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치사회화의 개념

A. 정치사회화의 개념

사회화란 어느 사회에 소속된 개인들이 그 사회의 가치와 신념, 관점, 지식, 규범, 그리고 선호, 즉 그 사회의 문화를 후천적으로 습득하게 되는 사회적 과정을 말한다.¹²⁾ 정치사회화는 넓은 의미의 사회화현상 중의 한 특수형으로서 모든 사회성원은 정치사회화의 과정을 통하여 정치적 가치체계와 태도, 행동 등을 습득하게 된다.

정치사회화의 개념은 여러 학자들에 의하여 그들의 연구입장과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들을 몇가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59년 「정치사회화」(Political Socialization)라는 저술에서 정치사회화의 개념을 창시한 Herbert Hyman은 정치사회화란 "여러가지 사회적 기관을 통해서 개인의 사회적 위치(societal position)에 알맞은 사회유형(social pattern)을 익히는 과정"¹³⁾ 이라고 말하고 있다. Fred I. Greenstein은 정치사회화는 "좁은 의미로는 공식적인 책임을 가진 매개체가 정치지식, 가치, 기술 등을 주입하는 것을 말하며, 넓은 의미로는 공식적, 비공식적, 의도적, 비의도적으로 삶의 모든 단계에서 정치적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정치적 학습을 포함하는 개념"¹⁴⁾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Kennneth P. Langton은 정치사회화를 "사회의 여러가지 매개체를 통하여 개인이 정치에 관련이 있는 태도성향과 행동유형을 배우는 과정"¹⁵⁾ 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그런 매개체 가운데에는, 가족, 동료집단, 학교, 성인단체, 매스 미디어등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정치사회화에 대한 정의에서와 같이 모든 사회조직은 정치사회화를 담당하며 삶의 어느 단계에서나 정치사회화는 가능 하다는 것이다.

또한 Richard E. Dawson과 Kenneth Prewitt는 정치사회화를 "개인이 그의 특수한 정치정향(political orientation), 즉 정치세계에 관한 지식, 느낌, 그리고 평가를 습득하는 단순한 과정"¹⁶⁾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Byron G. Massialas는 "개인이 정치체계의 규범과 가치를 내면화 하는 과정, 또는 정치적, 사회적 가치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승되는 과정"¹⁷⁾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정치사회화는 일정한 사회내에서의 지배적인 정치규범과 가치에 의해 움직이는 정치체제에 순응하도록 개인을 형성하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 또한 커뮤니케이션 연구자들인 Charles K. Atkin과 Walter Gantz는 "정치적 환경에 관계되는 인식, 태도 그리고 형태들을 습득해가는 발전과정"¹⁸⁾이 정치사회화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정치사회화의 개념은 사회화가 퍼스낼리티(personality)의 발달과 문화의 전수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처럼 개인적 학습과정이라는 개인수준과 문화전수라는 체계수준의 두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치사회화를 개인의 발달과정으로 보고 '정치적 자아'를 분석하고자 한 개인수준에서의 정의와 정치체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으로서 개인의 정치성향의 심원을 분석하고자 하는 체계수준으로서의 정의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동일현상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개인적, 체계적 수준의 정의와는 달리 R. Miliband는 정치사회화를 자본주의사회의 현존제도를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한 '집단적인 교화의 과정'이라는 마르크스적인 독특한 시각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¹⁹⁾ Greenstein은 정치사회화를 '정치문화의 전수과정'으로 정의하는 연구는 정치체계의 패턴유지의 과정을 설명하는데는 유용하나, 변화의 과정을 적절하게 선명하지 못하며 따라서 정치사회화를 체계유지의 기능적 조건으로 밖에 파악하지 못하는 보수적 편견을 피할 수 없게 된다고 비판하고 있다.²⁰⁾

정치사회화의 개념은 여러 학자마다 강조하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다소 차이는 있으나 정치와 관련이 있는 사회적 행위, 즉 정치적 행위의 여러국면을 포함하고 있다고 넓게 해석할 수 있다. Gabriel A. Almond는 정치사회화를 정치문화에로의 유입과정으로 보고, 그 최종산물을 정치체제, 체제의 역할 그리고 역할책임자들에 대한 태도, 인지, 가치기준, 느낌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정치체제에 대한 요구로서 투입과 권위적인 산출에 대한 지식, 가치, 느낌을 포함한다는 것이다.²¹⁾ 이와같이 정치사회화의 최종산출은 정치적 행동이며 사회화의 발전적 성격을 감안한다면 투입으로부터 산출까지의 과정에는 많은 절차와 변인들이 있으며 그 변인들은 상호작용적이다. 정치사회화과정에서의 변인들을 그림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²²⁾

이러한 정치사회화과정에서 형성되는 정치적 태도는 정치정보, 인지능력 및 가치의 함수로 볼 수 있으며, 정치사회화의 최종산물인 정치적 행동은 정치적 행동선택에 대한 손익판단과 정치적 태도와의 함수관계에 있다고 본다. 또한 인지능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정치에 대한 관심도라고 할 수 있다.²³⁾

본 연구에서는 정치사회화의 개념을 '정치세계에 대한 인식, 감정, 태도 등의 정치정향을 여러 정치사회화의 매개체를 통하여 습득함으로써 정치적 행위에까지 이르는 발전적 과정"이라 규정한다.

B. 정치사회화의 이론

정치사회화는 상당히 오랜 시간을 걸쳐서 일어나는 연속적인 과정으로서 이것을 분석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정치사회화의 과정에 대한 접근방법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차원이 있는데 그것은 체계수준(System-level) 또는 거시적 수준(macro-level)의 영향과 개인적 수준(Individual-level) 또는 미시적 수준(micro-level)의 영향에 대한 것이다.²⁴⁾ David Easton과 Jack Dennis는 체계존속이론(systems persistence theory)이라고 하는 거시적 수준의 접근방법을 제시하면서 정치체계의 운영과 사회화현상과의 관련성을 논증할 수 있는 거시적 수준의 이론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²⁵⁾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연구의 목적상 개인이 정치 사회화되는 과정을 밝히기 위한 미시적 수준의 이론을 고찰하도록 하겠다.

