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절 선행연구에 대한 고찰

신문이나 방송에 나타나는 외래어 실태에 관한 연구는 어느 정도 연구 성과가 축적되어있는 편이다. 또한 광고와 언어의 문제를 다룬 연구도 학술 논문은 물론, 광고전문지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상당한 성과를 축적하고 있다. 언어는 사회적인 면에서 전달매개체 또는 결합 매개체이며, 광고적 측면에서 정보제공매개체요 설득매개체인 것이어서 ³²⁾ 광고커뮤니케이션에서 언어연구는 핵심분야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고에 나타난 외래어 문제를 다룬 연구, 특히 실증적 연구는 아직까지 선행연구가 그리 많지 않다. 그 이유는 우선 '광고학'이 아직 학적체계가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기보다는 현실적이고 실용적 요소가 강한 초창기 학문인 까닭에 ³³⁾, '광고와 외래어의 관계'와 같은 세부적이고 실증적인 연구 분야에까지 아직 눈을 돌리지 못한 현실이 들어지겠다. 광고학 성립의 일차적 기초가 되는 우리나라 광고의 역사가 그리 길지 못하고, 이에 따라 '광고학'의 성립 자체가 매우 뒤늦었기 때문일 것이다. 매스미디어에 실린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광고가, 1886년 2월 22일자 <한성주보>의 15~16면에 게재된 독일계 모피무역상사 세창양행(世昌洋行)의 광고이니 이를 역산해보면 광고 역사 자체가 고작해야 110년을 넘지 못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³⁴⁾

일찌기 윌버·슈람(Wilbur Schramm)은 사회과학으로서의 매스커뮤니케이션학을 일러 하나의 전문화된 학문(discipline)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문제영역(field)라고 칭하면서, '학문의 교차로'라고까지 비유한 바가 있다.³⁵⁾ 학문이 독립된 과학이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고유한 연구영역과 연구방법론을 가져야 하는데, '광고학'은 그같은 연구영역과 방법론에서 보았을 때 커뮤니케이션학 중에서도 가장 미숙한 입장에 서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특히 선행연구의 촛점을 본 연구의 주제인 TV광고 외래어 문제로 좁히면 더욱 그러한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광고에 쓰인 외래어 문제를 국어순화의 관점에서 다룬 접근, 그것도 대부분 외래어의 부정적 효과를 조명한 글들은 심심찮게 발견되지만 체계적 연구를 바탕으로 한 본격적 학술논문은 상당히 드문 현실인 것이다.

이러한 선행연구의 제한 때문에 본 연구는 TV광고에 나타난 외래어 실태를 실증적으로 분석하고자 하는 연구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광고관련 연구 뿐 아니라 순수 국어학 분야의 선행연구에서 시사를 얻지 않을 수 없었다. 국어학 분야의 선행연구에서는 특히 우리나라 외래어 수용의 역사에서 외래어의 유형 설정에 이르기까지 외래어를 연구하는 기초적 개념의 확정에 큰 시사를 얻었다. 그러므로 선행연구에 대한 고찰을 다룬 이 절은 먼저 국어학 분야에 있어 외래어 연구 성과를 고찰한 후, 광고학 분야에서의 선행연구를 살펴보는 순서를 밟기로 한다. 외래어에 대한 국어학의 일반론적 연구 방법론을 TV광고라는 고유영역에 입체적으로 교차 적용시키는 시도를 통해서 비로소 본 연구의 실마리가 풀려나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1. 국어학 부문에서의 외래어 연구

국어학 분야에서 외래어 연구는 외래어 표기법, 외래어 수용에 따른 제 양상, 외래어 남용에 대한 대처, 외래어 사용실태조사, 표준 외래어 설정 문제 등 주제별로 다양한 연구성과를 보이고 있다. 1991년을 기준으로만 보더라도 학계에 보고된 외래어 관계 논문이 200편을 훨씬 상회하고 있으며, 본 연구에 관련된 외래어 사용실태에 관한 실증적 연구도 상당히 진척되어 있다.³⁶⁾ 그 대표적인 연구들을 개관해보기로 하자.

1) 김민수의 연구

김민수(1984)는 「국어정책론」이란 저서에서 외래어 문제를 심도 깊게 고찰하는데 ³⁷⁾, 특히 외래어 표기의 기준과 외래어의 개념규정에 있어 명쾌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는 외래어를 "외국에서 수입되어 제 국어 가운데 사용되는 단어"³⁸⁾라고 규정짓고, 외래어가 우리 말로 유입되어 섭취되는 단계를 사례를 들어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³⁹⁾ 특히 1920년대와 1930년대의 10년 사이에 우리나라 신문·잡지에 쓰인 외래어를 연구한 자료를 사례로 들어, 그 10년 사이에 외래어 사용이 무려 3.38배의 증가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눈에 띈다. 그는 우리 언어생활에서 이처럼 외래어 사용이 증가하는 이유로 ① 국민성이 진취적이어서 외국문화의 섭취가 활발하고, ② 외국어와 전문지식이 갈수록 널리 보급되고, ③ 우리 국어 자체가 외래어 섭취에 무난한 언어적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④ 교통발달과 국제교류의 활발, ⑤ 유행을 쫓는 첨단심리 등의 5가지를 들고 있다. 그의 연구는 외래어의 기본 개념 규정과 나아가 TV광고에서 외래어를 사용하게 만드는 사회심리적 요인을 분석하는데 상당한 시사를 주었다.

