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장에서는 아방가르드 패션에 대한 연구의 이론적인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예술에 있어서의 아방가르드 개념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아방가르드 패션의 특성을 파악하고자 한다. 우선 아방가르드 용어가 그 원래의 의미로부터 현재의 의미를 획득하게 되기까지 아방가르드 용어가 그 원래의 의미로부터 현재의 의미를 획득하게 되기까지 아방가르드 개념에 대한 역사적 변천을 살펴서 예술의 아방가르드 개념을 파악하고, 이러한 예술을 탄생시킨 사회문화적 배경을 고찰하여 아방가르드 예술의 특성을 살펴본 후, 이를 토대로 아방가르드 패션의 특성을 파악하고자 한다.

제1절 아방가르드 예술의 발생 배경

1. 아방가르드의 개념

'아방가르드(avant-garde, av-an-gard)'는 원래 '전위(vangaurd)¹⁴, 즉 소속 부대를 엄호하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전초에서 활동하는 분견대나 별동대를 의미하는 프랑스 군사용어이다. 이것이 근래에는 지적, 기술적, 예술적 영역에 있어서의 혁신적이고 극단적이며 실험적인 집단이나 그 운동 내지는 대담하게 자신의 시기를 앞서는 집단을⁵ 나타내는 공간적 비유로 사용되고 있다.

전쟁 용어로서 그 기원은 중세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르네상스 시대 무렵에 이르러 비로소 그 비유적인 의미를 갖추게 된다.⁶ 그러나 정치, 종교, 문학과 예술 등에서 자기의식적으로 앞선위치를 나타내는데 쓰이는 아방가르드 은유는 19세기 이전에는 일관성 있게 사용되지 않았다.

애초에 이 말은 예술적이라기 보다는 정치적 관심을 가지고 색다른 운동을 전개하고자 했던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기 시작했다.⁷ Poggioli⁸에 따르면 이 용어를 최초로 문화적으로 사용한 예는 1844년 Gabriel Desire Laverdant이 출간한 De la mission de lart et du role des artistes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그는 예술을 아방가르드라는 말로 기술함으로써 예술이 사회적 행위와 개혁을 위한 도구 내지 혁명적 선전 선동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교의임을 강조했다. 이는 문화예술적인 맥락에서 사용되는 낭만적 아방가르드 개념이 예술적이 아닌 정치적인 급진주의의 이상으로부터 도출된 것임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이렇듯 19세기 중반경 아방가르드는 사회이상주의자들, 사회개혁론자들, 그리고 급진적인 저널리스트들에 의해 사용되면서 보다 넓은 의미의 근대적인 정치사상과 미학 양자 모두에 있어서의 급진주의 경향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아방가르드라는 용어는 아직 이후의 아방가르드 미학의 본질적은 요소가 된 예술적 극단주의나 실험적 정신을 연상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나 프러시아 전쟁과 콤뮨의 대두와 그 진압으로 대변되는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동요를 극복한 듯한 1870년 이후의 몇 년간을 통해서 아방가르드라는 용어는 예술적인 별도의 의미로서 사용되는 변화를 갖게 된다. 이때부터 아방가르드는 사회형태에 대한 급진적인 비판정신을 예술형태의 영역으로 이전시키는 조그마한 선진적인 작가들과 예술가들의 집단을 지시하게 되었다.⁹

새로운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관심은 모든 구속적이며 형식적인 예술전통을 전복하고 이전에는 금지되어 있던 전적으로 새로운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관심은 모든 구속적이며 형식적인 예술전통을 전복하고 이전에는 금지되어 있던 전적으로 새로운 창조의 지평을 탐험할 수 있는 유쾌한 자유를 즐기려는 것이었다.¹⁰ 이 새로운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예술의 변혁과 삶의 변혁을 동일시하는 태도를 가지고 의식적으로 일반의 양식적 기대를 배반하려 했던 반면, 정치적 혁명주의자들은 가장 평범한 전통적이고 도식적인 혁명선전으로 공중을 설득하려 했다. 이것이 예술적 아방가르드와 정치적 아방가르드 사이의 갈등의 원인이었다. 그러나 이 둘은 모두 삶은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라는 동일한 전제하에서 출발하여 유토피아적 무정부주의를 목표로 했었기 때문에 이 두 급진주의자들 간의 제휴는 한동안 지속되었다.

19세기 후반경 오랫만에 찾아 온 평화와 번영과 예술의 갈등 속에서 새로운 예술의 탄생으로 인도되는 '황금시기'¹¹의 출발과 더불어 정치적 아방가르드와 예술적 아방가르드 사이의 긴밀한 연관은 끊어지게 되는데, 이로부터 아방가르드는 정치적이라는 제1의 의미로부터 벗어나 예술가 개인의 형식적 실험의 탐구라는 독립된 예술적 개념으로 등장하게 된다. 전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후자는 극단적인 아방가르드 유파들로 지속되었다.¹²

그 후 수많은 주의와 유파와 그룹들의 등장과 더불어, 1920년대에 이르면 아방가르드는 과거의 거부와 새로움의 숭배를 미학적인 강령으로 규정하는 모든 새로운 유파를 지칭하는 포괄적인 하나의 예술적 개념으로서 자리잡게 된다.¹³ 아방가르드 예술이 제시하는 새로움이란 이전의 전통의 계승 발전이 아니라 그 전통의 타파이며, 지금까지 통용되어 온 것과의 단절에 있어서의 극단성이다.¹⁴

서구 예술의 전통에 있어서 과거의 유산은 현재의 창조행위를 북돋아 주고 풍부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과거가 미래를 위한 최고의 예언자라는 바이런의 사고나,¹⁵ 하나의 예술작품은 연속체 내에서 이전의 것의 영향으로 탄생된다는 Brodsky의 연결된해결(linked solution)¹⁶, Ackerman¹⁷의 양식에 관한 이론 등은 바로 이러한 입장에서 나온 예술사관들이다.

그러나 이상의 예술사관들은 아방가르드 예술의 출현 이후 전개되고 있는 예술적 양상들은 파악하는 데는 부적절하다. 아방가르드 예술에 있어서 과거는 현재를 위한 아무런 지침도 될 수 없는 것일뿐 아니라 그것은 단지 부정의 대상이다. 이러한 현대 예술은 반발과 파괴와 모험과 기대의 입장에서 낡은 것과 새로움이 교차되는 진행이며, 이러한 과정 속에서 숱한 이즘들이 나왔다가 사라지곤 한다. 그러므로 과거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태도는 현대예술의 복잡하고 비합리적인 흐름을 설명하기에는 부적절하다. 오히려 Burger¹⁸는 아방가르드로부터 시민 사회에서의 예술이라는 현상이 발전해 온 그 이전 단계들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와는 반대로 그 이전 단계의 예술로부터 아방가르드를 파악할 수는 없다고 했다. 즉, 예술이 아방가르드에 의해 자기비판의 단계에 접어들 때에 비로소 예술의 지나간 시기에 대한 '객관적 이해'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¹⁹

아방가르드의 미학적 강령은 과거의 거부와 그를 통한 새로움의 숭배이다. 이는 흔히 전통 파괴의 과정에서 획득되었으며, Bakunin의 아나키즘적 공리, "파괴하는 것은 창조하는 것이다"는 실제로 20세기 아방가르드들의 활동 전체에 적용될 수 있다.²⁰ 부정은 확실히 아방가르드의 근본적인 혁신의 이중 논리에서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²¹ 이와같은 역사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아방가르드는 단순히 양식적이며 역사적인 규정이 아니라 전대의 가치체계를 구성하고 있던 전반적이 관례에 대한 부정이라는 세계관적 규정이 된다.

아방가르드 예술의 신속한 발전에 따라 예술의 자유는 허용 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철칙화'했으며, 이제 아방가르드 예술은 자기자신과 달라지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프랑스의 이론가 Moles은 "반란의 예술을 직업화되었다"고 했고, 프랑스의 화가 Dubuffet는 "예술의 본질은 새로움이다. 따라서 예술에 대한 견해도 새로와야 한다. 예술에 걸맞는 유일한 체계는 영구혁명이다"라고 말하고 있다.²²

요약하면, 아방가르드는 애초에는 군사 용어이던 것이 사회개혁론자들의 문화정치학에 사용되면서 현재를 비판하고 혁신시키려는 급진주의 경향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고, 이후 정치적 영역에서는 무정부주의를, 예술적 영역에서는 반전통적 혁신주의를 일컫게 된다. 예술적 아방가르드가 정치적 아방가르드의 구속으로부터 독립되어 나오면서 아방가르드는 작게는 고정된 취미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그와 그의 작품을 해방시키려는 예술가의 노력과 그 예술의 형태상의 변화를 의미하고,²³ 크게는 전대의 가치체계와 전통 일반에 대한 부정의 정신을 의미하게 된다.