정치사회화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개인의 정치정향에 관한 이론으로는 정신 역학적 이론(psychodynamic theories)과 사회적 학습이론(social learning theories), 인지적 발달이론(cognitive-developmental theories)이 있다.²⁶⁾

매스 미디어를 통한 사회화현상은 전통적 사회화이론인 정신분석이론(psycho analystic theories)와 강화학습이론(reinforcement theories)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 두 이론들은 직접적인 상호작용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매스 미디어를 통한 학습과정에서는 그러한 직접적인 상호작용이 없기 때문이다.²⁷⁾ 스키너장치(Skinner box)에서나 있음직한 "보상"이나 "계기"등과 같은 상호작용이 포함되지 않은 범주에서 사회화의 주체를 지나치게 수동적으로 파악한 강화학습이론에 근거한 과거의 사회화 연구들은 부모의 태도행위와 아동의 반응간의 과정을 단순한 "선행-결과"관계의 측면에서 연구될 수 있다고 가정하였다. 즉 개인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주도하여 그에 따른 학습경험을 축적해 나가는 주체적인 인간이 아니라 외적 환경과 자신의 심리적 충동에서 오는 자극에 대해 반응을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다루어지는 것이다.²⁸⁾

Sigmund Freud의 정신분석적 개념에 의하여 영향을 받은 정신역학적 접근 방법은 개인에게 내면화되어 있는 성숙의 단계에 강조점을 둔다. 유아기나 아동기의 매우 이른 경험은 대단히 강력한 것으로 개인의 내적 요구와 인생역학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이다.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방법을 통해 일찍 형성된 내적 요구가 어떻게 아동이 또는 후에 성인으로 객관적인 사건이나 다른 자극에 반응할 것인가를 결정한다.²⁹⁾ 이 이론은 특수한 태도, 정향 그리고 행동의 형성을 내적요구에 대한 반응으로 본다.

새로운 과점에서 사회화현상을 설명하는 사회학습이론과 인지발달이론은 매스 미디어에 의한 사회화의 중요한 이론으로 간주된다.³⁰⁾

A. Bandura의 사회학습이론은 전통적 학습이론에서 탈피하여 자극과 반응의 사이에서 인지적 정보처리과정(cognitive process)을 삽입하였다.³¹⁾ 이 이론은 개인이 환경으로 부터 얻은 자극을 강조하고 특수한 태도의 형성을 환경속에서의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본다. 개인이 환경으로부터 받은 메시지는 그의 태도를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소인 것이다.³²⁾

사회학습이론이 비교적 간단한 인지과정을 중개변인으로 본데 비해 인지발달이론은 중개과정인 인지분석처리 자체가 개개인의 인지발달에 따라 단계적으로 변화한다는데 초점을 둔다. 정치사회화연구에서 중요한 공헌을 한 Jean Piaget등의 인지발달이론은 아동들의 지적 성장을 인지적 발달의 일련의 단계를 거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³³⁾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아동의 정치관은 그들의 정신적 능력이 발전하면서 형성된다. 환경과 개인의 능력발전 사이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이 이론은 연구자로 하여금 아동의 상이한 지각적, 개념적 능력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과 아동을 사회화과정에서 능동적인 존재로 파악해야 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해 준다.³⁴⁾ 물론 인지발달이론은 나이에 따른 인지발달을 고려하여 청소년기까지의 발달과정이 초점이 되고 있으나 사회학습이론은 사실상 어린이들 뿐만 아니라 성인들의 사회화과정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이와같이 두 이론은 상호보충적 요소가 많아 함께 통합해서 쓰이기도 한다.³⁵⁾

미시적 수준의 고찰은 정치사회화 연구에서 가장 발전된 분야이다. 정치사회화 연구의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개인의 정치적인 지식과 신념의 원천을 연구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경주해 왔다. 정치사회화의 개념적 모형과 공식을 Greenstein은 H. Lasswell의 커뮤니케이션 도식을 원용하여 다음과 같이 종합 정리하였다.³⁶⁾ ①who, ②learns what, ③from whom, ④under what circumstances, ⑤with what effects? 그런데 "누가, 무엇을, 누구로부터"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학습의 결과는 사회화되는 개인의 사회심리적 특성, 즉 개성과, 사회경제적 지위, 그리고 사회화시키는 매개체의 학습내용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해서 정치사회화에 관한 일련의 연구들이 사회화의 매개체에 많은 중점을 두고 있음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의 중요성에 비추어 이것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아직까지 일관성 있는 결론을 도출해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즉 어떤 연구에서는 정치사회화의 지배적인 매개체를 부모 또는 가족이라 밝히는가 하면 또 다른 연구에서는 학교 혹은 친구들을 가장 주목할만한 것으로 조망하는 등, 많은 혼란을 거듭해 온 것이다. 그리고 또한 최근에는 정치사회화에 대한 매스 미디어의 영향력에 대한 인식이 증대되고 있다.