2) 이찬규의 연구

이찬규(1988)는 우라 말에 외래어가 유입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국어와 외래어의 의미충돌 및 분화 현상을 연구하고 있다.⁴⁰⁾ 외래어가 국어와 융화되는 과정과 외래어 차용의 배경을 분석한 이 논문에서는 수백년 이상 사용되어 이제 거의 국어화 된 한자 어휘를 과연 외래어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등, 외래어 범주 설정에 대한 도움을 얻었다 하겠다.

이 연구는 외래어가 우리말 속에 들어와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융화되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는데, 외래어 문제는 하나의 역사적 과정이므로 공시적인 방법보다는 통시적인 연구를 통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어느 특정시기의 집중적 고찰에 치중하지 않고 지난 10년간 TV광고에서 외래어 실태가 어떤 경향성을 보이고 있는가를 통시적으로 조감하고자 하는 본 연구의 방법론 설정에, 논리적 근거를 주었기 때문이다.⁴¹⁾

3) 최기호의 연구

최기호(1989)는 방송 언어의 변천을 통시적으로 약술한 연구를 통해 우리 방송에 나타난 외래어의 실태와 특성을 고찰하고 있다.⁴²⁾ 엄밀한 의미에 순수 국어학적 시각에서의 연구라고 볼 수는 없겠으나, 국어학적 시각에서 방송분야의 외래어 문제를 다룬 많지 않은 글이라는 점에서 참고가 되었다. 이 논문은 방송언어에 있어 외래어 사용실태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후 국어순화론적 관점에서 대책을 제시하고 있는데, 본 연구의 당위론적 시각 정립에 도움을 주었다 하겠다.⁴³⁾

4) 김길자의 연구

김길자(1991)는 상호와 일상 언어 생활 속에서 쓰이는 외래어의 내용분석을 통해 외래어 실태를 실증적으로 분석하고 있다.⁴⁴⁾ 특히 이 논문에는 기존 국어학 분야에서 이루어진 외래어 연구에 대한 각종 연구사와 연구성과가 요약되어 있어 본 연구의 참고자료 수집에 큰 도움을 받았다.

또한 외래어 개념에 대한 다양한 학설들을 소개하고 이를 묶어 외래어에 대한 총체적인 개념 규정을 시도함으로써, 본 연구에서 외래어 유형을 확정하는데 시사를 주었다 하겠다. TV광고에 사용되는 협의의 외래어들은 그 우리말화의 정도가 모두 똑같지 않아서 음운론적·의미론적 측면에서 매우 다양한 편차를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의 획일적 외래어 유형 속에 이처럼 여러 차별적 성격의 어휘들을 한꺼번에 몰아넣기가 매우 애매한 바 있었는데, 위의 연구성과를 참고하여 이들 어휘를 우리말에 동화된 정도에 따라 보다 세밀하게 구분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되었던 것이다. 그밖에도 논문의 주제가 상호 및 일상 언어 생활 속에서의 외래어 사용실태였으므로, 실증적 조사분석의 방법에 있어서도 도움을 얻었음을 덧붙이고 싶다.

5) 이오덕의 연구

이오덕(1992)은 우리말에 들어온 외래어 문제를 명확한 가치규범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를 받았다. 그는 국어순화라는 확고한 신념에서 우리나라 말에 들어온 외국말의 부정적 영향을 집중적으로 고찰하고 있다.⁴⁵⁾ 한마디로 외래어의 남용·오용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다. 그는 중국에서 들어온 한자어와 일본 영향을 받은 어휘, 그리고 서구 외래어의 부정적 영향을 많은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의 연구에서는 TV광고 외래어를 창출하는 내부적 요인 가운데 하나인 우리나라 사람들의 '언어사대주의'에 대한 현실 파악은 물론, 장기적으로 우리 언어문화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의 틀을 잡아야 하는가에 대한 당위론적 참고를 얻었다 하겠다.

2. 광고와 관련된 외래어 연구

국어학 분야에서의 외래어 연구에 비해 광고와 관련된 외래어 연구는 상대적으로 성과가 그리 많지 않다.⁴⁶⁾ 전문잡지 등에 발표된 글 이외에 학위 논문과 같은 본격적 연구논문은 상당히 드문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 가운데 본 연구의 주제와 관련된 선행연구들을 개관해보기로 하자.

1) 신상현의 연구

신상현(1985)은 방송매체에 쓰이는 외래어를 연구한 그의 논문에서 방송순서와 운동경기에 쓰이는 외래어를 분석한 후, 광고선전에 나오는 외래어를 따로 한 장에 걸쳐 다루고 있다. 주로 방송광고에 나타난 외래어 남용의 실태와 그 부정적 측면을 한자어, 일본어계 외래어, 서구어계 외래어의 세 부류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⁴⁷⁾ 비록 연구대상 및 범위 설정의 한계가 있기는 했으나, TV광고에 나타난 외래어 실태를 언급한 초기적 선행연구라는 점에서 주목이 되었다.