아방가르드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언제나 예술 또는 조형이라는 이름의 규범이 아니라 현재라고 하는 상황이었으며 그 현재적 상황에 대처하는 인간의 가장 자유로운 상태에서의 창조적 의지이다. 이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창조의지는 이성적 합리적 사고에 기초를 둔 기존 가치질서에 대항하는 도전과 부정의 정신의 극한이라 할 수 있다.

2. 아방가르드 예술의 발생 배경

아방가르드는 전통이라는 규범적 과거에 대한 부정의 정신이다. 예술에 있어서의 전통이란 아카데미즘을 말하는데, 이는 지적 합리적 측면을 강조했던 그리스의 고전주의 전통으로부터 유래하며,²⁴ 특히 르네상스 이후 완전성을 추구하는 이성을 만족시키기 위한 미와 예술의 규범이다.

르네상스 이후 서양은 그동안 세계를 지배해온 신앙의 권위가 이성의 권위로 대치되면서 종교는 점차 낡아빠진 신앙체계로 전락해 버리고, 합리와 논리라는 이성의 힘이 정신세계의 주도적 흐름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러한 세계관의 변화는 베이컨과 데카르트의 합리주의 사상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²⁵ 합리주의란 인간이성의 힘을 믿으며 이성에 의해 우주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태도이다.²⁶ Brinton²⁷의 말을 빌면 합리주의란 '우주는 우리가 논리적으로 또 객관적으로 생각할 때에 우리의 정신이 움직이는 것과 꼭같은 모양으로 움직이며 따라서 인간이 마치 간단한 산수문제 혹은 역학의 문제를 이해하는 것과 꼭 같이 그가 경험하는 모든 것을 궁극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 믿음을 이루는 한 묶음의 사상'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인간중심 주의는 현대 자연과학과 공업기술의 발전을 가져왔고 이로부터 합리적 사유로써 불명확하고 혼란한 모든 잔재를 일체의 생활과 지식에서 제거하려는 계몽주의가 출현하게 된다.

세계를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이해하려는 이성적 사고는 미술에 있어서 '자연주의적 대상묘사의 6요소'인 신체성, 물질성, 공간성의 일루젼과 세부적 데테일, 대상의 색채, 해부학적 정확성 등의 경험과학적인 기법으로 나타났다. 이는 르네상스를 통해 확립어 온 아카데미의 이상-곧 보편적 자연의 모방과 그러한 이상의 실현을 위한 절차-규칙-과 그러한 이상의 모델이 되고 있는 대가나 전통-곧 고대 희랍과 르네상스-을 본뜨고 답습하는 고전적이고 정적인 예술을 진행시켜 왔다.²⁹ 이와 같이 눈에 보이는 것을 정확하게 재현하려는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태도는 20세기 초에 이르기 까지 서구미술사의 기본전제가 되어 왔다.^３０

그러나 근본적인 의미에서 세계를 바라볼 때, 인간이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 놓은 현실이라는 것은 지극히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것이었고 세계와 존재에는 이성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어떤 것이 남아 있었다. 이로부터 합리주의라는 시대정신이 지닌 일면적 시각의 한계성으로부터 벗어나 보다 넓게 세계의 전체상을 투시하려는 적극적인 움직임, 즉 낭만주의 사조가 등장하게 된다. 낭만주의의 본질은 감정과 본능을 찬미하는 데 있었다. 거기에는 자연에 대한 깊은 존경, 형식주의에 대한 경멸, 일반민중에 대한 감상적인 사랑, 세상을 개선하려는 강렬한 욕구, 민족의 과거와 전설에 대한 향수 및 극적 감정과 격렬한 운동감의 표현 등이 포함되었다.³¹ 이러한 낭만주의는 이성적 사유의 한계로 인해서 제약되고 감추어졌던 비합리, 비논리, 비이성의 영역을 열어보고자한 최초의 혁신적인 정신이었다.

낭만주의로 가장한 미적 모더니티가 이와 같은 고전주의의 기본전제들에 대한 반동으로 자신의 역사적 정당성을 처음으로 규정한 이래로 절대적인 영원성의 미개념은 지속적인 붕괴과정을 겪게 된다.³² 이후 반예술을 주장하는 뒤샹과 그의 후계자들, 즉 다다이스트, 초현실주의자, 앗쌍블라쥬 작가, 누보리얼리스트 등은 지저분한 또는 잡다한 것들이 뒤섞인 낭만주의의 반동적 흐름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현대예술이다.³³

Lyotard³⁴는 현대예술이 추진력을 찾을 수 있고 아방가르드의 논리가 그 공리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은 숭고미학(I'esthetique du sublime)이라고 했다. 숭고란 원래 이상형태에 관한 긍정적인 미의 가치개념이었으나,³⁵ 근대 이후 낭만주의에 의해 고전적인 미의 전형과는 다른 방향으로의 예술의 전개가 있게 되면서부터 부정적인 의미를 함축하게 된다. 고전적 의미의 숭고는 미의 독특한 변종으로 절대적인 가치를 가진 초월적인 미개념과 결합되어 있었다. 그러나 낭만주의 이후의 숭고는 경악스러운 것과 불쾌를 포함하게 되었다. Kant³⁶에 따르면 숭고한 감정은 쾌와 불쾌가 함께 들어 있는 격렬하고 분열적인 흥분상태이다. 여기서 말하는 쾌와 불쾌에서 생기는 것이다. Boileau³⁷는 숭고한 것이란 엄밀하게 말해서 증명되거나 제시될 수 없는 추월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로잡고 경악케 함으로써 우리의 감정을 움직이는 놀라운 것이라고 했다.

Lyotard³⁸에 의하면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가 기존의 질서를 보장하기 위해 논리적 사유에 의존하는 현실에서 예술이 수행해야 하는 것은 숭고의 사회적 실천이었고, 이러한 숭고의 개념 및 Kant가 언급한 '표현 불가능한 것'의 전폭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이 아방가르드 미학이다. 이 '표현 불가능한 것'은 오성의 두 능력, 즉 사유능력과 구상력 사이에서 생겨난다. 초 감성적 이성이념에 의해 구상력은 체계적인 모습을 찾아내려고 시도하지만 생각된 것을 전체로 해서 표상하려는 이러한 시도에서 구상력은 한계점에 이르게 되어 이 시도는 좌절된다. 이러한 좌절은 사유의 한계경험으로써 불쾌감을 불러 일으키며, 이 불쾌감이 숭고함의 본질이다. 따라서 미술은 어떤 것을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 불가능한 것'을 암시하고 느낄 수 있게 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예술가는 아카데미즘의 리얼리즘에서 벗어나 끊임없는 실험과 모험을 시도해야만 한다.³⁹ 따라서 아방가르드 예술가는 어떤 '규칙에 따라'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규칙을 찾아'창작하는 것이다.

Calinescu는 아방가르드가 전통적인 아카데미즘을 전면 부정하면서 극단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두가지의 상반된 모더니티의 대립으로 설명한다. 아방가르드는 부르주아의 속물적 모더니티와 대립되는 미적 모더니티의 맥락에서 성장해 왔다. 부르주아 모더니티는 과학과 기술의 진보 산업혁명, 그리고 자본주의에 의해 야기된 광범위한 사회 경제적 변화와 산물로, 진보의 원리, 과학과 기술의 유용한 가능성에 대한 신뢰, 이성숭배, 그리고 행동과 성공의 숭배를 지향하는 자유의 이상 등의 근대적인 전통들을 문화의 핵심적인 가치로 계승한다.⁴⁰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적 모더니티는 자신의 낭만적 시초에서부터 근본 개혁적인 반부르조아적인 것으로, 중산층의 가치척도를 혐오했으며 폭동, 무정부주의, 묵시론에서 귀족적 자기유폐에 이르는 극도로 다변화된 수단을 통해 부르주아의 위선적인 속물근성(philistinism)⁴¹에 대한 자신의 역겨움을 표현했다.⁴² 결국 이러한 미적 모더니티는 전통이라는 규범적 과거와 부르주아의 속물적 모더니티 그리고 스스로를 새로운 전통의 한 형태로 인식하는 한에 있어서 자기자신에 대한 삼중적인 부정의 맥락에 처하게 되고, 아방가르드는 이러한 위기 개념 속에서 미적 모더니티의 변증법을 극단적으로 실행하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사회학적 근거로부터 전통적인 아카데미즘을 부정하는 20세기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부르주아 모더니티가 가져 온 진보와 번영이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되는 부작용과 역기능에 주목하면서, 그러한 사회가 빚어낸 예술의 정체현상과 예술과 삶과의 분리현상을 비판했다.

