품의 수명주기(PLC: Product Life Cycle)란 초목이 싹을 내고 꽃을 피우고 마침내 시들어 가듯이 상품에도 수명이 있어 도입기, 성장기, 성숙기, 그리고 쇠퇴기를 거치게 된다는 것이다.²²⁾ '제품의 수명주기'나 유행패턴의 '일시성'이나 모두 하나의 제품이 갖는 한시성에 대해 언급 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그러나 '제품의 수명주기' 광고 전략은 그 이론 자 체가 '제품'과 '소비자' 그리고 '소비환경' 측면의 포괄적인 연계에 의한 것이지만²³⁾ 광고에 적용되는 유행패턴의 '일시성'은 '소비자'라는 수용자 측보다는 그러한 패턴을 제시하는 광고 수행자 측에 의해 주도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찰스 Y. 양(Chales Y. Yang)이 각 시기의 기본 마케팅 전략으로서 '도입기에는 개발 전략, 성장기에는 강화 전략, 성숙기에는 유지 전략, 쇠퇴기에는 수확 전 전략이 필요하다'²⁴⁾고 말했던 것처럼 '제품 수명주기 전략'은 같은 제품에 대해 단계별로 다른 광고 전략을 이용하는 데 비해 광고가 이용할 수 있는 유행패턴의 '일시성'은 하나의 제품에 대해 다단계 광고가 아닌 일단계 광고만을 실시한다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하나의 유행패턴은 '집단적'으로 공유된다. 유행패턴의 선택은 개인적 선호에 의한 선택과는 구분되는 것으로 처음에는 몇몇 개인으로부터 시작 되더라도 어느 정도의 '동질적 집단'으로 확산되면 집단적 강제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러한 유행패턴의 또 다른 특성을 광고는 '목표소비자층'이라는 것에 적응하여 광고는 광고 시행 초기부터 목표소비자층을 설정하게 되는데 이들 목표소비자충은 일종의 '동질적 집단'이다. 목표소비자층은 그들이 갖고 있는 인구통계학적, 사회적, 개인적 특성들을 근거로 설정되는 집단으로 집단 구성원 간에 유사한 속성들을 갖게 된다. 따라서 광고가 타겟으로 하는 목표소비자층은 유행의 기본적 속성 중 하나인 '집단성'의 근거를 마련해 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하나의 유행패턴은 '상징적' 속성을 갖는다. 하나의 스타일이 유행한다는 것은 그것이 갖는 유용성에 의해서 라기 보다는 그러한 스타일이 갖는 이미지나 상징성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집단 구성원들에 의해 수용되어 공감되어 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니스커트가 유행할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용자는 단지 치마의 길이가 짧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짧은 치마가 갖는 이미지때문에 수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어떠한 속성보다 이러한 유행 패턴의 '상징적' 속성 때문에 유행현상이 광고에 이용될 수 있는 것이고 광고가 유행선도의 기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기호를 통한 광고의 상징적 이미지들의 산출에 의해 특정 패턴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됨으로써 새로운 유행의 창출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광고가 개입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행패턴의 상징성은 시간적 흐름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확산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획득되어진다. 그러나 광고라는 변수가 개입된 상황에서의 유행현상은 광고에 의해 유행패턴의 상징성이 획득된다고 할 수 있다. 즉 광고가 개입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유행패턴의 상징성이 패턴의 도입초기부터 결정되어 있지 않고 유행선도자에서 유행추종자로 확산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점차적으로 윤곽을 드러내게 되지만 광고에 의해 하나의 유행패턴이 제시되는 상황에서는 처음부터 광고를 통해 그 제품이 갖는 이미지가 광고의 상징적 표현기법을 통해 제시되는 것이다. 그래서 의류나 액세서리, 화장품과 같은 패션상품의 경우 시각적 효과를 갖지 못해 영상적 이미지를 제공하지 못하는 라디오광고는 배제된다. ²⁵⁾