2) KBS 한국어연구실의 연구

KBS 방송문화연구원 한국어연구실(1990)에서 펴낸 한국어 연구논문 제27집은 이주행과 이찬규가 작성한 '광고 방송 언어에 관한 조사연구'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싣고 있다.⁴⁸⁾ 라디오와 TV등 대중매체를 통해 표현되는 광고 언어의 문제점을 살펴본 이 보고서는, 방송언어의 어휘론적 측면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로 '외국어 난용(亂用)'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난용(亂用)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보고서는 우리 방송광고에 나타난 외래어 실태를 매우 비판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이 연구는 KBS와 MBC에서 방영된 방송광고의 실제 사례분석을 싣고 있는데, 외국어·외래어·신조어·영문 약어 등의 여러 유형에 걸쳐 방송광고에 나타난 외래어 실태를 분석하고 있다.

이 연구는 TV광고에 과다하게 사용된 외래어는 국어를 오염시키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사대주의를 신봉하게 하며, 국산품보다도 외국제품을 선호하게 하므로 어떤 경우에도 방송광고의 언어는 이해하기 쉽고 품위있는 우리 말만으로 작성, 표현되어야 한다는 강력한 가치규범적 주장을 펼치고 있다. 본 연구와 관련하여 주목된 것은 부분적이나마 방송광고에 사용된 문제 어휘를 구체적인 사례로 적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실증적 통계가 뒷받침되지 않은 한계는 있으나, TV광고에 나타나는 외래어종류를 각 유형별로 사례화시켜 놓았다는 점에서 참고가 되었다 하겠다.

3) 김홍익의 연구

김홍익(1991)은 언어심리학·기호학·언어이미지 연구·문학이론 등을 원용하여 광고 언어 사용의 효과적 지침에 관한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⁴⁹⁾ 특히 '효과적인 상표명을 위한 전략'이라는 절에서 최근 국내 상표명에 외래어가 사용되는 구체적 이유를 분석한 부분이 본 연구와 관련되어 주목되었다. 즉 우리 나라 상표명에 서구계의 외래어를 자주 사용하는 것은, 외래어를 통해 언어적 인상을 강렬하게 주는 것과 동시에 상표이미지 개선을 통한 인지도를 상승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TV광고 외래어 특성을 결정 짓는 요인 가운데, 마케팅적 요인이 매우 중요하다는 본 연구의 결론을 뒷받침해주는 논리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컸다 하겠다.

4) 임태섭의 연구

임태섭(1992)은 그의 연구에서 광고를 포함한 우리나라 방송에서 외래어 사용을 긍정적으로 보는 기존의 이론을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있다.⁵⁰⁾ 그의 설명에 따르면 외래어 사용을 주장하는 기존의 이론은 크게 불가피론과 편의론으로 구분될 수 있다고 한다.

첫 번째로 불가피론은 새롭게 대두되는 개념이나 대상을 표현하고 이를 정확한 의미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말과 글에 한계가 있다고 보는 논리이다. 곧 우리말과 글이 지닌 한계 때문에 외래어 사용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편의론은 외래어를 사용함으로써 우리말의 부족한 어휘를 보충하고 이를 통해 어휘 선택의 폭을 넓히자는 주장이다. 이 논리는 쉽사리 적극적 외래어 수용론으로 발전하기도 하는데, 국제화와 개방화 시대에는 말에 있어서도 굳이 우리 것 남의 것을 구분하지 말고 외국의 문화와 언어를 적극 수용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임태섭은 위와 같은 외래어 불가피론과 편의론이 언어의 동적인 변화성과 오용된 언어가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밝히면서, 외래어 남용과 오용의 폐해를 경고하고 있다. 기존의 외래어 수용 옹호론을 체계적으로 비판한 그의 연구는, TV광고의 외래어 문제 취급에 있어 명확한 가치규범적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도움이 되었다.

5) 공보처 조사보고서

공보처가 1992년 7월 발표한 "생활용품 광고 내용의 외국어표현 실태조사"⁵¹⁾는 1992년 6월 한달 간 우리나라 전파매체와 인쇄매체에 방영·게재된 광고를 모니터하여, 외국어표현 광고의 현황과 표현 양상 그리고 문제점을 분석한 연구 보고서이다. 한국 광고데이타(주)에 용역을 주어 진행된 이 조사는 외국어 표현 광고를 관련 법규 및 광고심의규정을 참고하여 양적 통계를 내고 내용분석한 실증적 보고서이다. 위의 분석이 이루어진 시기는 본 연구가 분석대상으로 설정한 1985년에서 1994년 사이의 특정 기간인데, 본 연구와 직접 관련이 있으면서도 그 평가의 잣대를 다른 방식으로 잡았다는 점에서 연구 방법론의 균형감각을 잡는 데 실질적 도움이 되었다. 특히 한정된 짧은 기간 동안 외래어 사용실태를 분석한 결과가, 10년이라는 중장기적인 분석을 통한 본 연구의 결과와 얼마나 유사한 경향성을 보이고 있는가에 관심이 모아졌다. 그 결과 양자의 결론이 매우 비슷했다는 점에서 본 연구의 타당성 검증에 중요한 보완을 해주었다 하겠다.