2. 매스 미디어와 정치사회화

A. 일차집단과 정치사회화

Max Weber는 비공식적 일차집단(informal primary group)이 새로이 대두하는 산업사회에서는 해체되지 않을 수 없다고 전망했고, 마르크스주의자(Maoist)들은 가족과 같은 일차집단의 해체를 공산주의사회의 건설을 위해 바람직한 현상으로 찬양했다. 그 뿐 아니라 산업화가 초래한 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개탄한 대중 사회론자들까지도 산업화의 충격으로 일차집단은 불가피하게 와해된다고 보았다.³⁷⁾ 그러나 1940년 P. F. Lazarsfeld등의 일차집단의 재발견 이후, 산업사회에서도 일차집단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대인접촉을 통한 비공식적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히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실증되자 일차집단과 대인 커뮤니케이션은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효과연구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연구대상이 되었다.³⁸⁾

어린이 시절의 정치사회화가 성인이 된 후의 정치적 태도와 행위에 절대적 영향을 작용한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 매개체로 가족과 동료집단과 같은 일차집단을 들고 있다. 유소년기의 정치사회화로 형성된 태도와 행위유형이 일생을 통해 지속된다는 전제에는 수정의 여지가 많지만 그 중요성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³⁹⁾

일차집단(primary group)이란 개념은 1925년 Charles H. Cooley에 의해 처음 소개된 것으로서, 그는 일차집단을 면접적 공동생활과 협동을 특징으로 하는 집단이라고 규정하고 이러한 집단은 인간의 사회성형성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⁴⁰⁾ Cooley가 일차집단을 "primary"라고 규정한 까닭은 인간의 사회적인 본성과 이성을 형성하는 데 있어 근본적이며, 이 집단을 통해서 개인이 사회와 최초로 접촉하게 된다는 데 있다.⁴¹⁾ 인간은 일차집단에서 생활하면서 그 집단의 가치체계를 습득하고 아울러 그가 속해있는 사회의 문화를 내면화(internalization)하게 되는데, 가족이나 친구, 이웃 등은 이러한 일차집단의 영역에 속한다.

일차적으로 가장 중요한 사회화의 매개체로서 주목을 받아온 것은 일차집단 중에서도 가정이었다. 정치사회화연구의 초창기 학자들은 가정이 정치사회화의 가장 중요한 매개체라고 주장하였는데, Hyman은 이러한 견해의 대표적인 학자였다.⁴²⁾ Davies는 가정이 개인의 정치적 성숙을 위한 주요한 주형(molding)이며 개인의 정치적 퍼스낼리티를 형성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하였으며,⁴³⁾ Steven Chaffee(외)⁴⁴⁾와 Greenstein⁴⁵⁾은 정치사회화과정에서 가족이 정당지지, 정치지식, 정치참여와 같은 정치변인의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였다. 국내의 김재영교수도 한국의 정치사회화 환경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가족이라고 하였다.⁴⁶⁾

그러나 최근에는 여러 학자들의 많은 연구결과들에 의하여 정치사회화 과정에서의 가족의 강한 영향력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R. W. Connel은 부모는 자녀의 정치성향을 주조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사회구조에 그들의 의견을 약간 닮게 할 뿐, 부모의 강한 영향력은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⁴⁷⁾ Paul Allen Beck은 정치사회화의 매개체로서 가정이 적은 영향을 미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가정내에서 정책에 대한 비판이나 이데올로기에 대한 토론은 드물고, 정치에 관한 이야기는 주로 정당이나 선거입후보자에 국한되고 있다.⁴⁸⁾ M. K. Jennings와 R. G. Niemi도 종래의 부모-자녀간의 강력한 연계에 대한 심각한 수정이 요구된다고 하였으며,⁴⁹⁾ 국내의 김충남교수 역시 한국과 같은 과도사회에서는 정치적 학습에서 차지하는 가정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미약한 것에 불과하다며, 매스 미디어, 친구, 사회정치적 조직 등 비가정적 원천의 중요성을 거론하고 있다.⁵⁰⁾

특히 정치사회화 매개체로서의 가정의 역할은 사회가 산업화되고 거기에 따라 사회구조, 특히 가족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많이 약화되었다. 우선 핵가족은 가족구성이 단순하므로 다면적인 인간관계가 결여되어 가정내에서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고립되어 각자의 영역과 생활을 가지게 되므로 부모의 세계와 단절을 가져와 부모-자녀간에 심리적 연속성이 없어진다는 것이다.⁵¹⁾

현대사회의 사회적 구조가 변하고 핵가족화가 되므로써. 사회화에 있어서 가족이 담당하는 역할이 작아지는 것과 반비례해서, 동료집단의 사회화기능은 점차 강화되고 있는데. 그 이유를 보면, 첫째, 가족구조가 핵 가족화되므로써, 부모는 어린애가 일정한 연령에 이르면 교육의 역할을 유아원이나 유치원에 맡기게 되며 따라서 유아원이나 유치원에서의 동료집단은 아이들의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둘째, 현대사회의 사회적, 기술적 변화는 세대간의 간격을 넓히고 있는데 부모의 지식은 곧 시대에 낙후되므로서 자녀들이 이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동료집단은 현대적 가치와 기술의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세째, 현대사회는 고도의 이동성이 있으며, 어린애들은 교육을 통하여 새로운 지위와 계급을 획득하게 된다. 그러나 가족은 새롭게 획득한 지위나 계급의 가치를 자녀들에게 가르칠 수 없게 됨으로 동료집단이 중요해진다.⁵²⁾

이와 같이 가정이 정치적 가치를 형성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가족은 정치사회화의 매개체로서 절대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없게 되며, 이러한 상황에서는 동료집단과 같은 일차적 매개체와 학교, 매스 미디어와 같은 이차적 매개체가 가족의 역할을 대행한다. 동료집단이 정치사회화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시기는 보통 청소년 후기로 보고 있다.⁵³⁾

동료집단(peer group)이 정치사회화의 과정에서 중요한 매개체로서 개인의 사회화에 있어 점차 영향력이 강해지고 있는데, 어떤 학자들은 극단적으로 현대 서구사회에서는 동료집단이 모든 사회화의 매개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됐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견해의 가장 주도적인 학자는 David Riesman인데 그는 그의 저서「The Lonely Crowds에서, 많은 사람에게 동료집단은 사회적 행동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유도력(motivating force)이라고 하였다.⁵⁴⁾ Massialas는 어린이와 청년의 정치사회화에서 동료집단이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이라고 지적하였고,⁵⁵⁾ Dawson은 동료집단이 정치적 학습의 중요한 원천으로서 특별한 정치관을 전달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하였다.⁵⁶⁾

