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경영개혁의 특성
시장경쟁체제로 이행한 구미 각 국가의 공영방송은 존립이념과 경영 양면에서 내외적인 도전을 받고 있다. 거대한 자본의 논리가 전통적인 공적 영역에까지 침투하여 공영방송의 이념적 가치나 재정기반을 흔들었다.
1980년 이후 공영채널에 비해 상업채널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공영 일색이었던 유럽 각국에 상업채널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데 이를 국가별로 공영과 상업채널 수로 나누어 비교하면 이탈리아 3:6, 독일 3:4, 프랑스 2:4, 벨기에 4:2, 영국 2:3, 스페인 2:2, 네덜란드 3:2 등이다.
이런 가운데 공영방송은 이윤을 극대화하거나 아니면 공공성을 극대화하는 두 가지 길 가운데 한 가지만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있다.17) 그러나 어떻게 선택하든 상관없이 공영방송의 사회적 영향력은 약화되고, 경영상태는 더욱 나빠질 것이다. 이윤동기가 지배하는 환경에서 공영방송이 생존할 수 있을 것인지가 문제의 핵심 이다.
1. 생산성 향상과 경영다각화
공영방송이 당면한 최대 과제 가운데 하나는 어떻게 생산성을 향상시키느냐 하는 문제로 압축된다. 긴축재정을 통한 운영의 효율성 제고는 모든 공영방송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길이다. 효율성은 최근 공영방송의 경영개혁에서 핵심을 이루는 개념이다. 정부와 공영방송 모두 효율성 제고에 대한 명제에는 이견이 없다. 공영방송은 방대한 조직과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영하지 못하면 붕괴 된다는 위기감에 쌓여 경제성 강화에 역점을 두기 시작하였다.
공영방송은 단순한 절약의 차원을 넘어서 방송경영에 '절약의 경제학'이란 새로운 운영철학을 도입하였다. 그 동안 공영방송은 이윤보다는 운영비 화보에 더 충실하고, 노동조건이 악화하지 않는데 더 주력해 왔다. 그래서 비효율적, 비생산적 요소가 많이 나타나 절약형 경영방식의 도입으로 효과를 얻고 있다.
공영방송사는 생존을 위해 모든 자원활용을 총점검하여 경제성을 극대화하되 방송의 공영성 확대에 역점을 두어 투자하는 절약의 경제학에 충실해졌다. 시장경제에서 운영되는 공영방송도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며 산업이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생산방식을 찾아 시장변화에 대처하는 것은 당연하다. 신규인원 증가억제 및 감원을 통한 인건비 절약, 값비싼 출연진 억제, 버라이어티 쇼 같은 고가의 프로그램 축소에 따른 제작비 절약 등이 보편적인 절약의 방법이다.
공영방송사는 긴축재정을 위해 조직을 감량하고 있으나 성과와 더불어 공영 방송이 이윤논리에 종속된다는 문제점도 함께 드러났다. 그래서 자연감소로 인원을 줄이는 등 아직 까지는 급격한 감량경영을 억제해 왔다. 일본HHK는 신규인원을 적극 억제하는 대신에 자연감소를 유도하여 직원규모가 1979년 16,920명에서 1992년 13,990명으로 줄었다. 프랑스 공영방송도 900명 전도를 감원하였다 자연감소로는 비용을 절감하는데 한계가 있어 인원을 감량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래도 경영상 어려움을 타개하지 못해 좀더 대대적으로 감량하여 조직을 정비할 예정이다. 영국 BBC는 지난 5년간 약 6천명 가량을 감원하였고, 스페인 RTVE는 총인원의 30%인 2,710명을 감원하였다. 그리하여 1,100개 관리직이 750개로 줄어 들었다.
BBC는 시시각각 죄어오는 재정 압박에 못 이겨 제작비마저 깍아 제작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정도이다. 경영진은 1994-5년도 예산에서 제작비를 2-8% 가량 깎을 것을 제작부서에 지침을 내렸다.18)
공영방송의 조직과 인력운영상의 관료주의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BBC같은 방송은 조직의 탄력성과 경제성을 해치는 관료주의를 청산하기 위해 '조직의 문화혁명'을 추진하였다. 이처럼 관료주의 폐해를 극복, 효율적으로 일하고 자원을 활용하는 것도 공영방송이 가야할 길이다.