6) 광고정보

광고전문지인 「광고정보」(1993)는 외래어 문제를 특집으로 다룬 기사를 싣고 있다. 그 첫 번째가 1993년 7월호에 실린 "국어순화와 광고의 기능" 이란 제목의 글이다.⁵²⁾ 한국방송광고공사 광고교육원이 주관한 특강을 요약한 이 글에서는 ⁵³⁾ 외래어의 그릇된 영향으로 잘못 쓰여지고 있는 변태서술어를 비롯하여 일본말투와 영어말투의 오용에 대해 구체적인 지적이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서는 언론매체를 비롯한 광고에 쓰이는 무분별한 외래어 및 외국어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적시하고 있는데,⁵⁴⁾ 본 연구의 외래어 유형 설정에 또 다른 참고를 제공하였다 하겠다

「광고정보」(1993)는 뒤이어 "올바른 광고언어의 사용"이란 주제로 3달에 걸친 기획기사를 싣고 있다.⁵⁵⁾ 그 첫 번째는 그해 여름 광고인 하계대학에서 행한 "광고언어 순화"⁵⁶⁾라는 특강을 발췌, 요약한 것인데 '언어적 규범 속에 광고 효과 극대화 추구해야'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다. 광고언어에 사용되는 외래어의 발음·어휘·문법에 걸쳐 당위론적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이 글에서 특히 본 연구와 관련해서 주목되었던 것은 방송광고 심의에서 외래어 규제기준 부분이었다. 즉 1993년 당시의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제 91조에 의거, 외래어 심의규정에 부합되는 광고언어의 발음·어휘·문법에 관한 모범사례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TV광고 외래어를 만드는 결정론적 요인인 광고심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좋은 자료가 되었다 하겠다.

두 번째 기사는 '전통적 완곡어법과 크리에이티브의 접목'이란 소제목으로 역시 한국방송광고공사 광고교육원의 특강을 발췌, 요약한 내용이다. 이 글은 앞서의 주장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광고 언어 사용 문제를 접근하고 있다. 즉 광고언어는 단순히 국어순화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광고 본래의 목적을 보다 효과적으로 살리면서 동시에 국어의 아름다움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⁵⁷⁾ 다소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을 하거나 제품 명에 전혀 새로운 조어를 사용하는 등의 시도에 일률적인 규제를 하기보다는, 커뮤니케이션 측면과 창작 측면을 함께 고려하여 보다 포괄적이고 합리적인 규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지이다.⁵⁸⁾ 광고언어 특히 외래어를 평가하는 기준에 있어 타협 없는 100%의 이상론은 없으며 현실적인 융통성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입장인데, 광고 외래어 문제에 관한 중도적 관점이란 측면에서 시사가 되었다.

세 번째 기사는 '효과적인 광고언어가 올바른 광고언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의 광고언어가 광고 자체의 본질적-마케팅 기능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기여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⁵⁹⁾ 특집에 실린 글 가운데서 외래어 수용 문제에 대해 가장 유연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겠다. 오늘날의 국제경쟁시대에서 광고언어는 더 이상 국어순화 차원에서만 논의될 수는 없으며, 올바른 광고언어는 우선 소비자에게 호의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고 구매로 연결시키는 마케팅적 목표에 충실한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즉 광고는 그 본질상 어차피 마케팅의 한 부분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광고언어를 평가함에 있어서도 순수한 언어론적 측면보다는 마케팅 효과 측면이 중요시 되어야 한다는 논지인 것이다. 본 연구와 관련해 TV광고에서의 외래어를 바라보는 관점의 균형감각에 도움을 주었다 하겠다.

7) 김성호의 연구

김성호(1993)는 광고가 중등학생의 언어생활에 미치는 문제점을 파악하려는 특별한 목적의식 아래, TV광고 카피에 대한 내용분석을 실시하고 있다.⁶⁰⁾ 의약품계, 식품·음료계, 의류·섬유계, 화장품계 업종을 나눈 후, 파생어와 합성어, 조사 등의 여러 유목에 걸쳐 광고에 사용되는 어휘의 특징을 실증적으로 분석한 연구였다. 접근의 관점 및 조사대상의 유사성에서 본 연구에 상당한 실질적 참고를 주었다 하겠다.

8) 강길호의 연구

강길호(1994)는 우리 광고에 나타난 외래어의 실상을 커뮤니케이션학적 입장에서 체계적으로 탐구하고 있다.⁶¹⁾ 외래어와 관련된 광고의 이론을 수립하기보다는 오히려 우리 광고에 나타난 외래어 현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초점을 맞춘 탐사적인 연구임을 밝히고 있는데, 특히 광고에 나타난 외래어의 구체적 유형화를 시도한 것이 주목되었다. 이 연구는 또한 '외래어 사용으로 기대되는 광고효과'를 이론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왜 우리나라 광고에 외래어가 많이 사용되는가에 대한 이론적 규명을 시도하고 있다. 결론을 보자면, 광고에서 외래어를 사용하는 것은 한마디로 광고의 본질적 목적인 광고효과를 증대시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최근 10년간 우리 TV광고에 나타난 외래어 실태와 그 원인을 찾아보고자 하는 본 연구에 있어 위와 같은 분석은 중요한 논거를 주었다 하겠다.

그러나 이 연구는 외래어 실태 분석에 있어 구체적 자료를 이용한 실증적 검증이 부족하였고,⁶²⁾ 또 전파광고와 인쇄광고의 구분 없이 뭉뚱그려서 외래어 문제를 다룬 점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고에 나타난 외래어 현상을 커뮤니케이션학과 마케팅 이론 양쪽 측면에서 접근하여 원인규명을 시도한 본격적 학술논문이었다는 점에서, 본 연구에 큰 시사를 준 선행연구였음에 틀림이 없었다.

