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광고

제2의 창작 세계, 패러디 광고

최준영 / 문화일보 산업부 차장

TV광고를 가리켜 흔히 ‘15초의 미학’이라고 한다. 시청자를 광고에 노출시키는 것도 쉽지 않지만, 노출에 성공하더라도 초단위의 짧은 시간에 시청자를 사로잡는 것은 더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광고제작자들이 인지도가 높은 모델을 쓴다거나, 시청자의 관심을 끌만한 소재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광고주가 돈을 아끼지 않는다면야 광고제작자 입장에선 별로 고민할게 없다. 거액을 들여 가장 인기 좋은 모델을 쓰면 간단하다. 하지만 이런 고맙고 인정(?) 넘치는 광고주가 어디 흔할까. 대부분 광고주들은 경제교과서에 적혀 있는대로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얻고자 한다. 더욱이 요즘처럼 경기가 안좋을 때 회사들이 가장 먼저 손을 대는 부문은 광고비다. 광고제작자로선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아이디어를 쥐어짜야 할 형편이다. 한정된 예산을 갖고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방법 중 하나는 이미 널리 알려진 소재를 차용하는 것이다. 수년 전부터 패러디(parody)광고가 인기를 끄는 이유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여름날 청량제 같은 패러디 광고

패러디 광고란 유명 영화나 드라마 등의 한 장면을 따와 제품을 홍보하는 기법이다. 요즘에는 신데렐라 같은 동화 속 이야기나, 다른 회사 광고를 패러디한 광고도 나오고 있다. 문학적 의미에서 패러디는 원래 저명작가가 창작한 시(詩)의 문체나 운율을 모방해 그것을 풍자하거나 또는 조롱삼아 꾸민 익살스런 시문(詩文)을 뜻한다. 때로는 악의가 개입되지만 그것이 주는 웃음의 정신이 패러디의 본질인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풍자시인 히포낙스가 그 시조로 알려져 있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H 필딩의 ‘조지프 앤드루스의 모험’등도 패러 디의 일종으로 분류된다.

어찌됐든 원작을 비틀고, 꼬집어 묘한 쾌감을 주는 게 패러디의 참맛이다. 무슨 얘기를 들어도 일단 의심부터 해야 하는 직업적 특성일지는 몰라도 필자는 개인적으로 비비꼬인 패러디물을 아주 좋아한다. 영화도 패러디물은 기를 써서라도 찾아보는 스타일이다. 007시리즈를 패러디한 ‘오스틴파워’시리즈나 ‘총알탄 사나이’시리즈, 온갖 공포영화를 다 짜깁기한 ‘무서운 영화’시리즈, 죠스, 타이타닉 등 무려 22편의 영화를 패러디한 애니메이션 ‘샤크’ 등의 패러디 영화를 보면서 원작을 통쾌하게 비트는 감독의 재치에 무릎을 쳤던 기억이 새롭다. 패러디 광고도 마찬가지다. 익살맞은 패러디 광고는 무더운 여름날 갈증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청량제와 같은 효과를 준다.

광고를 접하다보면 의외로 패러디 형식을 띤 광고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국내에선 영화 ‘원초적 본능’의 여주인공 샤론스톤의 심문 장면을 흉내 낸 ‘머거본’(스낵) 광고가 패러디 광고의 효시로 기억된다. 이 광고가 선을 보인 이후 탤런트 최지우가 홍콩영화 ‘영웅본색’의 주인공 저우륜파(周潤發)처럼 성냥개비를 질겅질겅 씹는 장면이 나오는 음료광고, 마릴린 먼로가 주연한 ‘7년만의 외출’의 명장면을 패러디한 또 다른 음료광고 등 패러디 형식을 빌린 광고는 숱하게 많이 쏟아졌다.

광고를 패러디하는 과감한 시도도 눈에 띈다. 축구스타 안정환과 탤런트 김재원의 피부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한 화장품 광고를 패러디한 속옷광고가 나와 인기를 끌었고, 모 무선통신기기 회사의 휴대폰 광고를 패러디한 라면광고가 나와 시청자들이 배꼽을 쥐기도 했다. 이 라면광고는 방영 즉시 TV광고 인기순위를 매기는 사이트에서 단 박에 상위에 올랐고, 광고 방영 이후 제품 매출이 60% 이상 늘어나는 등 많은 화제를 뿌렸다. 또 현대카드는 자사 브랜드 M을 선전하면서 관객동원에서 대박을 터뜨린 친구, 올드보이, 스캔들, 살인의 추억 등 한국영화의 명장면을 패러디한 광고를 연속해서 내보내 화제가 됐다.

단순 표절 금물, 창작 버금가는 노력 있어야

패러디 광고는 확실히 시선을 사로잡는 묘한 매력이 있다. 원작을 모르는 소비자 입장에선 “저게 무슨 뜻이냐”고 고개를 갸웃거리겠지만, 원작을 아는 소비자에겐 패러디만큼 확실하게 웃음을 담보해주는 소재도 흔치않다. 좋은 패러디가 제2의 창작으로까지 불리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패러디 광고가 인기를 끌면서 요즘에는 중소기업, 중소 상인들도 패러디를 차용한 광고카피나 간판을 내걸어 실 소를 자아낸다. 기억나는대로 기술하면, ‘태극기 휘날리 며’의 아류인 ‘성적표 휘날리며’(모 수학전문학원 광고카피), 한자성어 ‘위풍당당’을 흉내낸 ‘위풍닭닭’, 패스트 푸드업체 ‘맥도날드’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떡도날드’등이 대표적 사례다. TV 프로그램 중에는 ‘브레인 서바이벌’의 제목과 형식을 비튼 ‘노브레인 서바이벌’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웃 일본의 경우는 빅히트를 친 만화책의 제목이나 장면에서 아이디어를 빌린 패러디 광고물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하지만 모든 패러디 광고가 환영을 받는 것은 아니다. 어떤 패러디 광고는 고민한 흔적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는, 그냥 ‘베끼기’식의 성의 없는 것들도 적지 않다. 영화나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 그 유명세에 편승해 적당히 묻어가자는 안이한 발상인 셈이다. 이는 단순모방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패러디 광고를 비롯해 전체 광고문화의 질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

인천대 전영우 교수(신문방송학)는 “잘 만들어진 패러디 광고는 소비자에게 웃음과 유머를 선사하는 청량제 역할을 하지만, 단순히 널리 알려진 원작의 인기에 편승하기 위한 목적으로 패러디 광고가 남발된다면, 광고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을 가져오고 광고의 질적 저하를 불러 올 것”이라고 말한다. 패러디도 창작에 버금가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독창 적이고 신선한 시각으로 원작을 비틀지 않는다면, 남의 것을 베끼는 표절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똑같은 소재를 쓰더라도 참신한 아이디어가 가미된 패러디 광고는 웃음 을 주지만, 단순모방에 그친다면 또 하나의 공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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