자원재활용 개념을 적극 도입하여 경비를 절감하는 것도 주목할만한 현상이다. 방송자원의 재활용은 무엇보다도 프로그램 재가공 능력을 축적한 후 재방송프로그램의 비율을 높이는데 핵심이 있다. 유럽의 방송은 평균 28% 정도의 재방송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다. 1990년 영국 BBC는 두 채널을 합해 1만 2,589시간을 방송하였는데 이 중 33%인 4,155시간이 재방송이었다.19)
하지만 적게 써서 문제가 해결되면 얼마나 좋은가? 공영방송이 전국민에게 충실한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엄청난 자원이 필요하다. 경비절감만 가지고는 경영난을 해소하지 못함에 따라 획기적인 경영개혁이 요구되는 것이다.
프랑스 공영방송은 만성적인 적자에 허덕이다가 균형재정 유치, 방송수입의 다양화, 수익성 극대화를 골자로 한 경영개혁을 실시하였다. 그래서 1992년에 균형재정을 이를 수 있었다. 광고의존도를 높이고 상업성에 치중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자를 내던 프랑스의 F2와 F3는 경영방식을 대폭 바꿔 광고의존도를 낮추고, 공공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다.
일본 NHK는 1989년부터 '신 경영전략'을 도입해 사업 다각화, 계열사 확대 및 효율적 개편, 감원, 고가의 프로그램제작을 억제하는 등 비용 중시의 경영 책을 썼다. 효율성을 높이는 한편, 30개 계열기업을 둔 다각경영으로 수입규모를 확대하는 것이 HHK '신 경영전략'의 핵심이었다. 다시 말해 신 경영전략은 21세기 언론산업에서 NHK가 정보센터로 탈바꿈한다는 전략으로 결국 'NHK 상업화'를 말한다. 방송기술에서도 타국을 압도하자는 전략을 세워 하이비전개발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NHK의 공공성이 급속히 퇴조한다는 비판여론이 비등하고, 신 경영전략의 부작용이 너무 커 최근에는 수신료 중심제로 복귀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영 방송사들은 1980년대 중반 무렵부터 '탈 수신료' 운영체제를 핵심으로 한 '신 경영전략'을 기초로 경영을 합리화하고, 사업을 확대하였으나 부분적인 성과를 거두는데 그쳤다. 신 경영전략도 항구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난 것이다.
경영개혁도 공영방송에 안정된 재원을 공급해 주지 못함으로써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대체재원이나 복합재원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재원다각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공영방송은 경영상 순 이익률이 크게 떨어져 운영비 확보에도 어려움이 있다. 순 이익률을 방송사별로 보면 BBC가 -1.1%, ARD가 -4.7%, RAI가 0.1%로 경영상태가 대단히 악화되었다. 공영방송은 적자 아니면 겨우 균형재정을 이를 정도로 수 년간 경영이 부실한 곳이 많다.
광고판매까지 부진하여 수익률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나라도 많은데 예를 들자면 독일 ZDF는 1965년 이래 처음으로 광고시간을 전부 팔지 못해 경영이 더욱 악화되기도 했다.
BBC나 NHK는 수신료를 주요재원으로 삼지만 정부보조금 및 사업수익을 꾸준히 늘렸다. BBC는 국제방송 운영비 명목으로 정부보조금을 받으며, 프로그램 판매 및 출판사업 등의 사업수입도 상당해 재원다각화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편이다. BBC 사업단은 BBC 총수입의 11.1%에 이르는 2천 4백억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사업단은 이윤증대를 위해 프로그램, 비디오, 출판사업을 통합해 운영하였다. BBC는 국제시장에서도 프로그램은 물론, 방송기술, 재교육 등을 상품화하여 상당한 수입을 올린다. 그래서 총수입의 15% 정도가 비 수신료 수입이다. 오래 전에 BBC는 상업주의를 적극 도입, 이윤화대에 주력해 왔다.20)
NHK는 1984년까지만 해도 총수입의 0.67%만이 부대수입이었으나, 상업주의 논리를 강화하면서부터 1.53%로 올랐다. 이러한 증가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여러가지 사정을 보아 공영방송은 수신료수입 이외에 비수신료 수입을 한층 늘리는 것이 보편적이다. 한편 방송 외 사업수입의 증대도 상당히 중요하다. 출판, 기술서비스, 문화사업 등을 확대하는 것도 보편적으로 도입되는 다각경영방식 이다.
2. 사례분석
1) 프랑스 방송개혁 프랑스 공영방송은 광고시간의 증대, 장비판매 등의 기술사업, 프로그램 판매 등으로 수입을 중대해 왔다. 그러나 수신료와 광고를 기반으로 2개 텔레비전채널을 운영하는 프랑스 공영방송 F2와 F3는 모두 두 가지 재원의 수입이 격감하여 수 년간 적자에 허덕여 왔다.