제2절 TV광고 외래어의 결정론적⁶³⁾ 요인

1. 요인 고찰에 대한 필요성

우리나라 TV광고를 언어적 측면에서 고찰해보았을 때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외래어·외국어의 과다한 사용이다. 1985년의 한 연구에 의하면 방송광고 사전심의를 통과해서 방영된 TV광고에서 한번 이상 외래어·외국어가 쓰인 경우가 전체 광고 편수의 80%를 차지한다고 조사되고 있다.⁶⁴⁾ 1985년에서 1994년까지 10년간의 외래어 사용실태를 분석한 본 연구에서는 그 수치가 무려 87.4%로까지 상승하고 있다.

광고는 사회적 현상이며 TV광고에 나타나는 외래어도 역시 고유한 역사적 경험과 사회적 환경의 산물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어떤 경험과 환경이 이같은 외래어 실태를 만들어내는가? TV광고에 외래어가 많이 나타나는 원인은 무엇인가? 실증 분석에 들어가기 앞서 우리나라 TV광고에 외래어가 나타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결정론적 요인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 그러한 요인에 대한 분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최근 10년간의 TV광고 외래어 실태를 다룬 본 연구는 단지 수치적 통계의 나열에 불과할 뿐, 총체적이며 입체적인 이해와 조망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찰된 바, 우리나라 TV광고에서 외래어를 사용하게 만드는 결정론적 요인은 크게 외부적, 내부적 요인의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으뜸가는 외부적 요인은 TV광고에 대한 방송위원회의 타율적 사전 광고심의이다. 그리고 대표적인 내부적 요인은 광고에 외래어를 사용함으로써 광고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마케팅적 요구와, 그와 밀접하게 연결된 우리나라 사람들의 언어생활에 있어 외래어선호 경향이다. 이 두가지 결정론적 요인에 대해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2. 외부적 요인으로서의 TV광고 심의

우리나라의 모든 TV광고는 방송위원회의 사전심의를 거쳐야만 방영이 가능하다. 따라서 TV광고의 외래어를 일차적으로 허용 혹은 차단하는 심의기구의 역할은 대단히 크다 하겠다. TV광고 외래어를 결정짓는 외부적 요인을 살펴보기 위해서, 광고심의의 역사 및 실태 그리고 심의의 구체적 사례 등에 관해 꼭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문헌에 나타난 우리나라 최초의 광고규제는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면서 일본이 당시 한국 언론에 대해 가한 직접 통제에서 찾아진다.⁶⁵⁾ 이후 1966년의 방송윤리위원회를 거쳐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TV광고 규제는 자율적인 사전심의 형태를 띄어왔다. 이같은 자율심의를 벗어나 실증법에 의한 타율적 광고규제가 시작된 것은 1980년에 언론기본법이 제정된 후부터이다. 당지의 심의주체는 무자본 특수법인인 한국방송광고공사였다. 그후 1987년 언론기본법 폐지와 방송법 제정, 그리고 다시 1988년 12월에 개정된 방송법에 따라 이듬해 2월 1일부터 TV광고 심의기능이 방송위원회로 이관되는데, 정부에 의한 더욱 본격적이고 강력한 타율적 사전심의가 첫발을 내디딘 것은 바로 이 때부터이다.⁶⁶⁾

현재 우리나라의 광고규제는 총 183개의 법규와 100여가지의 광고관련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⁶⁷⁾ 위에서 밝힌 대로 그 가운데 TV광고의 외래어 사용과 가장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 방송위원회에서 행해지는 방송 광고심의제도이다.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1994년 방송위원회가 개정한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 89조는 "광고는 우리 말의 표준어를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한글 맞춤법 및 외래어 표기법을 준수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광고표현상의 외국어 또는 외래어의 남용·오용이 주는 부정적 영향을 방지하기 위한 규정이다.

개정 전의 심의규정이 외래어 및 외국어 표현에 대해 상당히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던 데 비해, 새로 바뀐 심의규정은 슬로건이나 상품명·기업명에 외국어 사용을 허용하고, 광고가 설정한 상황 속에서 외국어를 불가피하게 사용하게 될 경우에는 외국어 사용을 허락하는 등 규정을 상당히 완화시키고 있다.⁶⁸⁾ 이러한 완화는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경제구조가 '90년대 들어 가일층 국제화와 개방화 조류를 타고 있고 광고언어가 이러한 추세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일정부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겠지만, 지금까지 방송광고의 엄격한 외래어 규제에 비추어 볼 때 매우 획기적인 변화로 주목된다 하겠다. 이같은 심의규정 완화에 따라 개정 심의규정이 적용되는 1995년 이후의 TV광고에서는 외래어 사용이 그 이전 기간보다 더욱 증가되리라 예상된다.⁶⁹⁾

광고심의는 이처럼 TV광고에서 외래어 남용과 오용을 막는 최일선 방어선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 연구가 분석대상으로 삼은 최근 10년간 이루어진 TV광고 심의사례를 살펴보더라도, 광고심의기구의 역할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개정 전의 옛 심의규정 제 91조(광고언어)는 제 2항에서 "광고방송은 국민의 바른 언어생활을 해치는 다음의 표현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하여 비속어·은어·조어와 함께 불필요한 외국어의 사용 및 남용 그리고 외국인 어투의 남용을 금지하고 있었는데, 방송위원회가 해마다 발간하는 「방송심의사례집」에는 이같은 심의규정에 저촉되어 방송불가되거나 수정된 각종 광고 사례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위의 책에 나오는 외래어 관련 심의저촉 광고를 사례를 들어 몇 가지 살펴 보기로 하자.⁷⁰⁾

태광 미니콤포넌트. 마인즈 MX

'91 한국전자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로 그 미니콤포넌트 마인즈 MX

태광 에로이카 ⁷¹⁾

밑줄 친 부분의 외국어 남용이 지적되어 '91년 10월 16일 심의에서 방송 불가된 태광에로이카 오디오 광고의 카피 전문이다. 이 광고는, 총 23개의 음절 가운데 무려 13개의 음절이 외래어 혹은 외국어로 구성되어 있다.