Talcott Parsons는 중고등학교시절의 가장 중요한 사회화단체는 동료집단이라고 한다.⁵⁷⁾ 미국의 청소년문화를 연구하는 James Coleman은 청소년기에 있어서는 동료집단이 부모나 교사의 위치를 빼앗아 보다 중요한 매개체로 등장한다는 것이다.⁵⁸⁾ Cartwright와 Zander도 동료집단이 사회적 및 정치적 세계에 대한 정보 및 의견을 교환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원천으로 역할한다는 것이다.⁵⁹⁾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맞는 실증적 조사는 거의 없다. 그것은 정치사회화연구 자체에서 동료집단이 과연 순수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정치사회화 매개체의 복사판인지 알 수 없는 방법론적인 문제탓이라고 할 수 있다.⁶⁰⁾ 여하간 동료 집단에 대한 견해는 몇몇의 연구결과들로 일반화될 수 없으며, 동료집단의 문화적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최근에 와서는 매스미디어의 홍수로 정치사회화 과정에서의 친구의 역할도 정보제공자와 정치지향에 영향을 끼치는 자의 복합적인 것에서 단순한 영향을 끼치는 자로 전환되고 있다.⁶¹⁾

B. 준거집단과 정치사회화

정치적 태도와 행동에 관해 면밀히 관찰해 보면 정치적 선호나 행동의 어떤 의의있는 양식을 발견할 수 있다. 당파적, 종교적 혹은 시민적 조직의 한 구성원이라면 때때로 이 조직들이 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주는 정치문제에 어떤 입장을 취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정치사회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정치사회화의 매개체로 가정과 동료집단과 같은 일차적 집단만이 정치적 사고나 선호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일한 결합은 아니다. 정치적, 시민적, 종교적 조직과 같은 집단들이 정치적 학습이나 정치관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것들이 가장 중요한 정치적 준거점이 되기 때문이다.⁶²⁾ 개인의 정치적 가치나 규범을 형성하는데 절대적인 영향을 작용하는 일차집단과 마찬가지로 준거집단도 개인의 정치적 태도를 형성하고 행위유형을 결정하는 정치사회화과정에 있어서 중요한 정치사회화의 매개체이다. 그런데 대체로 준거집단과 일차집단의 기능은 유사한 점이 많지만 반드시 같지는 않다. Maccoby는 그 차이를 집약하여 "개인이 소속되어 있는 집단(일차집단)의 가치와 태도보다 소속되고 싶은 집단(준거집단)의 가치와 태도를 준거의 기준으로 삼으려 한다"고 말했다.⁶³⁾ 매스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하는 이차집단으로서의 정당, 교회, 기타 사회단체와 같은 준거집단은 대인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하는 가정이나, 동료집단과 같은 일차집단과는 구분된다고 볼 수 있다.

준거집단(reference group)이란 말은 1942년 사회심리학자 Hyman이 "The Psychology of Status"라는 논문에서 처음으로 사용하였다.⁶⁴⁾ 개인이「비교의 사회적 틀」(social frame work for comparision)을 어떻게 선택하는가를 알기 위해 Hyman은 준거집단. 준거인(reference individual)이란 말을 만들어 특정 준거집단이 개인의 자기평가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했다. 한편 Robert K. Merton은 준거집단은 개인의 자기평가와 태도형성의 기초가 되는 사회적 단위라고 정의하고, 준거집단이론의 핵심은 개인이 집단에 자기를 준거시키는 과정과 개인이 그의 행위를 집단가치에 준거시키는 과정을 연구하는데 있다고 했다.⁶⁵⁾

준거집단은 개인에게 특정규범과 태도를 내면화(internalization)하도록 만들고 개인이 자기 자신과 타인을 평가하는 기준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가치를 가르쳐 이를 내면화하게 한다. 준거집단의 개념은 포괄적이고 다양할 수 있지만 이들을 정리하면 결국 개인이 그의 행위를 준거시키는 가치의 기준이 되는 집단이라 요약할 수 있으며, 따라서 개인은 그가 준거하는 집단의 가치와 판단에 따라 사회화의 내용이 달라질 수가 있다고 본다.⁶⁶⁾

Herold H. Kelly는 준거집단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기 위해서 준거집단의 기능을 중심으로 비교준거집단(comparative reference group)과 규범준거 집단(normative reference group)으로 구분했다. 즉 개인이 자기평가를 할 때 비교기준이 되는 집단을 비교준거집단이라고 하고, 태도, 가치, 규범 등을 가르쳐서 내면화하도록 만드는 집단을 규범적 준거집단이라 하였다.⁶⁷⁾ 또한 준거집단을 소속집단(membership group)과 비소속집단(non membership group)으로 나눌 수도 있다. 개인이 비소속 준거집단에 준거할 때에는 그 집단의 규범을 강제없이 자발적으로 수용하지만, 소속준거집단은 그 구성원인 개인의 동조를 보상(reward)과 제재(sanction)를 통하여 강요한다.⁶⁸⁾ 개인이 비소속집단을 준거집단으로 삼고 거기에 소속되기를 원한다면 그 준거집단이 영향력을 작용하기 전에 스스로 그 준거집단의 규범에 동조함으로써 자발적인 사회화가 이루어진다. Merton은 자발적 사회화를 기대적 사회화(anticipatory socialization)라 부르고. 기대적 사회화는 준거집단에 소속되기를 원하는 개인이 그 집단의 규범과 태도를 행동화할 기회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행동보다는 태도를 가르치는데 더 효과적이라고 하였다.⁶⁹⁾ 그 외에도 Theodore Newcomb은 준거집단과 준거인을 긍정적 형태(positive type)와 부정적 형태(negative type)로 구분하여 개인이 그의 태도와 행위를 준거하려는 집단의 규범에 자발적으로 일치하려 들때 그러한 준거집단을 긍정적 형태라 한 반면 반대되는 경우의 준거집단을 부정적 형태라 하였다.⁷⁰⁾

Darwin Cartwright는 준거집단이 (정치적)사회화의 중요한 매개체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반적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⁷¹⁾ 첫째, 준거집단들은 중요한 통신채널로 작용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개인에게 많은 아이디어와 정보를 공급하며. 둘째, 준거집단은 (정치적) 세계에 관한 개인적인 기초적 지각을 정의내리는데 대단히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세째, 준거집단은 (정치적)문제에 대해 입장을 취하며, 그 입장을 구성원에게 분명하고, 또 구성원이 따르도록 동기를 유발시키려 한다.