진보의 신화에 대한 비판은 낭만주의 운동에서 시작되어 19세기 말을 특징짓고 20세기까지 연장되었던 반과학적 및 반합리주의적 반동속에서 추진력을 얻었다.⁴³ 이성에 근거한 정신질서는 인간을 무지와 가난과 결핍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해방의 기치 뒤에는 Max Weber가⁴⁴ 지적한대로 인간을 전대미문의 극도의 관료행정적 질서와 논리 속에 노예처럼 예속시켜 버리는 아이러니와 페러독스를 내포할 수 밖에 없었다. 진보의 사실은 부인되지 않지만 사람들은 진보의 결과물들을 고통스런 상실감 및 소외감으로 경험한다. 역설적이게도 고도의 기술의 발전과 그로인한 번영은 마치 동전의 뒷면과도 같이 예민한 위기의 감각과 맞붙어 있는 것이다.

무한한 발전과 민주주의 그리고 문명의 안락의 고른 분배 등등을 약속하는 부르주아 모더니티에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미적 모더니티의 선동자였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그러한 약속이 정신적인 소외 및 비인간화가 늘어나고 있는 끔찍한 현실로부터 사람들을 선동적으로 이탈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보았다. 위기에 대해 자각하고 있는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이러한 전술에 올바로 대항하기 위해 미적인 면에서나 도덕적인 면에서 그들 자신의 소외의식을 배양했고 그 시대 선동가들의 허위적이고 순응적인 인간주의에 직면하여 반인간주의라는 공격적인 전략에 의존하게 된다.⁴⁵

요컨데, 역사적으로 아방가르드의 출현과 발전은 근대의 탈신성화된 세계에서 인간이 겪어야 했던 위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25년에 Ortega y Gasset는 이 시대의 새로운 예술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예술의 비인간화를 꼽았다. 그에 따르면 이것이 19세기 리얼리즘에 종말을 가져왔는데, 리얼리즘이란 실상 "인간주의(humanism)"였다.⁴⁶ 휴머니즘이란 르네상스에서 시작된 것으로 넓은 의미로는 현세의 인간사 및 지상에 있어서의 인간의 역할에 대한 관심을, 좁은 의미로는 그리스 로마의 고전고대의 문예와 철학에 대한 관심을 깨우치는 운동이었다.⁴⁷ 이같은 학문적인 관심은 모든 인간적인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 평가하는 인생철학을 등장시켰다. 그러나 오늘날 인류가 지금까지 자신들의 지식과 삶을 규정지어 온 관습적인 틀과 절대적인 진리의 한계와 횡포를 깨닫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방대한 지적 문화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아방가르드가 그러한 움직임의 서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할 때,⁴⁸ 아방가르드는 지금까지의 사실주의와는 대조되는 "비인간주의"라 할 수 있다. 아방가르드는 그들의 작품에서 인간의 이미지를 왜곡시키고 때로 제거하면서 인간의 정상적인 시각을 분열시켰다. 큐비스트와 미래주의자는 확실히 인간이란 말이 진부한 개념이 되었으며 인간주의라는 수사가 폐기되어야 한다는 의식을 가진 최초의 예술가들이었다.⁴⁹ 인간의 탈신화화와 인간주의에 대한 급진적 비판은 인간의 죽음이라는 묵시론적 관념이 철학적 상투어로 되어버리는 그런 단계에까지 도달하게 되고, 반예술적이며 반인간주의적인 은유를 위해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전통적인 유기적인 예술작품에서 나타나던 익숙한 인지방식을 파기하고 기계에 의해 나오는 방식인 추상과 우연, 그리고 변형⁵⁰등의 그들 스스로 만들어낸 과학주의를 사용했다.

이데올로기 일반의 위기 특히 인간주의의 위기가 낳은 또하나의 결과는 가치론적 상대주의이다.⁵¹ 가치판단은 점차 부적절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Calinescu는 이에 대해 평등주의적인 반위계적 충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여기에는 계급적으로 구조화된 사회가 만들어 내는 모든 구별을 참지 못하는 대중주의자의 입장, 더 나아가 무정부주의자의 입장이 개재되어 있다.

이와 같이 서구 부르주아 사회가 아카데미즘을 넘어서는 노력 속에서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아방가르드 문화가 탄생했으며, 아방가르드 예술이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문화적 상황, 사회적 타락, 그리고 죽음의 고비에 있는 문화의 만연된 권태와 혼란에 대한 진정하고 유일한 반응이었다.

다음은 아방가르드 예술의 발생배경을 도표로 나타낸 것이다.

제2절 아방가르드 예술의 특성

Adorno⁵²는 예술이 합리화되고 관리화된 세계의 완전한 속박 속에서도 이러한 세계가 숨기고 있는 비합리적인 요소를 통찰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이러한 세계의 지배에 저항할 수 있다고 했다. 예술의 이러한 능력은 무엇보다도 예술의 형식이 갖는 고유한 특성에 의해 가능한데, 예술이 그 특유의 형식구조에 의하여 물화현상에 의한 현대의 소외되고 분열된 의식을 극복하고 의식의 총체성을 획득하는 것은 예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능력이라는 것이다.⁵³ 아방가르드 예술작품은 그들의 고통, 현실과의 불일치, 모순 등을 작품자체의 의식과 형태속에 받아들인 것으로, 그러한 현실에 항거하는 고독한 양식이며, 그 형식의 내재적 힘으로 인해 인간의 역사 서술의 역할을 부담하고 있으며, 수용자에게 극도의 자유와 극도의 긴장을 요구함으로써 퇴행된 감각을 회생시킬 수가 있다.⁵⁴ Burger는 이러한 아방가르드의 예술적 의도를 수용의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노린 것은 수용자의 충격으로, 이는 어떤 행동의 변화를 위한 자극제로서 추구되며, 미학적인 내재성을 부수고 나옴으로써 수용자의 실제 생활의 변화를 유발하기 위한 수단이다.⁵⁵ 따라서 아방가르드 예술에 있어서 수용자의 충격이라는 것과 충격이라는 수법의 극단화를 통해 얻어지는 소외효과는 그 예술적 의도의 최고의 원칙이 된다.

전통의 부정으로부터 출발한 아방가르드 예술은 과거가 어떠한 지침서도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새로운 형식의 예술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했던 위기의 현상에 관심을 가지고서, 위기와 관련된 측면들, 위기의 가능성들, 그리고 위기의 새로운 형식들을 발견하고 발명하려고 했다. 이로부터 아방가르드 예술은 Adorno가 말한대로 현대예술의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부정의 실천이 되었고, 이는 정서, 매체, 언어 등의 모든 제약에 대한 항구적인 해체작업으로 진행되어 오고 있다.⁵⁶

이러한 아방가르드의 의도는 전적으로 형식적인 면에서 볼 때 유기적인 예술작품이라는 전통적인 개념의 파괴로 나타났다. 유기적 예술작품은 각각의 부분과 전체가 하나의 변증법적 통일체를 이루는 통합관계적 구조를 가진다. 즉 부분은 전체에 유기적으로 종속되어 있고 그럼으로써 전체는 부분으로부터 이해될 수 있는 부분과 전체간의 어떤 필연성을 전제로 한다. 반면 아방가르드 예술작품은 유기적 예술작품의 총체적 형상화, 즉 각 부분이 예술가의 주관성에 의해 형성되는 전체로서의 작품이 지니는 통일성을 파괴한다. 이러한 예술 작품은 전체적인 인상을 만들지 않고 수용자에게 모호함과 난해함을 던져줌으로써 충격을 느끼게 한다.

유기적인 예술작품의 총체성을 파괴하기 위해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재료에 자신을 방임하는 일, 즉 우연이라는 것에 기대를 걸었다. Kohler는 '문학적 우연'의 역사에서 20세기 문학에 있어서의 우연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해석을 하고 있다.

"트리스탄 짜라의 종이조각 시에서 시작하여 가장 현대적인 해프닝에 이르기까지, 재료(Material)에 열광적으로 몰두하는 현장, 그리고 그 재료가 나타내 보이는 우연 생산적 저항은 어떤 한 사회상황의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그 상황의 결과로서, 그 사회상황이란 곧 그 안에서는 오로지 우연에 의해 계시된 것만이 허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며 인간의 생활상황의 전면적 물화라는 낙인이 찍혀지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이다."⁵⁷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우연을 통해 합목적성 일반을 비판할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우연은 인간을 인간 자신과는 전적으로 이질적인 것에 복종시킴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자유의 암호인 것이다.⁵⁸