다음은 1993년 8월 1일 밑줄 친 부분의 외국어 사용이 지적되어 다른 말로 수정하는 조건부로 심의 통과된 속옷 광고 카피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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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사례를 들 필요도 없이 이같은 외래어 남용 광고는 각 당해년도의 방송심의사례집을 무작위로 들쳐보더라도 얼마든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또한 1994년 심의규정 개정 이전까지 방송위원회에서 이루어진 광고심의는 외국어(외래어)의 허용과 불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며 엄격한 다음과 같은 일반기준을 마련하고 있다.⁷²⁾

① 모든 외국어는 허용되지 아니하나 다만 외국어로 된 광고상품 명(행사명 포함)은 예외로 함.

② 외래어도 우리말로 대체할 수 있거나 그 사용이 불필요한 경우 허용하지 아니함.

③ 외국어로 된 전문용어의 경우는 우리말로 바꾸어 표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우리말로 대체할 수 없는 경우는 한정허용함

④ 기업슬로건 중의 외국어는 다년간의 기업자산으로 인정될 경우에 한해 심의를 거쳐 허용함

⑤ 허용된 외국어(외래어)의 불필요한 중복사용은 외국어 남용으로 보아 허용하지 아니함.

덧붙여 방송위원회 심의규정은 해당 시기마다 TV광고에 허용되는 외래어와 외국어 어휘를 사례를 들어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는데, 1991년 1월 1일에서 1992년 10월까지의 방송위원회 광고심의에서 허용된 외국어·외래어의 실례를 한글 자순에 따라 대표적으로 몇 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⁷³⁾

(ㄱ) 골프웨어/그래픽 디자인

(ㄴ) 논스톱/노트

(ㄷ) 다이어리/드라마

(ㄹ) 레파토리/레저스포츠

(ㅁ) 멀티미디어/미니컴포넌트

(ㅂ) 바캉스/베스트셀러

(ㅅ) 샐러드/스케치

(ㅇ) 아마추어/이벤트

(ㅈ) 자켓/죠그셔틀

(ㅊ) 초콜릿/치킨

(ㅋ) 카세트/캐쥬얼슈즈

(ㅌ) 터보/토털패션

(ㅍ) 파운데이션/파노라마

(ㅎ) 하이캐쥬얼/하일라이트

외부적 요인에서 또하나 빠트릴 수 없는 것은 TV광고를 둘러싼 보다 거시적인 환경변화이다. 앞서 예를 든 광고심의처럼 즉각적이지는 않으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환경 변화가 종국에는 TV광고의 외래어 실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95년부터 기존 GATT를 대신한 WTO(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체제가 본격 출범하고, 우리나라도 이 기구에 가입함으로써 광고심의 부분에도 상당한 변화압력이 가해지고 있는 현실을 들 수 있겠다. 세계 경제 헌법이라고도 불려지는 WTO체제는 단순히 경제구조적 측면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본원칙인 시장 접근의 보장과 투명성 원칙에 따라 각국의 광고산업 구조는 물론 구체적 광고심의에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⁷⁴⁾

특히 미국은 광고전략을 미리 노출시킬 뿐 아니라 광고제작 및 표현의 자유를 억제한다는 등의 이유로 우리나라 방송광고 사전심의의 폐지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압력이 어떤 형태로든 TV광고에서의 외래어 사용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 하겠다.

또한 분석대상 기간 동안 치러진 서울올림픽 등 초대형 국제 행사가 사회 전반에 개방화·국제화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이러한 조류가 이윽고 TV 광고 표현기법은 물론 TV광고 외래어 사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발견된다. TV광고의 외래어 실태는 결국 광고 자체를 만들어내는 원천인 사회 전체의 환경 변화를, 어떤 형태로든 반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사회환경의 변화가 외래어 실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뒤에 나을 '외래어 실태의 통시적 분석'에서 좀더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3. 내부적 요인으로서의 마케팅적 요구와 언어 사대주의

1) 마케팅적 요구와 외래어 사용의 관계

TV광고에서 외래어를 사용하게 만드는 내부 요인은 무엇인가? 그 첫 번째는 해당 광고상품의 매출을 극대화시키고자 하는 '마계팅적 요구'라고 할 수 있다. 광고가 지닌 최종 목표가 광고효과의 극대화에 있다고 할 때, 외래어를 사용하면 할수록 해당 상품에 대한 광고효과가 증대되리라는 기대가 있다는 것이다.⁷⁵⁾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광고에 사용되는 외래어는 다음의 3가지 측면에서 메시지 수용자들의 광고상품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제고시킨다고 분석된다.⁷⁶⁾

첫째, 광고상품에 이국적인 이미지를 부여함으로써 광고효과를 증대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외국의 풍물을 대할 때 낯설고 이국적인 느낌을 받고 뒤이어 호기심과 호의를 가지는데, 광고에 외래어를 사용하면 이와 유사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외국이나 외국 상품에 대한 호의적 고정관념을 촉발시킴으로써 광고효과를 높이고자 하는 것이다. 근대 이후 고유한 역사적 경험에서 생겨난 경향이라 판단되는 바, 우리 국민들은 외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외국상품의 품질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광고에 외래어를 사용하면, 그 뉘앙스나 느낌을 통해 마치 외국에서 도입한 상품이거나 기술제휴를 통해 생산된 제품인 것처럼 연상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셋째, 우리 사회에서 외래어들이 순우리말에 비해 지적·권위적이며 보다 격조 높은 말로 인식되는 사회통념을 들 수 있겠다. 이 때문에 외래어를 사용하면 광고상품에 보다 신뢰감 있고 전문적인 이미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뒤에 나올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언어사대주의 경향과도 일맥상통하는 지적이다.

