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결론
지금까지 「광수생각」이 젊은 세대의 문화적 부산물이라는 새로운 '부상적인 것'에서 어떻게 '지배적인 것'인 <조선일보>에 통합되어 가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았다.
'상식을 뒤집는' 우스개 소리와 사소한 소외받는 일상을 중심으로 그리던 '부상적인 것'으로서의 광수생각은 <조선일보>의 '한총련' 보도와 맥을 같이 한 것을 계기로 통합과정에 들어가 가족 이데올로기적 계몽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였고, 시사문제를 반영함으로써 토요일에도 게재되는 보상을 얻는다. 또한, 추상적인 나아가 탈현실적인 성향을 띰으로써 <조선일보>적 체제에 나름의 방식으로 정착하게 되고, 이것은 매일 게재와 전면 컬러화, 상업적 성공이라는 보상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서론의 이론적 논의에서 보았듯이 비록 통합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지배적인 것'의 '부상적인 것'에 대한 인정이나 시인, 어떤 형태의 용납과 같은 것이 나타난다. 즉, 통합에 대한 항거의 형태로서 극소적 잔여물이 남아 마치 '부상적인 것'이 '지배적인 것'에 '통합'된 것이 아니라, 승리를 얻은 것처럼 오인될 소지가 남게 되는 것이다. 「광수생각」의 통합과정에도 이러한 극소적 잔여물은 존재한다.
첫째, 「광수생각」의 자유로운 컷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광수생각」이 <조선일보>에 완전 통합된 이후로도 1컷에서부터 16컷에 이르는 자유로운 컷 나누기는 '젊은 세대'의 자유정신을 반영하듯 변함이 없었다.
둘째, 로트링 펜으로 그린 일러스트레이션을 연상시키는 그림체와 기존 시사만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컬러의 사용 역시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오히려 완전 통합기 이후에는 컬러로 그렸음에도 흑백으로 계속 게재되던 관행을 깨고, 전면 컬러 게재로 이어지고 있다.
셋째, 원고의 본문 부분의 우스개 소리는 대개의 경우 그대로 존속되고 있다. 물론 '심각한' 스토리로 전개되는 원고도 존재하지만, 대개의 경우, 이빨을 빨리 빼면서 돈을 많이 받는다고 불평하는 환자에게 '그럼 천천히 빼드릴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치과의사의 얘기(1997년 11월 11일자)처럼 유머라는 소구 방식은 그대로 유지된다.
넷째, 사소한 일상성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유지되었다. 월척을 자랑하는 아버지의 이야기(1998년 2월 20일자)나 연예인이 맘에 안들어 TV 채널을 돌려버리는 이야기 (1998년 3월 20일자)에는 여전히 작은 현실이 녹아있다.
다섯째, '만화'라는 독립적인 영역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광수생각」은 여전히 기존 시사만화들과는 달리 기사 내용과 독립적이며, 심지어 '여론'이나 '사회'면이 아닌 '만화'면에 게재된다. 또한, '사건'의 짜집기가 아닌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여전하다.
그러나, 이렇게 '유지되는' 면에도 불구하고, 이것들은 '극소적 잔여물'로 인식해야 하지, '부상적인 것'에서 '또 다른 지배적인 것'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라고 오인해서는 안된다. 「광수생각」에 남아있는 '추상적인 것'으로서의 특질은 '형식'이라는 측면에 집중되어 있다. 분명 「광수생각」은 아직도 자유로운 컷에, 일러스트레이션 스타일의 그림체, 컬러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형식일 따름이다.
비록 「광수생각」이 예전의 우스개적인 스토리를 유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본문 자체일 뿐이지 전체적인 「광수생각」은 그렇지 않다. 1997년 11월 11일자의 경우도 원고 자체의 줄거리만 보면 우스개 소리이지만, '광수생각'을 보면 내용이 바뀌게 된다. '광수생각'은 훌륭하신 분이 대통령으로 뽑혀야 될 텐데요‥‥ 라고 '코멘트'를 달고 있고, 그 순간 「광수생각」은 '우스개 소리'에서 '훌륭한 대통령이 뽑히기를 바라는 기원'으로 바뀌는 것이다. 「광수생각」을 「광수 '생각'」이도록 하는 '광수생각'은 이런 식으로 '우스개 소리'의 '원형'을 갖고 있는 「광수생각」의 본문을, '지배적인 것'에 '통합'된 형태로 바꾸며 마무리 짓는 것이다.
또한, 「광수생각」의 일상성이라는 것은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광수생각」보다 뒤에 나온 <동아일보>외 「대한민국 도날드닭」과 <한겨레>의 「박시백의 그림세상」 역시 기사와는 다소 동떨어진 형태로 '일상'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경우 IMF로 힘든 가정 경제(「대한민국 도날드닭」 1998년 1월 27일자 "IMF 시대 백수 생활법"), 구직난(「박시백의 그림세상」 1998년 1월 20일자 "어떤 학구파 이야기")과 같은 좀더 고되고 어려운 현실로서 「광수생각」이 그리고 있는, 재미스럽고 애교있기조차 한 밝은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12). 즉, 「광수생각」의 일상성은 극도로 추상화된, '일상이라고 믿고 있는' 일상에 관한 것으로서 '현실성'을 획득하지는 못한다.
「광수생각」이 '만화'란에 게재되는 것도, 한편으로는 <조선일보>의 「광수생각」 받아 들이기 전략으로 파악할 수 있다. 형식적인 면에서 기존의 시사만화와 완전히 다르며, 시사만화적인 기능 -신문 기사의 요약·풍자- 을 해내고 있지 못하는 「광수생각」을 만화란으로 아예 분리시켜버림으로써 기존 질서와 배치될 수 있는 부분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광수생각」의 '부상적인 것'으로서 유지하고 있다는 보여지는 부분은 '보여지는 것'에 그치거나, '형식적인 것'에 머물 뿐이다. 따라서, 항거의 '잔여물'로 보아야지, 결코 '지배질서의 극복'으로 파악해서는 안된다. 「광수생각」은 <조선일보>라는 지배질서 속으로 '통합되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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