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광수생각」으로 보는 통합과정
1. 부상적인 것으로서의 「광수생각」
「광수생각」을 부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려면, 어떠한 점에서 「광수생각」이 새로운 것이며, 어떠한 '새로운' 집단으로부터 파생된 문화적 산물인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형식과 내용, 필자라는 측면에서 「광수생각」을 부상적인 것으로 파악하려 한다.
1) 형식
신문의 '시사만화'는 형식면에서 한 컷짜리와 네 컷짜리로 고정되어 있다. <조선일보>의 경우, 「조선만평」이 한 컷짜리 만화이며, 「독불장군」과 「Mr.삐삐」가 네 컷짜리 만화이다. 이러한 형태는 모든 종합 일간지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광수생각」은 형식에서부터 이들과 다르다. 우선 전체 크기가 '시사만화'의 약 4배에 이른다. 또한, 컷수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1컷에서부터 무려 16컷에 이르기까지 그날그날 다양하게 바뀐다. 그림체조차 기존의 신문만화들과는 판이하다. 로트링 펜으로 윤곽을 그리고 컬러를 입히는 방식과 둥근 선은 만화라기보다는 일러스트레이션의 그림체에 가깝다. 또한, 밑그림이 끝난 후 전 작업은 컴퓨터로 이루어진다. 이 역시 컴퓨터 일러스트레이션의 작업 방식이다. 시각적으로 훨씬 눈에 띄는 넓은 면적과 단순하고 디자인적인 요소가 강한 그림체는 영상 세대로 불리는 젊은 세대들과 부합하는 문화적 표현 양식이다. 또한, 컴퓨터 작업 역시 컴퓨터 세대라고 불리는 이들 젊은 세대의 문화 산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 내용
광수생각은 내용 면에서 '시사 만화'와 확연히 구분된다. '시사만화'는 한 컷짜리와 네 컷짜리로 형식이 다른 경우에도 내용상으로는 둘 사이에 차이가 없다. '시사만화'는 그날그날 정치면과 사회면의 주요기사를 만화로 요약하며, 약간의 '풍자'를 곁들이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보도기사와 밀접한 상호연관성을 가지는 것이다. 비교연구를 위해 「광수생각」의 조사 기간동안 함께 살펴본 「독불장군」과 「Mr.삐삐」의 경우 그날의 만화 내용과 신문 기사 내용이 100% 일치하였다. 그러나, 「광수생각」의 경우, 조사 기간 동안 그날의 신문기사 내용이 만화에 그대로 반영된 경우는 단 5회에 불과하였다. 이는 "그날 기사의 응축물"로서 기능하던 신문만화의 관념을 송두리째 뒤집는 것이다 「광수생각」은 일반 연재만화와는 달리 그날그날 내용이 독립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시사만화'와 그 맥을 같이 하지만, 기사와는 별개로 만화 자체가 독립하여 존재한다는 점에서 '시사만화'와 크게 다르다.
그날의 신문기사를 풍자를 곁들여 단순 나열하는 '시사만화'와는 달리 -이것은 한 컷과 네 컷이라는 형식상의 제약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특성이다- 「광수생각」은 신문만화가 아닌 일반 만화처럼 '스토리 라인'이 있다. 하나의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글씨와 그림을 넓은 공간 속에서 필요한 만큼 채워넣을 수 있는 그 형식적 특징이 이러한 '이야기'의 전개를 가능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러한 스토리의 대부분은 '썰렁한 개그'로 채워진다. 「광수생각」의 내용상의 특징은 마치 명랑만화를 떠올리게 하는 듯한 '우스개 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토리를 가진 우스개 소리 -그것도 신문의 기사와는 관계없는- 라고 하는 것은 기존의 신문만화라는 관념을 완전히 뛰어넘는 내용상의 특징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탈정치적이고, '썰렁한 농담'과 '사오정 시리즈'를 즐기는 오늘날의 젊은 세대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3) 필자
「광수생각」의 박광수는 '박광수. 만화가겸 일러스트레이터. 신뽀리(실제 인물로, 물건을 잘 훔쳐서 불은 별명)를 주인공으로 열심히 상상의 나래를 펴는 중. 나이는 29세'로 연재 첫날 만화 밑에 가볍게 소개되었다. 여기에는 학력도 출신지도 나와 있지 않다. 경력 역시 없다. 이 일반적이지 않은 프로필 만큼이나 박광수라는 필자의 경력은 일반 시사만화가들과는 상당히 다르다. 대부분 '시사만화가'로서의 길만을 걷는 시사만화가들과는 다르게 박광수는 일러스트레이터이다. 또한, <조선일보>가 첫 연재가 아니라, 무가지 <PAPER>에서 먼저 3년 가까이 일을 했었다. 심지어 <조선일보>에 연재를 시작한 후에도 박광수는 <PAPER>의 작업을 계속하였다. <PAPER>는 '스트리트 페이퍼'라는 형태로 흔히 불리는, 길이나 까페에 쌓아놓고 가져가고 싶은 사람이 가져 가도록 하는 무가지(無價紙)이다8). 기존 출판계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새로운 개념의 잡지인 셈이다. 이 잡지의 창간초부터 일을 했다는 사실은 박광수가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지배적인 문화와는 태생을 달리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일러스트레이터라는 그외 본래 직업은 '시사만화가'라는 지배문화 내의 집단과도 그 궤를 달리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2. 「광수생각」의 통합과정