마지막으로 하나의 유행패턴은 '현시적'이다. 끊임없는 갱신에 의해 하나의 유행패턴은 항상 새로움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시간적 흐름에 따라 하나의 스타일은 또 다른 스타일에 의해 틀림없이 대체되어지고 새로운 상징적인 의미가 부여된다. 그리고 또한 복고풍의 영향으로 옛 스타일이 다시 유행하게 된다고 해도 그 스타일에는 옛 스타일의 의미가 아닌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고 그 시기에 있어 적절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됨으로써 유행하게 된다. 따라서 수용자는 지속적으로 자신이 수용한 스타일에 대한 의미를 재평가되고 유행은 유행에 뒤떨어질 수밖에 없어지는 것이다. ²⁶⁾ 이러한 유행패턴의 '현시성'을 이용해 광고는 하나의 패션품목에 대해 끊임없이 새로운 스타일을 제시하고 그 스타일에 적절한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전의 스타일은 옛 것이 되고 지금의 것은 항상 새롭고 적절한 그 무엇이 되는 것이다.

이상으로 유행패턴의 기본적 속성과 광고와의 연계 가능성에 대해 살펴 보았다. 그런데 여기에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유행패턴의 기본적 속성들 각각 이 개별적 역할을 독립적으로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결합하여 작동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결합에 의해 광고를 통한 유행패턴의 제시가 가능해지고 광고와 유행패턴이 갖는 관계성은 계속적인 파급효과를 낳게 된다.

이제 광고가 이러한 유행패턴을 광고 전략의 한 차원으로서 이용하게 되는 이론적 맥락을 '기호로서의 상품'과 '광고'와의 관련성 속에서 도출시켜 보고자 한다.

제2절 유행선도자로서의 광고

자본주의 경제 체제 하에서의 광고의 기본적인 기능은 생산자인 기업과 소비자 간의 의사소통적 간극(communicational distance)을 메꾸는데 있었다. 즉, 소비자가 상품을 선택·구매하고자 하나 정보 전달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소비자는 자기가 필요로 하는 상품이 과연 생산·판매되고 있으며 또한 있다면 언제 어디서 누가 생산한 어떤 품질의 것을 어떠한 가격으로 선택·구매할 수 있을 것인지에 관한 정보를 가지지 못하므로 소비자는 합리적인 구매의사 결정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형식으로건 소비자에게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져 소비 생활과 관련된 충분한 정보가 전달되어야 한다는 맥락에서의 기능이다.²⁷⁾ 그러나 지금의 광고 상황에서는 광고를 이러한 소극적 기능으로만 제한하여 이해해서는 안된다. 지금의 광고는 생산된 제품에 대한 정보제공이라는 수동적 역할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 스스로 상징적 기호의 생산을 통해 끊임없이 욕구를 창출시킴으로서 수요를 만들어 내고 그럼으로써 이윤을 창출해 내는 능동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광고가 이렇게 능동적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맥락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 소비자 욕구(needs)²⁸⁾의 상대성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 중에는 물질성에 기반을 두는 상품의 '진정한 사용 가치가 존재한다'고 굳게 믿는 이들이 있다. 예컨대 그들은 광고가 '상업적 이익을 목표로 하는 대행인'²⁹⁾으로서 소위 소비자의 허위의식을 창출해 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김주환³⁰⁾은 '그러나 도대체 <진정한> 사용 가치란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다이아몬드의 <진정한> 사용가치는 무엇인가? 유리 절단기인가, 아니면 <영원한 사랑>을 의미하는 징표인가? 상품에 있어서 <진정한> 사용가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사용가치가 있을 뿐이다. '라고 반박한다. 사물의 유용성은'기능적 측면 그 자체 만으로는 결코 충분히 설명될 수 없다. 왜냐하면 상품의 기능적 가치라는 것은 주어진 문화적 틀에 따라 항상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³¹⁾ 물론 우리는 물질적인 재화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배가 고플 때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백질 몇 그램과 지방 몇 칼로리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때 우리가 원하는 것은 구체적인 문화적 사물이다. 일부의 정치경제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점을 비판한다.

