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본성적으로 자유의 영역이며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다. 이러한 자유와 다양성은 패션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현대예술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러한 패션과 예술의 다양성은 아방가르드의 출현 이후 서구 미학사상의 근본을 이루어 온 합리적인 흐름에 대해 비합리적인 흐름이 대등한 힘을 갖고서 동시에 공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점점더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어 가는 현대 패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패션에서의 아방가르드 개념의 정립이 요구된다 하겠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예술과 미학의 분야에서 활발히 논의되어 온 아방가르드 개념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아방가르드 패션을 사적으로 고찰하여 패션에 있어서 아방가르드의 개념과 특성을 정립한 후, 1980년대 이후 아방가르드 패션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행하였다.

아방가르드는 전대의 가치체계와 전통 일반에 대한 부정의 정신이며, 이러한 정신으로부터 새로운 미적 가치를 추구하고 새로운 조형질서를 모색하며 새로운 표현 방식의 시험을 주장하는 혁신적이고 극단적이고 실험적인 현대예술이다. 이러한 아방가르드 예술은 1)고전주의의 초월적인 미의 이상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한 낭만주의의 변화와 새로움을 중심적 가치로 삼는 일시성과 내재성의 미학의 흐름을 배경으로 하여, 2)사회적 진보적, 합리적, 경쟁적, 기술공학적, 속물적인 부르주아 모더니티의 기본가치들을 탈신비화시키는, 문화적으로 비판적이며 자기비판적인 미적 모더니티를 이끌어왔다. 요컨데, 아방가르드의 미학적인 강령은 과거의 부정과 새로움의 숭배이다.

아방가르드 예술은 수용자의 충격과 그것을 극단화로 얻어지는 소외효과가 그 예술적 의도의 최고의 원칙이다. 이러한 아방가르드의 의도는 구조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유기적인 예술작품이라는 전통적인 개념의 파괴로 나타난다. 아방가르드 예술작품은 전체로서의 작품이 지니는 통일성을 파괴하고 전제적으로 쉽게 인지할 수 있는 인상을 만들지 않음으로써 충격을 느끼게 한다. 유기적인 총체성을 파괴하기위해 고안된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우연'과 '콜라지'로, 이러한 방법들에 의해 르네상스 이래로 통용되어 온 전통적인 표현체계는 가장 의도적이고 효과적으로 파괴될 수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가 낳은 문화적 위기의 상황에서 아방가르드 운동들은 아카데미즘의 경화현상으로 이끌어지는 '좋은 취미'의 관습을 전복하기 위해 '나쁜 취미-키치에서 직접 차용한 다양한 요소와 기술들'을 의식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아방가르드는 도시 변두리의 소수의 저항적인 반문화에서 예술적 형태를 발견하고 그것을 작품화함으로써 반문화와 문화산업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기도 했다.

아방가르드 패션은 부르주아 모더니티, 즉 부르주아의 위선적 도덕성과 산업 사회의 규격화된 가치체계와 비인간화에 대한 반전통적인 반항적 스타일로 시작되어, 변화하는 시대감각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패션 자체의 새로움을 추구하는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의 혁신적인 스타일과, 패션으로 자신들의 사회적, 정치적, 미적 가치관을 표현하는 하위문화의 반항적 스타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아방가르드 패션은 이전의 획일적인 서양의 이상미로부터 벗어나서 새로운 미를 창조하기 위해 지금까지 복식의 미적 규범과 기존 가치체계의 한계성에 대한 끊임없는 부정의 작업으로 진행되어 오고 있다. 즉 아방가르드 패션이 추구하는 새로움은 전통을 부정하고 동시에 현재적 상황으로부터 변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새로움의 미적 변증법을 시행하는 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아방가르드 패션은 전통적인 성과 인체미를 부정함으로써 복식에 대해 더욱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방가르드 패션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전통적인 성의 양분법을 부정하고 성의 혼돈과 성의 부재를 표현함으로써 기존의성관념을 퇴화시켰다. 아방가르드 패션은 "성성의 거부"로부터 성의 양 극단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수 많은 단계의 성이미지들의 가능성을 시험해오고 있고, 최근에는 무성적 디자인을 선보임으로써 성과 인체에 대한 진부한 표현을 거부했다.

전통적으로 서양의 복식은 인체가 의복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지만, 실제에 대한 합리적 재현을 거부하는 아방가르드 예술과 전통적인 성정체성에 대한 집착을 거부하는 아방가르드 패션의 영향으로 의복은 그 자체의 이상적인 형태를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성차를 강조하고 인체의 이상형에 종속되어 있던 복식의 형태는 그 자체의 순수 조형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위해 아방가르드 패션은 우연에 의해 복식 자체의 논리를 부정하거나, 인체형과 무관한 형태의 추상적 복식을 조형하거나, 인체에 대한 주관적 해석을 거부하는 극사실주의적인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둘째, 아방가르드 패션의 획일적인 서양 이상미에 대한 거부는 역사와 이문화와 반문화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켰고, 이는 미의 상대주의를 낳았다. 이로 인해 상이한 역사적 양식과 요소들과 다양한 이문화와 반문화의 양식과 요소들이 패션에 자유롭게 이용되었다. 아방가르드 패션은 극단적으로 상이한 시간적 공간적 요소와 양식을 동시적으로 병치함으로써 아이러니와 페러독스, 유희와 유머, 비진지성 등을 느끼게 하여 수용자에게 낯선 충격을 준다.

