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서 공부한 많은 디자이너들이 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미국으로 돌아와서 그들 나름의 새로운 방향으로 접근했는데, 에이프릴 그레이만(April Greiman)과 같은 디자이너는 새로운 시각과 컴퓨터라는 새로운 도구를 사용하여 기능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디자인을 모색하였다. 장난기가 가미된 상업적이면서도 고도의 기술문화를 반영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디자인은 역사와 새로운 기술을 합하여 모든 이들에게 어필될 수 있도록 건축에서부터 제품, 타이포그래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타이포그래피에 있어서의 시각적 특징은 불규칙한 자간, 과거 미술사 및 디자인사의 인용, 파스텔조의 온화한 색의 조화, 여러 겹으로 나타나는 이미지, 기하학적이면서도 운동감이 많은 형태, 톱니 모양의 선, 간간이 보여지는 스크린 패턴과 선 등이다.⁶⁾

2-3. 타이포그래피의 표현방법

문자의 형태가 의사 소통을 위해 사람들 사이에 약속되어 사용되는 그림의 추상 표현이라고 한다면, 그 목적을 위하여 우선적으로 빨리, 쉽게 읽혀야 한다. 이것은 문자가 만들어진 이후 문자의 기본적인 역할이다. 또한 문자는 읽혀지고 동시에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전달자는 문자의 의미와 타이포그래피의 형태적 문제를 모두 고려해서 표현하여야 한다. 간단히 생각해도 어느 한 단어를 강조하는 방법은 그 문자의 색을 달리 해 주는 것만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듯이 그 형태의 문제 해결은 더욱더 다양하다. 타이포그래피의 표현방법에 있어서의 형태란 낱개의 문자 자체가 나타내는 외관상의 형태가 아닌 지면 구성에 있어 타이포그래피가 만들어 내는 시각적인 형태이다. 그 형태가 원이냐 삼각형이냐 하는 문제에 앞서 더욱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은 그러한 외관을 갖게 되는 동기와 이유를 찾아 컨셉의 설정과 이에 따른 적절한 레이아웃의 발상에 적용하는 것이며, 이것은 최종적으로 마무리지어지는 디자인이 객관성과 설득력을 갖게 하는 방법이다.

2-3-1 이미지(일러스트레이션이나 사진)와의 조화

지면에 놓인 이미지에서 특징적인 선이나 형태를 추출하여 비슷한 느낌을 줄 수 있는 형태로 타이포그래피를 배열하여 중복, 반복 효과를 주는 방법이다. 물론 글자체도 그 이미지와 어울릴 수 있는 서체를 선택해야 하는데, 여기서의 '조화'는 '대비'라는 내용도 포함한다. 넓은 의미에서 '조화'란 '대비'를 포함하는 말이며, '대비' 또한 마찬가지이다. 너무 똑같은 형태의 반복은 지루함을 줄 수 있는데, 그 해결점은 형태의 변환(반전 이미지, 거울 이미지 또는 크기의 변화 등), 타이포그래픽 엘리먼트, 색상, 또는 새로운 요소의 첨가에서 찾을 수 있다.

2-3-2 내용과의 조화

타이포그래퍼의 임무는 수용자가 어떤 특수한 형태(글자체)를 가진 글을 기능적으로 인지하도록 (읽기 쉽고 보기 좋게) 만들어 주는 것이며, 그렇게 하기 위해 적절한 글자의 형태를 찾아야 하고 그 글자로 그 글의 의미를 나타낼 수 있는 배열, 구성 방법을 찾아야 한다. 즉 글자체의 크기, 다른 캐릭터와의 조화, 자간과 행간의 변화, 글자의 배열, 글자의 생략, 중복, 고의로 흐리게 하거나 중복 인쇄하는 등 여러 가지로 표현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만일 시각적인 충격을 주기 위해 글자를 찌그러뜨려 사용하였는데 가독성이 떨어진다면 같은 배열의 평범한 글자를 반복시켜 표현할 수도 있다. 그리고 글자를 곡선으로 배열하여 리듬감이나 운동감을 줄 수도 있으며, 다른 굵기, 다른 크기의 글자를 사용하여 지면을 다양한 톤으로 보이게 하거나 여백을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써 같은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낱 글자의 굵기와 크기의 차이에 의하여 글자로 채워진 면의 톤의 변화를 줄 수 있으며, 이 효과를 이미지와 결부시켜 색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 같은 물건이 세워져 있는 그림이라고 해도 그것이 부드러운 솜덩어리인 것과 딱딱한 벽돌인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즉, 부드러운 물건은 가는 세리프가 있는 글자로 표현될 수 있으며, 그 글자들로 구성되는 면 자체도 그 느낌을 그대로 지닐 수 있다.

2-3-3 그리드의 사용

오늘날 디자인에서 바우하우스 시대의 디자인과 흡사한 요소, 즉 어떠한 일정한 틀에 맞추어진 질서정연한 레이아웃을 볼 수 있는 것은 단지 영향을 받은 것이지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철칙이 여기에 있기 때문은 아니다.

그러나 그 지면이 대칭적이든 비대칭적이든 문장의 조직화는 읽는 이의 눈의 흐름을 도와 준다. 규칙적인 배열과 여백까지도 타이포그래픽 엘리먼트로 사용하여 모든 요소들을 명료하게 통합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례와 질서에 초점을 둔 구성 방식은 어떠한 시대에 국한된 스타일이 아닌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에 많은 비중을 둔 컨셉에서 발상될 수 있는 하나의 표현 방법이다. 즉, 각 문자들은 선입관의 틀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방향으로 유도해서는 안되며, 단지 시각적인 효과를 고려한 상태에서 신축성 있고 가변적으로 구성되어야 신선한 타이포그래피의 새로운 언어를 만들 수 있다.