또한 준거집단은 매스 미디어의 영향을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보강(reinforcement) 혹은 감소시킨다.⁷²⁾ 우선 준거집단구조가 개인에게 전달되는 매스 미디어정보를 여과(filtering)시켜서 매스 미디어의 영향을 절감한다. 둘째, 준거집단은 개인에게 매스 미디어의 신뢰도를 결정해 주며 그 신뢰도에 따라 매스 미디어의 영향이 달라진다. 세째, 준거집단은 특정태도와 행위에 대한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를 제공함으로써 매스 미디어의 영향을 조절한다.

이와 같이 준거집단은 정치사회화의 중요한 매개체로서 개인의 정치적 정향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하면 준거집단은 매스 미디어가 전달하는 정치적 정보를 개인이 선택하고 해석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러한 준거집단의 관점을 통하여 매스 미디어가 개인의 정치적 정향에 미치는 영향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관점은 정치사회화과정에서 정치사회화의 매개체로서 준거집단이 개인의 정치정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데 필요한 하나의 접근방법을 제공하고 있다.⁷³⁾ 가정이나 동료집단과 같은 정치적 가치를 형성하지 못한 현대적 상황이나, 특히 한국과 같은 과도기적 사회에서는 매스 미디어나 준거집단과 같은 이차적 집단의 역할이 증대된다.

C. 매스 미디어와 정치사회화

매스 미디어가 오늘날과 같이 보급되지 않은 시대에서는 개인에게 정치성을 부여하는 정치사회화의 주요 매개체로 가정, 학교, 친구, 교회 등을 들었다. 그러나 20세기를 특징짓는 매스 커뮤니케이션은 매스 미디어를 중요한 정치사회화의 매개체로 크게 크로즈업 시켰다. 매스 미디어가 개인의 정치사회화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계량화할 수는 없지만 그 영향력이 절대적인 것만은 추론해 낼 수 있다. 매스 미디어를 정치사회화의 매개체로 본다는 것은 그 현존적이고 단기적인 영향이나 효과와 함께 잠재적이고 누적적인 영향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⁷⁴⁾

만약 매스 미디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정치사회화의 양상은 판이하게 달라졌을 정도로 텔레비전을 비롯한 신문, 잡지등의 매스 미디어의 홍수속에 살고 있는 개인의 정치적 정향은 매스 미디어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매스 미디어가 개인의 정치적 정향에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학자간에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매스 미디어의 정치적 기능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학자로서 Bernard Berelson은 매스 미디어가 정치적인 무관심(political apathy)을 조장한다고 주장하였고,⁷⁵⁾ M. Rosenberg는 미디어의 수동적 참여와 비인간성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치에의 참여를 무용지물이라고 보는 느낌을 강화시킨다고 하였다.⁷⁶⁾ J. B. Manheim도 텔레비전 뉴스에 의존할 수록 정치에 대한 이해력과 욕구가 떨어지게 된다고 주장하였다.⁷⁷⁾

S. Kraus와 D. Davis는 매스 미디어는 자신이 직접 정치적 가치나 태도 및 신념의 창조자가 아니고 다른 매체가 만들어 놓은 것을 전달한다는 것이다.⁷⁸⁾ 다시 말하면 매스 미디어는 정치적 메시지의 창출자가 아니라 단순한 전달자(simple conveyers of information)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Elihu Katz와 Lazarsfeld도 매스 미디어가 보내고 있는 뉴스나 정보는 이단계 흐름(two-step flow)을 통해서 전달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개인에게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⁷⁹⁾ 이렇게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흐름을 이단계로 볼때, 매스 미디어의 정치사회화 매개체로서의 기능은 소홀히 되고, 오히려 가족이나 친구 등 일차집단(primary group)들이 정치사회화의 담당자로서 중요시 될 수 밖에 없다. 특히 일차집단 속에서 의견지도자(opinion leader)들의 기능이 매스 미디어의 기능보다 중요시 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되어서는 안될 것은 의견지도자들 자체가 매스 미디어의 영향권 밖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J. Klapper는 매스 미디어는 새로운 정치적 가치나 성향을 창조하거나 기존의 것을 변형시키는 역할보다는 기존의 것들을 유지하고 보존하는 현상유지적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⁸⁰⁾ 즉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수용자들은 그들의 선유경향과 합치되는 내용은 쉽게 수용하지만 그들의 기존신념을 변경시키려는 메시지는 거부하는 선택적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Eliot Friedson은 매스 미디어의 메시지는 사회적 상황과 사회적으로 제약된 성향속에서 전수되고 해석된다는 것이다.⁸¹⁾ 다시 말하면 사회적 상황은 개인이 어떤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메시지에 접촉할 것인가를 결정짓는 데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개인이 특정의 메시지를 어떻게 해석하고 반응할 것인가에 대해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정치사회화과정에서 매스 미디어 기능을 단지 보강적인 것으로만 규정해 버리는데는 매스 미디어의 교육기능상의 한계성에 대한 인식에서 연유되는 바가 없지 않다.⁸²⁾ 대면적인 교육방법(face-to-face methods of education)을 대신할 수 없고 단지 보강할 수 있을 뿐이라는 매스 미디어의 교육상의 한계성에 대한 보편화된 인식이 곧 매스 미디어의 정치사회화 기능상의 한계성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행동교육면에서 매스 미디어의 기능은 일정한 한계가 있지만 인지교육면에서 매스 미디어의 역할은 많은 가능성을 안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효과도 태도변용효과에 대해서는 일정한 한계를 인정하고 있지만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인지효과는 무엇보다 강력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효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정치사회화 과정에서의 매스 미디어의 기능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시켜주고 있다.⁸³⁾