「광수생각」을 연재 형태상의 변화가 있을 때를 기준으로 하여 4시기로 나누어 보았다. 제1기는 연재 처음에서부터 최초로 「광수생각」과 신문기사와의 일치가 나타났던 1997년 6월 6일 이전까지로 보았고, 제2기는 그후부터 매주 토요일에도 「광수생각」이 연재되기 시작한 1997년 10월 6일 이전까지로, 제3기는 일요일을 포함하여 매일 「광수생각」이 연재되는 것과 동시에 매일 컬러로 실리기 시작한 1995년 1월 12일 이전까지로, 제4기는 1998년 1월 12일 이후부터 1998년 3월 31일까지로 보았다. 형태상의 시기구분을 기준으로 시기별 내용을 자세히 분석한 결과, 내용상의 변화가 시기별로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그 내용상의 변화를 통해 「광수생각」이 <조선일보>의 지배적 문화 속으로 통합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제1기를 부상기, 제2기를 조율기, 제3기를 포섭기, 제4기를 완전통합기로 구분하였다.
1) 제1기(1997.4.4-1997.6.5): 부상기(浮上期)
제1기는 「광수생각」이 비교적 '부상적인 것'으로서의 원형을 지켜내고 있던 시기로 볼 수 있다. 1997년 4월 4일의 첫 연재물은 '부상적인 것'으로서의 광수생각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난 만화 가운데 하나이다. 1997년 4월 4일자 원고는 바퀴벌레를 퇴치하기 위해서, 바퀴벌레를 잡아서 갖은 고문을 한 후, 동료들에게 돌려보내면 겁에 질린 바퀴벌레들이 옆집으로 이사간다는 그야말로 황당한 스토리이다. 이때에는 「광수생각」 이라는 만화 이름도 없었으며, 「광수생각」이라는 제목을 갖게 된 큰 이유인 만화 끝에 필자가 붙이는 일종의 코멘트인 '광수생각'도 없다. 말 그대로 '재미'를 위한 작품이다. <조선일보> 편집부에서 박광수가 제시한 일곱 개의 작품 중 '가장 재미있기 때문에' 이 작품을 싣기로 했다9)는 사실을 통해 「광수생각」이 가진 부상적인 것으로서의 성격을 잘 알 수 있다. 애초에 '시사만화'의 미덕인 '풍자'라는 것은 「광수생각」에 있어서는 전혀 문제가 안되었던 것이다. 무가지 <PAPER>의 성격에 보다 가까운 이러한 '재미추구'는 이 시기 「광수생각」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주제이다. 비록 이 시기에 앞으로의 연재기간 동안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모든 소재가 청소년/교육 문제를 제외하곤 다 등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식을 뒤집는' 썰렁한 개그가 이렇게 높은 빈도를 차지한 것은 이 시기 이후에는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조선일보>는 부상적인 것을 끌어안기 위해 일단 전면적으로 「광수생각」의 이러한 새로운 면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상식 뒤집기'가 총 42개 꼭지 중 8개로 19%를 차지하였고, 그 뒤의 시기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 음주 운전에 관련된 내용이 7.1%, 외모에 관한 것이 7.1%를 차지한 것은 다른 시기와 구분되는 이 시기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음주운전에 관계된 내용 역시 '음주운전을 피하는 법' 등의 우스개 소리와 관련된 내용이고, 일상에서 많이 느끼게 되는 사실에 관한 것이다. 외모에 관한 것도 박광수 개인의 문제와 관련되어 못생긴 사람과 뚱뚱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 시기 「광수생각」은 탈정치적이고, 파격적이며, 생활에 밀착되어 있고, 재미를 추구한다는 '부상적인 것'의 면모를 잃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일보>는 일단 별도의 통할 과정 없이 「광수생각」의 부상(浮上)을 전면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주말인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게재를 하지 않았고, 본래 컬러로 제작된 원고를 흑백으로 게재한 것은 「광수생각」의 전면 부상을 어느 정도 통제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2) 제2기(1997.6.6-1997.10.5): 조율기
최초로 컬러 원고가 게재된 것이 1997년 6월 16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때를 분류 기준점으로 삼지 않고 1997년 6월 5일을 기준으로 삼은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우선, 컬러 원고가 처음 게재된 이후에도 주1회 혹은 2회라는 식으로 고정화 되지 못하고 간헐적으로 실렸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 또한, 1997년 6월 6일자의 「광수생각」은 내용에 있어서 그 이전의 원고와 획기적일 정도로 차이점을 보인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이 원고의 스토리는 돌팔매질을 잘하던 동생을 둔 형이 전경이 되어서, 운동권 학생으로서 돌을 손에 쥐고 있는 동생과 맞닥뜨린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유머도 없다. 「광수생각」의 제1기(부상기)에서는 유사한 경우를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진지하다. 그리고 마지막 '광수생각'은 '동생은 나를 향해 돌을 던지진 않았습니다. 우리는 형제입니다.'로 끝난다. 이 '광수생각'을 보고 1997년 6월 6일자 원고를 '가족사랑'으로 분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잠시 이 날의 「조선만평」과 「독불장군」, 「Mr.삐삐」를 살펴보자.
