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32>는 구멍을 내거나 찢거난 올풀기에 의해 표출되는 가난의 이미지이다. <그림 32-1>은 구멍난 니트 티와 그 구멍 아래로 속옷이 노출되어 보이는 Rei Kawakubo의 작품으로, 가난과 파괴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그림 32-2>는 가난과 공포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는 KOOGI의 광고 사진이다. 찢어진 옷 아래로 신체의 부위가 임의적으로 노출됨으로써, 기존의 성적 부위의 노출에 대한 진부한 표현이 거부되었다. 즉 인체의 예기치 않았던 부분, 비성적 부위가 노출됨으로써 새로운 성성(SEXINESS)을 표현한 것이다.

<그림 33>은 겹쳐입기와 페치워크를 이용한 키치의 가난의 이미지이다. <그림 33-1>은 어울리지 않는 무늬의 천을 조각조각 페치워크한고 여러겁 겁쳐입은 흥미화의 누더기 누더기 패션이다. <그림 33-2>은 Xuly Bet의 그러니 룩으로, 조각난 천을 페치워크하고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굵은 실로 얼기설기 꿰맨 전형적인 키치이다. Xuly Bet의 재활용품의 멋을 살린 넝마주이 패션에 대해 1993년 4월 7일 Newsweek지에서는 이 독특한 스타일의 바탕에는 다다이즘을 곁들인 사고 결벽주의가 흐르고 있으며, 이는 빈곤과 생태계의 파괴를 유머러스하게 꼬집고 있는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¹⁷³

아방가르드가 사용하는 또 다른 키치 이미지는 통속적이다. 20세기의 눈부신 사회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성에게는 아직도 19세기의 '집안의 정숙한 여자-good girl'와 '거리의 타락한 여자-bad girl'라는 양분적 사고가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 정숙한 여성성에 대한 도전은 이미 19세기 라파엘로 전파주의자들에 의해 시도된 이후 보헤미안 여성들로 이어져 20세기 하위문화 여성들에게서 파격적인 방법으로 수행된다. 특히 펑크 여성들은 전통적인 예쁨(prettiness)을 내던지고, 거칠고 위협적이고 두려워 보이는 모습을 추구함으로써 지배문화의 여성성과 고상한 취미와 우아한 행동의 위선을 정확히 지적했다. <그림 34>는 산업 오브제 장식과 펑크의 위협적인 외모를 이용한 Geoffrey B. Small의 통속적인 이미지의 패션이다.

펑크 여성의 섹시한 의상은 성과 계급과 관련된 여성 외모의 일상적인 단서를 모호하게 했다. 펑크 패션은 전통적인 하이패션의 관습적인 고상한 취미, 자연스러움, 세련된 건전함, 나약함, 흠없는 피부 등과 같은 완벽한 겉치례를 비꼬는 속되고 이상한 싸구려 옷차림이었다.형광색, 모조 표범가죽, 망사 스타킹, plastic stilettos, pancake make-up, 염색된 머리 등의 외관은 세련됨에 이해 단호해진 위선적인 성성과 계급의 취미에 대한 급진적인 반작용이었다. 여성에게 있어서 펑크 스타일은 여성성에 대한 세대의 부적응을 집합적으로표현하는 것이다. <그림 35>는 전통적인 성적부위, 즉 가슴과 엉덩이를 노출시킴으로써 키치의 저속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림 36>은 펑크 여성의 통속적인 성이미지를 표현한 아방가르드 패션이다. <그림 36-1>은 과감한 오려내기 기법과 금속 지퍼와 버클을 '나쁜 소녀'의 이미지를 표현한 John Richmond의 작품이다. 엉덩이와 다리의 과다한 노출에도 불구하고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오히려 당당한 펑크 여성의 이미지이다. <그림 36-2>는 천박한 통속적인 성적 이미지로, 이러한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은 고상하고 순박한 것에 맞서 천박하고 속물스러운 것으로 매도되는 통속적 이미지와 주제를 도입하여 인간의 위선에 가려진 현실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통속과 쾌락, 관능주의의 경쾌함과 짜릿함 뒤에는 현재의 풍속에 관한 비아냥거림과 신랄한 익살과 유머가 진지하게 비어있다.

