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장에서는 사적 고찰을 통해 살펴 본 아방가르드 패션의 개념과 특성을 근거로 하여 1980년대 이후의 아방가르드 패션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반전통성으로 출발한 아방가르드 패션이 제시해오고 있는 새로움의 의미를 파악해 보고자 한다.

제1절 전통적인 성·인체미의 부정

의복은 성과 인체에 대한 이념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실제로는 인체를 장식하는 특성을 갖는 유일한 것이다.¹⁵³ 따라서 전통적으로 서양의 복식은 인체가 의복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지만, 추상주의 이래로 의복은 그 자체의 이상적인 형태를 목표로 할 수 있게 되었고 인체는 부수적인 것이 될 수 있었다.¹⁵⁴ 인체가 복식에 부여하는 의미란 인체의 구조에 대한 합리적인 인식, 즉 인체의 좌우 대칭적 구조와 인체를 구성하는 각 부분간의 비례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 그리고 성차를 강조하는 인체의 형태와 성적 부위에 대한 인식 등에 근거해 인체의 표준적이고 이상적인 형태를 파악하고 그것을 복식에서 재현하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항으로 등장한 최근의 아방가르드 패션은 의도적으로 성의 가시적 불일치를 나타내는 패션을 선보이거나, 성적 부위나 비성적 부위를 임의적으로 노출시킴으로써 인체의 성차에 근거한 복식의 형태를 파기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로부터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은 인체를 더욱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고 인체를 예술적 조형의지의 공간으로 파악하고 이용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본 절에서는 현재 아방가르드 패션이 어떠한 방식으로 성의 혼돈을 이루고 있으며,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이 제시하고 있는 인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성의 혼돈과 성의 부재

사적으로 볼 때 성의 혼돈은 아방가르드 패션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20세기 전반의 아방가르드 패션이 여성성의 규범에 대한 도전이었다면 최근의 아방가르드 패션은 남성성의 규범에 대한 도전이다. 즉 남성의 복장도착(cross-dressing)이다.

남성의 성관념에 대한 부정은 19세기 중반 댄디에 이해 자의식적으로 수행된 이래, 양대 세계대전 후 형성된 많은 청소년 하위문화 집단들-테디 보이, 모즈, 펑크 등-에 이르러 가장 강력하고 극단인 방법으로 가시화되었다.

1980년대 가장 유명한 신예 디자이너들은 남성이 여성보다 낫지도 않고, 여성도 남성보다 더 낫지도 않다고 하면서 성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고자 했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의 하위문화로 패션을 나누는 이분법이 이제는 무의미한 범주가 되었다. 이 시대의 남성과 여성은 가장 남성적일 수도 가장 여성적일 수도, 혹은 양쪽성을 모두 가지거나 모두 포기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즉 아방가르드 패션은 성의 양 극단을 마음대로 오가며 자신의 개성적인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Gaultier는 여성의 에로틱함을 잘 드러내 주는 등없는 드레스(backless dress)의 이미지를 남성을 위해서도 사용하여 등없는 티셔트(backless T-shirt)를 내놓음으로써, 남성을 여성과 같은 맥락에서 다루고 있다.<그림 13>은 활한 여성적 치장을 하고 있는 J. P. Gaultier의 남성 패션이다. 긴웨이브의 머리에 화려하고 짙은 색조의 화장, 여성 전용의 커다란 귀걸이와 반지와 부채, 그리고 현란한 색채의 의상과 꼭끼는 바지와 러플 장식의 칼라와 소매로 예쁜 여성의 외모를 만들고 있다. 여기서 남성의 여성이 되고자하는 욕구를 가장 결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은 허리의 콜셋이다. 19세기의 댄디가 여성적인 부드러운 곡선의 몸매를 만들기 위해 콜셋을 착용했던 것과 같은 의도에서 콜셋을 사용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남성다움의 포기로 인해 받게될 비난에도 불구하고 콜셋을 당당히 겉으로 드러냄으로써 남성의 복식이 주는 커다란 긴장감으로 부터의 해방을 표현하고 있다.

