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영상 프로그램 수입의 문화적 합의와 정책적 대응
1. 영상 프로그램의 특수성과 문화적 합의
1> 영상 프로그램의 성격
21세기의 대표적 유망산업으로 꼽히는 영화, 비디오, 방송 프로그램등의 영상산업은 막대한 시장수요와 잠재력, 소프트산업으로서 연관산업에 미치는 영향력과 부가가치 등을 생각할 때,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영상산업은 경제적 중요성 뿐만 아니라, 영상 소프트웨어가 담고 있는 문화적 성격으로 인해 또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즉 영상산업의 생산물은 그 자체가 산업활동의 산물로 단 한번으로 사용가치가 소멸되는 일반상품과는 달리 지속적으로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경제성이 높다. 또한 영상 소프트웨어는 한 사회의 이념이나 정신적 가치를 전파하는 수단이므로 영상 프로그램 수출국의 가치와 생활방식 등이 이식되어 수입문화를 우월한 것으로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1)
따라서 영상 소프트웨어가 수용자들에게 쏟아붓는 엄청난 양의 문화적 메시지들은 이들 메시지가 지닌 내용의 관점 -세계에 관한 특정의 관점이나 견해를 '보편화' 하는- 에서 뿐만 아니라, 수용과 참여의 변증법에 끼치는 메시지의 영향이라는 관점에서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영상 프로그램들은 수용하는 국민들이 특정문화에 대한 상품이나 서비스에 접할 기회를 높여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체적 영상 프로그램을 기획·개발함으로써 능동적 참여를 시도하려는 희망을 점점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2)
앞의 장에서는 한국의 영화산업과 비디오산업에 미국의 영상 소프트웨어가 진출하는 과정과 시장점유에 관해서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최근까지의 현황에 의하면 미국 할리우드 영상 소프트웨어의 우위가 문화적 측면에서 우려를 나타낼 정도에 이르고 있다. 이는 영화와 비디오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안방의 텔레비전에까지 깊숙히 침투하고 있다.3)
이와 같은 미국의 영상 프로그램에 의한 지배는 한국적 문화의 정체성의 유지와 발전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며, 국제화와 개방화의 세계적인 추세속에서 과연 진정한 문화적 발전이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하도록 한다.
한편, 최근의 UR 협상과정에서 볼 수 있었던 미국과 유럽간의 시청각 서비스 분야의 갈등은 영상산업을 비롯한 문화산업이 갖는 경제적 효과와 더불러 문화적 합의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좋은 예가 된다고 하겠다. 아래에서는 영상산업에서의 미국과 유럽간의 무역불균형과 영상 프로그램에 대해 미국과 유럽이 서로 어떠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2> 영상산업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갈등
영상산업에서의 미국과 유럽의 갈등은 심각한 무역불균형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즉 1993년의 경우, 미국은 유럽에 37억 달러의 영상상품을 수출한 반면, 수입은 고작 2억 8천만 달러에 그쳤던 것이다.4) 영상상품별로 미국과 유럽의 무역내용을 보면 <표 V-1>과 같다.

미국과 유럽의 논쟁에서 가장 핵심이 되었던 것은 영상상품 중에서도 영화와 비디오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문화도 하나의 상품이라고 보는 미국의 입장과, 문화상품은 경제적 성격과 함께 정신적 정체성의 기반을 가진 '문화적 특수성(speciality in culture)'을 인정해야 한다는 유럽의 입장이 서로 대립된 것이라 할 수 있다.5)
UR 협상에서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은 시청각 분야를 산업으로 보지 말고 문화로 볼 것을 요구하며, 시종일관 시청각은 유럽문화의 존속권과 정체성을 유지할 권리에 관련된 전략적인 매체라는 입장이었다.6) 유럽 각국은 시청각 분야가 갖는 문화적 특수성을 지키지 않으면 산업의 기본 골격마저 무너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영상주권의 수호에 나섰던 것이다7)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영상산업은 이미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하였을뿐만 아니라, 국내 대기업과 다국적 기업이 영상시장에 적극 진출하고 있어 그 규모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영화, 비디오, 방송시장을 비롯한 영상산업은 2조원을 넘어서는 거대한 시장으로 변화하여 한국의 경제에서 무시할 수 없을 만큼의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8)
따라서 영화나 비디오, 방송 등의 영상 소프트웨어가 얼마나 중요한 문화기구인가 하는 인식과 정부의 적절한 영상산업을 비롯한 문화정책의 필요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할 것이다. 다음 절에서는 미국의 영상산업의 우위에 대한 여러 국가들의 대응반안을 비교 고찰하여, 산업적 토대가 약한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개방화의 물결속에서 어떻게 대처해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논의해 보고자 한다.