사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매스 미디어가 폭발적으로 증가 보급되었고 또한 널리 이용되고 매스 미디어는 정보전달에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⁸⁴⁾ 이에 대조적으로 그동안 정치사회화의 영향력 있는 매개체로 주목되던 일차집단은 와해되는 실정에 이르렀고, 이와 더불어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효과론도 점차 강력효과론으로 옮겨감으로써 정치사회화에 대한 매스 미디어의 기능이 중요시되었다. S. Kraus와 D. Dennis는 매스 미디어를 정치사회화의 매개체로 선정할 수 있는 것은 매스 미디어가 지니는 몇가지 기능에 의존한다고 하였다. 즉 Kenneth Bounding의 이미지창조(image-making). Lee Thayen의 커뮤니케이션의 현실구축(structuring communicational reality), Lazarsfeld와 Merton의 지위부여 (status conferral), D. Boorstin의 유사환경의 창출(pseudo-events), 그리고 Maxwell McCombs등의 의제설정기능(agenda-setting function)이 그것이다.⁸⁵⁾

지금까지 연구된 바에 의하면 매스 미디어는 정치사회화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이다.⁸⁶⁾ 첫째, 매스 미디어는 정치지식의 주된 정보원이다. 둘째, 신문과 텔레비전은 다른 매스 미디어에 비해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그들의 역할은 연령과 사회경제적인 신분에 따라 달라진다. 세째, 매스 미디어는 정치적 행위보다는 정치적 지식습득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네째, 매스 미디어의 비정치적인 내용도 정치사회화에 영향을 끼친다. 이와 같이 매스 미디어의 정치사회화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들이 영향력이 있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러나 그 정도(magnitude)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일관된 결론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Stanley Allen Renshon은 정치사회화와 매스 미디어와의 관계에 대한 서로 다른 결론들을 종합하였다.⁸⁷⁾ 매스 미디어를 보강적인 것이거나 사회화의 이차적인 매개체로 소홀히 다루어 온 것은 Klapper의 매스 미디어에의 재한적인 효과론에 힘입은 바가 큰 것이었다. Klapper의 이론을 지지하는 경우도 있으나 Klapper를 반박하는 Chaffee⁸⁸⁾등의 연구를 그 대표로 하는 일련의 연구들은 비교적 강력 효과론을 피력하고 있다. Chaffee등은 매스 미디어 사용이 많은 학생들을 대인 커뮤니케이션에 의존하는 학생보다 높은 지식수준을 보여줬다고 밝히고 있으며, 신문구독은 정치적 지식습득의 요인이 된다고 그들의 연구결과에서 주장하였다.⁸⁹⁾ M. Adoni는 매스 미디어의 정치사회화기능과 매스 미디어의 사용과 대인 커뮤니케이션간의 상호작용에 대해서 분석하였는데, 그 결과 신문이나 텔레비전, 라디오와 같은 매스 미디어와의 접촉은 정치적 행위의 자발성(정치에의 참가 의지, 관심도, 정치지식)과는 긍정적으로 상관되어 있었다.⁹⁰⁾ Gary C. Byrne은 인구학적 속성을 중심으로 정치사회화와 매스 미디어의 관계를 연구하였는데, 주로 흑인이거나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거나 시골에 거주하는 어린이가 신문보다 텔레비전을 더 많이 시청하고 있으며 정부에 대해서도 비교적 호의적이었다.⁹¹⁾ M. Jackson-Beeck은 정치적 인지와 정보량과 신문과 텔레비전의 노출, 대인 커뮤니케이션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에서 정치사회화에서 매스 미디어가 대인 커뮤니케이션보다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결론지으면서 그 영향력의 순위를 신문-텔레비전-대안 커뮤니케이션의 순으로 밝히고 있다.⁹²⁾

국내 연구에서는 유종해교수가 정치사회화과정에서 텔레비전의 역할은 날로 학생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주장하였으며⁹³⁾ 김충남교수도 현대사회에서 매스 미디어의 접촉도가 민주성향에 끼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인 것이라고 하였다.⁹⁴⁾ 이택휘교수도 정치사회화과정에서 매스 미디어의 정치교육적 기능은 국민의 참여적 정향을 유도하고 정치의식수준을 향상시키는데 탁월한 영향력을 행사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⁹⁵⁾

지금까지 정치사회화와 매스 미디어의 관계에 관한 국내외 연구들을 살펴 보았으나 매스 미디어라는 주제의 광범위함과 적용되는 이론적 틀의 상이함, 연구방법의 차이로 해서 아직 일반화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 외에도 큰 약점으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은 장기연구의 부재이다. 즉 한 시점의 단기적인 연구로 사회화를 얼마나 설명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그러나 매스 미디어가 현대인의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개개인의 의식구조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정치사회화의 매개체로서 매스 미디어가 연구과제로 발전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최근에 와서 매스 미디어가 사회의 정치적 규범이나 가치관을 교육하는 정치사회화의 매개체로서 주목받게 되는 데는 매스 미디어가 단순히 가정이나 학교, 동료집단과 같은 전통적인 사회화 매개체의 대열에 끼어든 것이 아니라 이들 제도 자체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3. 매스 미디어와 여성의 정치사회화