우연에는 임의적 우연과 계산된 결과로서의 우연이 있다. 임의적 우연은 우연의 직접적인 생산방식으로, 형상화의 모든 억압적인 요인과 규율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전적으로 우연에 방임해버리는 방법이다.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⁵⁹, 50년대의 타시즘⁶⁰, 그리고 액션페인팅⁶¹ 등이 여기에 속한다. 계산된 결과로서의 우연은 우연의 간접적인 생산방식으로, 재료를 다룰때의 맹목적인 자발성의 결과로 얻어지는 임의성과는 반대로 가장 엄밀한 계산의 결과이다.⁶² 즉 예술가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규칙에 자기를 방임함으로써 주관적 상상작용을 포기하는 태도이다. 대부분의 아방가르드 작품에서 발견되는 우연은 겉으로는 임의적으로 보이지만 이는 사실 예술가의 치밀한 계산과 선택이 수반된 것이다.⁶³ 이는 합목적적 사회로 인한 소외에 오히려 적응하고 그 징후를 강화하는 것이 그 소외에 저항하는 유일한 방식이라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예술가들의 미학적 개념적 고민을 해결해 주는 대표적인 표현수단이 콜라지(collage)이다. 콜라지는 화면에 자연적 재료나 산업적 재료를 오려붙이는 기법으로, 1908년 피카소와 브라크의 파피에 콜레로 시작되었다.⁶⁴ 르네상스 미술의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태도로부터 비롯되어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가시적이거나 비가시적인 세계를 재현(representation)함으로써 최대한의 리얼리티를 파악해낸다는 것은 서구 미술사의 기분 전제가 되어 왔다. 그러나 콜라지 기법을 통해 회화에 실제의 현실을 갑자기 개입시켰을 때 회화예술은 눈속임(trompe-I'deil)에 의한 세계의 '재현(representation)'에서 '제시(presentation)'로의 전환을 맞게된다.⁶⁵ 큐비즘 혁명이 낳은 근대 최초의 발명인 꼴라쥬는 르네상스 이래로 통용되어 온 표현체계를 가장 의도적이고 효과적으로 파괴한 혁신적인 기법이었다. 1919년 이후 다다와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에 의해 회화에 대한 모욕의 도구로, 또 사회질서에 대한 반증적이고 선동적인 태도를 표현하기 위한 극단적인 표현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이후 팝아트와 누보리얼리즘에 이르기까지 20세기 미술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 온 중요한 표현양식으로 자리잡게 된다.⁶⁶

콜라지에서는 현실의 단편들, 즉 예술가들의 주관에 의해 가공된 적이 없는 재료들이 그림속에 삽입됨으로써, 각 부분이 모두 예술가의 주관성에 의해 형성되는 어떤 전체로서의 그림이 지니는 통일성이 파괴된다.

결국 형식적 측면에서 보자면, 아방가르드적 작품은 통합관계적이 아니라 병렬관계적이며 원칙적으로 비완결적인 것이다.⁶⁷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하는 전체적인 인상을 만들어 내지 않게 함으로써 충격을 경험하게 한다.⁶⁸

다음은 아방가르드가 탄생하게 된 자본주의 사회의 또다른 결과물인 키치와의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아방가르드 예술이 위기의 문화적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 나갔는지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Greenberg는 Avant-Garde and Kitsch에서 자본주의 문화의 결과물로서 아방가르드와 키치라는 두 가지 상반된 현상을 제시하고, 이들이 자본주의의 몰락과 더불어 위기에 처한 문화와 어떤 연관을 가지는지를 논했다. 그에게 있어 문화란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엘리트 계층의 전유물인데, 산업혁명의 여파로 문화가 정체현상을 나타내는 위기의 국면에 처했을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방가르드 문화이다. 초기에는 보헤미안적인 형태로 발생한 아방가르드는 부르주아 계층의 부산물이며 동시에 그에 대한 도전으로, 이는 비정치적인 것은 아니지만 자기보존을 위해 이데올로기와는 거리를 두게 되어 그 결과로 예술지상주의나 순수추상예술이 탄생하게 된다. 지배계급은 늘 어느정도는 자신들의 문화의 조야한 복사판을 강요해 왔고 거기에는 늘 위로부터의 아래로 가는 삼투현상이 있었다. 이것을 그는 모든 쓰레기를 대표하는 독일말 '키치(kitsch)'로 비유했다. 기계화된 문명의 부산물인 키치는 정치적인 선전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으로 순수한 아방가르드의 적이 된다. 그의 아방가르드는 예술지상주의의 아방가르드로 아방가르드 미술의 매체의 순수성을 지향하는 것은 역사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했다.⁶⁹

그러나 아방가르드는 미적으로 전복적이며 반어적인 목적 때문에 키치에 관심을 가졌고, 키치는 미적으로 순응적인 목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아방가르드적 절차를 활용했다.⁷⁰ 키치는 대량소비를 위해 고안된 대중위락적 예술이며, 미적 가장과 자기 기만의 세계이다.⁷¹ 키치는 어원적으로 '값싸게 만들다', '거리에서 쓰레기를 수집하다', '낡은 것으로 새 가구를 만들다'등의 뜻이 있으며, 이로부터 키치는 미완성적인 것, 비교적 값이 싼 것, 미적 쓰레기 내지는 폐물이라는 기본 특성을 갖는다.⁷² 아방가르드가 반전통성, 실험성, 극단성, 혁신성, 충격의 원칙, 소외효과 등으로 특징지워지는 반면, 키치는 그것의 다양성에서 불고하고 반복성과 진부성, 기만, 미적 허위의식, 예견되는 효과 등을 나타낸다. 이러한 사실에 대한 관심은 후기산업사회로 넘어오면서 고급예술과 대중예술 사이의 구분이 모호해지게 되는 예술적 상황에 근거한 것이다.

대중소비사회로 진입하게 되면서 대중매체들이 만들어 내는 대중적인 이미지들이 폭주하게 되었고, 따라서 고급예술도 대중적 이미지를 부분적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결국 이것은 예술을 통속화 저질화시킬 것이라는 우려에도 불고하고 삶과 예술의 관계에 대한 조화라는 낙관론적 예술관을 등장시켰고, 대중매체를 새사회 건설이라는 아방가르드 정신의 고취수단으로 이용한 미술을 당장시키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미술이 곧 고급예술이라는 통념은 비난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사적으로 볼 때 이 문제를 가장 먼저 제기한 것은 다다 운동의 레디메이드⁷³ 오브제였으며, 본격적으로 대중문화와의 관계를 제기한 것은 1960년대의 팝아트이다.⁷⁴ 예를 들면, Wahol은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를 대형 복제물로 찍어내어 고전의 통속화, 탈신화화, 그리고 남의 작품도 자신의 작품에 있어서는 중요한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예술의 특성은 기존의 가치를 전도시킨다는 점과 보잘것없고 무가치한 것으로 간주되어 온 대중문화로부터 차용된 이미지를 예술활동의 소재로 등장시켰다는 점이다.⁷⁵

이러한 시점에서 이제까지의 모더니즘이나 아방가르드 예술과 대중문화에 대한 논의는 양자를 다 반영하지 않는 일방적이고 단면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역사를 구성하는 실제의 예들을 무시해왔으며,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는 사실상 모두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라난 문화이므로 양자의 관계는 상호의 존적일 수 밖에 없다는 논의가 대두되고 있다. 1990년 Moma에서 개최된 High & Low전은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상호의존성에 관한 역사적 증거를 보여주면서 아방가르드 예술을 대중예술과 관련시켜 논의해야함을 제시했다.⁷⁶ Brodford Collins는 A Historiographic Study of A Late Bohemian Enterprise에서 미국 최초의 아방가르드인 추상표현주의자들에 대한 통념적으로 알려져 있는 도덕성과 보헤미안적 생활태도와는 달리 사실 그들은 상업적인 성공을 위해서는 경멸하던 대중문화와도 기꺼이 타협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즉 비판과 저항으로서의 급진성이나 미학적 순수성으로 정의되어 온 아방가르드 모더니즘의 형성뒤에는 이제까지 도외시되어 온 또다른 사회, 경제적 측면이 엄연히 존재했다는 주장이다.⁷⁷

결과적으로 이와 같은 최근의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은 고급미술의 키치에서 소스를 구해왔을 뿐만 아니라 또한 키치를 사용하는 충격적인 전략으로 아방가르드의 급진성을 재고시켜 왔다는 사실이다.⁷⁸ 아방가르드 예술이 키치를 아이러니로 차용하는 경향은 중요한 전략적 이점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낡은 키치는 세련되거나 세련됨을 가장하는 사람들의 반어적인 의식을 자극하기 때문에,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궁극적으로 아카데미즘의 경화현상으로 이끌어지는 '좋은 취미'의 관습을 전복하기 위하여 키치의 '나쁜 취미'를 의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⁷⁹ 따라서 아방가르드 운동들은 자주 자신들의 반예술적 충동을 문학이나 미술의 키치 매너리즘을 무분별하게 사용하여 충족시킴으로서 보들레르가 말한 "귀족적인 불쾌의 즐거움"으로부터 유래하는 나쁜취미의 도취효과를 노린다.⁸⁰ 그러한 비예술적 요소들은 관습적인 문맥으로부터 다른 미적인 기능을 품은 차원으로 변화되어 독자적인 가치를 부여받게 된다. 다다이즘은 '일상생활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미'를 강조하기 위해 키치를 사용한 대표적인 예이다.

