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타이포그래피의 개념

타이포그래피(Typography)라는 말은 원래 활자를 이용해서 인쇄하는 활판인쇄술을 뜻하는 말이었으나 인쇄술과 전달매체의 발달에 따라 그 개념이 확장되어 활판인쇄술이라는 좁은 의미에서 벗어나 메시지 전달을 위한 활자 사용의 모든 영역을 의미하게 되었다.

문자 생성이후,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와 정보 교환이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가속화되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다양한 사회 구조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보다 많은 정보를 효과적이고 기능적이며, 심미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자 문자 자체의 조형적 변화가 발전되었고, 문자를 이용한 새로운 조작행위의 가능성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산업혁명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가속화된 기술의 혁신으로 발전된 인쇄 기술과 자형 개발을 위한 시스템의 진보, 그리고 복잡하고 다양해진 산업사회구조의 시대적 요구에 따른 타이포그래피 수용 영역의 확대는 타이포그래피의 영역을 조형적 표현에 이르기까지 확대시켜 놓았다.

2-2 타이포그래피의 전달기능

타이포그래피의 전달기능에는 객관적 내용을 전달하는 언어적 기능과 의미를 파악하기에 앞서 시각적 형태로 보여지는 조형적 기능이 있다.

2-2-1 언어적 기능

문자체, 문자크기 등 문자적인 것만을 선정해서 레이아웃(Lay-out)하여 수용자에게 문자적 의미로 표현된 것만을 전달하는 것이다.

문자를 구상적이고 구체적인 형태를 통하여 표현함으로써, 누구에게나 공통된 지각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때문에 언어적 전달은 보편적이고 객관적이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의미를 갖게 되며 또한 그러한 면들이 요구되어진다. 언어적 기능에 의한 타이포그래피 표현은 바우하우스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타이포그래피 작품 속에 나타난다.

2-2-2 조형적 기능

문자에 전달자의 주관적인 감정을 동반하는 표현 방법으로써 문자를 의사전달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시각 요소로 취급해 조형적인 작품을 만들어가는 방법이다.

정형적인 활자에 의한 표현보다 자연스러운 붓 터치에 의한 것, 문자를 생략, 축소, 확대하고 이에 회화적이거나 일러스트레이션적인 시각 효과를 표현하는 등 디자이너의 개성 표현에 따라 많은 다양한 표현들이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완성된 작품의 형태를 보면 추상적이거나 비구상적인 표현을 취하기도 한다. 이때 받아들이는 수용자는 언어적 전달에서는 공통된 지각반응을 느낄 수 있으나 조형적 전달에서는 다양한 지각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왜냐하면 수용자 감성에 따른 다양한 해석과 수용 의미가 무한하기 때문에 발신자의 표현의도를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오감(五感)중 시각을 통하여 들어오는 정보가 8할 이상을 차지하게 되므로 결국 수용자의 시각을 통한 전달은 보다 강한 전달력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문자의 경우 이해하기 쉽고 완벽한 상징체계에 의한 조형적 전달일 경우에는 언어적 전달보다 더 높은 지각반응을 보일 수 있다. 이러한 조형적 전달은 20세기초 미래파에 의해 적극적으로 사용되어 졌으며 오늘날에도 많은 시도들이 이루어지는 부분이다.

타이포그래피 표현면에서 볼 때 서구의 타이포그래피에서는 명쾌함과 질서 위주의 방향 및 생동감과 역동성 방향의 대조적인 두 방향이 있었다.¹⁾ 명쾌함과 질서의 방향이란 전달내용을 객관적 관점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언어적 전달 방법에서 나타난 결과이며, 생동감과 역동성의 방향은 주관적 관점에서 조형적 표현으로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조형적 전달방법에서 나온 결과이다.