A. 여성의 정치문화

정치사회화는 정치의식이 형성되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정치문화라고 한다. 정치문화는 정치의식에 투입되는 환경으로서 정치적 정향의 패턴 내지 세트를 가리키는 것으로 일반적인 문화의 하위문화(subculture)로 위치지워지고 있다. 정치의식이 투입되는 환경으로서는 가정, 학교, 동료 집단, 매스 미디어가 있다.⁹⁶⁾ Almond는 모든 정치체제는 정치적 행위에 대한 독특한 유형의 정향과 결부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⁹⁷⁾ 비슷한 의미로 Lucian Pye도 정치문화란 "정치의 질서화된 주체적 영역"(the ordered subjective realm of politics)이라고 하고 있다.⁹⁸⁾ Sidney Verba의 설명을 빌리면 정치문화란 정치적 상호작용이나 정치적 제도에 대한 믿음의 체계(system of beliefs)라고 한다.⁹⁹⁾ 이상의 설명들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정치문화란 그 사회의 구성원이 정치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정향의 패턴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우선 Almond와 Verba에 의한 정치문화의 세가지 차원과 유형을 통해 우리나라 여성들의 정치문화를 규명해 보기로 한다. Almond와 Verba는 이러한 정향을 세가지로 분류하고 있는데, 그것은 인지적(cognitive), 감정적(affective) 및 평가적(evaluative) 정향이다.¹⁰⁰⁾ 인지적 정향이란 정치체제, 그 역할, 역할 담당자, 투입 및 산출에 대한 지식과 신념이다. 감정적 정향이란 상기의 요소들에 대한 느낌을 말한다. 평가적 정향이란 가치기준과 정보를 포함하고 있는 정치적 대상이나 사건에 대한 판단 및 의견을 말한다. 상기의 Almond와 Verba의 정치문화 분류에 의하면 우리나라 여성은 감정적 차원의 정향에서 인지적 정향과 평가적 정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통사회에서의 여성은 정치에 대한 판단과 평가의 기저가 되는 지식(정보)의 부족으로 정치에 대해서 단순한 느낌으로만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육기회의 확대, 경제활동(취업), 가족 제도의 변화 등 일련의 사회경제적 지위향상과 무엇보다도 매스 미디어의 발달¹⁰¹⁾은 여성이 정치에 대해 관심과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하였으며. 이러한 정보(지식)를 근거로 주체적인 판단과 평가를 내릴 수 있게 되었다.

Almond와 Verba는 정치문화를 상기한 세가지 정향 외에 세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여 향리적 정치문화(parochial political culture), 신민적 정치문화(subject political culture), 참여적 정치문화(participant political culture)라고 하였다.¹⁰²⁾ 향리적 정치문화는 일반국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며 그들의 정치세계는 그들이 거주하는 좁은 향리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Daniel Lerner가 말하는 심적 동성(psychic mobility)¹⁰³⁾이 극히 제한되어 있는 것이 향리적 정치문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은 정치에 대해 특별한 정향도 없고 또 정치체제에 대해 아무런 기대도 가지고 있지 않은 이러한 향리주의 문화는 인지적이라기 보다는 감정적이고 규범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¹⁰⁴⁾ 그리고 전국적인 수준에서의 국민적 연대의식이나 일체감도 극히 미약하다.

신민적 정치문화는 향리적 정치문화의 경우보다 국민적 연대의식이 훨씬 발달된 상태이며 국가적 수준의 정치현상에 대한 관심과 지식도 휠씬 높아진다. 그러나 '신민'이란 말이 말해 주듯이 개인은 아직 스스로 '정치의 주체'라는 인식이 약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주동적이기 보다는 피동적이다. 따라서 자발적으로 정치현상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 참여하는 일은 거의 없으며 정치 체제의 권위에 대해서 갖는 정향도 인지적이라기 보다는 감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¹⁰⁵⁾

참여적 정치문화는 개인이 '신민'의 위치에서 탈피하여 국가가 요구하는 대로 국민의 의무를 수행할 뿐 아니라 정치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영향을 미친다. 참여적 정치문화에서는 국민적 연대의식이 가장 높아지며 '국민에 의한 정치'(government by the people)의 가능성도 존재하며 개인이 정치사회에서 자신의 능동적 역할을 철저히 인식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 본 세가지의 정치문화 중에서 우리나라 여성의 정치문화는 어느 유형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까? 과거 전통사회에서의 여성의 정치문화는 순수하게 향리적이었다. 그러나 사회가 변함에 따라 향리적 정치문화가 지배하는 상황속에서도 시민적 정향을 가진 여성들이 출현함으로써 여성의 정치문화는 혼합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현재 우리나라 여성은 과거 전통 사회에서와 같이 사회의 모든 정보가 차단된 상태에서 집안에만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향리적 정치문화의 단계에서는 상당히 벗어나 있으나 대체로 신민적 정치문화에 머물러 있고 아직 참여적 정치문화에로는 나아가지 못한 단계이다. 사실 현대에 와서는 정치문화를 논함에 있어 어떤 문화가 향리적이냐, 신민적이냐, 참여적이냐는 질문은 적절성이 약해졌다. 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혼합의 비율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이며, 이러한 문화 중 어느것이 보편화되어 있는 지배적인 문화이냐이다.¹⁰⁶⁾ 우리나라의 여성은 정치체제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있으나 자기의사나 이익을 정부에 투입시켜 정부로 하여금 자기의사를 반영하도록 하는 일에는 적극적이지 못하다. 정치적 관심은 아주 높음에도 불구하고 의식과 행동이 거기에 따르지 못하는 관심과 행동의 이중구조를 지니고 있다.¹⁰⁷⁾ Dawson, Prewitt, Dawson은 매스 미디어는 개인의 사고작용과 행동에 분명한 영향을 미친다고 하였는데,¹⁰⁸⁾ 여기서 매스 미디어에 의한 여성의 정치문화 변형에의 가능성을 도출해 낼 수 있겠다.