이들은 모두 고도로 발달한 도시문명의 위선 뒤에 가려져 있는 비참하고 어두운 현실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도시 구석의 우울한 추함과 더러움과 뒤틀림속에서 진실과 아름다움과 에로티시즘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자체로 키치의 요소는 아니지만 배열과 착장에 의해서도 키치의 미적 부적절성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림 37>은 의복의 각 부분을 의도적으로 어리석게 배열함으로써 생기는 오치의 페러독스를 표현한 작품들이다. <그림 37-1>은 소매의 안과 겉이 뒤바뀌어 달려 있고, 쟈켓과 겉의 조기를 연결하는 지퍼가 겉으로 드러나게 박혀있다. <그림 37-2>는 Martin Margiela의 작품으로, 옷을 구성하고 있는 부분부분들의 관계에 전혀 통일성이 없다. 우선 스커트와 바지가 함께 존재하고 있고, 소매끝에 튀어나온 흰색 면 남방이 쟈켓의 네크라인사이로 드러나지 않고 예기치 않은 다른 소재와 형태의 버클 달린 칼라가 놓여 있으며, 쟈켓의 다아트가 뻔뻔스럽고 노골적으로 겉으로 나와 있으며 그나마 옷은 착용자에게 작다. Martin Margiela는 개별적인 부분과 부분의 전체적인 유기적 통일성을 파괴하기 위해 우연을 계획했으며, 이는 의도적으로 어리석은 유머와 위트와 비진지성에서 오는 충격효과를 노린 것이다.

<그림 38>은 의복 각 부분의 도치에 의한 페러독스를 표현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그림 38-1>은 바지의 상하 위치가 뒤바뀌게 배치되어 허리벨트가 스커트 밑단에 부착되는 페러독스의 효과로, J.P. Gaultier의 원피스 드레스이다. <그림 38-2>는 검정색의 턱시도 쟈켓을 앞뒤로 바꿔 입음으로써 생기는 키치의 효과를 노린 T. Mugler의 작품이다. 그 자체로는 단정하고 세련된 느낌을 주는 옷이지만 우리의 일상적 사고를 벗어난 페러독스한 착장 방식, 즉 도치로 인해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다음은 착장에 의한 키치 효과이다. ,그림 39>는 어리석은 착장에 의한 유머를 표현한 작품들이다. <그림 39-1>은 Joe Casely-Hayford의 작품으로, 흰색 머슬린 소재의 속옷이 올바르지 않은 겉옷의 착장으로 인해 겉으로 묘하게 드러나고 있다. 장난스런 유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림 39-2>는 New York의 Bloomingdales 백화점에서 디자이너 상표만큼의 아주 고가이면서도 널어놓고 판매하는 누더기 패션이다. 여러 아이템들을 무작위적으로 선택하여 마음대로 착장함으로써 경쾌한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림 40>은 성인의 유아적 취미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그림 40-1>은 J. P. Gaultier의 작품으로, 어린시절 너무나도 큰 아버지의 양복바지를 몰래 입어보고 있는 호기심 많은 소년의 이미지를 재해석하고 재편집한 것이다. 유아적 장난과 유치함으로 착용자와 관찰자의 기분을 환기시켜 준다. 그림 40-2>는 벌써 다 자라버린 어른이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이미 너무나 작아져버린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재현한 Betsey Johnson의 doll-dress이다.

인간의 합리적 사고는 모든 예술적 구조 위에 가장 쾌적한 시간적 공간적 간격들을 자동적으로 부여해 줄 수 있는 완전한 비례의 규칙이나 법칙을 설정해 보려고 오늘날까지 노력해 오고 있다.¹⁷⁴ 따라서 인체형과 비례의 보편성에 근거한 의복의 사이즈에 대한 고유한 지각이 존재하며 이는 의복과 맞음새에 대한 올바름의 기준이 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작고 꼭 맞거나 너무크고 헐렁한 옷은 폐기를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 인체에 대한 의복의 올바른 사이즈는 변화하는 미학적 관념에 따른 개념이다.¹⁷⁵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은 의복의 사이즈와 맞음새에 대한 합리적인 관념과 맞지 않게 배열함으로써 시각적 불일치를 얻고자 한다. 즉 '잘 맞음'에 위배되는 '너무 작음'과 '너무 큼'을 통해 인체에 대한 새로운 미학적 관념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94' S/S Collezioni¹⁷⁶에서는 "No rule, no time" 이라는 제목 하에 최근 패션의 다양한 키치 기법에 대해 언급하면서, 특히 XXL와 XXS 사이즈의 수공예 니트가 주요 아이템으로 등장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아방가르드 패션이 제시하는 우연한 멋대로의 효과는 실상 단순한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우연이란 겉보기에는 지극히 임의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예술가의 치밀한 계산과 선택이 수반되지 않고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¹⁷⁷