2. 미국의 영상산업 우위에 대한 각국의 내용
세계 각국은 자국의 문화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영화나 비디오, TV프로그램 등의 영상상품 분야에 지원책을 크게 강화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유럽, 아시아, 그리고 80년대 들어 영상산업의 기반이 거의 무너진 남미국가들까지 포함해 전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9) 이는 대중문화의 한 장르로서 영화나 비디오를 보호하던 종전의 소극적 차원에서 벗어나 영상매체를 부가가치가 높은 미래의 산업으로 인식하면서 영상 프로그램의 산업적 측면이 강조되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래에서는 이러한 각국의 정책적 대응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1> 프랑스
UR협상에서 시청각 분야가 일단 제외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국가가 프랑스인 점에서 보듯이, 프랑스가 영상산업에 있어 시행하고 있는 여러가지 제도나 보호정책은 세계각국의 모범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을 정도로 완벽에 가깝다.
프랑스에서는 영화나 비디오에 관한 각종 제도나 정책, 조사, 통계, 관리 등의 업무가 국립영화센터(Center National De Ca cinematographe)에서 이루어진다. 1946년에 창설된 후, 1959년 문화부 산하 특별법인체로 발족한 국립영화센터는 영화나 비디오 정책에 대한 지도, 관리업무와 영상산업에 관한 국가적 조정업무를 구체적으로 담당한다.
영화관련법 및 시행령, 관계조례, 정관이나 규칙을 연구하고 관리하며, 영상산업에서의 각종 기록이나 통계, 정보수집업무를 비롯하여 검열, 필름 보관소 운영, 국립영화학교 및 깐느 국제영화제에 대한 재정지원과 조정, 통제, 영상산업에 대한 국가재정지원 등 영화와 비디오에 관련한 모든 업무는 이 센터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영상산업에 관한 통제나 규제보다는 지원, 육성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국립영화센터가 담당하고 있는 재정지원은 영화나 비디오 제작사에 대한 지원금 대출 또는 영화재정금고에 대한 출자, 영화배급사나 비디오배급사, 영화상영기관에 대한 지원, 극장의 시설 및 장비 현대화에 따른 지원 등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따라서 영화와 비디오의 제작자 뿐만 아니라, 배급사나 극장까지 지원혜택을 받게 되는데,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① 장편영화를 제작했을 때, 입장수입이 1천 5백만 프랑 이하일 때는 상영기간 동안 징수된 부가가치세의 110%, 1천 5백만 프랑 이상일 때는 55%를 제작비로 보상해주며 ② 장편영화의 상영에 따른 상영보조금 지급, ③ 영화와 비디오 제작과 관련된 스튜디오, 실험실, 녹음실 및 단편영화 제작자에 대한 보조금 지급, ④ 위원회에 의해 선정된 프랑스 및 외국 영상물 배급업자에게 배급 지원금 지급 등을 들 수 있다.10)
1991년에 지출한 지원규모는 1990년에 비해서 31%나 늘어난 9억 6천 8백만 달러로, 총제작편수 156편중 46편이 이 지원금을 활용했다. 또한 '터미네이터', 'JFK' 등 미국 할리우드의 세계적 흥행작에 프랑스 자본을 투자하면서 영상산업의 산업화 과정을 밟고 있다.11)
이와 같이 영화와 비디오를 비롯한 영상산업에 있어서의 프랑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최근 프랑스의 대형 유로채널인 Canal Plus가 할리우드에 제작사를 운영하고, 몇편의 프랑스 텔레비전들의 프로그램이 미국 네트워크로 진출하기 시작했다.12) 이는 영상프로그램에 있어서 미국의 지배권은 타국의 경쟁을 불가능하게 한다고 여겨져 온 사실에 비추어본다면 매우 의미있는 현상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범국가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영상산업이 세계의 중심에 있지도 않으며, 예술적 성취 또한 괄목할 만한 수준을 이루지는 못하고 있다.13) 이러한 사실은 제도나 정책이 한 국가의 영상산업을 보호할 수는 있지만, 산업 스스로 자생력을 갖추지 못하면 산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확고한 위상을 확보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2> 영국
영국의 영상산업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나 보호는 프랑스와 비교해 볼 때, 결코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그러나 영국의 영상산업 현실은 프랑스와 비교할 경우, 미국에 의해 크게 침식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90년 겨우 15편을 제작, 위기감을 느껴온 영국은 전 영상산업-영화·비디오·TV 프로그램-이 공동으로 제작기금을 확보하는 방안을 비롯해 유럽영화학교의 유치 등 지원책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14)
