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19-3>은 J. P. Gaultier의 작품으로, 그는 17세기에 가장 유행했던 가발과 18세기말의 Polonaise 스타일을 20세기의 현대적인 테일러드 쟈켓과 나란히 병치시킴으로써 그 원래의 의미를 상실하게 하는 페러독스한 효과를 보이고 있다. 가발은 상류사회나 궁정이 풍속으로 17세기 우반에 이르러 화려한 의상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매우 중후하고 거창한 형태로 변했고, 여기에 분으로 착색하고 향수를 뿌리는 사치를 보였다. 그러나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가발은 화려한 장식대신 밀짚으로 만든 베레모를 불균형하게 쓰고 있고, 그 형태 또한 귀족적인 롤과 가공하지 않고 늘어뜨린 서민적인 생머리형의 대조적인 이미지를 함께 사용함으로써 기존의 가발이 지니고 있던 과시적이고 위선적인 면이 전복된 스타일이다. 폴로네이즈는 로코코 말기의 대표적인 로우브로서, overskirt를 3개의 drape로 부풀려서 긴 것은 뒤에 짧은 두 개는 양측에 놓이게 한 것이다.<그림 19-3>의 폴로네이즈는 mini이며, overskirt 아래에 underskirt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다리를 그대로 노출시킨 것으로, 18세기의 폴로네이즈가 20세기의 mini에 의해 그 의미가 전복된 스타일이다. 또한 panier의 버팀대가 없는 자유의 스타일이다.

<그림 20-1>은 18세기 로코코시대 여성들의 병적 자기과시욕에서 나온 거대한 머리형에 사용되었던 철사 밭침 pad와 이상적인 인체를 구성하기 위해 사용되던 코르셋과 20세기에 등장한 브라를 겉으로 노출시키고, 동양적인 무늬와 타셀 장식이 있는 양산을 병치시킴으로써, 즉 역사적 요소와 현대적 요소와 이문화적 요소를 병치시킴으로써 아이러니한 충격효과를 준다. 이는 또한 과시적인 외관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었던 콜셋류를 드러내 보임으로써 인간의 위선을 조롱한 것이기도 하다. <그림20-2>는 프랑스 혁명 이후 머스카당의 이미지와 이국적인 색감과 소재에 의한 민속적 이미지가 병존하고 있는 여성의 코트이다. 머스카당의 혁명과 자유의 이미지가 여성해방과 인종해방의 이미지로 경쾌하게 전도되고 있다. <그림 20-3>은 인체의 형태를 재형성하려던 과거 여성의 코르셋과 아프리카 원주민의 목걸이가 병치되어 있다. 서양의 코르셋은 동양적 자수와 타셀과 보석장식으로 인해 아이러니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러한 민속적인 양식들을 사용함으로써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은 서양의 획일적이고 절대적인 미의식에 대해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 21>은 펑크 하위문화 스타일의 바지와 이국적인 바디페인팅을 혼합한 스타일로 지역적 공간성의 해체와 절충을 보여주고 있다.

2. 기능에 따른 복식미의 해체와 절충

1980년대의 아방가르드 패션은 의복의 도구적 기능이 표현적 기능으로 융화되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1992년 4월 Vogue지와 1994년 5월 WWD등의 여러 패션 잡지들은 최근 란제리와 코르셋류가 겉옷으로 가시화되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종교복, 운동복, 군복 등 특수한 기능성이나 상징성을 가진 복식의 형태가 그 원래의 목적에서 벗어나서 미적 표현의 수단으로 전도되고 있다.

1908년 Paul Poiret가 코르셋의 폐기를 성공적으로 실행한 이후 속옷은 의복의 소용없는 형태로서의 모호함을 반영하는 한 예로서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에 의해 겉옷으로 재등장하게 된다.

