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한국방송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인식의 전환
"문민시대의 공영방송이란 경영의 자율성이 보장되고, 상업화에 연연하지 않을 만큼의 재원이 확보되어야 하며, 그에 따라 건전한 프로그램이 제작되어야 한다는 원칙에서 출발한다. 문제는 이 원칙을 어떻게 현실화 하느냐이 다."28)
개방의 파도가 우리나라를 휘몰아치는 상황에서 방송은 국가경영전략과 민족발전이라는 거시적 차원에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 국민적 염원이다.
국가경영과 민족발전이라는 전략적 차원에서 방송을 분석하려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을 깊이 고려해야 할 것이다. 첫째는 방송에도 경제논리를 적용해야 한다. 둘째, 방송이 민주주의를 고양시키는 매체로서의 과제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가 절실하다. 셋째, 물밀듯이 밀려오는 미국과 일본등 외국의 영상침투에 적극 대응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쌀시장까지 개방되는 마당에 방송 시장의 개방은 불보듯 뻔한 것이다. 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넷째, 남북 교류 및 통일에 대비하는 방송구조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한국방송제도를 본격적으로 검토하여 사회경제 및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을 찾으려면 다음과 같은 주제가 중요한 것들이다.
1. 민족경제력 강화와 방송경제
2. 방송사 소유양식의 경제성
3. 수신료와 광고의 성격
4. 방송사 조직의 경제성 및 자주성
5. 방송사 임금구조의 경제적 특성
6. 공익자금의 존폐여부에 대한 분석
7. 방송의 초국적 통제문제
8. 프로그램의 국제경쟁력 강화
방송채널은 늘어날 대로 늘어난데다가 유선방송 사업이 본격화되고, 지역민방까지 늘어난다면 한국경제는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제수준에서 채널은 2∼3개면 충분하다. 공민영체제니 다채널이니 하여 채널수가 더 늘어날 경우 막대한 사회적 낭비를 초래한다. 왜 그런가?
1. 1개 방송사 운영에 최소한 2,000억원이 소요되는 바 이 비용은 결국 사회 총비용으로 충당되는 것이다. 방송산업이 많은 사회자원을 흡수하게 되면 결국 도로, 철도와 같은 기간시설이나 탁아소, 양로원 같은 사회 복지비 지출을 억제하게 되어 너무나 많은 것을 희생할 수밖에 없다.
2. 대외적으로 기술종속, 문화종속이 한층 심화할 수밖에 없다. 방송기자재 및 장비의 국산화가 대단히 미흡한 상태에서 채널이 마구 늘어난다면 외국의 값비싼 장비를 수입해야 한다. 또 프로그램 수급상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해 결국 외국 프로그램을 수입해야 한다. 가뜩이나 민족문화의 황폐화가 우려되는 현 시점에서 다채널체제는 외화낭비 및 문화종속을 가속화시킬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현실을 충분히 고려한다면 채널 증가를 억제하고, 현행 방송제도를 최적의 상재가 되도록 하는 일이 시급하다. 개방과 사유화 시대의 방송 재구조화는 공민영이라는 단순 이분법 문제가 아니라 과연 방송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성격과 기능부여를 먼저 확정해야 한다. 다시 말해 시장개방과 시민권 의식이 제고되는 현 시점에서 방송의 사회적 책무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인 측면에서 먼저 논의해야 한다. 또 방송의 상업주의와 상업방송의 문제에 대해서도 다각적인 검토를 해야 한다.29)
현단계 한국방송에서 가장 심각히 논의해야 할 문제 중 하나는 공영방송의 체제 및 재원구조를 안정화하는 일이다. 참고로, 일본 NHK는 국가기관으로부터 독립된 존재이고 시민들이 직접 부담하는 수신료로 운영되며, 따라서 NHK는 시민에게 귀속된 방송이다.30) 영국 BBC도 이와 비슷한 위상이다. 이를 종합컨대 공영방송은 정부체제와는 소유 및 경영에서 독립적인 기구이며, 시민들이 내는 수신료를 근간으로 운영됨으로 궁극적으로는 이들에게 책임을 지는 제도이다. 시민대표성을 어떻게 공영방송 경영에 반영하느냐 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다음으로 방송의 경제문제를 살펴보도록 하자. 서구의 발달한 나라를 보면 방송의 경제력강화에 도움을 주는 방향에서 방송구조를 결정하는 것이 통례이다. 독점상태에서 방송사를 소유하면 엄청난 이윤은 물론 정치적 무기로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다른 나라의 대기업이나 정부가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러나 민족의 경제수준을 넘어서는 방송산업의 규모는 경제 기반을 해칠 위험이 많다. 그런데 재벌기업은 물론 중소기업까지 영화, 비디오, 유선방송산업에 투자하고 있어 그 여파가 상당히 크다. 이미 삼성, 현대 등 국내 9개 대기업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제작사를 설립하거나, 영화제작을 지원하고, 극장 인수와 비디오판권을 얻는 등 본격적으로 영상사업에 진출하였다.
이리하여 프로그램산업은 한층 복잡한 양상을 띨 것으로 보인다.
KBS의 정치적, 재정적 독립성 확보 문제는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자 결론점이다. 이것이 해결되어야 한국방송은 개방과 다채널시대에서 균형된 방송문화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 KBS의 공영적 재원구조를 마련하지 않고 프로그램의 품질을 비평한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안정된 재원은 이처럼 중요한 것이 다. 공영적 재정구조의 확보는 향후 KBS가 해결해야 할 최대 과제이다.
한국방송광고공사는 그 동안 무분별한 광고경쟁을 억제하는데 어느 정도 기여했으나 공익자금을 잘 활용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지난 12년간 한국방송광고공사는 무려 6천억원을 공익자금으로 징수했지만, 이것이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지출되었는지 궁금하다. 공익자금의 지출내용을 보면 이른바 문화예술사업에 65%, 언론분야에 24%나 쓴 반면 방송분야에는 고작 10%만이 투자되었다. 공익자금을 존속시킬 것인지 여부, 존속한다면 방송에 투자할 것인지 검토가 필요하다. 한편 방송의 지역기능을 강화하는 것도 당위론이지만 사회구조상 지역방송이 자리잡을 공간이 상당히 좁다는데 문제가 있다. 경제, 정치 등 거의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된 까닭에 소재발굴이 쉽지 않고, 지역국 예산, 인력이 불충분하며 편성권마저 본사에 있어 자치성이 결여되어 있다. 또 지역프로그램을 원하는 지역 수용자들도 많지만 여러 가지 이유에서 서울에서 공급하는 프로그램을 더 선호하는 경향도 있어 방송의 지역화가 어렵게 되어 있다. 다시 말해 지역방송의 토대가 너무 미약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31)
이 밖에도 어떻게 방송의 국제경쟁력을 확보할 것인가? 방송기술의 종속문제는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등등 앞으로 해결해야 할 관제가 많다. 방송개혁은 바로 이런 문제를 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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