아방가르드들이 사용하는 키치의 이미지는 1) 끔찍하게 낡은 골동품들,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이나 복제품이나 작풍 혹은 예술적 의도등의 고유한 역사적 양식들,⁸¹ 2) 다른 문명들을 소비를 위한 이미지로 전화시킨 것들⁸² 3) 결합이나 배열에 관련된 키치의 효과, 즉 미적 부적절성(aesthetic inadquancy)의 개념, 그리고 4) 미술의 신비화를 벗기기 위한 기성품과 더 최근에는 상품물신 자체가 만들어 내는 신비화된 특성⁸³ 등이다. 60년전 초현실주의자들은 키치의 낡아빠진 이미지를 채택했다. 특히 그들은 옛 장인 경제의 오브제에 이끌렸는데, 이렇게 유행에 뒤쳐진 것 속에 있는 유토피아적 이미지를 해방시키기 위해 그들은 20세기의 리얼리티 이미지들을 충돌시켰다. 즉 그들은 대상의 서로 다른 경제들을 비판적으로 병치시켰던 것이다⁸⁴. 전통적인 대가의 작품의 복제품은 아방가르드가 자기자신에 대한 부정을 나타낼 때 자주 사용되어 왔다. 이는 키치가 가장 과도하게 활용해 왔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Leonardo Da Vinci의 모나리자를 Duchamp이 다룬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⁸⁵ duchamp은 일종의 둔감한 미적 오해나 넌더리나는 관습을 거부할 뿐 아니라, 우리 시대에는 너무도 쉽게 변조되어 버리는 외관에 기초하고 있는 미학의 포기를 향한 아방가르드적 충동을 옹호하기 위해 키치-그가 사용한 모나리자는 원작이 아니라 복제품이다-에 의존했다.⁸⁶ 이후에 Duchamp은 Wahol에 의해 전적으로 키치화한다. Jeff Koons는 천하게 빛나는 표면처리, 대중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도상들-예를 들면 디즈니 만화를 모방한 인형이나 싸구려 기념품 가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값싼 장난감 따위, 내지는 상식적으로 천한 섹스 이미지 등의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키치중의 키치를 택하여 반어적으로 현대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전형과 풍경을 제시했다.⁸⁷ 그는 자신이 키치를 만드는 이유는 하층계급의 사람들에게는 친숙한 것을 제시함으로써 그들의 두려움을 덜어주려는 것이고, 또한 성적인 작품들은 중산층의 죄의식이나 금기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함이라고 했다.⁸⁸

이상에서 언급된 사실에 근거해 미술사가 Tomas Crow는 아방가르드 예술과 대중예술의 상관관계를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했다. 히피 등의 반문화 또는 이문화(subculcure)에 대한 영국 사회학자들의 이론에 힘입은 그는 아방가르드를 필두로한 모더니즘이란 도회의 변두리 반문화(marginal subculture)에서 예술적 형태를 발견하고 그를 재생하고 재발명하는 것으로 그 위상이 성립되었다고 주장했다.⁸⁹ 아방가르드는 그들이 대중문화와 소수의 저항적인 반문화의 산물들을 선택적으로 작품화하면 그것이 다시 문화산업에 의해 대중문화로 흡수되는, 즉 반문화와 문화산업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평론가 Owens 또한 현재 반문화가 아방가르드 미술의 소스가 되는 것은 국제적인 현상이라고 했다.⁹⁰

이와 같이 아방가르드 예술이 키치와 대중문화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아방가르드의 자기반어적인 특성으로, 위기의 징후들을 오히려 강화하고 극화하여 드러내보임으로써 더욱 충격적인 소외효과를 얻고자 한 것이다. 이에 대해 Calinescu는 지적 유희, 비진지성에 대한 숭배, 신비화, 의도적으로 어리석은 유머 등은 아방가르드 예술의 자기비판적 특성과 완벽하게 어울린다고 했다.⁹¹

이상에서 논의된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아방가르드는 전대의 가치체계와 전통일반에 대한 부정의 정신으로부터, 새로운 미적가치의 추구, 새로운 조형질서의 모색, 그리고 새로운 표현방식의 실험을 주장하는 혁신적이고 극단적이고 실험적인 현대 예술이다.

아방가르드 예술은 1) 서양 예술의 전통인 고전주의의 초월적인 미의 이념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한 낭만주의의 변화와 새로움을 중심적 가치로 삼는 일시성과 내재성의 미학의 흐름이며, 2) 부르주아 모더니티가 초래한 인간의 극도의 위기감을 배경으로 발생한 미적 극단주의이다. 이러한 위기의식으로부터 출발한 아방가르드 예술은 반전통성과 새로움의 추구를 그 미학적인 강령으로 삼고 있으며, 20세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자기자신과 달라지기 위한 끊임없는 새로움과 혁신성을 그 목적으로 한다.

둘째, 아방가르드 예술에서는 수용자의 충격과 그것의 극단화로 얻어지는 소외효과가 그 예술적 의도의 최고의 원칙이 된다. 이를 위하 아방가르드들은 초기에는 '낯설게 하기'의 미학을 추종했고, 최근에는 천박하고 속물스러운 것으로 매도되는 통속적인 이미지(키치)를 도입하여 '친근하게 하기'를 통한 낯선 충격의 효과를 아리러니하게 유도하면서 미술과 현실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아방가르드의 의도는 형식적 측면에서 볼 때 유기적인 예술작품이라는 전통적인 개념의 파괴로 나타난다. 유기적 예술작품은 작품을 이루고 있는 부분과 전체간의 어떤 필연성을 전제로 한 통합관계적 구조를 가진다. 반면 아방가르드 예술작품은 저체로서의 작품이 지니는 통일성을 파괴하고 전체적으로 쉽게 인지할 수 있는 인상을 만들지 않음으로써 충격을 느끼게 한다. 유기적인 총체성을 파괴하기위해 고안된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우연'과 '콜라지'가 있다. 이러한 방법들에 의해 르네상스 이래로 통용되어 온 전통적인 표현체계는 가장 의도적이고 효과적으로 파괴될 수 있었다.

문화적 위기의 상황에서 아방가르드 운동들은 아카데미즘의 경화현상으로 이끌어지는 '좋은 취미'의 관습을 전복하기 위해 '나쁜 취미'를 의식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다다와 초현실주의를 거치면서, 혁명적인 아방가르드들은 자신들의 반예술적 충동을 아이러니한 방법으로 충족시키기 위해 키치에서 직접 차용한 다양한 요소와 기술들을 사용했다. 뿐만 아니라 아방가르드는 도시변두리의 소수의 저항적인 반문화에서 예술적 형태를 발견하고 그것을 작품화함으로써 반문화와 문화산업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셋째, 아방가르드 예술 이후 여러 양식들과 형식들의 병존 현상이 있게 된다. 예술의 형식이 갖는 내재적인 힘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예술수단의 보편성을 인식하고 더 이상 어떤 예술 양식의 원칙에 따라 예술수단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예술 양식들도 예술수단으로서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어떠한 시대적 양식이나 민족적 양식도 동시에 사용될 수 있게 되었으며, 저급한 취미와 고상한 취미라는 구분은 무의미하게 되었다. 아방가르드 예술은 예술 수단의 시간성과 공간성 내지는 예술의 미적 규범의 가치를 초월하여 작금에 와서는 예술의 탈쟝르화 현상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더 나아가 예술을 삶으로 돌리려는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의지는 예술과 비예술의 차이를 없애고 인간정신은 다양하며 이 다양함은 더욱 다양하고 자유롭게 표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다음은 아방가르드 예술의 개념, 특성 그리고 예술작품에 사용된 대표적인 표현 수단을 도표로 정리한 것이다.

제3절 아방가르드 패션의 특성

본 절에서는 앞서 논의된 예술에 있어서의 아방가르드의 개념과 특성을 토대로 하여 아방가르드 패션을 사적으로 고찰함으로써 아방가르드 패션의 내적 의미와 외적 형식을 파악하고자 한다.

1. 19세기 이후 아방가르드 패션에 대한 사적 고찰

(1) 아방가르드 패션의 발생 배경

패션은 인간의 미적 표현욕구를 충족시킨다는 의미에서 현대 사회예술인 미학의 한 갈래이며, 시대나 사회의 변천에 대한 민감한 척도라는 점에서 대중문화적 집단여흥의 한 형태이다. 그러므로 패션은 순수예술과 대중예술 양쪽 모두와 관련된 행위예술의 하나라 할 수 있다. 또한 패션은 모문화(mother culture)의 지배가치를 표현함과 동시에 이 지배적 문화 자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재해석하는 하위문화(subculture)의 저항을 표현하는, 인간 생활에 가장 근접한 예술 행위이다.