19세기 후반 여성들의 사적인 세계와 남성들의 공적인 세계 사이의 오래된 구분이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여성의 실내복은 패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실내복 중 시와 낭만의 옷으로서 티 가운(tea-gown)은 내실에서 저녁 만찬용으로, 1920년대에는 마침내 공적인 장소로 이전되었다. 이후 사적인 속옷에 대한 공공연한 공격은 공과 사에 대한 법칙을 깨뜨리겠다는 여성의 의도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1960년대에는 당시의 누드예찬으로부터 미적으로 열등한 것으로 여겨졌던 타이즈가 중요한 의복 아이템으로 등장하여 겉옷인지 속옷인지 모를 모호함으로 최근 패션의 아이러니한 심미성을 표현했다.¹⁶⁵

1993년 4월에서 8월까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는 속옷의 역사와 그 현대적 의미를 재고해 보는 전시회, 'Infra-Apparel'을 개최하여 복식에 있어서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양분적 관례가 우리시대에 와서 현저하게 붕괴되어 두 영역이 서로 충돌하고 있음을 명확히 지적했다.¹⁶⁶ 이러한 속옷의 겉옷화 현상에 대해 고현진¹⁶⁷은 패러디(Parody)로 설명하고 있다. 속옷이 겉옷으로 패러디화 함으로써, 속옷이 가지는 원래의 인상적인 의미가 혼란되어 낯설음과 신선한 충격의 효과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패러디가 원작에 대한 존경과 조롱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때, 속옷의 패러디는 속옷, 특히 여성성을 구속하는 코르셋류의 사회적 억압의 성격에 대한 조롱과 속옷의 가시화에 따른 성적 표현의 자유와 그것의 미적가치에 대한 존경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 22-1>은 여성의 코르셋에서 인체를 조이기 위해 사용되던 요소와 그것의 이미지를 남성적인 테일러드 쟈켓에 적용시킨 J. P. Gaultier의 작품이다. <그림 22-2> 또한 콜셋의 이미지를 스포츠 웨어 내지는 캐쥬얼 웨어로 적용시킨 스타일이다. 브라 패러디를 통해 여성의 신체를 노출시킨 그는 1990년 가수 마돈나의 "like virgin"콜셋 드레스 디자인 이후 본격적으로 속옷의 이미지를 겉옷에 적용시켜오고 있다.¹⁶⁸

현대의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은 끊임없이 영역의 침범을 시도하고 있다. <그림 23>은 Ralph Lauren의 디자인으로, 육상이나 역도, 혹은 레슬링과 같은 격렬한 종목의 운동복의 요소를 우아한 이브닝드레스에 부적절한 소재로 부적절하게 적용시킴으로써 낯선 충격효과를 주는 것이다. 이외에도 군복이나 종교복같은 특수한 기능성을 가진 복식의 요소들이 미적 표현의 목적을 위해 그 의미가 전도되고 있다. <그림 24-1>과 <그림 24-2>는 아이러니하게도 군복의 요소가 여성의 단정한 우아미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그림 25>는 개별적으로는 완전한 형태와 의미를 갖고 있는 의상 아이템들을 무작위적으로, 혹은 우연적으로 함께 입음으로써 생기는 '낯설게 하기'효과이다. 즉, 개개의 익숙하고 친근한 요소들을 원래의 상황적 맥락으로부터 이탈시켜 무의미하게 병치시킴으로써 낯선 충격효과를 노린 것이다. <그림 25-1>은 회색의 남성 정장 스타일의 쟈켓, 군악대용 스커트, 카키색의 군인용 바지와 부츠, 골프나 폴로용 장갑, 그리고 동양적 무늬의 고급스런 실크 스카프, 그리고 생명이 없는 마네킹 같은 모델 등 여러 이질적 요소들이 절충으로 구성된 J. P. Gaultier의 재치와 유머가 돋보이는 스타일이다. 여기에는 성의 혼돈과 T.P.O 개념의 혼돈, 동서양 이미지의 혼돈,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소재와 색감과 의복 아이팀들의 병치에 의한 키치효과 등 현대 아방가르드 패션이 보이고 있는 미적 규범의 해체 현상이 하나의 룩에 동시에 모두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