또한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지적 과시를 위해 외래어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것들이 일반 대중의 언어생활에도 영향을 미쳐 마치 외래어가 순우리말보다 더 고상하거나 상대방을 높여주는 표현방식인 것처럼 오해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같은 사회적 통념에 힘입어 광고에 외래어를 사용하면 광고상품의 신뢰성이나 전문성을 높이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 TV광고에서 외래어 사용을 이끌어내는 3가지 마케팅적 요인은 하나의 가설적 결론일 뿐, 실증적 분석에 의한 증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 최근 10년간 우리 TV광고에 나타난 외래어를 내용분석하는 과정 중에 위의 가설을 증명할 수 있는 뚜렷한 경향성이 발견되었다. 특히 각 업종별 외래어 사용실태 분석에서 가설을 증명할 수 있는 명백한 사례가 나타난다. 즉 각 업종의 성격에 따라 사용되는 외래어의 유형과 빈도가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광고상품을 선택할 때 이미지 지향과 자부심이 중요한 고려요소로 작용하는 제품일수록 그 TV장고에 보다 많은 외래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TV광고에서 외래어를 사용하게 만드는 내부적 결정요인으로는 '광고효과 증대를 위한 마케팅적 요구' 외에도, 광고메시지 직접 생산자들의 외래어 선호도 상당히 큰 역할을 한다고 보인다. 물론 메시지 생산자들의 외래어 선호 경향 자체가 크게 보아서 '마케팅적 요구'에 포함된다 하겠으나, 더 엄밀하게 말해서 생산자 개인 개인의 자발적인 외래어 선호 취향을 의미하는 것이다. 광고메시지 생산자 자신이 이미 우리 사회의 총체적 언어환경에 소속된 일 개체로서, 집단적 외래어 선호 경향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에 더해 경험론적으로 생산자 스스로가 외래어를 광고제작 과정 중에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현상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⁷⁷⁾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진해서 그리고 의식적으로 외래어를 더욱 자주 더욱 많이 사용하는 현상을 뜻하는 것이다.

1994년 1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의 방송광고심의현황을 분석한 다음 <표 2-2-1>의 자료를 보면, 총 24,681건의 심의된 TV광고 가운데 약 49,9%인 12,314건이 조건부방송 및 방송불가 등의 사유로 방송 심의에 저촉되었음을 알 수 있다.⁷⁸⁾ 이 49.9%의 통계 속에 외래어 관련으로 인한 기각사례가 별도로 조사되어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 자료와 관련하여 1992년 2/4분기 공보처에서 조사한 보고서를 살펴보면 심의를 통과한 TV광고 가운데 26.2%가 외국어표현을 하고 있고, 또 그 가운데 무려 14.4%가 외국어 과다사용과 불필요한 외국어표기 등의 이유로 인해 문제성 광고로 분류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⁷⁹⁾

물론 전자는 광고 집행 전에 심의된 것이고 후자는 집행 후에 평가되었다는 차이가 있고, 분석의 시기가 서로 다르다는 한계는 있다. 그러나 두 자료간의 상관성을 고려해 볼 때, 엄격한 사전심의와 높은 기각률의 장벽을 뚫고 실제 방영에까지 이른 TV광고에서마저 무려 14.4%나 되는 외국어 관련 문제 사례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광고주들과 광고메시지 생산자들의 외래어사용 선호가 강하다는 하나의 증명이 된다 하겠다.

TV광고의 지상명제는 무형이든 유형이든 광고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보다 많이 판매하고자 하는 데 맞춰져 있다.⁸⁰⁾ 이 사실은 역으로 광고 메시지가 목표소비자들의 선호를 만족시켜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먼저 소지대중의 외래어에 대한 강력한 선호가 존재하지 않으면 TV광고에서 외래어 선호 현상이 생겨나기 어렵다는 명제를 도출할 수 있다 하겠다. 즉 소비대중들의 외래어 선호 현상이야말로 우리나라 TV광고의 외래어 실태를 결정짓는 강력한 요인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이같은 소비대중들의 외래어 선호 현상과 그 원인은 무엇인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2) 언어사대주의와 외래어 사용의 관계