1900년대 초반에 시작된 미래파와 다다이스트들 그리고 러시아 구성주의자들로 이어지는 서구의 모던 타이포그래피 운동과 1980년대 이후의 포스트 모더니즘 경향은 대표적인 생동감 및 역동성의 방향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데스틸과 바우하우스 운동 및 얀치홀트 등에 의해 발전되어 온 기하학적, 기능적 질서의 방법은 그리드 시스템을 활용하는 명쾌한 스위스 스타일 혹은 인터내셔널 스타일이라 불리는 질서정연한 방법으로 완성되었는데 이는 명쾌하고 질서있는 방향의 대표적인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경우 명쾌함, 질서위주의 언어적 전달방법이 보편적인 공감을 받아 왔다. 그러나 책표지나 포스터 등 주로 보여주기 위한 매체에서는 특히 생동감과 역동성의 표현을 필요로 한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조형적 전달방법을 시도한 미래파, 다다, 구성주의 및 포스트 모더니즘을 살펴봄으로써 문자의 조형적 기능으로써의 생동감과 역동성의 표현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① 미래파

현대 타이포그래피는 한 사람이나 한 그룹의 갑작스러운 발명품이 아니었다. 19세기가 포기했던 새로운 수요와 새로운 기회들에 반응함으로써 20세기초에 갑자기 나타났다. 그것은 또한 낡아빠진 인습이나 고도 산업화 사회와 관련 없는 도전적인 태도들을 예술과 디자인의 새로운 개념으로 쓸어 없애는 힘을 갖고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현대 타이포그래피의 뿌리는 20세기의 회화, 시, 건축의 뿌리와 함께 뒤섞여서 시작되었다. 사진, 인쇄술의 변화, 새로운 복제기술, 사회적 변화, 새로운 철학적 태도 등이 타이포그래피로 하여금 언어적이거나 순수한 글줄 위주에서 보다 더 시각적이 되도록 북돋아 주었다.

1909년 이탈리아의 시인 마리네티(Filippo Marinetti)의 「선언문(宣言文)」과 함께 시작되는 미래주의는 전위예술의 성격으로 예술은 물론 정치, 사회의 모든 제도와 기존의 이념까지도 개혁하려는 반(反)전통적인 운동이다. 그것은 급격히 변하는 사회 속에서 인간의 참모습을 회복시키고 침체된 이탈리아를 새로운 형태로 올려 놓으려는 국민정신 운동에 기저를 두고 있다.

자연만이 인간생활과 사고의 근본이 될 수는 없으며, 현대가 변천함에 따라 기계, 과학과 같은 산업사회의 산물들이 인간의 사고에 작용한다는 것을 강하게 의식하면서부터 미래주의는 시작된다. 기계문명이 미술에 미친 영향은 20세기 미래의 커다란 변화이고 이러한 주제에 대한 표현방법으로 미래주의자들의 관심을 끌게 되는 것이 우주의 역동(力動), 즉 다이나미즘(Dynamism)이다.

미래파 화가들은 타이포그래피가 구체적이고 표현적인 시각 형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문자들은 시각 디자인, 형상, 또는 그림문자들을 형성하도록 배열하였다. 크기와 굵기가 서로 다른 활자를 사용함으로써 타이포그래피의 역동성을 나타내어 율동감을 느낄 수 있게 하였으며, 각 단어들의 배치 및 활자의 무게가 청각적 효과를 나타내어 음악적인 리듬감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마리네티는 「떠들석한 모임」 (그림1)에서 단어들의 과장된 표현과 Weight의 혼합으로 청각적 효과를 나타내고 있으며 화면에 리듬감을 나타내었다. 이러한 타이포그래피를 조형요소로 이용하는 것은 현대 디자인에 있어서 필수적인 작업이며, 여러 디자인에 이용되고 있다.

또한 그의 작품 「산 + 꼴짜기 + 거리 x 조프르」 (그림2)에서는 현대 생활에 대한 지각과 경험의 동시성을 전달하려고 하고 있으며, 전통적인 문장 구조, 문법, 구두점 등은 무시되었다.