바로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광고는 사람들의 허위욕구를 창조하기 위해서 작동한다. (그것이 허위인 이유는 소비자의 욕구가 아니라 생산자의 욕구이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진정한 욕구'를 반영하지 않고 시장기능에 의해서 생산물에 대한 수요가 발생한다면 ‥‥³²⁾

그러나 여기서 다시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진정한 욕구'란 무엇인가? 우리가 핏자를 먹을 때 '코카콜라'를 원하는 것은 물론 '만들어진 욕구'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을 '진정한' 욕구가 아닌 허위욕구라고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진정한 욕구나 허위욕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상품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욕구가 있을 뿐이다. 마르크스는 '우리의 욕구와 만족은 사회에 그 기원이 있으며 우리는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만 그것을 파악할 수 있다' 고 하였으며 욕구의 본질은 '사회적이기 때문에 상대적인 것'이라 하였다. ³³⁾ 상품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상품에 의해서 생산된다. 이러한 욕구는 따라서 사회적 관계에 의해 생산되는 사회적 욕구이며 문화적 틀에 의해 결정되는 욕구이다.

이에 대해 보들리야르(J. Baudrillard)³⁴⁾는 소비를 유발시키는 인간의 욕구- 그것이 어떤 것이든-결코 자연주의적/관념론적 주장에 따라 본유의 선천적인 힘, 자연히 일어나는 본능적 욕망, 인류학의 잠재성으로 규정하는 경향을 넘어, 욕구를 체제의 내적 논리에 의해 개인들 속으로 유도된 기능으로, 더 정확히 말해서 풍요한 사회에 의해 '해방된' 소비력으로서가 아니라 실제 체제 자체의 작용에 의해, 체제의 재생산 및 생존 과정에 의해 요구된 생산력으로 정의하는 데까지 일반화 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가 구체적으로 원하는 것은 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물질이고 물질이 지니는 사회적인 의미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기호로서의 상품을 원하게 되는 것이다. ³⁵⁾ 현대는 과잉생산과 과잉소비 체제이다. 이러한 것으로 인한 소비 사회의 특성이란 기호에 굶주리고 또 기호에 의해 증폭되는 욕구의 미충족 상태 즉 불안에 기초한 것이다. 일상 생활이라는 것은 소비의 실천이 일어나는 영역이며 제시된 기호의 해석체계이다.

(2) 기호로서의 상품 생산

상품의 사용가치나 그것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이상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 할 때 우리는 상품에 대한 시각을 새로이 가질 수 있다. 그것은 상품을 하나의 '기호'로서 이해하는 것이다. 이제 기호학적인 입장을 빌어 '상품'을 정의하고 생산적 커뮤니케이션 노동으로서의 광고의 역할과 위상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 한다.

기호는 '물질화한 의미, 또는 의미를 지닌 물질'이라 이해할 수 있다. ³⁶⁾물질적 기반을 갖지 않는 기호는 기호가 아니다. 왜냐하면 물질적 기반이 없으면 지각(perceive)될 수 없고, 모든 기호의 필요조건이 되는 '지각된 것 (percept)'이 생산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품이 기호라는 명제는 그것이 곧 '의미를 지닌 물질 또는 물질화한 의미'라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상품을 기호로, 그리고 '상품교환을 기호 현상의 과정으로 간주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를 위해 기호현상의 대표적인 예인 언어현상과 상품을 비교하여 그 동질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³⁷⁾

첫째, 기호와 상품은 모두 '다른 이들을 위한' 생산물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고, 둘째, 기호와 상품은 모두 '물질과 의미의 결합체'이다. 그리고 셋째, 상품과 기호는 모두 '물질적 대상, 그 대상에 대한 인간 행위, 그리고 그 행위에 의한 생산물'이라는 동일한 세가지 구성 요소의 '삼각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여기에서 첫번째, 두 번째는 순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의 역순으로 진행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품생산의 첫 번째 삼자 관계 : 생산원료-물질적 노동-생산물