셋째, 아방가르드 패션은 미적으로 부적절한 것으로 여겨져 왔던 키치와 대중문화를 수용함으로써 좋은 취미와 나쁜 취미, 하이패션과 거리 패션, 패션과 비패션 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이들을 합병함으로써 고상함과 저속함이라는 미의 위계구조를 파괴했다. 아방가르드 패션에 사용된 키치 오브제와 키치의 가난과 성에 대한 통속적인 이미지는 아이러니와 페러독스, 신비화, 지적 유희와 유머 등의 효과를 표현함으로써 이성과 모더니즘의 진지성과 폐쇄성을 조소했다.

이러한 아방가르드 패션의 반전통성은 모든 가치영역의 '탈쟝르화' 현상을 초래했으며, 특히 1980년대 이후에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극단주의와 절충주의로 표현되고 있다.

현대 아방가르드 패션에서 발견되는 부정과 혁신의 이중논리는 아도르노와 료타르가 현대 예술의 원리로 파악한 '의미의 전적인 부정'으로 설명될 수 있다. 요컨데, 아방가르드 패션은 성과 인체와 관련된 복식미의 전승된 의미를 부정했고, 시간성과 공간성의 해체를 통해 의미연관의 전통적인 형식을 부정했으며, 키치와 대중문화를 수용함으로써 자본주의적 현실의 무의미성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미적 의미에 대한 부정을 이루고 있다. 아방가르드는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일반적이고 전통적인 미적 이념인 조화, 유기적 통일성, 재화해 현상을 부정하는 것으로, 이러한 아방가르드 예술에 대해 Adorno는 조화에서 역사적으로 해방된 이념으로써 불협화(dissonance)의 원리에 의한 새로움의 미적 변증법이라 했고, Lyotard는 표상불가능한 것에서 오는 숭고의 미를 접목시켰으며, Burger는 수용자의 충격으로 인한 인간 정신의 환기를 지적했다.

결국, 아방가르드 미학은 궁극적으로 지금까지 인간의 사고와 삶을 지배해온 이성에 의한 세계관과는 전적으로 대립되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그동안 이성과 합리에 억눌려 있던 비이성과 비합리에 이성과 합리 이상의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인간 정신의 다양한 측면들을 자유롭게 해방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아방가르드의 정신이 패션에서는 자유로운 개성 표현의 기치 아래 복잡하고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요컨데 부정을 통해 새로움을 추구하는 아방가르드 패션은 전적으로 '열려진' 상황 속에서 끊임없는 변화와 다양한 자유가 허용되고 있는 현대의 예술적 상황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본 논문은 아방가르드 개념과 아방가르드 예술에 대한 이해를 통해 현대 패션의 다양화 현상의 하나인 아방가르드 패션을 모더니티의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다. 현대 패션은 너무나 복잡하고 다기한 양상을 띠므로 겉으로 드러난 현상 서술에 한정된 연구는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게된 동기나 원인에 대한 근원적인 답을 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모더니티를 이끌어온 두 축, 즉 사회적 정치적 모더니티와 미적 예술적 모더니티를 동시에 고려하면서 미적 모더니티를 이끌어 온 아방가르드 예술을 이해하고 이 개념을 현대패션에 적용함으로써, 과거와는 전적으로 다른 현대적 의미의 패션의 시작과 이후 패션의 변화 양상과 다양성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설명을 시도했다는데 의의를 둔다.

아방가르드는 하나의 현상을 지칭하는 이즘이 아니라 역사적 상대주의의 감을 전달하는 전통비판의 한 형식이다. 따라서 아방가르드는 사적으로 볼 때 단일한 양상을 띠는 이즘과는 달리 다양한 현상들을 충분히 포괄하는 개념이고, 이로 인해 본 연구는 현대 패션의 방대한 다양한 현상들을 충분히 포괄하고 고려하지 못했을 수 있다. 그러므로 현대의 다양한 아방가르드 패션 현상에 대해 좀더 세밀한 분석과 더불어 그러한 현상들을 통합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이 계속 진행되어야 하겠다. 아울러 최근의 아방가르드 패션이 변두리 하위문화와 키치로부터 디자인의 소재를 빌어오고 그것을 대중화함으로써 복식미의 위계구조를 파괴하고 미의 상대주의를 가져왔다고 할 때, 그동안 주변적인 것으로 머물러 있던 소수의 비주류 문화와 키치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와 이들과 하이패션과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가 후속되어야 한다.

끝으로, 아방가르드는 서구문명에서 발생한 문화와 정신의 혁명으로 철저히 서구적인 상황에 맞는 관점이다. 따라서 서구적 아방가르드 패션의 전개 과정을 우리나라 패션의 전개과정과 비교하여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아방가르드 패션의 위상을 점검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