미래주의의 또 다른 작가 아르뎅고 소피치(Ardengo Soffici)는 「Bifszf+ 18 Simultaneita Chimismi Iirici」 (그림3)에서 간결한 시를 순수한 시각의 형태로 사용된 많은 글자체들과 대조시키고 있으며, 비스듬한 괘선들은 각 단위들을 연결시키고 각 페이지마다 리듬을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미래주의의 타이포그래피는 다다이스트, 구성주의 화가, 데 스틸 등

에 영향을 주어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었으며 현대 디자인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② 다다

미래파 선언 속에서 강조한 '혁명'을 초래했던 제 1차 세계대전은 미래파 자신의 희망마저도 초월한 가공할 만한 규모였다. 전쟁에 의한 개인주의적 문화의 붕괴를 체험한 청년층들은 전쟁에 대한 환멸과 수백만이 학살되는 유럽전장으로부터 새로운 다다이즘(Dadaism) 운동을 1916년 쥬리히에서 시작하였다. 스위스에 망명한 반전적 지식인들이 시작한 이 운동의 경향은 부정적이었다. 이 운동의 선구자들은 한스 아르프(Hans Arp), 위고 볼(Hugo ball) 그리고 트리스탄 짜라(Tristan Tzara)등이었다. 다다이스트들은 1차 세계대전을 이끌어 낸 어리석음, 부패위축에 반항하고 예술과 인간의 가치를 높게 올렸다. 그들은 파탄한 사회의 가치를 비꼬아 작품 속에 표현하였고 그러한 가치의 모순을 표현하기 위해 비웃음과 충격의 무기를 사용했다. 이 세상의 어리석음을 빈정거리기 위해 입체파(Cubism)의 꼴라쥬 기법을 이용하였다.

다다이즘은 어떤 새로운 양식의 창조보다는 시각적인 예술의 모든 규칙을 깨뜨리고 새로운 것을 부활시키려는 것에 기초를 두었다. 만일 입체파가 전통적인 인습을 흔들어 놓았다면, 다다이즘은 이상적인 표현의 기본적인 것을 흔들어 놓았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예술과 전통을 부인함으로 해서 미래주의의 시각적 표현수단을 더욱 다양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 계획과 무의식적인 우연적 행위를 결합함으로써 꼴라쥬 기법과 포토 몽타쥬 기법 등 풍부한 연상을 유도하여 시각전달 기능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³⁾

특히 다다이스트들의 작품들 중에서 존 하트필드(John Heartfield)가 디자인한 '신청년(Neue Jugend)을 위한 입문서'(그림6)는 현대 타이포그래피 분야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전통적인 조판 방법으로부터 벗어난 활자의 크기 변화나 사진의 활용 등 현대 타이포그래피의 전형적인 특성이 발견된다.

③ 구성주의

구성주의(Constructivism)는 1917년 혁명과 함께 러시아에서 일어났다. 개인주의적이고 실용성이 없는 예술을 부정하고 산업주의와 집단주의에 입각하여 예술과 산업의 일체를 주장하는 이 운동은 새로운 사회건설을 예술로 실현하고자 하였으며, 그 활동범위로 건축, 영화, 조각, 회화, 디자인 등 전분야에 걸쳐 전개되었다.

이 운동의 중심적 인물은 블라디미르 타틀린(Vladimir Tatlin), 알렉산더 로첸코(Alexander Rodchenko), 특히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 큰 영향을 준 엘라쟈르 마르코비치 리시츠키(El Lazar Markovich Lissitzky) 등이며, 후에 모홀로나기(Moholy Nagy)도 참가했다.

