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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한국 대중문화 수용과 문화 혼성화1) 노스탤지어로서의 ‘한류’ 수용일본 청소년들은 한국 대중문화를 통해 일본 사회에 과거에 존재했다고 배웠으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기치나 규범의 측면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자신들이 근대화 과정에서 잃어버렸다고 가정되는 것들의 이미지를 상상된 노스탤지어의 형태로 소비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일본 대중문화와의 차이점을, 다른 한편으로는 유사점을 발견하고 즐기게 되는 것이다(Iwabuchi, 2002; Nakatani, 2003 참조). (중고등학교 때) TV를 통해 HOT를 처음 접했을 때는…다르다고 느꼈어요. 제가 패션에 관심이 많으니까, 같은 나이 남자들이 어떤 옷을 입는지 즐겨보잖아요. 그때는 HOT 보고 일본에서 ‘1980년대에 유행한 옷차림과 비슷하구나’ 그렇게 느꼈어요. 좋다, 안 좋다 그런 느낌이 아니라. (…) 일본에 1980년대에 ‘다께노꼬 족(하라주꾸 앞길에서 춤추고 놀던 청소년들을 일컬음)’이라고 있었는데, HOT 같은 사람들이었어요. 하라주꾸에서 춤추고 그런 것 하는 아이들이지요. 저는 TV나 책에서 보았기 때문에 일본에 과거에 그런 패션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지금 일본에는 그런 젊은이들은 절대로 없어요. 절대로! 그러니까 일본에는 지금 없는데, 한국에는 있으니까 재밌는 거죠. (다케시 : 남, 21세) 이처럼 일본과 한국의 문화적 유행 사이에 놓은 시간적 차이는 일본 대학생 수용자들에게 독특한 재미를 주기도 한다. 경험하지 못했던 자신의 역사를 동시대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자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몬데이로와 자야산카(Monteiro and Jayasankar; 2000)는 외국 영상물 수용자들에 대한 민속지학에서, 외국 미디어 시청 경험을 통해 지역 시청자들은 권력의 위계에서 자신보다 위에 위치한 ‘강한 타자’(the other above)와 ‘약한 타자’(the other below)를 상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내면화는 일본의 ‘한류’ 수용 대학생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다. 즉, 서구(특히 미국)가 ‘강한 타자’로서 소비되는 반면, 한국은 ‘약한 타자’로서 소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한국영상물을 통해 일본 시청자들에게 전달되는 한국의 이미지는 일본이 고도 근대화 과정에서 상실한 공동체 중심적이고 순수한 인간관계와 같은 가치들이기도 했다. <겨울연가>와 같은 한국의 멜로드라마들을 통해서 ‘최근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진기한 순수함’ (시오리 : 여, 20세)을 느끼게 된다고 지적한 응답자들이 많았다. 한국 드라마는 순진해서, 그렇게 순진한 사람들이 지금 실제로 존재하는지 의문일 정도지요. 없을 것 같아요. 그런 건 일본 드라마와 다른 것이죠. (…) 일본인들이 보기에 한국 드라마는 요즘과 같은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순수한 사랑 같은 것을 다룬다는 점에서 현실감이 없는 것이죠. 그래서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죠.(…) <겨울연가>를 예로 들면, 10년이 지나서 남자가 돌아왔는데, 그런데 여자는 그때도 그 남자를 좋아하는 것이에요. 그런 일은 우리 현실에서 일어나기가 어렵죠. (사쿠라 : 여, 20세) 이처럼 ‘약한 타자’로서의 한국의 대중문화는 일본 수용자들에게 자신들이 잃어버린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Iwabuchi, 2002). 즉, 일본이 잃어버린 전근대적 순수성을 한국 대중문화를 통해 소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근대적 순수성은 주로 가족주의적인 가치나 집단주의적 가치를 의미하는 경우도 많았다. 예컨대, 일본 대학생들은 한국 TV드라마를 통해 접하게 되는 유교주의적 생활태도를 놀랍게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 ‘저기는 부모님한테 존대말을 쓰는구나, 대단하구나’ 하고 생각하죠. 일본 젊은이들은 부모님을 별로 소중하게 생각안하거든요. 그런데 한국은 자연스럽게 부모님을 공경하는 유교사회니까……. (에이미 : 여, 19세) 이 응답자가 언급하고 있듯이, 일본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예전에 일본에 존재했던 가족주위적 전통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간주되고 있으며,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이러한 가치의 부재에 대해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일본 대중문화에서 노스탤지어의 생산과 소비는 일본이 고도 자본주의에 도달한 이후인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등장한 소비문화 내에서의 한 현상으로 분석된 바 있다(Ivy, 1993). 