한 일간지에 실리는 만화가 3-4개라면 그 중 한 두 개 정도는 내용이 겹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날 게재된 모든 만화의 내용이 같다면 그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997년 6월 6일이 바로 그러한 날이다. 이 날 「조선만평」과 「독불장 군」, 「Mr.삐삐」 - <조선일보>가 게재하고 있는 세 시사만화 모두가 한총련이 무력 시위로 국민의 지지를 잃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이 시사만화들과는 별개의 내용을 다루어오던 「광수생각」 역시 그날은 한총련에 대한 만화를 실은 것이다. 「광수생각」의 경우는 직접적으로 한총련을 비난하고 있지는 않지만, 형에게 '돌을 던지는 입장'의 대학생 동생을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심정적으로 같은 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결론은 '형제이기 때문에 돌을 던지지 않는' 동생이다. 이것은 한총련이 데모를 하게 된 사회적 상황보다는 '돌을 던지는 상황'에 초점을 두며, '형제애'로 은유되는 '인간적인' 합의로써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조선일보>의 논조와 매우 흡사하다. 그렇기 때문에 1997년 6월 16일이 아닌 1997년 6월 6일을 기준으로 해서 <조선일보>의 「광수생각」 조율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 후 컬러 지면이 부정기적으로 실리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조율 과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이때부터 가족 사랑이 28.6%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대체로 이러한 성향은 계속 이어지는데, 그 중에서도 조율기에 있었던 이 시기가 가장 높다. 반면, 부상기에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였던 '상식 뒤집기'는 19%에서 2.6%로 폭락한다. 2위가 '좋은 말'로 22.1%, 3위가 '계몽'으로 16.9%이다. 이것은 상식적이고 계몽적인 내용을 많이 싣는 <조선일보>의 성향과도 일치해 1998년 6월 6일을 기점으로 「광수생각」이 <조선일보>에 의한 조율에 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광수생각」이 '상식 뒤집기'로서 '부상적인 것'으로서의 특성을 강하게 나타내었으나, '살아남기 위해서'10) <조선일보>적인 요소들을 도입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3) 제3기(1997.10.6-1998.1.11): 포섭기
1997년 10월 6일부터는 이제까지 주중에만 연재되던 「광수생각」이 토요일에도 연재되기 시작한다. 이것은 <조선일보>의 「광수생각」에 대한 일종의 보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동시에 「광수생각」이 <조선일보>에 자리를 잡아가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시기는 제2기에 보였던 내용적인 특징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더이상 '상식 뒤집기'는 찾아보기 어려우며, '가족사랑'이 가장 높은 비중(23.4%)를 차지하고 있고, '계몽'과 '좋은 말'이 2, 3위를 기록하고 있다. 특기할만한 것은 시사적인 내용이 무려 14.3%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음 제4기에서 볼 수 있듯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지 않고, 제3기 때에만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에 그친다. 이는 이 시기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완전 통합되어 이미 '지배적인 것'의 일부가 되어버린 제4기에 비해서, 포섭되는 과정에 있었던 제3기에는 상대적으로 <조선일보>의 방향성에 이끌린 경향이 짙었다고 설명할 수도 있겠다.