B. 매스 미디어와 여성의 정치사회화

정치사회화를 연구하는 학자들간의 주요 논쟁 중의 하나가 정치정향의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언제이냐 하는 것이다. 정치사회화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언제이냐에 대해서는 초기의 경험을 중시하는 견해와 후기의 경험을 중시하는 견해가 있다. 대체로 종래의 정치사회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정치 사회화에서 초기의 경험을 중시해 왔는데, 이들의 기본가정은 초기의 정치학습이 후속되는 정치학습을 형성하기 때문에 초기의 정치정향은 변화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¹⁰⁹⁾ Hyman은 인간은 그들의 행위를 아주 일찍부터 배운다고 하였고,¹¹⁰⁾ Greenstein도 성인의 행동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행동은 초기의 정치사회화에서 생긴다고 하였으며,¹¹¹⁾ Hess와 Torney는 성인기 이전의 초기사회화에서 중요한 측면 중의 하나는 역할기피와 요구양식행위가 다른 차별사회가 정치사회화를 중재한다고 하였다.¹¹²⁾

정치사회화과정에서 상황구조적 요인을 중시하는 학자들은 여성의 비정치적 정향은 초기사회화의 경험 때문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후의 성인으로서 여성이 처하게 되는 사회적, 가정적 조건이 여성으로 하여금 적극적인 정치정향을 표현하는데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Almond는 초기사회화 경험과 성인의 정치정향간에 분명한 연결을 찾을 수 없고 이 둘간의 간격은 너무 커서 정화한 유추와 선택적인 접근으로 메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¹¹³⁾ Ted Tapper는 여성의 정치정향은 성에 따른 차이보다는 오히려 계급에 의한 차이가 더 크게 나타난다는 것이다.¹¹⁴⁾ 여성의 경우 결혼환경 자체가 남성과는 다른 일상생활의 압박을 가져와 정치적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나 필요성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활동범주가 가정에만 고립되어 있고 서로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같은 여성끼리의 연대감(solidarity)이 부족하여 집합적의식을 발달시키기가 어렵고 매스 미디어나 남편에 쉽게 감염된다는 것이다.¹¹⁵⁾

정치사회화과정에서 상황구조적 요인을 중시하는 학자들은 공통적으로 성인기의 문화적 규범과 관련하여 여성에게 주어지는 제약을 강조하기 때문에 정치사회화를 일반사회화와는 다르게 취급하고 있다. 최근에 와서는 이와같이 여성의 정치사회화과정에서 상황구조적 요인을 강조하는 견해가 여러 학자들 사이에서 그 논리적 타당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것은 소년기의 일차적 환경내에서의 비정치적 사회화에서 정치적 사회화에로의 인과성(causality)의 연결기반이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현대에 와서 여성의 정치정향이 급격히 변화함에 따라 종래와 같이 모든 인간의 행태를 사회화로만 설명하려는 사회화결정론으로는 여성의 정치정향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¹¹⁶⁾ 따라서 기본적으로 정치사회화의 이론에 대한 재검토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초기 사회화의 경험을 중시했던 Greenstein도 과거에는 성인의 정치사회화과정에서 성인기 이전의 경험이 중요시 되어왔지만 현대에 와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지의 여부는 분명히 검토되어야 할 것이라고 하여 초기사회화이론에 대한 재검토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¹¹⁷⁾ Anthony Orum은 실증적 자료에 근거하여 여성의 정치사회화에 대한 초기 사회화이론은 부적합하다고 지적하였다.¹¹⁸⁾ R. E. Dawes와 J. A. Hughes도 여자아이들이 덜 정치적으로 사회화된다는 것은 근거가 없다고 하였다.¹¹⁹⁾ 이러한 최근의 연구들을 볼때 한세대는 그전세대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므로 현대에 와서는 성인의 생활환경이 어린이의 사회화 양식보다 더 중요하게 될 수도 있으며, 특히 전통사회에서 현대사회로 이행하고 있는 과도기사회에서는 어른을 대상으로 한 정치사회화가 더욱 중요시 되고 있다.¹²⁰⁾

사람들은 새로운 사회적 역할을 예기하고 있을때 사회규범들에 대한 안내(guidance)와 현재의 역할에 대한 안내를 매스 미디어에 의존하는 일이 있다. 일부 사회적 규범들에 관한 실마리들을 얻을 목적으로 어느 정도 의식적으로 매스 미디어를 이용한다는 데에는 각자의 사회적 사정에 따라 차이가 난다.¹²¹⁾ 매스 미디어는 여성들이 가장 가깝게 접할 수 있는 매체로서 매스 미디어의 내용과 여성의 생활은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본다. 특히 결혼한 주부들의 경우 정치에 관한 정보는 거의 매스 미디어를 통하여 얻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성은 중·고등학교나 대학졸업 후 곧 바로 결혼과 더불어 가정에 안주하여 어머니, 아내 역할 때문에 동료집단이나 직장에서의 정치사회화도 거의 되고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대 매스 미디어의 발달로 인하여 여성은 TV, 신문, 잡지, 라디오와 같은 것에 의해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매스 미디어는 가장 전문화되고 분화된 구조이며 사회의 다른 활동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목적 때문에 의존하는 구조들이다. 기술의 발달이나 문자해독과도 관계가 있는 것이지만 매스 미디어는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양의 정치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아직도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가정의 역할이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현대사회에서는 매스 미디어가 정치사회화과정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핵가족 시대에서의 가정의 역할이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는 반면에 여성의 매스 미디어의 접촉빈도는 점차 높아져 여성의 정치사회화에 미치는 그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¹²²⁾ 따라서 여성의 정치사회화의 매개체로서 매스 미디어의 선도적 역할은 더욱 중요시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