영국에서 영화에 대한 지원제도가 시작된 것은 1933년 영국영화연구소(British Film Institute)가 설립, 가동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관리부, 출판부, 국립영화관, 영화업무부, 지역개발부, 교육부, 필름보관소 등 6개 부서로 구성된 영화연구소의 운영은 극장 입장요금에서 징수하는 부과금과 정보에서 지원하는 교부금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영국 영화연구소의 활동중 주목할 만한 부분은 런던에 위치한 국립영화관(National File Theater)과 국립영화기록보관소(National Film Archiv, 1935년 설립)의 운영 및 각종 영화단체나 서클 등을 지도, 지원하는 필름소사이어티(Film Society) 업무이다. 현재 3만여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국립영화관은 모든 종류의 영화와 비디오를 상영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어 영화사의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세계 우수영화들을 감독, 국가, 시대, 주제별로 상영함으로써 다양한 영화와 비디오의 소개와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국립영화기록보관소 역시 각종 영화 2만 2천여편을 비롯 시나리오, 포스터, 기록사진 등을 소장하고 영화의 역사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등 영화를 소개하는 작업을 담당하고 있다.
영국의 영화연구소가 영국내에서 영상프로그램의 문화적 수용을 통한 기반확충을 펴나가는 간접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라면, 영상프로그램의 직접지원은 국립영화자금지원금고, 국립영화개발기금 등 4개의 기구에서 맡고 있는 영상프로그램의 제작지원을 들 수 있다.
국립영화자금지원금고는 현재 영국영화기금재단(British Film Fund Agency)으로부터 연간 150만 파운드의 보조금과 비정부기관으로부터 5백 파운드 이내의 범위의 기부금을 융자받아 이를 영화제작비로 다시 융자해준다. 융자대상은 자체판단에 따라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영화제 작자이며, 융자조건은 로이드 은행의 기본이율에다 2.5%를 더한 이자를 받는 외에 흥행에서 성공했을 때에는 일정한 비율의 이익을 배분한다. 그러나 영화가 흥행에서 성공하지 못했을 때에는 영화의 판권을 소유하는 대신 상환청구는 하지 않는다.15)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영국의 영상산업 지원은 프랑스와 더불어 어느 국가보다도 잘 정비되어 있다. 그러나 영국이나 프랑스의 영상산업이 미국의 시장전략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이유는 첫째, 영상프로그램의 지나친 문화적 가치나 예술성의 추구로 인해 상업성을 갖지 못한다는 점, 둘째, 유럽의 영상프로그램 제작은 많은 투자를 한다고 하더라도, III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할리우드의 영상프로그램이 가지는 대량생산의 체제만큼 경제적인 효율성이 없다는 점, 셋째, 영상프로그램이 가지는 산업적·경제적 성격, 즉 부가가치나 관련산업에 미치는 부수효과의 인식에 있어 미국보다 뒤졌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한편 미국의 영상시장 지배에 대한 유럽의 공동대처 또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유럽공동체(EC) 집행위원회는 유럽영화의 부활을 내걸고 시나리오 개발에서부터 영화산업 종사자들의 신기술 교육에 이르기까지 17개 사업으로 구성된 'MEDIA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MEDIA 프로그램은 정치, 언어, 관습의 차이 때문에 분자화 된 유럽의 영상프로그램이 거대한 할리우드와 승산없는 경쟁을 벌여온 결과, 그 기반이 잠식되고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출발했다.16) 할리우드는 1980년 당시 유럽공동체 역내 영상프로그램 수익의 46%를 벌어들였는데, 이 비중은 1991년 69%로 늘어났고, 미국에 이어 세계 제 2위의 영화국가라는 프랑스에서조차 자국영화의 비중이 80년 70%에서 91년 50%로 줄어들었다.17)
유럽 단일시장의 이점을 살려 이러한 위기를 타개한다는 MEDIA 프로그램은 90년 12월 3년간의 실험기간을 거쳐 시작된 5개년 계획으로, 92년 중반까지 9편의 영화가 런던의 시나리오 기금을 통해 MEDIA의 지원을 받아 제작완료 되었고, 91년 말까지 지원이 확정된 극영화는 363편이다.