<그림 14>는 남녀의 복장도착을 보여주는 Donna Karan의 의상이다. 여성은 넥타이에 팬츠수트 차림을 하고 있고, 남성은 흰색의 원피스 드레스를 입고 있다. 동등한 크기의 체격과 외모를 가지고 있는 남성과 여성을 등장시킴으로써 종래의 크고 적극적인 남성과 작고 예쁜 소극적인 여성이라는 전통적인 성의 양분법을 부정하고 양성의 동일시를 표현하고 있다. 이로써 성이미지에 대한 기존의 관점과 관심은 약화된다.

1980년대의 아방가르드 패션은 기존의 노출과 은폐에 의한 성이미지를 전도시키고 있다.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은 전혀 성적이라고 느끼지 않았던 인체의 부위를 우연적으로 노출시키거나 무성적인 디자인을 선보임으로써 기존의 성관념과 인체의 성차에 근거한 복식의 형태를 파기했다. 1980년대의 The Face지에 나온 BodyMap의 의상들은 신체의 강조점을 다른곳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예기치 않은 곳에 구멍을 만든 것으로, 이 의상들은 인체에 대한 현상학적 접근을 강조하여 표준화된 인체와 성차를 강조하던 유행의 전통적인 측면이 소강되어졌음을 보여주었다<그림 15>.¹⁵⁵ 이미 1970년대에 Rudi Gernreich은 성적인 정직성을 육체에만 국한시키고 의복에 의해 판단하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에서 '예술로서의 의상(Art-in-Fashion)' 기획전에서 성적인 특성이 극도로 상실된 남성과 여성을 등장시켰었다.¹⁵⁶ Rei Kawakubo는 의복의 예기치 않은 구멍을 통해 예기치 않은 구멍을 통해 인체의 부위나 아래의 다른 의복을 우연적으로 노출시킴으로써 인체에 대한 기존의 진부한 표현을 거부했다. 이로써 인체의 성적 부위에 대한 위계구조를 파기하고 패션과 성적임(sexiness)의 관계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¹⁵⁷

이와 같이 현대 패션에 나타나고 있는 성의 혼돈은 인체와 성과 복식 간의 전통적인 가치체계를 퇴화시켰고, 이는 디자이너로 하여금 복식 자체에서 무제한적인 자유를 구가할 수 있도록하는 계기가 되었다.

2. 이상적 인체미 재현의 부정(인체의 예술의지의 공간화)

이따꾸라도시도우는 20세기의 현대적인 표현은 '자율성 지향'과 '우연성 지향'으로 표출되는 순수성의 추구에 있다고 했다.¹⁵⁸ 이러한 순수성의 추구가 패션의 영역에서는 1970년대 초반부터, 특히 일본의 신예 디자이너들에 의해 더욱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과거의 디자인과의 결정적인 단절을 이루기 위해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은 완전한 백지상태로 되돌아가 그 상황을 몸으로 느끼고 대면함으로써 새로운 사고의 방법을 이끌어 내려고 하였다. 이들이 추구한 디자인의 세계는 인체와 복식간의 전통적인 유기적인 관계뿐만이 아니라 Dior와 같은 서구의 디자이너들이 추구한 기하학적 구성의 깔끔함과도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서양복식처럼 완성된 단위가 아닌 미완성의 것이며 덜 완벽한 것이다.¹⁵⁹ 이러한 미완성과 불완전의 단계는 착용자의 움직임에 의해 새로운 완성의 단계로 승화된다. 1003년 3월의 Elle지에서는 Issey Miyake의 디자인을 "Bodies in Motion"이라는 제목의 특집으로 소개하고 있다.¹⁶⁰ 인체와 인체의 움직임이 의복을 만든다는 것이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조형 원리이다. Evans & Thornton은¹⁶¹ Rei Kawakubo를 제로로부터 출발하는 순수주의자(Purist)라고 지칭하면서 착용자의 선택과 움직임을 디자인의 중요한 요소로 삼고 있다고 언급한다.