두 번째 삼자 관계 : 생산물-커뮤니케이션 노동-상품

세 번째 삼자 관계 : 상품-소비-효용성

기호생산의 첫 번째 삼자 관계 : 기호원료-지각하기-지각편린

두 번째 삼자 관계 : 지각편린-기호화하기-해석체

세 번째 삼자 관계 : 기호-해석하기-해석체

이상과 같은 입장에서 상품을 이해하게 되면 '경제적 상품'과 '문화적 상품'의 구분은 무의미한 것이 되고³⁸⁾, 상품생산에 있어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노동이 절대 필요 조건이라는 점을 인정하게 된다. 여기에서 커뮤니케이션 노동이라 함은 상품 생산 과정에 관여하는 모든 종류의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뜻한다. 커뮤니케이션 노동은 교환을 위한 정보적 필요 조건을 창출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상품의 '의미' 측면과 관련된 여러 가지 정보를 생산해 냄으로써 '수요력'의 증대를 통해 잉여가치를 생산해 내는 생산적인 노동 형태이다. 커뮤니케이션 노동의 개념에는 일종의 기호(=물질+의미)인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종류의 노동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함축되어 있다. 하나는 상품의 물질적인 측면을 생산하는 물질적인 노동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무실의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에 의해 수행되는 커뮤니케이션 노동이다. 이제 '과연 커뮤니케이션 노동이 무엇인가', 또 '그것이 어떻게 가치와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생산적 노동일 수 있는가'에 대해 살펴보자.

이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용가치, 가치, 교환가치에 대한 개념적 정리가 필요하다. 인간의 이러저러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사물을 우리는 '사용가치'라고 부른다. 그리고 모든 사용가치는 추상적 인간 노동을 함유하고 있는 한에서만 '가치'를 지닌다. 즉 사용가치는 오로지 추상적 인간 노동이 그 안에 체화 또는 물질화되어 있기 때문에 가치를 지닌다. ³⁹⁾ 그러나 생산물이 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사용가치라는 사실 만으로 부족하며 반드시 남을 위한 사용가치, 즉 사회적 사용가치 이어야만 한다. 생산물이 '남을 위한 사용가치'이어야 한다는 것은 그것이 반드시 교환의 대상이 되어야 함을 뜻한다. ⁴⁰⁾ 서로 다른 구체적 노동은 그 생산물이 교환됨으로 인해서 서로 같은 것으로 간주된다. 이 서로 같은 것이 '인간의 추상적 동등노동'이며 이것이 바로 상품의 '가치'이다. 우리는 가치 그 자체를 만지거나 볼 수는 없다. 즉 직접적인 지각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반드시 다른 어떤 것으로 표현되어야만 한다.

교환에는 반드시 교환의 비율이 있게 마련이다. 이 교환의 비율은 상품에 내재된 노동량에 의해서 결정되는데 이것은 항상 '다른 상품과의 양적인 관계, 즉 비율로서 나타난다 '⁴¹⁾ 이것이 바로 '교환가치'이다. 한 상품의 가치는 항상 일정량의 다른 것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교환과정 자체는 가치를 창출해 내지 않는다. 가치는 오로지 생산과정을 통해서만 창조된다. 따라서 '상품의 형태 또는 표현으로서의' 교환가치는 항상 '가치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가치가 교환가치에서 유래하는 것은 아니다. 즉 교환가치의 기반은 가치이며, 가치의 기반은 사용가치 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상품은 '가치로서 실현되기에 앞서 그들이 사용가치라는 사실을 보여야만 한다. '고 했으며, 보들리야르는 '사용가치야말로 정치경제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⁴²⁾이라 했다. 즉 하나의 상품은 동시에 사용가치이며 교환가치 이다.