이와 같이 패션은 지배문화에 대해 사회적 반항을 표현하기 때문에 정치적 아방가르드들은 예술을 정치적 선선 선동의 수단으로 사용했던 것처럼 패션 또한 지배문화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반항의 도구로 사용했다. 1970년대는 급진적인 정치사상에 있어 혁명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자의식적인 아방가르드 개념의 경력이 시작되는 기점이다.⁹² 따라서 19세기 이래로 의복을 통해 표현되는 성적 행동과 자기 정체감 그리고 새로운 미의식은 사회적 반항의 적절한 매개물로써 작용해 왔다.⁹³ 물론 이전 시대에도 진정한 민족주의나 정치적 폭동을 반영하는 반항적 스타일-예를 들면, 올리버 크롬웰의 퓨리탄 복식이나 18세기 폴랜드로 이주한 시민복식 등-이 있긴 했었지만, 자의식을 가지고 강력한 사회적 영향력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집단과 개인적 불일치를 모두 상징할 수 있게 된 것은 프랑스 혁명을 거쳐 19세기 이후의 자본주의 모더니티의 속물적 위선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되면서부터이다. 그 어원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아방가르드 패션은 정치적 사회적 맥락을 포괄하는 구상 속에서 등장한 자의식적인 반항적 패션(oppositional fashion)⁹⁴과 맥을 같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 정치적 아방가르드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복식을 수용했다.⁹⁵ 우선 남성들은 다듬지 않은 머리에 무질서한 넝마같은 차림을 하였고, 그후 여성들은 흐트러진 머리에 단순한 구조의 끼는 듯한 머슬린 드레스로 자연스런 외모를 하였다.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생긴 pantalon은 귀족의 몰락과 민중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혁명 이후의 세계도 민중의 것은 아니었다. 산업자본주의로부터 대두한 새로운 계급인 부르주아와 이들이 만들어낸 세계질서는 또다른 불평등과 모순과 인간의 위기를 함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기계와 과학의 발전은 빈부 여하를 막론하고 물질적 풍요와 번영을 약속하는듯 했고, 이와같은 진보에 대한 믿음은 과학에 대한 종교적 존경심마저 품게 했다. 이러한 사회적 변혁은 새롭게 대두한 중산계급, 즉 부르주아에 의해 주도된 것으로, 그들은 이념과 도덕으로 국민의 육체와 정신을 향상시켰다. 그러나 그들이 추구했던 '도덕적인 세계질서'는 현실속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국가의 이데올로기, 즉 인위적인 외관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본질과 외관, 합리적 이상과 역사에 내재한 실제, 사물과 관념 사이의 거대한 모순을 드러낼 수 밖에 없었다.⁹⁶ 이를 은폐하기 위해 부르주아들은 '위선'이라는 조정자를 앞세웠고, 이로부터 어떠한 경우라도 겉으로는 도덕적인 면모를 그대로 유지해야만 한다는 절대법칙이 생겨났다. 정숙하지 못한 것, 악한것, 비참한 것, 등의 어두운 현실은 예술작품에서 절대로 묘사될 수 없었으며, 이런 겉치례적인 습관은 복식을 통해서도 나타났다.⁹⁷ 이러한 현실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실체와 기존관념에 대한 의심과 기계화된 비자연적 세계에서 인간 본성을 되찾으려는 노력이 시도되고, 이러한 정신의 극단적인 표명으로 예술과 문학 그리고 복식에 있어서의 아방가르드가 등장하게 된다.

모더니티가 낳은 산업사회의 모든 생활은 기계적인 규율에 의해 엄격히 규정되어 있었다. 이러한 생활의 규격화로 인해 패션은 평등한 사회내의 익명성 속에서 개인이나 집단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척도가 되었다.⁹⁸ 사회적 규정된 시간에 의해 패션에서도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이 있었고 남녀의 사회적 경제적 역할의 분기에 따라 남녀 복식의 확연한 구분이 있었다. 부르주아는 익명성과 패션을 통한 정체성 표출이라는 이 시대의 특성을 교묘히 전복시켜 패션을 단지 과시와 위장의 도구로 전락시켰다.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을 일반시민과 구분하고 위선적인 도덕관을 유지하기 위해 전대의 귀족적인 분위기를 계속 추구하려 했던 것이다.⁹⁹

보들레른 디킨스, 니체같은 사상가들은 부르주아의 위선 뒤에 가려져 있는 비참하고 어두운 현실을 직시하고 우울한 도시의 추함과 더러움과 뒤틀림 속에서 아름다움과 에로티시즘을 발견하고자 했다. 복식에 있어서 이러한 사상은 구귀족의 취미를 쫓으면서 자신들의 위신과 경제력을 과시하려는 부르주아들의 속물적 태도에 역겨움을 표방하는 반-부르주아(anti-bourgeois)의 반항적 스타일로 나타났다. 남성의 복식에서는 댄디와 낭만적 보헤미안의 복식으로, 여성의 복식에서는 라파엘로전파 복식(Pre-Raphaelite dress)을 위시한 유미주의 복식(Aestheatic dress) 등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반항적 스타일은 이후 20세기에 전개될 복식의 형태와 미의식에 변화를 일으킨 원동력이 되었다.

(2) 엥끄르와야블(incroyable)과 메르베이웨즈(merveilleuse)

혁명후의 젊은 아방가르드인 엥끄르와야블(incroyable)은 영국에서 시작된 댄디즘을 채택하여 이전까지의 남성복과는 판이한 극도의 치장으로 기묘한 패션을 선보였다. 이는 이후의 보들레르의 댄디 차림과는 판이한 극도의 치장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쟈꼬뱅의 집권하에서 sans-culottes(without-breches)는 애국자로 칭송되었고 반혁명적 댄디나 머스카당(muscadin) 차림의 부르주아는 비난받았다. 그러나 혁명후 지롱드당을 지지하는 이 젊은이들은 쟈꼬뱅당의 간소한 혁명적 의상을 조소하며 댄디의 복장을 귀족풍의 기묘한 옷차림으로 변형시켜, 당시의 혼란한 가치관과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표방하였다. 엥끄르와야블은 텁수룩한 머리에 불균형하게 큰 빨간 칼라를 젖혀 놓은 상의에 턱밑까지 높게 여러 번 감은 cravatte에 꼭기는 culotte를 입고 끝이 뾰족한 신이나 부츠를 신었으며, 양쪽으로 각이 진 모자나 원추형의 특이한 모자를 쓰고 때로는 도수높은 안경을 끼고 옛귀족들이 사용했던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등의 괴상한 차림을 하였다<그림 1-1>.¹⁰⁰ 이들의 여성 파트너인 메르베이웨즈(merveilleuse)는 살색 마이요 위에 투명한 머슬린 드레스의 도발적인 치장을 했는데,¹⁰¹ 이는 영국 보헤미안 여성들의 코르셋을 입지 않은 드레스를 고전적인 그리스 의상처럼 변형시켜 착용한 것이었다.<그림 1-2>.¹⁰² 엥끄르와야블과 메르베이웨즈는 당시 패션의 전형이 될 수는 없지만 유행행동의 극단을 잘보여 주는 것이었고, 이들의 자유분방한 패션관은 20세기초 가르손느의 출현에 영향을 주었다.

(3) 댄디(dandy)와 보헤미안의 패션

댄디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난 "새로운 도시인의 전형"으로, 귀족 선동가이고 예술 선동가이며 낭만주의 선동가였다. 댄디는 부르주아의 성성과 미의식에 대해 새로운 종류의 미를 제시한 최초의 움직임이었다. 댄디의 외모는 구제도의 남성적인 미학과의 뚜렷한 단절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들은 꾸미지 않은 냉정한 남성미를 통해 부르주아의 저급한 취미에 대한 반감을 표했고, 낭만적인 허무와 우울의 찬양을 통해 합리적 이성주의의 진보의 신화에 대한 비판을 나타내었다. 의복의 우아한 단순성으로 개인적 우월과 속물적 부르주아와의 구별을 나타낸 댄디즘에 대해 보들레르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비싸고 정교한 복식의 진가는 누구든 헤아릴 수 있다. 그러나 꾸미지 않음을 통해 고양된 기품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자의식이 강하고 세련된 엘리트뿐이다."¹⁰³

19세기 중반에 댄디즘에 매료된 보들레르는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남성의 얼굴은 여자와 같이 정열에 불타서 슬픈 어떤 것, 정신적으로 만족되지 못한 욕구와 비밀로 억제하고 있는 야심, 사용할 곳 없는 힘의 느낌, 신비스러움, 그리고 불행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 했다<그림 2>.¹⁰⁴'환희'는 미의 가장 통속적인 장식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데 반해, '우울'은 미의 가자 뛰어난 반려자였다. 낭만주의의 우울, 권태, 불행 등의 병적 취미가 지고의 미로 찬양되었다. 강하고 활동적인 전통적 남성미는 이후 댄디에 의해 "해쓱하고 날씬한 남성",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남성"이라는 지적이고 정적인 단아한 남서이로 대치되었다. 극단적인 경우 댄디들은 앞으로 여성들의 복식에서조차 폐기될 코르셋을 착용하여 허리를 조이고 엉덩이를 둥글게 하고 가슴을 불룩하게 함으로써 여성적인 나약함을 표현하기도 했었다.¹⁰⁵