복식의 형태가 이상적인 인체의 형으로부터 자유로와지기 위해서는 인간의 합리적인 사고가 만들어 놓은 인체의 형태와 구조에 대한 과학적인 해석을 의도적인 방법으로 혹은 비의도적인 방법으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인체의 이상형을 추구하는 복식의 형태에 대한 반항은 인체에 대한 합리적인 형태판단에 근거한 복식 구조를 의도적으로 부정하거나 인체형에 대한 무관심을 표명하는 것과, 인체에 대해 주관적인 가치판단을 부여하지 않고 가장 사실적이고 순수하게 표현하는 것의 두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전자는 인체의 형태와 동작에 대한 과학적 해석을 바탕으로 형성되어온 전통적인 복식 구조의 논리를 부정하거나 복식을 통해 인체의 구조를 파악하기가 모호한 형태의 복식을 선보이고 있고, 후자는 인체에 대한 가장 사실적인 묘사를 보이는 복식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림 16>과 <그림 17>은 전자의 입장이고, <그림 18>은 후자의 입장이다.

<그림 16-1>은 긴 셔츠를 스커트로 착용함으로써 복식의 논리를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Issey Miyake의 작품이다. 기대치 않은 곳에 소매가 부착됨으로써 '낯설게 하기'의 효과를 준다. <그림 16-2>은 한쪽 어깨와 소매를 과감히 삭제함으로써 생기는 극도의 비대칭성의 운동감으로 기존의 합리적인 복식 형태를 전복하고 있다. <그림 17-1>은 Issey Miyake의 애매한 형태의 바지 디자인이다. 이것은 착용하기 위한 옷이 아니라 오히려 바지의 형태를 모방한 조형물에 가깝다. 전통적인 복식의 구조선, 즉 허리선, 엉덩이선, 무릎선의 위치를 불규칙한 주름으로 애매하게 만들어버림으로써 인체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그는 주로 자신의 조형적 의도를 더 잘 나타내기 위해 아플리케나 자수의 형태를 첨부하기 보다는 오려내기(cut-dut)의 구멍을 냄으로써 장식을 대신한다. 또한 인체의 형태에 대한 가장 원초적인 인지의 단계에서 조형하여 유한적인 인체에 착장시킴으로써 생기는 3차원적 효과를 노린다. 그는 고무, 가죽, 폴리우레탄, 메탈니트, 종이 등의 잘 사용되지 않는 이질적인 재료들을 구기거나 뒤틀어서 오그라들게 함으로써 예기치 않은 효과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순수주의자(purist)이다. <그림 17-2>는 인체형에 근거한 복식의 형태적 요소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극단적으로 비합리적인 형태로, 반짝이는 비닐소재로 무작위적이고 임의적인 패치워크한 것이다. 인체의 형태와는 전혀 무관한 순수 추상의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착용자와 관찰자에게 파격적인 낯선 충격을 줌으로써 쾌를 느끼게 한다.

<그림 18-1>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인체 전체를 덮는 J.P. Gualtier의 full-body catsuit이다. 이것은 <그림 17-2>가 표현하고 있는 추상적 조형미와는 대조적으로 인체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이 배제된 가장 사실적이고 순수한 표현 방법으로 새로움의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복식을 통해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인체미에 도달하고자 했던, 즉 자신의 체형을 보다 나아 보이게 하는 왜곡적인 인체 재현을 거부하고 인체를 있는 그대로 순수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기존의 표현형식을 비웃고 있다. 이는 옷이 인체의 피부를 완전히 밀착되게 뒤덮음으로써 옷이 글자 그대로 제2의 피부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은 느낌마저 들게하는 극사실주의적인 기법으로, 종래 인체에 대한 진부한 사실적 표현, 즉 인위적 재현을 조롱함과 동시에 그 수준을 한차원 높인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옷에 의해 교정된 신체에 익숙해 있던 인간의 눈이 인간의 원래의 가공되지 않은 모습을 그대로 적나라하게 보게 됨으로써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는 충격을 받게 된다. 가장 순수하게 인체를 묘사하려는 의도는 기존의 이성적 사고사 확립시켜온 복식의 형태, 즉 목둘레선, 허리둘레선, 손목, 발목, 소미, 길 등의 구분을 전혀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다. <그림 18-2>는 임신한 여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Azzedine Alaia의 작품이다.