MEDIA프로그램은 극영화 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까지 포괄하고 있다. 또한 HDTV, 컴퓨터그래픽 등의 새로운 테크놀로지에도 적지 않은 비중을 두고 있어, 2억 5천 6백만 달러의 사업예산 가운데 55%는 영화와 비디오에, 45%는 텔레비전과 뉴테크놀로지에 배분하고 있다.
이러한 MEDIA 프로그램의 추진 외에도 유럽은 정보화사회의 기반조성 및 정보통신부문의 육성을 위해 'ESPRIT', 'EUREKA', 'RACE' 등의 계획을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으며,18) 유럽영화배급소(EFDO), 유럽비디오기금(EVF) 등의 설립을 통해 미국의 시장지배를 극복하고 세계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19)
3> 캐나다
캐나다는 미국과 지리적으로 근접해 있는 이유로 해서 미국의 경제적, 문화적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특히 영상산업은 초창기부터 미국의 기술과 자본이 투입되어 지금까지 미국영화의 가장 주요한 수입국의 하나로 존재하고 있다.
캐나다의 영화제작은 1965년부터 1978년 사이에 활발히 이루어졌으나, 자유무역정책으로 미국의 배급업자들이 캐나다에 들어와서 극장을 점유하기 시작하여, 캐나다의 극장 1,423개중 미국인 소유의 극장체인 Famous Player가 306개 Cineflex 등이 1,117개 극장을 소유하고 있다. 이러한 배급회사들은 캐나다의 극장들을 장악하고 있으며, New York이나 L.A. 본사에서 보낸 영화들을 상영하여 캐나다 영화의 제작이 점점 감소하고 있다.20) 1985년의 경우, 캐나다는 58편의 영화를 제작하였고, 1986년에는 32편에 불과하다. 58편의 제작에서도 미국과 프랑스와의 합작영화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순수한 캐나다적 영화는 10여편에 불과하다.
그러나 85년에 캐나다에 보급된 미국영화는 영어사용지역에 575편의 극영화가, 불어사용지역(퀘백주)에는 901편의 영화가 배급되었으며, 흥행에 있어서도 영어사용지역의 95%, 불어사용지역의 65%를 점유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캐나다의 독립영화업자는 감히 미국영화의 배급망에 경쟁할 수가 없게 되었고, 정부에서는 영화제작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영화개발공사(Telefilm Canada)를 설립하여 시나리오 및 영화제작 지원기금으로 1986년부터 향후 5년간 2백만 달러를 확보하기도 하였다.21)
한편, 캐나다의 극영화 부진은 영상산업 종사자들의 실업률을 높이고 영상산업의 쇠퇴를 초래하였으므로, 계속적인 정책적 입안들이 마련되었다. 197년에 채택된 영화진흥법은 캐나다 영화진흥공가(CFDC)를 발족시키고, 캐나다 영화의 수익배분과 투자, 탁월한 극영화의 선발, 영화제작, 기술인들을 위한 연구기금 지원 등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캐나다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매번 미국 메어저사들의 압력에 의해 캐나다 영상산업의 자생력을 기르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1973년 캐나다 영화인협회(CCFM)는 상영쿼터제와 입장세의 부과를 제안했으나, 미국의 메이저사들의 반대로 무산되었으며, 1974년에는 세금감면정책(CCA)을 실시하였지만, 이 당시 미국이 이와 유사한 정책을 폐지시킴으로써 오히려 미국자본의 유입을 초래하였다.
캐나다 정부는 1985년 영상산업위원회를 조직하여 영상산업의 실태를 조사하고 캐나다 영상산업체가 캐나다 영화, 비디오시장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도록 했다. 이 위원회는 외국기업의 영화, 비디오시장 점유, 영화제작사의 만성적인 자금부족난, 극장소유의 집중현상과 배급, 흥행의 수직적 결합 등을 영상산업 발전의 저해요인으로 지적하고, 자국영상산업의 발전을 위해 캐나다 영화시장을 미국시장으로부터 분리하여 운영하겠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 또한 미국의 MPEAA에 의해 좌절되고 말았다.22)
결국 캐나다는 영상산업의 보호정책에 있어 어떤 강력한 통제보다는 세금감면이나 자본대여 등 경제적인 유도에만 머무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미국과의 무역상대국으로서 미국의 자유무역주의를 존중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을 반영한다고 하겠다.