TV광고에 사용되는 외래어는 일차적으로 시청자의 올바른 언어관 정립과 국어순화에 미치는 악영향 때문에 주목의 대상이 되어왔다. 즉 광고언어 속에 섞여있는 비국어적 요소가 대중의 올바른 언어생활을 해치고 있다는 당위론적 명제이다. 우리말 속에 들어와있는 외래어, 특히 서구 외래어는 사전에 실려있는 어휘가 전체의 7.08%에 불과하지만, 실제로 일반언어 생활에서의 사용빈도는 사전적 수치를 훨씬 웃돌고 있는 실정이다.⁸¹⁾ TV광고의 외래어 선호 배경에 보다 근원적인 우리 사회의 언어문화 풍토가 자리잡고 있다고 보는 것이 이 때문이다. 즉 우리말 잘 쓰는 것보다 외국어 잘 쓰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일부 소비대중의 언어사대주의가 강력한 내부적 동인(動因)으로 존재함을 뜻하는 것이다.⁸²⁾

소비 대중의 외래어 선호가 먼저냐 아니면 외래어 사용광고가 먼저 대중의 언어생활에 사대주의적 습관을 확산시켰는가 하는 것은, 별도의 연구가 있지 않는 한 쉽사리 판정내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광고는 그 속성상 사회적으로 널리 유통되는 매스커뮤니케이션의 형태를 띄고 있으며 그 목표집단의 선호경향에 일차적으로 표현제작의 기준을 둘 수밖에 없다. 따라서 TV광고가 소비자들의 언어생활에 미치는 영향과 동시에, 역으로 이를 결정론적으로 이끌어내는 소비대중의 심리적 요구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이렇게 외래어를 선호하는가? 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야말로 TV광고의 외래어 실태와 그 원인을 파악하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외래어 선호현상에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판단된다.

그 첫 번째가 역사적 경험이다. 말이란 것이 단순한 표현수단만이 아니라 부단한 생활 경험의 산물이라 할 때, 우리나라 사람들의 외래어 선호경향은 근대 이후 끊임없는 서구화과정을 밟아온 역사적 경험의 한 결과적 측면임에 분명하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 제국(諸國)과의 해방 이후 50년간에 걸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밀착 현상은 이같은 외래어 선호현상을 더욱 확산시킨 것으로 판단된다.

문화의 교류는 필연적으로 언어의 교류를 이끌어들이는데, 우리 현대사가 경험한 맹렬한 서구문화의 유입이 서구어계 외래어 유입을 증대시키고 나아가 대중의 언어생활에 외래어 사용의 빈도를 늘리게 만든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⁸³⁾ 서구화를 향한 일관된 발전지향을 모색해온 우리의 역사적 경험이 대중들의 언어생활에 자연스럽게 외래어 선호를 정착시켰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1980년대 이후 우리 경제구조가 고도화되고 세계 자본주의 거대시장에 구조적으로 편입됨에 따라 필연적으로 경제·사회·문화적인 개방화가 진전되는 현실도 언어생활에서의 외래어 사용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인다. 경제·사회·문화의 개방화는 자연스럽게 기술합작·문화교류·지식수입의 증가를 통해 외국문화와 외국말의 유입을 가속화시키기 때문이다.

두 번째 원인으로 들어질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언어사대주의 현상이다. 이는 특별히 사례를 들 필요도 없이 우리 주위의 일상 언어생활에서 쉽게 확인된다 하겠다. 해방 이후 반세기가 지나면서 우리 사회에 자연스레 뿌리를 내린 외래어 선호경향으로 인하여, 외래어나 외국어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 마치 언어적 교양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현실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대중들의 언어생활에서는 물론 특히 학술적 언어 등에서 외래어 사용이 마치 차별화된 지적 수준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존재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생소한 외래어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일반인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는 특수계층일 경우가 많으므로, 신분상승을 꾀하는 대중이 그것을 쉽게 모방하게 된다는 것이다.⁸⁴⁾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까지도 우리말은 비속하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외래어는 품위있고 고상하다는 인식이 상당히 널리 퍼져 있다.⁸⁵⁾ 이와 같은 대중의 언어사대주의 경향이 TV광고에서 외래어 선호를 이끌어내는 것은, 소비자들의 욕구를 정확히 포착하고 그것을 형상화 시켜내는 TV광고의 본질적 속성에 비추어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우리나라와 구미 여러 나라와의 본격적 언어교류는 실상 1945년 이후에야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는데,⁸⁶⁾ 그 반세기 동안 우리 일상적 언어생활 속에 들어온 서구 외래어의 비중은 놀라울 정도이다. 앞서 1980년 이응백의 조사에 따르면, 「국어대사전」에 실린 서구 외래어의 비중이 전체 어휘에서 무려 7.08%나 달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⁸⁷⁾ 그러나 문제는, 거리를 가득 메운 외래어 상호명이나 물건마다 붙어있는 외래어 상표명에서 상징되듯 실제 언어생활에서 외래어의 사용이 이같은 사전적 비중을 훨씬 상회한다는 데 있다 하겠다.⁸⁸⁾

언어란 전통적으로 주어진 것이지만 때로는 관습에 따라 굳어버리는 성질이 있으며, 한번 익어서 몸에 배면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것이다.⁸⁹⁾ 심지어 '외래어 홍수'라고까지 불려질 만큼 우리 사회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외래어 선호 현상의 이면에는, 필요 이상으로 외래어를 사용하는 일부 대중매체와 지식계층의 책임이 적지 않다 할 것이다.⁹⁰⁾ 그러나 결국 최종적 책임은 언어 생활의 주체인 일반대중이 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각 개인이 보다 확고한 언어 사용의 기준을 지니고 외래어를 선별적으로 사용하는 의식적 노력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 사회의 외래어 남용·오용 현상과 이에 수반되는 TV광고에서의 과도한 외래어 사용은 올바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