제2절 시간성과 공간성의 부정

아방가르드 패션은 전통적인 가치체계를 부정하고 새로움을 추구하기 위해 표현에 있어서의 모든 구속적인 제한을 부정하고 해체시켜왔다. 이로인해 표현 양식과 형식에 있어서의 시간성과 공간성이 부정되고 있다. 시간성이란 패션의 양식과 요소에 대한 역사적 규정을 의미한다. 공간성이란 사회계층적, 문화적 공간성, 지역적 민족적 공간성, 그리고 활동과 생활에 따른 공간성을 의미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여기서는 크게 복식에 대한 양식적 구분과 기능적 구분의 관점에서 이들 카테고리가 해체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살펴보겠다. 전자의 관점에 대해서는 최근의 아방가르드 패션이 역사적, 민족적, 반문화적 양식과 요소를 절충적으로 혼합하여 나타내 보이고 있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 세 요소를 함께 살펴보고, 후자의 관점에 대해서는 의복의 기능에 따른 복식미의 해체 현상에 관해 고찰하고자 한다.

1. 역사적 양식과 민족적 양식과 반문화 양식의 해체와 절충

아방가르드는 역사의 연속을 깨뜨리려는 무정부주의적 혁신력을 가진 미적 극단주의이다. 이는 역사에 대한 막연한 대립으로써 이로 인해 역사는 세분화될 뿐 아니라 연속성을 보장해 주었던 전통의 구조를 상실하게 된다. 그러나 아방가르드는 예술과 패션에 표현된 시간의식은 전통과의 극단적인 단절이라는 그 고유의 특성과는 모순되게도 결코 비역사적이지 않다. 아방가르드 예술이 반대하는 것은 본보기의 모방에서 솟아나는 역사이해라는 잘못된 규범이다. 따라서 아방가르드의 시간의식은 그릇된 규범화에 대한 반대에 지향되고 있을 뿐, 모던한 아방가르드 정신은 과거를 다른 방법으로 모색해 왔다. 즉 아방가르드 예술운동들과 아방가르드 패션에 의해 지나간 예술적 처리수법들이 자유롭게 이용되기 시작했고, 이로부터 여러 처리 수법들과 양식의 역사적 순서는 극단적으로 상이한 것의 어떤 동시성으로 변했다.

1960년대 이후부터는 억압된 것의 복귀현상이 두들어지게 나타나기 시작하여, 흑인 등의 여러 소수 민족과 청소년들을 중심으로한 변두리 반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현대의 아방가르드 패션은 지금까지 무가치하게 느껴지고 소외되어왔던 소수민족과 하위문화의 양식으로부터 어떤 요소를 차용하여 그 원래의 의미로부터 이탈시켜 재해석함으로써 새로운 미를 창조하고 서구 중심의 획일적인 미의식을 붕괴시켰다.

Westwood는 모든 '버림받은 것'의 형태에 매력을 느꼈다. 그러므로 그녀는 제3세계의 문화나 유럽 복식의 역사적 양식으로부터 어느 요소를 빌어오고 그 원래적 의미로부터 이탈시켜 정상적인 지각의 체계를 뒤엎음으로써 새로움을 창조했다. 그녀는 '예술은 패러디다. 그것은 지나간 것을 이용하고 이를 단순화시키지만, 거기에 어떤 다른 것이 합성되면 그것은 더욱 흥미로와 진다."¹⁶²라고 하면서, 시간과 역사에 관심을 표명해오고 있다. 1981년 그녀는 패드가 든 속치마 위에 극도로 부풀려진 치마, 다양한 허리밴드의 노출, 흘러내린 스타킹과 구식의 사틴 브라의 차림을 발표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¹⁶³ 이때 사용한 구식의 브라는 과거의 하얗고 품위있는 속옷의 형태가 유행의 장식으로 변화한 것이다. 1985년 그녀는 '여성은 가장 여성적인 방법으로 강해지길 원한다'고 하면서 mini-crini를 발표했다<그림 19-1>.¹⁶⁴ crinoline은 황제와 관련된 19세기의 발명품이고, mini는 1960년대의 영국을 강타한 자유를 상징하는 스타일이다. crinoline이 제한과 방해를 의미한다면, mini-crini는 미니스커트와 관련된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다. Westwood의 crinoline은 코르셋이 없는 입기 쉽고 자유로운 것으로, 은폐와 제한이라는 그 원래의 의미가 mini의 맥락 속에서 전복된 스타일이다. <그림19-2>는 Thierry Mugler의 mini-crini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