이상에서는 미국의 영상 프로그램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프랑스, 영국, 캐나다의 상황과 이에 대한 정책에 관해 살펴보았다. 다음 절에서는 이를 참고로 하여 한국의 적절한 대응반안에 대해 논의해보기로 하겠다.
3. 시장개방에 대한 한국의 대처방안
국제화·개방화 시대에 있어 문화의 의미와 역할은 나날이 중요해지고 있다. 실질적 차원에서 보더라도 새로 개발되고 있는 모든 하드웨어들은 이를 사용하게 하는 소프트웨어를 가져야만 상품으로 판매할 수 있고, 이 소프트웨어는 바로 문화예술의 소재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의 비디오산업을 비롯한 영상산업 시장은 앞에서 살펴본 대로, 실질적인 개방이 거의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다가올 뉴미디어 시대나 첨단 영상산업의 부가가치나 중요성을 생각할 때, 개방에 대한 패배주의에 빠지기 보다는 현실적이고 적절한 대응책의 마련이 오히려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아래에서는 먼저 영상산업 전반에 대한 정부의 적절한 정책의 필요성과 비디오산업에 있어서의 개선점을 위주로 대응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1> 영상산업에 대한 정부정책의 수립
할리우드라는 거대한 영상산업의 하부구조(infrastructure)를 가진 미국이 우리의 영상산업시장에 가방압력을 가한 것은 장기적인 전략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표 III-2>에서 보았듯이 한국의 영상시장 규모는 세계 15위권 안에 든다. 최근의 자료에 의하면 8위에 위치한다고 하며, 91년 이후의 성장세를 감안하면 향후 6-7위에 이를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23) 따라서 미국에게 있어서 한국은 황금시장이라고 할 것이다. 93년 가을까지 UIP-CIC를 비롯한 직배사들이 올린 수익이 약 411억 5천만원에 이른다고 하며, 96년부터는 유통시장까지 완전개방이 이루어진다고 한다.24) 이렇게 되면, 영화는 말할 것도 없고, 비디오시장에 미국의 Blockbuster사와 같은 대형 유통업체가 들어와 영세한 한국의 비디오대여점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게 될 것이다. 또한 UR에서 시청각 분야의 협상이 타결된다면, 미국 뿐만 아니라, 항상 한국시장에의 진출을 노리고 있는 일본과 유럽의 영상 소프트웨어가 물밀듯이 밀려올 것이다.25)
이러한 시점에서 최근 정부가 영화, 비디오, 방송 프로그램 등의 영상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해 적극 지원한다는 발표는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적절한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체육부와 상공자원부가 최근 발족시킨 '영상산업 발전민간협의회'를 통해 추진중인 육성대책에 따르면, 그동안 오락서비스 산업으로 분류되어 유흥업 수준의 대접을 받아오던 영상산업이 앞으로는 '제조업 관련 지식 서비스업'으로 명시되어 제조업과 같은 수준의 각종 금융지원과 세금 감면 혜택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26)
정부는 이제껏 영상산업을 육성한다기 보다는 규제해 온 것이 사실이며, 이 때문에 우리 영상산업은 취약한 자본구조와 기술의 낙후를 겪어 왔다. 이에 비해 1994년 정기국회에 상정할 '영상진흥법'에 '영상산업분야에 대한 국가적 진흥선언'의 조항을 넣겠다는 것은 영상상품을 국가전략 상품으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27)
이러한 정부의 조치는 첨단영상매체의 발전속에 문화예술자체가 최대의 산업이 될 것이며, 다양한 세계문화의 교류와 협력 속에 민족문화의 독창성이 새로운 과제로 부상하고 있으므로 국제화 흐름속에 걸맞는 해외 문화전략을 체계적으로 수립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 비디오산업 유통질서의 확립
위에서 살펴본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함께 한국의 비디오산업이 산업적 경쟁력을 가지려면 결국은 유통질서의 확립이라는 문제로 귀착된다고 할 것이다. 일본의 경우 그동안 미국의 할리우드에 소프트웨어 시장을 개방하면서도 견고한 경쟁력을 유지했던 가장 큰 이유는 자국내 유통망을 장악한 탄탄한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아직까지 국내의 비디오 소프트웨어의 유통은 영세한 규모에 머물고 있지만, 유통부문이 최후의 보루라는 새로운 자각이 필요하다. 영화시장의 개방당시 영화인들은 직배영화에 대해 격렬한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비디오의 경우는 매체의 특성상 대여위주로 산업이 전개되어 왔으며, 소규모로 영업을 해왔기 때문에 사회적 이슈가 될만큼 그렇게 큰 반발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비디오 소프트웨어의 판권시장에 있어서는 미국의 메이저사들이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이상 현재로서는 이를 따라잡는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 그렇지만 유통시장만은 아직까지 국내업계가 장악하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현재 복잡하게 얽혀있는 유통시장은 우리의 비디오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부정적인 측면인 동시에, 미국 대형 유통사의 진출을 막아내는 요인도 있다. 최근들어 직판제의 실시 등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기는 하지만, 이와 같은 부실한 유통체계는 외국업자들에게 조그만한 틈을 주게 되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허물어질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28)