정리해 보면 '사용가치'는 그 속성으로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사물이다. '가치'는 상품에 내재되어 있는 추상적 동등노동이다. '교환가치'는 가치크기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가치'라는 단어는 여기서 각각 다른 의미를 지닌 것으로 사용되고 있다. 즉 사용'가치'에서 그것은 유용성 혹은 사용 가능성을 뜻하며 '가치'에서는 인간의 노동을 뜻하고, 교환'가치'에서 그것은 교환의 비율을 의미한다.

모든 상품의 가치는 질적으로 완전히 똑같은 것(추상적 동등노동)이기 때문에 가치는 항상 그것의 크기만이 문제가 된다. ⁴³⁾ 상품의 가치 크기는 생산 과정이 아니라 교환과정을 통해서 결정된다. 그러나 교환과정 그 자체에 의해서는 아무런 가치도 생산되지 않는다. 따라서 가치는 생산과정 속에서 창출되지만 가치 크기의 결정(또는 가치의 실현)은 교환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하나의 생산물이 가치를 지닌 상품이 되려면 반드시 교환의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 생산물에 투입된 노동이 가치로 전환되는 것은 오로지 '교환'에 의해서 이기 때문에 교환이 없다면 가치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교환의 정보적 조건의 생산은 상품가치 생산의 필수적인 한 부분이며 이러한 정보적 조건을 생산하는 것이 바로 커뮤니케이션 노동이다. 그리고 광고는 커뮤니케이션 노동의 대표적인 예이다. 생산물의 가치 크기는 생산과정 '이후의 그리고 외부의' 정보적 조건에 의해서 달라지기도 한다. 일정한 정보적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생산물은 심지어 아무런 가치도 지닐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주장은 '가치는 생산과정에서 창출되지만 그 크기의 결정은 교환과정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제 교환과정에서 과연 어떤 요인이 가치 크기를 결정하느냐가 문제이다.

생산은 주체를 위한 대상을 만들 뿐만 아니라, 대상을 위한 주체를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생산은 1) 소비를 위한 물질을 생산함으로써, 2) 소비양식을 결정함으로써, 3) 소비자가 느끼는 필요의 형태로 생산물을 창조함으로써 소비를 생산해 낸다. 그러므로 생산은 소비대상, 소비양식, 그리고 소비등기를 생산한다. ⁴⁴⁾

상품생산과정은 물질노동에 의한 물적 '소비대상'의 생산뿐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노동에 의한 '소비양식과 소비동기'의 생산도 포괄한다. '소비양식과 소비동기'야말로 교환의 정보적 조건이며 '욕구'를 생산하는 원동력이다. 이러한 욕구의 결합체는 시장에서 '수요력(demand power)'이라는 힘으로 나타난다. '수요력'은 단지 공급의 반대개념에 불과한 '수요'와는 다른 개념이다. 수요력은 사용가치에 기초하는 것으로 공급량, 구매력 등의 다양한 요소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서로에게 단위로서, 그리고 집합적인 힘으로서 작용한다.'⁴⁵⁾ 커뮤니케이션 노동은 정보적 조건 및 의미들을 생산함으로써 수요력을 생산하게 된다. 물질 노동은 상품이라는 사용가치에 대상화되지만, 커뮤니케이션 노동은 수요력이라는 사회적 힘에 대상화된다. 즉 커뮤니케이션 노동은 수요력의 중대를 통해서 상품의 가치를 증가 시킨다. 더 많은 양의 커뮤니케이션 노동은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면 더 큰 수요력을 생산하며 따라서 더 큰 가치를 생산하게 된다. 따라서 생산자들은 물질 노동과 커뮤니케이션 노동 모두의 생산성 증대를 원한다.