2-3-4 장식용

1890년경에서 1910년경에 이르는 시대의 아티스트들은 그들의 그림이나 드로잉을 선적인 장식으로 채우는데 초점을 맞추었는데, 이러한 흐름은 건축, 제품 디자인, 유리 공예, 텍스타일, 포스터 디자인, 책 제본, 그리고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에도 침투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곡선이 장식의 대표적 요소로 꼽혔던 로맨틱한 바로크 스타일의 재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레이스를 짠 것 같은 꽃의 형태가 대중화되었던 아르누보 시대의 대표적 작품으로는 코카 콜라사와 제네럴 일렉트릭사의 로고와 앙리 반 데 벨드의 그래픽 작품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장식적 세리프를 가진 글자체를 만들고, 그 글자체를 사용한 페이지가 장식적이라는 이야기는 아르누보 시대의 그래픽으로 마무리지어질 수 있다. '장식용 타이포그래피'란 가독성은 무시된 채 단지 지면을 돋보이도록 하는 요소로 글자를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글자가 연속 무늬화되어 패턴으로 사용될 수 있으며, 아주 작은 크기로 또는 매우 확대된 크기로 사용됨으로써 글자라는 개념보다 형태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글자는 읽기에 적당하고 편한 크기와 배열일 때는 문자로 인지되나 그 범위를 벗어나 거울에 비친 상이나 거꾸로 놓여진 글자. 또는 보통 쓰지 않는 방향으로의 배열이나 매우 생소한 외국어는 다만 형태로 지각되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역으로 응용할 수 있다. 즉, 각 글자를 이루는 특징적인 형태나 선을 추출하여 확대하여 사용할 수 있으며, 아주 축소된 글자를 점의 형태로, 또는 축소된 글자의 나열을 선의 형태 등으로 디자인의 필요에 따라 응용할 수 있다.

2-3-5 흥미유발

재미를 느끼게 하는 디자인이냐 아니냐는 그 디자인을 보는 사람들의 언어, 문화 환경, 유머 감각 등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이는 모든 사람이 보고 충분히 지각할 수 있는 형태나 무심히 또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요소, 즉 그 글자가 나타내는 의미를 추출하여 시각화시킴으로써 오히려 충격이 강한 디자인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1960년대 허브 루발린은 단어들을 그 뜻에 해당하는 그림과 함께 사용하여 표현하거나 그 뜻을 다양한 글자의 형태로 나타내는 '말하는 글자'를 시도하여 타이포그래피의 새로운 표현 방법을 만들었다. 물론 그의 타이포그래픽 접근 방법은 디자인에 '흥미'라는 요소를 가미한 것이지만 '흥미 유발'을 위한 발상은 '글자의 그림화' 차원을 넘어서 이미지와 글자의 혼용, 그림글자 디자인, 불규칙한 레이아웃, 여러 뜻을 가진 단어나 발음상 달라지는 단어의 시각적 표현 등으로 얻어질 수 있다.

이 방법은 '기능성' 위주의 다자인에 지루함을 느낀 사람들에게 색다른 감정을 줄 수 있으며, 어쩌면 모든 사람이 느끼고 알고 있는 것을 과장없이 그대로 보여주는 아이디어 접근법이다. 아직도 많은 디자이너들은 발상단계에 있어 이 부분을 머리로 생각하고 이것을 극도로 추상화시키는 것에 많은 시간을 쓰고 있으나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표현이 오히려 보는 사람에게 여유와 친근감을 줄 수 있다.

2-3-6 과거의 미술(또는 디자인)작품 인용

이것은 대개 독자의 관심, 또는 시선을 쉽게 집중시키기 위하여 과거의 화가나 디자이너들이 표현한 방식이나 작품 자체를 인용하는 방법인데, 전체적인 레이아읏은 그대로 모방한 채 문장의 내용만을 바꾸거나 글자체에 변화를 줄 수도 있으며 또는 전체적인 느낌만을 빌릴 수도 있다. 이는 과거의 성공 사례를 안심하고 재사용한다는 측면이기는 하지만 그 작품의 인지도에서 오는 친밀감 때문에 독자에게 쉽게 어필할 수 있다.

2-3-7 실험적 구성

이전까지의 규칙이나 원리를 의식적으로 벗어나 과거의 것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형태의 타이포그래피, 넓은 자간, 불규칙한 글자체의 사용, 지면의 다층화 효과를 주는 방법 등으로 활자를 언어 전달의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고 새로운 실험적 시각 전달 재료로 사용한다. 이는 컴퓨터라는 새로운 도구의 등장으로 더욱 활성화되고 있는데 이것은 디자인의 개념을 떠나 활자를 재료로 하는 추상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⁷⁾

이것의 시초라 하면 필리포 마리네트(Filippo Marinetti)의 '떠들썩한 모임(Tumultuous Meeting)'이나 '자유에 이르는 낱말들(Les mots en liberte)' 등을 들 수 있는데, 여기서는 기능적인 타이포그래피의 역할은 무시하고 다만 시각적으로 그 분위기만을 느낄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로베르 마셍(Robert Massin)은 활자와 사진 이미지를 결합하여 읽고 보는 타이포그래피에서 탈피하여 말하고 듣는 새로운 타이포그래피를 시도하였다.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