반-귀족을 성취한 보헤미안들은 이제 반-부르주아를 부르짖고 있었다. 당시의 진보적인 아방가르드들은 대부분이 지적이고 예술적인 보헤미안들로, 반-부르주아적인 태도를 지닌 이들의 복식에는 부르주아에 대한 반항의 표현으로 단정치 못한 면과 자의식이 강한 면을 갖고 있었다. 이들이 말하는 부르주아는 귀족적인 우월감을 표현하는 속물적인 부르주아뿐만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반-부르주아를 표방하고 있기는 하지만 반혁명적인 지식인들도 포함한다. 이들은 짧게 커트한 머리에 가루를 뿌리지 않고, 넥타이를 되는대로 느슨하게 묶었는데, 이런 단정치 않은 외양으로 단순한 의상 이상이 의견을 제시하고자 했다.¹⁰⁶ 그 이래로 '단정치 못함'은 예술적이거나 지적인 느낌을 제시하는데 사용되어 왔다.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관념에 의하면 너덜너덜하고 볼품없는 옷은 인간의 정교한 세련미의 은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가난의 상징은 예술가의 눈에 의해 간파될 수 있었고 더욱이 누더기 상태 그대로의 가난의 미는 '근원적인 우미(basic grace)'와 '진실미(true beauty)'로 이상화되기까지 했다.¹⁰⁷ 이와 같이 옷을 잘 갖춰 입지 못한(ill0clad) 것에서 오는 미의 우월성에 대한 낭만적 신념은 최근들어 더욱 강하게 부각되고 있는 패션의 주제이다.

(4) 라파엘로 전파 복식과 유미주의 복식

남성의 복식에서 댄디와 낭만적 보헤미안의 반항적 복식이 당시 스타일의 위선에 대한 반항으로 등장할 때, 여성의 복식은 여전히 전통적인 우아함을 추구하고 있었다. 당시 유럽을 장악하고 있던, 꽉조인 허리와 극도로 부풀린 스크트의 장식적인 크리놀린은 외적 자기과시와 구귀족의 영화를 재개하려는 부르주아의 취미에 적절한, 당시의 반-성 이념(Anti-Sexual Ideology)를 나타내는 복식이었다. 이러한 여성의 복식은 당시의 순종적이고 자기도취적이고 자학적인 존재로서의 여성의 역할의 반영이자 강화였다. 이를 가리켜 많은 복식사학자들은 '우아한 노예(Exquisite Slave)'라고 지칭한다.¹⁰⁸

이러한 여성의 복식에서 반항적 스타일의 경향이 나타난 것에 1850년대 영국의 라파엘로전파주의 복식에서부터이다.¹⁰⁹ 라파엘로전파주의 복식은 당시 유행하던 복식을 거부하고 그들의 예술이념에 따라 직접 제작하여, 그들의 작품에 직접 그려지고 그들과 연계된 여성들에 의해 실생활에서 입혀졌던 중세품의 단순한 의상을 말한다.¹¹⁰ 라파엘로전파주의자들은 서구 합리주의와 산업혁명의 야기된 사회악과 시대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부르주아 모더니티의 사회적 억압과 물질주의, 그리고 그 시대의 위선적인 도덕관례를 혐오하고, 그들의 예술을 통해 이를 개혁하고자 했다.¹¹¹ 이러한 사고를 가진 그들의 삶은 예술사상 어느 누구보다도 낭만적이고 보헤미안적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주장하고 실행한 복식은 부르주아 사회의 위선적인 성관례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하여, 획일적이고 절대적인 전통적 여성미에 대해 현대적 의미의 새로운 미의식을 제시한 것이었다. 그들은 당시 사회로서는 불가능했던 여성 자의식의 확대를 배경으로 하여, 남성적 지배 이데올로기의 필연적 산물인 콜셋과 크리놀린을 폐기하고 장식하지 않은 자연미를 주장했다. 그들은 당시 산업사회의 익명성과 하찮고 가치없는 나약한 존재로서의 여성의 익명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가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해 나갔다. 획일적인 기존의 여성미에 대해 그들은 1) 평범한 이목구비 내지는 결코 예쁘다고는 할 수 없는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현대적 개성미, 2) 19세기 산업화와 도시화의 음울한 정서에 근거한 도회적 퇴폐미, 3) '집안의 정숙한 여성'이라는 기존의 억압적인 도덕성에 대해 요부적 관능미 등의 새로운 현대적 미의식을 제시했다.¹¹² 이와 같은 새로운 미의식과 진보적 사상은 중세나 그리스 로마 등의 과거의 양식이나 동양이나 중동풍 등의 이국적 분위기를 사용하거나, 우울한 도시 구석의 추함과 더러움과 뒤틀림의 퇴폐적이고 낭만적인 정서를 그대로 반영함으로써 표출되었다. 영국에서는 라파엘로 전파 복식을 위시한 유미주의 복식이 보헤미안의 반항적 스타일로 계속 발전해 왔다<그림 3>.¹¹³

요컨데, 이상에서 언급된 패션들은 부르주아의 위선적 도덕성과 합리적 질서를 부합하는 복식의 미의식에 대항한 반항적인 패션의 비도덕적이고 비합리적인 흐름이었다. 이는 또한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과 생활 철학을 진솔하게 반영함으로써 이루어진 패션의 혁신이었다. 이들은 부르주아의 '활기'에 대해 도회적 '우울'을, '장식'에 대해 '절제'를, '잘 갖춰 입음'에 대해 '잘 갖춰 입지 않음'을, '반-성 이념'에 대해 '성 이념'을, 그리고 기존의 '규범화된 남성성과 여성성의 이분법'에 대해 '모호해진 성성'을 제시함으로써, 기존의 합리적인 관념에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비합리적인 정서에서 오는 미의 우위성을 통해 현실에 대항했다. 이들의 미의식은 패션을 통한 다양한 개성표현의 가능성을 던져주는 것이었다.

라파엘로 전파 복식으로부터 시작된 19세기 여성 유행복에 대한 논쟁은 유미주의자들 뿐만이 아니라 여권론자, 사회주의자, 의학계, 특정 종교단체 등의 합리주의자들을 중심으로 더욱 가열화되었다. Wilde, Whistler, Haweise 등의 유미주의자들은 당시 유행복의 비미적임에 대해 새로운 미를 정의하고 대중에게 올바른 취미를 선도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중세나 그리스 복식의 자연스러운 미를 찬양했다. 반면 합리적이고 건강한 복식 주창자들은 복식이 보다 유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코르셋의 폐기, 바지나 짧은 스커트의 착용, 불편한 장식을 배제한 단순화된 옷 등을 주장하였다.¹¹⁴

그러나 Newton은 1890년대를 마감하면서부터 사회적 과제로서의 개혁복식이 착용자의 취미나 정치관이라는 현대적 의미를 표명하게 되었다고 했으며, 복식개혁 주창자이면서 심리분석학자인 Flugel은 1920년대 이후 복식은 미학적 고려가 중요하며, 그것은 민주적 가치를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¹¹⁵ 이와 같은 논의들은 지금가지의 복식에 대한 다양한 자의식적 주장들이 결국 20세기에 와서는 새로운 미적가치의 추구라는 제 1목적으로 수렴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반항적 스타일로서의 아방가르드 패션은 사회적, 정치적, 이념적 개혁의 수단 내지는 그것을 반영하는 것이었고, 당시의 복식에 부과된 상황을 거부하고 새로운 미를 주장한 경우라도 여전히 정치적 색채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패션은 아방가르드한 예술가의 상상력과 감정을 바탕으로한 예술로서의 기반이 다져지게 되고 이로부터 시대감각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패션 자체의 새로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의 노력으로 과거와는 전적으로 다른 현대적 의미의 패션이 시작된다. 이제 패션은 정치적 사회적 이념적인 의미로부터 벗어나 과거의 진부한 형식과 미의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형식과 미를 제시하는 디자이너의 혁신적인 스타일로의 발전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5) 20세기 아방가르드 패션디자이너들

20세기에 출현한 많은 현대적인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이 제시하는 새로운 스타일은 패션 자체의 순수한 미를 추구한 것이었다. 특히 20세기 예술과 의상을 접목시킨 Pliret는 독창적인 상상력과 감성으로 의상의 모더니티를 확립시켰다.¹¹⁶ 그는 수세기 동안 여성의 인체를 구속해 왔던 코르셋을 폐기시키고 이전의 장식품과도 같은 나약한 여성미를 인간적인 개성미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1911년에는 미래의 여인의상에 대하여 간결한 줄무늬의 팬츠수트를 예언하기도 했다.¹¹⁷ 아르누보 시대의 부를 과시하는 과도한 치장과 장식에서 벗어나 복식에 순수성과 평면성을 구가하여 기계새안에 의한 기성복의 출현을 가능하게 했다<그림 4>¹¹⁸ 그는 또한 이집트의 zigzag이나 기하학적 문양을 코트나 수트에 사용하거나 남미의 Aztec 스타일과 동양적 자수나 타셀을 접목시키는 등, 역사적 양식의 요소와 민족적 양식의 요소를 그의 의상 디자인에 자유롭게 사용함으로써 어떠한 양식적 규범에도 구애받지 않는 표현수단을 보편화시켰다.