구성주의 이론은 이전까지 존재해왔던 구성의 원리를 재발견하고 구성의 찬미로부터 출발하였다. 이러한 구성 미학의 성립은 물(物)의 개념을 유발시켰고 기능, 구조, 형태라는 새로운 형상성(形象性) 확립을 시도했다.⁴⁾

구성주의에 입각한 대표적인 실험적 타이포그래퍼로는 엘 라쟈르 마르코비치 리시츠키를 들 수 있다. 그의 예술은 건축의 수학적, 구조적 성질을 기초로 성립되며, 그는 현대회화의 개념들을 디자인에 적용하는 방법을 제시하여 주었던 「프로운스」(Prouns)⁵⁾라 칭한 회화의 양식을 개발하기도 했다.

리시츠키는 「베쉬취(Veshch)」지의 표지 도안(그림7)에서 비대칭적 균형을 가진 동적인 축(Axis) 위에 구성하고, 도형(Figure)과 바탕(Ground)의 발전을 통한 일루전(Illusion)을 구축함으로써, 최소의 구성요소로써 폭넓은 화면구성의 가능성을 제시하였고, 1923년 「소리를 위하여」라는 마야코프스키의 책 페이지 레이아웃(Page Layout)(그림8)에서도 기하학적 구성으로 중첩에 의한 「깊이 착시」를 통한 3차원을 지각하게 하며, 지기구조의 실험적 형식(Format;책의 좌우면의 기능적 절단형) 등도 개발하였다.

구성주의자들은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여러가지 실험, 불규칙한 배열, 각 요소들의 시각적 관계 및 대비, 바탕과 형태와의 관계, 색 겹치기, 타이포그래피와 사진과의 결합 등 자유로운 타이포그래피의 실험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와 같이 러시아에서 출발한 구성주의는 서구 여러 나라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데 스틸, 바우하우스 등 현대 디자인의 기초적 이론을 형성하고 있다.

④ 포스트 모더니즘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1960년이후 모더니즘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문화적 사조로서 현재 진행 중인 운동이기에 그 개념을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개되어온 포스트 모더니즘의 배경을 살펴보면, 포스트 모더니즘은 근대 디자인에 의해 야기된 인공 환경의 시각적 무질서, 기계론적 미학에 의한 형태의 단조로움과 의미의 결여, 과거와의 단절로 인한 상징성 상실 등 제반 문제에 대한 해결을 시도하였다. 그것은 보다 포괄적이고 휴머니즘적인 접근을 통하여 변모해가는 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기능주의(Functionalism)와 국제주의적 양식(International Style)이 강요해 온 엄격한 원리에서 벗어나 아카데미의 고급예술(High Art)과 토착 및 대중문화의 저급예술(Low Art)간의 경계를 제거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특성은 첫째, 다원주의적 성격이다. 하나의 지배적인 양식이 아니라 여러 양식들이 같이 병존하는 다원주의적 의미를 띤다. 이러한 다원주의는 모더니즘이 우리 인식의 테두리를 한계 짓는 데에 비해 의식의 다변화와 예술의 자율성을 마음껏 향유하게 하였다.

둘째, 지방주의의 정립 및 확산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탈 미국적 미술 동향과 신민족주의 태동으로 각 지역의 자국적 문화풍토에 깊은 자극과 공감의 발판을 갖고 시작되었으며 각 지역의 특수한 문화 전통에 대한 깊은 자각과 공감이 접목되었다.

셋째, 역사적 절충주의로서 모더니즘에서 무시되어온 형태와 그 형태가 지닌 의미의 회복을 위하여 역사적, 전통적 요소를 인용하여 디자인에 적용시키고, 의미전달의 모체로서 장식적 요소와 역사적 요소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타이포그래피에서 이러한 포스트 모더니즘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 스위스의 디자이너인 볼프강 바인가르트(Wolfgang Weingart)가 스위스 학파, 즉 국제적 스타일(Swiss Style 또는 International Style)의 디자인을 만든 바젤(Basel) 타이포그래피에서의 규칙성과 명료성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형태의 타이포그래피, 계단 선, 넓은 자간, 여러 굵기의 글자체를 함께 사용하는 것을 내세우면서부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