고도 근대화 이전의 일본에 대한 상상적 이미지를 일본 밖에서 찾아내고 재현하여 소비해내려는 현상이 가속화되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1990년대의 ‘아시아로의 회귀’ 담론이나 최근의 ‘한류’ 현상은 고도 근대화 사회에서 일종의 상상적인 과거회귀의 방식으로 타자성을 소비하는 한 예로 볼 수 있다(Ivy, 1993; Iwabuchi, 2002). 따라서 한국 대중문화가 동아시아의 청소년 수용자들에게 모던하고 창의적인 문화자본은 상징한다는 주장(Dator and S대, 2004)이 적어도 일본의 경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하겠다. ‘한류’는 고도 근대화된 일본 수용자들에게 대안적 정체성의 자원으로 기능하기보다는 비현실적인 대리만족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Iwabuchi, 2000, 175 참조). 예를 들어, 공동체 중심적 인간관계나 순수한 사랑과 같은 덕목을 통해 일본 수용자들이 발견하게 되는 것은 대안적 사회에 대한 열망이라기보다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 없는 세계로부터 오는 쾌감과 호기심이라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 없는 세계로부터 오는 쾌감과 호기심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일본이 고도 산업 사회에 도달한 이후인 1980년 이후 출생한 본 연구의 대학생 수용자들에게서도 이러한 노스탤지어 추구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 1990년대를 전후하여 유행한 노스탤지어 상품들이 젊은 세대를 주소비자로 했었던 것과 유사한 맥락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Ivy, 1993, p,256). 즉, 최근 일본내에서의 한국 대중문화 유입은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노스탤지어를 상상적으로 생산해냄으로써 소비 욕망을 부추기는 일본과 한국의 문화 산업의 상품 전략적 함의도 지닌다고 하겠다. 2) 지역화와 혼성화의 가능성일본 청소년의 한국 대중문화 수용은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 대중문화가 토착화되면서 혼성적 문화를 생산해낸 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일본 대중문화는 그동안 서구 문화를 매우 빠르게 복제하면서도 혼성화하는 지역적은 전유(appropriation)의 사례로 자주 제시되곤 했었다(예, Condry, 2000). 그러나 본 연구에서 한국 대중문화의 경우는 아직 일본적인 것과 섞이기보다는 이질적인 형대로 타자화되고 있었고 문화적 혼종성(cultural hybridity)의 창출에 도달하지는 못한 단계였다. 일본 청소년들 사이에서 노스탤지어로서의 ‘한류’의 소비는 일본적 정체성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 국한된 타자성의 소비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으며, 일본 내에서 적극적으로 전유되는 과정을 동반하지는 않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응답자들이 <겨울연가>같은 순수 멜로드라마는 일본에서 리메이크될 수 없을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그것이 일본적으로 지역화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질문자 : <겨울연가>같은 드라마를 일본에서 만들면 어떨까요? 웃길 것 같아요. 한국 것은 한국어로 표현이 되어야 하고, 일본 것은 일본말로 표현이 되어야 하는데, 겨울연가를 일본 사람이 하고 있으면 웃긴 그런 느낌이 들잖아요. (히로꼬 : 여, 20세) 일본 드라마에서 한국 드라마에서와 같은 사랑의 대사가 나오면 채널을 다른 데로 돌려버릴 거예요. 한국 드라마니까 용서가 되는거죠 (웃음). (린 : 여, 20세) 한국 대중문화에서 재현되고 있는 일본이 상실한 가치, 윤리, 정서 등을 이제 한국에 의해서는 생산될 수 있지만, 일본에 의해서는 생산될 수 없는 것으로 지각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들은 동격하기보다는 흥미로운 자원으로 소비하고 있는 경향이 컸다. 한국 대중문화를 향유하는 일본 청소년들은 ‘약한 타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되, 거리감을 두고 소비하는 방식으로 수용함으로써 일본적 정체성의 문제와 연계시키기를 지연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응답자들 중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가 일본 대중문화에 주는 영향에 대해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견해를 제시한 경우는 거의 없었으며, 오히려 이러한 현상의 지속성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었다. 그들에게 ‘한류’는 일본 대중문화의 주류에서 소비되고 영향을 행사하기보다는 새로운 주변문화의 하나의 인지되고 있었다. 