Poiret가 이뤄 놓은 패션의 자유에 Chanel이 1910년 이후 촉매제 역할을 했다. Chanel은 여성패션의 남성화를 이루어 경쾌하고 활동적인 젊음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하층적 이미지를 차용한 'poor look'으로 과시라는 기존의 패션 개념을 변화시켰으며, 아방가르드 예술의 경향과 발맞추어 디자인의 순수성을 추구했다<그림 5>. 복식산업의 전통적으로 가장 섬세하고 값비싼 실크를 사용해 왔기 때문에 Chanel이 남성용 속옷이나 블레이저 용으로 사용되던 니트 저지나 플란넬 같은 낡은 직물로 단순한 수트나 드레스를 발표했을 때 그것은 대단한 센세이션을 불러 있으켰다.¹¹⁹ 1920년대의 boyish sytle을 주도한 chanel과 Patou는 여성적 곡선미에서 중요한 부위인 허리의 곡선을 감추고 허리선을 아예 엉덩이로 내렸으며, 헴라인을 무릎위까지 올렸다.¹²⁰ 이에 대해 Evans & Thornton은 예술과 디자인의 비장식주의자들은 페미닌을 거부하고 머스큘린을 추앙했다고 언급하면서 Chanel의 스타일을 댄디즘과 연관시켰다.¹²¹

여성의 바지착용, 코르셋의 폐기, 직선적인 실루엣 등의 현상에 대해 많은 패션비평가들은 페미니즘과 연관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들은 여성성에 대한 거부를 뜻할 뿐만 아니라, 그것은 애초부터 인체의 형태에 대한 기존의 인지방식으로부터 벗어나서 디자인하려는 순수한 조형의지의 표명이었다. Chanel의 디자인에서 볼 수 있는 큐비즘의 단순성은 그녀의 순수 조형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순수조형의 추구는 복식에 있어서의 여성성의 거부를 바탕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고, 이 여성성의 거부는 코르셋의 파기로부터 출발한 것이라 할 때, 여성적인 인체의 이상적인 형태를 추구하고자 고안된 코르셋의 폐기는 인체의 성차를 강조하던 전통적인 복식의 형태에서 벗어나 복식을 통한 순수 조형의 창조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Poiret에서 시작하여 Chanel, Dior, Balenciaga에 이르는 20세기 전반의 모드를 살펴보면 인체의 이상적인 형태를 인식하고 그것을 재현하고자 하는 전통적인 의도가 선(line)의 창조를 통해 파괴되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형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장식적인 요소가 배제된 순수 조형이 탄생되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그림 4><그림 5><그림 6>.

패션의 이러한 경향은 19세기 중엽 이래로 예술적 구성물들의 형식과 내용 사이의 변증법이 날이 갈수록 형식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되어 오면서 이 형식적인 측면이 좁은 의미에서의 미적인 것으로 독립적으로 분화되어 나오게 되는 예술의 발전과 그 맥을 같이한다. 예술에 있어서의 형식 우위성은 생산미학적으로는 예술수단의 자유로운 이용을 뜻하며, 수용미학적으로는 수용자의 감각을 세련화시키려는 경향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¹²²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하여 이 경향을 극대화시킨 아방가르드 예술, 특히 추상주의 미술의 영향으로 사람들의 눈은 대상의 형(shape)을 인식하는 시각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수세기 동안 인간 외모의 이상형에 종속되어 있던 인간의 시감각은 추상적 형태로 환원되었고, 추상은 미술뿐 아니라 의복의 형태 자체에서도 이루어졌다.¹²³ 이러한 패션의 추상으로의 도약은 20세기 초의 추상적이고 단순한 도안의 패션화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Poiet는 1904년에 여성 인체의 가는 허리를 강조하던 S 실루엣에 대해 전통적인 코르셋에 의한 체형 교정을 비판하고 허리를 인식하지 않는 직선적인 실루엣을 선보였다. 이러한 직선적인 스타일은 Chanel에 의해 기능적인 분위기의 라인과 비장식적이고 단순한 선을 사용하여 순수한 형태로 이어졌다.¹²⁴ 194년 Dior는 New Look을 발표한 이래로 선과 기하학적 조형성을 추구하는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그는 여성 인체의 우아한 곡선미를 창조적인 조형의지로 새롭게 조명했다<그림 6>. 1954년 그는 H-line의 flat loor을 발표하여 단순한 직선상의 날씬한 실루엣을 만들어 내었고, 1955년에는 좁은 어깨폭과 평평한 가슴, 그리고 하이 웨이스트의 A-line을 선보였다.¹²⁵ 그해 가을에 발표된 Y-line은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로 여성복식의 역사상 유래없는 형태였다. 이러한 기하학적인 라인과 조형의 순수함은 Dior와 함께 Balenciage, Patou, Balmain등에 의해 추구되었다.¹²⁶ 이와 같은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에 의해 인체와 유기적으로 관련된 복식의 형태가 부정되고 복식을 통한 순수 조형의 창조가 가능하게 되었다.

(6) 주변문화 스타일(marginal culture style)

20세기에 들어서면 동양은 물론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의 이문화의 예술과 복식이 서양복식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일차 세계대전 직전에 뉴욕의 할렘과 흑인문화로부터 나온 재즈의 열풍으로 아프리카풍의 장식과 디자인이 등장했고,¹²⁷ 1920년대에는 파리 예술계의 흑인 예술에 대한 관심과 흑인 댄서의 등장으로 인해 흑색의 미가 발견되었으며, 1931년 파리 식민지 박람회 이후 토속적인 원색이 유행했다.¹²⁸ 가난과 도시생활의 소외에 대항하는 소수인종들이 자신들의 민족적 자존심의 표명과 복종의 거부라는 사회적 반란을 표현하는 반항적 스타일의 등장과 함께, 1960년대 이후에는 "Blank is beautiful"개념이 대두되었다.¹²⁹ 이와 같은 패션의 이문화에 대한 관심의 증대와 그 스타일의 유입으로 인해 서양 패션은 여러문화의 다양한 의복 양식들에 대한 상대적인 것으로 보이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이러한 상대주의는 서구의 절대적 이상미를 파괴시키고 다양한 미의식의 존재를 가능하게 했다.

이문화 스타일은 직접 하이패션에 응용되거나, 하위문화의 극단적이고 반항적인 스타일의 형성에 영향을 주어 그것이 다시 대중문화로 흡수되는 두가지의 경로로 서양패션에 도입되었다. 특히 하위문화 스타일의 형성의 큰 영향을 준 것은 흑인문화였다. 50년대 말부터 대두되기 시작한 청소년 하위문화집단들은 그 이전에 아프리카로부터 이주해 온 흑인의 문화와 스타일이 모문화에 대한 그들의 비동조와 표현의 자유를 역설할 수 있게 하는 '하위문화의 정수(Quintessential Subterranean)'¹³⁰라고 생각했다. 상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에서 모즈(Mods)는 스카(Ska)¹³¹의 누더기 스타일을 채택했고, 스킨헤드(Skinheads)는 흑인의 거리 스타일에 의존했다.¹³² 노동계층에서는 소외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흑과 백의 전례없는 수렴현상이 있게 된 것이다. 70년대의 펑크는 'We're nigger'라는 구호를 내걸고 진정으로 흑인과 함께하는 아웃사이더이길 열망하면서,¹³³ 흑인 문화와 스타일을 전적으로 받아들였다.

1960년대 후반 히피 반문화(second-hand dress)의 시대착오적인 의상을 팝과 패션의 주흐름 속으로 도입시켰다.¹³⁴ 히피들이 중고시장으로부터 도입한 오래된 털코트, 크레이프 드레스, 군인 외투 등의 추레한 차림새는 시민적 반권위주의, 쾌락주의, 그리고 부에 대한 경멸을 표현한 것이었다. Hall은¹³⁵ 이런 반유물론적 히피운동에서 전통적인 중산층의 말쑥함에 대한 부인과 더불어 빈민층과의 동일시를 지적하면서, 히피문화는 낡고 추레한 중고의류를 통해 물질적 풍요를 공공연히 비난하고 좀더 상위의 진실을 찾으려고 했다고 언급했다. 그들은 또한 자신의 평화추구를 나타내기 위해 민속적인 로브와 푸른색의 데님을 입고 머리에 꽃을 꽂거나 가슴을 노출시키기도 했다<그림 7>.¹³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