소비자에게 직접 전달되는 유통에 있어서 2-3년전부터 꾸준히 나돌았던 Blockbuster의 국내 진출여부는 비디오산업에 있어서 초미의 관심사이다. Blockbuster가 그동안 국내진출을 늦추어왔던 가장 큰 이유는 일본시장에서의 부진 때문이다. 높은 임대료 등 우리시장과 유사한 일본시장에 갓 진출했던 Blockbuster는 의욕적으로 개설한 일본시장 체인점의 경영이 활발하지 않자 우리시장에의 진출을 늦추어왔던 것이다.29)
이에 앞서 우리의 유통시장은 체제를 정비하고 마케팅 전략을 마련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즉 복합적 미디어 산업체제로 전환시켜 영화제작과 배급, 비디오제작과 배급, 케이블 TV와 공중파 방송, 극장체인과 음반제작 등이 함께 고려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멀티미디어 체제를 갖춘 환경속에서 주문형 비디오 방식(Video on Demand)의 채택 등은 좋은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주문형 비디오는 비디오 데이터베이스를 가입자가 검색해 전화선 또는 케이블을 통해 받아 시청하는 뉴미디어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1995년부터 케이블 TV가 본격적으로 실시되므로 홈비디오와 연결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할 것이다.
3> 새로운 마케팅 전략의 수립
또한 최근의 시장확대의 일환으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셀쓰루 마케팅의 개척과 이와 함께 기획물의 제작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셀쓰루의 성공 가능성을 뒷받침해주는 사항으로서는 80%에 달하는 VCR의 보급율, 일본에 비해 소득수준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소비성향은 매우 유사하다는 것,30) 그리고 비디오 대여점간의 과다경쟁으로 인해 폐업 또는 전업하는 곳이 92년을 기점으로 급속히 늘고 있는 현상 등을 들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셀쓰루 시장은 레저, 교양, 스포츠, 오락, 교육만화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점유율은 구매욕구를 충족시키는 다양한 장르의 소프트웨어를 확보하는 것과 완벽하고 신뢰성 있는 시장조사가 선결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기획물 제작에 있어서도 단순한 판매용 비디오로써의 작품이 아니라, 종합영상산업이라는 거시적 안목을 가지고 각 매체에 순차적으로 판권을 판매함으로써 이윤의 극대화를 노릴 수 있는 양질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4> 대기업의 역할 강화
현재 한국의 비디오산업이 대기업 중심으로 개편되고 있으며, 대기업이 사실상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태이므로, 이들의 역할 또한 개방에 맞서 산업적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역할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먼저 대기업들은 수입만을 위주로 이익을 거둬들이는 경영방식에서 탈피하여 여상 소프트웨어의 제작에 지속적인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즉 자체적인 제작시스템 보다는 영상물의 투자자로서 기능하고, 제작은 제작 전문 프로덕션에 일임하여 대기업과 중소 프로덕션이 함께 공존하는 체제를 형성해야 할 것이다. 또한 단기적인 투자와 이익을 계산하는 경영보다는 장기적인 시각으로 영상산업 발전을 위해 투자하며, 이를 통해 국내시장의 확대 및 외국시장의 개척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영상산업에서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투자자본을 통한 확대재생산이다. 이는 투자를 통한 이익이 재투자를 통해 산업발전으로 유도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할리우드의 경우에 있어서도 그토록 엄청난 영상기업지단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투자를 통한 이익의 재투자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비디오산업을 비롯한 영상산업의 개방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 일방적으로 밀리면 침해받는 것이고 협력과 주체성을 살려 대응하면 국제협력과 상호교류가 된다. 개방압력이 더욱 가속화되는 시점에서 무엇보다도 국내 영상산업의 육성과 산업적 자생력의 강화, 문화적 정체성의 보존을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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