일본 대학생들의 태도는 비서구 맥락에서 서구의 원전성이 모호해지면서 탈식민적인 정치적 함의를 띠게 되는 혼성화보다는, 자국문화의 핵심을 본질적으로 유지하면서 단순히 외래문화를 흡수하려는 유사-혼성화의 성격(pseudo-hybridism)을 띠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Iwabuchi, 1998). 일본 문화는 오래 전부터 외래문화를 많이 받아들여 형성된 것이죠. 특히 세계대전 이후에는 미국 문화를 빨리 많이 받아들여서 미국을 따라 잡으려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외국 문화의 유입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여요. 원래 일본 문화는 외국 문화의 활발한 수용을 통해 성장해왔거든요. (하야토 : 남, 21세) 즉, 일본의 한국 대중문화 수용자들은 한국 문화를 일본 대중문화로 전유하려는 혼성화보다는 지역 내로 받아들이되 지역적 문화와 적극적으로 접합시키는 않은 수용전략을 취하고 있었다. 또한, 한국 대중문화의 수용은 결국 문화적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것이지 일본인의 분화적 특성이나 민족적 성격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 아니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물론 이러한 견해만으로 ‘한류’가 일본 문화에 영향을 전혀 미치지 못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에서 일본 청소년들의 한국대중문화 수용 양식이 팬덤(fandom)으로서의 성격이나 하위문화적 성격을 뚜렷하게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즉, 이들의 한국 대중문화 상품 소비는 특정한 장르나 스타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기보다는 재미있고, 이해하기 쉬우며, 소비하기 쉬운 콘텐츠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한국 대중문화 수용이 일본 청소년들 사이에서 간접적 방식으로 일본적 정체성의 정교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원으로의 역할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들에게 ‘한류’가 생산지(한국)를 연상시키는 특정한 상징적이고 문화적인 의미를 획득했다고 결론짓기는 아직 이르다. 본 연구에서 한국 대중문화 소비에 있어서 한국이라는 생산지가 ‘한류’의 수용을 특별히 촉진하거나 간섭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도 접근하기 어려웠던 한국 대중문화를 다량으로 접하게 되면서 이들은 ‘한국’이라는 문화적 정체성과 한국 대중문화 상품을 강하게 연계시키기보다는 한국 대중문화가 지니는 이질적이면서도 친근한 취향만을 소비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에게 있어, 문화는 국적으로부터는 별개인 듯 묘사되는 경향이 있었다. 일본에선 한국 문화를 좋아한다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어요. 한국을 낮게 보는 사람들은 나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일부 있을 수 있겠죠. 그런 사람들이 정책 결정 위치에 있어서 한국문화가 많이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한국에서 일본을 안 좋게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일본에서 한국을 안 좋게 생각하는 사람이 훨씬 적을 거예요.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그런 것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죠. (류우 : 남, 20세) 즉, 대중문화 콘텐츠를 직접적으로 정체성이나 그 생산 국가와의 결부된 역사적 경험과 연결시키기보다는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로 환원하는 경향이 강했다. ‘한류’는 ‘문화적 슈퍼마켓(cultural supermarket)’으로서의 일본 사회에서 하나의 새로운 소비문화 아이템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Matthews, 2001 참조). 이 때문에 일본 내에서 ‘한류’ 현상이 장기적인 전망을 가질 수 있는가, 또한 일본문화와 한국문화의 혼성화를 촉진시킬 것인가에 대해서 긍정적인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본 연구의 수용자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한국 대중문화는 현재 일본 내에서 ‘한류’는 본격적으로 지역화되는 단계가 아니라 일본 대중문화와 일본적 정체성의 외부에서 소모되는 단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현재의 ‘한류’ 현상은 한국 대중문화가 일본 내에서보다 적극적으로 지역화될 때에만 문화적 혼성화의 생산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며 산업적으로도 장기적인 전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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