4) 제4기(1998.8.12-): 완전통합기
제4기에 이르면 「광수생각」은 완전한 안정세를 보인다. 일요일을 포함해서 매일 게재가 되며, 더구나 매일을 컬러로 연재가 된다. 이것은 「광수생각」의 형식적인 특징이 완전히 인정받았음을 의미하며, 동시에 상당한 독자층을 확보하였음을 뜻한다. 제3기말인 1998년 1월 1일에 <조선일보>는 「광수생각」 특집 기사를 게재하기도 하였다. 11)
조율기와 포섭기에서 보여지던 성향이 여기에서도 계속 유지되며, 특징적으로 '사랑'이라는 항목이 15.9%로서 '계몽'을 제치고 3위로 뛰어오른다. 이 '사랑'이라는 항목은 <조선일보>가 표방하는 계몽이라는 항목을 벗어나 완전히 탈정치적이면서도 동시에 <조선일보>의 보수적 성향과 완전히 대치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중간적 지점에 위치한다. 또한, 현실을 벗어난 추상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그 외에는 여전히 가족 사랑이 26.1%로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우리사회에 전반적으로 깔려있으며, 특히 <조선일보>에서 두드러지게 표방하고 있는 '가족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고 있다.
3. 통합된 것으로서의 「광수생각」
완전 통합기에 들어선 이후의 「광수생각」은 '지배적인 것'으로서의 <조선일보>의 영역에 완전 통합되어, '지배적인 것'으로서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1) 가족 중심 이데올로기
부상기에서도 높은 수치를 차치하긴 하였으나, 조율기 이후로 수위(首位)로 뛰어올라 계속 높은 비율을 기록한 것이 바로 '가족 사랑'이라는 내용이다. 이것은 비록 「광수생각」이 신문기사와 연관된 내용이나 주제를 다루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조선일보>의 방향과 맥을 달리 하지만, 정치면을 벗어난 전반적인 논조 즉, 한국사회를 뿌리깊게 관통하고 있는 가족 중심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나타낸다. 특히 가족 중에서도 아버지와 자식에 관한 내용이 어머니와 아내에 관한 내용보다 6:4의 비율로 더 많다는 사실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반영으로 다소 성급하게 결론을 내려볼 수도 있겠다. 특히, 「광수생각」에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우스개 소리에 이은 '광수생각'으로 우회적으로 표현되는 방식 대신, 아버지가 떠나시고 난 뒤에 무덤가에서 그리워하는 내용이라든지, 수화로 '사랑합니다'를 말하는 내용 등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광수생각」에는 효 이데올로기, 가족 이데올로기,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여러 가지 다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조선일보>가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는 '보편적 정서'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기존 질서를 비웃는 듯한 초기의 「광수생각」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순응적인 모습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2) '작은 현실'의 '탈현실'화
통합기로 접어든 이후에 「광수생각」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특징은 '사랑'에 관한 내용이 10%가 넘는 증가율을 보이며, 일약 3위로 진입했다는 사실이다. 부모에 대한 사랑, 친구에 대한 사랑이 아닌, 그저 '사랑'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역시 직접적인 정치적 색채를 띠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부상적인 것'의 면모를 유지하는 것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디'에 적용했다는 것도 없는 그냥 '사랑'이라는 것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극도의 추상화이며, 동시에 '사랑'으로 모든 것이 용납된다는 체제 순응적인 메시지이다. '사랑'은 손에 잡히지 않는 실체이며, 현실에 비추어지지 않은 '사랑'이라는 '관념' 그 자체는 어찌보면 가장 비현실적이다. 「광수생각」이 주변의 작은 이야기들을 한다고 하지만, 우리 주변에 과연 관념뿐인 사랑이 떠다니고 있단 말인가? 결국 통합되고 난 이후의 「광수생각」은 가장 추상적인 '사랑'에 15.9%라는 높은 비중을 내어줌으로써, '음주운전'이나 못난 '외모' 같은 우리의 가장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담론의 바깥으로 추방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3) 상업적인 성공
통합된 것, 다시 말해 '지배적인 것'으로 「광수생각」이 가질 수 있는 특징은 당연히 '지배적인 것'으로서의 '대접'일 것이다. 「광수생각」의 상업적인 성공은 이미 '지배적인 것'의 위치로 올라선 「광수생각」의 위치를 잘 나타내어 준다. 완전 통합기에 들어선 1995년 1월부터 광수생각은 '광고'라는 자본주의적 지배문화의 꽃으로 등장하게 된다. 휴렛 팩커드 사(社)의 광고에 등장한 「광수생각」의 캐릭터 신뽀리와 박광수는, 이후 「광수생각」 만화원고와 같은 양식의 만화, 혹은 신뽀리 캐릭터 단독으로 도서 상품권 광고, 대우 자동차 마티즈 광고, 코리아나 화장품 광고 등에 계속 나오게 되고, 캐릭터 문구류도 출시된다. 한편, 필자 박광수는 라디오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패널로서 출연하며, 「지금 달에는 닐 암스트롱이 살고 있다」, 「광수생각」, 「광수생각2」의 책까지 출간한다. 이러한 상업적인 성공이야말로, '지배적인 것'의 일부로서의 「광수생각」을 가장 잘 나타내어 주는 특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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