아방가르드 패션은 전대의 가치체계와 전통 일반에 대한 부정의 정신으로부터 새로운 복식미를 추구하는 혁신적이고 극단적이며 실험적인 현대 패션이다. 본 장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1980년대 이후의 아방가르드 패션은 남성과 여성, 사회적으로 규정된 시간과 공간에 의한 영역의 구분, 상층의 고상한 취미와 하층의 저급한 취미, 서구 문화와 이문화 등의 영역의 양분법과 위계적 질서를 극단적으로 부정하고 이 각각의 쟝르를 통합하고 있다.

성과 인체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을 부정하는 것은 사적으로 아방가르드 패션의 중요한 주제가 되어왔다. 전통적으로 서양의 패션은 성과 이후 이에 대한 기존의 가치체계는 지속적으로 붕괴되어왔다. 1980년대 이전의 아방가르드 패션은 여성성의 거부를 주제로 하였지만, 현재 이러한 경향은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게 됨으로써 전통화하게 된다. 1980년대 이후의 아방가르드 패션이 주장하는 새로움은 남성 패션의 남성성에 대한 거부와 남성과 여성을 같은 맥락에서 파악하는 것이다.

성관념의 변화는 인체의 성차를 강조하던 기존의 복식 형태에서 벗어난 자유롭고 새로운 조형사고를 가능하게 하였고 이러한 경향으로부터 기존의 합리적인 의복구성을 의도적으로 파기한 디자인이나 인체를 단지 예술의지의 공간으로 파악한 디자인을 출현시켰다. 1980년대 이전의 Poiret나 Chanel이나 Dior 등이 추구했던 조형적 패션은 인체나 의복 구성에 대한 기존의 합리적인 인식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의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은 인체와 의복구성에 대한 합리적인 사고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극단적인 형태의 패션을 내놓고 있다.

아방가르드 패션은 현재적 상황을 부정하고 새로움을 창조하기 위해 역사와 주변문화에 관심을 가져왔다. 포스트모던의 시대에 들어와서는 소외되고 억압되어온 비주류의 문화가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중요하게 부각되었고, 이러한 경향은 1980년대 이후 아방가르드 패션에서 중요한 이슈로 등장했다.

현대의 아방가르드 패션디자이너들의 주된 관심은 비미적인 것의 잠재력에 있었다. 이들은 키치의 저급한 취미를 미적인 차원으로 승화시킴으로써 파격적인 새로움을 창조할 수 있었는데, 이로써 인간이 복식을 통해 누릴 수 있는 미의 영역이 한층 더 넓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아방가르드 패션의 개방주의, 대중중심주의, 반위계주의는 '탈쟝르화' 현상을 초래하게 되는데, 이는 현대예술의 특징적 현상으로 지적되고 있는 '영역의 혼돈'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아방가르드 패션이 야기한 탈쟝르화는 기존의 가치구조에 역행하거나 오히려 전통적 가치를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극단주의'와 다양한 가치요소들을 비판적이며 자기의식적으로 수용하는 '절충주의'로 나타나게 된다. 이는 미와 추, 패션과 비패션이 합병되는 결과를 낳게 되고 이로부터 현대패션의 복잡한 다양화 현상이 초래되는 것이다. 이러한 탈쟝르화 현상은 1980년대 이후의 아방가르드 패션의 특성을 가장 잘 대변해 주는 말일 것이다.

다음은 본 장에서 살펴본 1980년대 이후 아방가르드 패션의 특성을 도표로 나타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