(3) 유형 선도자로서의 광고

이상의 논의를 통해 진정한 물적 사용가치의 부재와 사용가치의 문화적·사회적 상대성에 대해 살펴보았고, 그러한 맥락에서 상품을 하나의 기호로 이해하고자 했다. 이제 논의를 좀 더 구체화시켜 커뮤니케이션 노동으로서의 광고와 광고의 상징성이 유행현상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 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앞의 논의에서도 언급했듯이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행위는 상품생산과 교환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물이 상품으로 될 때, 그것의 생산에 관련된 인간의 행위가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으로 전환되는 것처럼, 이에 관련된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행위 역시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으로 전환된다. 그러므로 대중매체와 광고는 단순히 경제과정 '밖에서' 경제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경제과정 내부의 핵심적인 부분을 이루는 영역으로 상품 생산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요소다.

광고가 커뮤니케이션 노동으로서 상품 생산에 있어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 하고 있다는 것은 광고가 상품에 대한 정보를 생산함으로써 교환의 정보적 조건을 충족시킬 뿐만 아니라(상품을 알리는 것), 상품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소비 방식을 생산한다는 데 있다. 이러한 상품 생산의 과정은 소비에 의해서 '최후의 완성'을 이루게 된다. 소비는 상품의 물질적인 속성에 의해서 만 결정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하나의 사물에서 다양한 유용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의 생산물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소비될 수 있는 것이다. 현 대의 소비자들은 자신을 타인과 구별짓는 표식 즉 기호로서 사물의 소비를 조작한다. 결국 오늘날 소비가 지향하는 가치는 이러한 식별 기호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 즉 사물 및 재화 그 자체가 아니라 '차이' 및 '차이의 기호'에 기반을 두고 있는 '기호가치'인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사물이 아니라 기호이며, 모든 것은 이러한 차별화를 가능케 하는 기호가 지배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차별화는 기호를 통해 제품에 어떤 '이미지'를 부여함으로써 가능해진다. ⁴⁶⁾

광고가 노리는 바는 제품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의 부여이다. 제품 그 자체의 아무런 물질적 변화 없이도 광고를 통해 새로운 의미와 사용치를 획득 하게 하는 것이다. 즉, 그것에 투입된 물질 노동의 양의 변화 없이도 '사용가치의 변화(확장)에 따른 수요력의 증가'를 통해 더 큰 가치와 잉여가치를 생산 하게 된다. 상품의 물질적 특성에만 근거하는 '진정한 사용가치'란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물질과 인간의 역동적 관계, 즉 문화에 의해 결정되는 사용가치 만이 존재한다. 어떤 물질적 조건에 어떤 의미를 결합시켜 그것을 기호화할 것 인지가 문화에 의해 자의적으로 결정되듯이, 어떤 물질에서 어떤 사용가치를 발견하여 그것을 상품으로 할 것인지도 문화에 의해 자의적으로 결정된다. 상품의 유용성은 상품과 소비자 간의 상호 주관적인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상품은 기호이기 때문이다. 텍스트 생산자(작가)가 '일련의 코드에 의존해야 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품 생산자는 소비자의 사용가치에 대한 해석을 위한 '일련의 코드', 즉 '소비의 방식'을 제공하여 소비자가 그 상품의 유용 성을 해석할 수 있게끔 하여야만 한다. 하나의 상품에 새로운 의미와 사용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은 동시에 그 상품에 대한 인간의 새로운 욕구를 생산한다 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새로운 욕구의 생산이 가능한 것은 인간의 '욕구와 만족'은 '사회적'이고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광고가 담당하게 되는 이러한 '소비방식의 생산'이라는 측면은 유행 패턴이 갖게 되는 기본적 속성 중의 하나인 '상징성'과 연결되고, 유행패턴의 다른 속성들인 '일시성', '집단성', '현시성'이 함께 맞물림으로써 광고를 통한 '유행패턴의 제시'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이론적 근거를 토대로 광고를 통한 유행패턴의 제시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 지를 색조화장품 광고현상을 중심으로 실제적으로 분석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