수십 년간 3개 공영채널이 수신료·방송광고를 독점하였지만 1986년 시작된 시장경쟁체제로 인해 광고수입이 격감하고 수신료 수입도 정체되어 공영방송은 재정난을 겪게 되었다. 1987년 제1공영 채널인 TFI이 떨어져 나가자 프랑스 공영방송은 결정적인 타격을 받고 흔들렸다. 더욱이 상업방송·유선방송·위성방송과 힘겨운 경쟁에서 배겨나지 못한 공영방송의 시청점유율이 충격적일 정도로 떨어지고, 상업방송과 경쟁하다 보니 제작비가 턱없이 상등했고, 인건비도 껑충 뛰어 경영난이 심화하였다.
경쟁체제하에서 공영방송은 환경변화에 맞추어 역할을 재설정하고 안정된 재원을 확보해야 하는 이중적 압박을 받아 왔다. 그러나 사정은 여의치 않다.
공영방송의 광고상황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앞으로도 경영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1987년만 해도 F2가 42%, F3가 8%의 광고시장을 점유하였으나 1990년에는 각각 15%, 7%로 크게 줄었다. 주요 시청시간대에 광고주가 떨어져 나가 광고매상고가 40%나 하락하였다. 고육지책으로 F2는 광고요금을 인하하였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그래서 1990년 한 해 F2는 985억원, F3는 442억원의 적자를 보았다 1991년에도 적자가 이어졌다.
미테랑 대통령은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F2와 F3의 경영안정을 위해 친구인 부루쥐를 공동사장에 임명하였다. 부루쥐 공동사장은 취임하자마자 정부로부터 5억 프랑의 긴급지원금을 받았으며, 1991년 다시 9.76억 프랑을 공급받았다. 정부는 지원금을 주면서 다음과 같은 조건을 내걸었다.
-공영방송의 적자 체질을 개선한다.
-F2, F3를 통합적으로 운영한다.
-감원과 경비절감으로 경영을 합리화한다.
부루쥐 공동사장은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여 '공영 텔레비젼 재건 4개년 계획'을 수립, 경영합리화 작업에 들어갔다. 이 계획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21)
-진정한 마케팅체제를 도입한다.
-투자능력을 강화한다.
-제작시스템을 정비한다.
-인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한다.
-최상의 영업조건을 구현한다.
-생산성을 향상한다.
-과학적인 경영체제를 확립한다.
프랑스 공영방송사는 경영합리화로 약 4.5억프랑을 절약하여 이를 제작비에 투입하였다. F2, F3는 자구책을 도입하는 동시에 정부보조금을 늘리는 전략을 도입하여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자구책 마련을 높이 평가한 정부는 1992-3년 회기에 또다시 1,200억원의 자금을 특별지원하였다. 그러나 적극적인 경영합리화도 공영방송의 재정불안정을 말끔히 해소하지는 못하였다.
프랑스 정부는 공영방송체제를 좀더 근본적으로 재편하기 위해 공영방송특별위원회를 설치한 바 있다. 지난 9월 특별위원회는 최종보고서를 내고 두 가지 안을 냈다. 제1안은 공동회장제를 존속시키되, 채널사장을 따로 두고 사장과 경영진은 운영위원회에서 선출한다는 것이다. 두 명의 사장이 각 채널의 예산, 인사 등에 관한 권한을 갖도록 되어 있다. 채널은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계열사도 운영위원회의 통제를 받는다. 제2안으로는 감시위원회가 두 채널을 통제한다는 것이다. 감시위원회가 채널사장과 경영진을 임명하며, 각 사장이 전권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공영방송특별위원회가 내놓은 최종보고서의 특징은 기존의 단일경영체제를 탈피해 운영위원회나 감시위원회 같은 집단경영체제로 권력구조를 바꾼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영합리화와 정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매년 광고수입이 격감하여 1992년 2채 공영채널의 광고시장 점유율이 25%에 그치는 등 경영난이 해결될 기미가 없다. 이는 상업채널과의 경쟁에서 계속 밀려 광고시장에서도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설상가상으로 공영방송이 상업화하고 있다는 비판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공영방송이 시청률경쟁에 치중하여 상업방송화하는데다가 전통적으로 우수한 프로그램으로 평가 받던 것이 하나 둘씩 화면에서 사라지고 있어 프랑스식 경영개혁이 공영방송의 전통을 스스로 허무는 것이 아니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2) 영국 BBC의 개혁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영국 BBC는 1992년 결산보고서와 BBC 경영방침을 제시하는 보고서를 발행하였다. 이 보고서는 경영을 한층 합리화하여 20세기 말에도 '생존'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BBC 개혁은 엄격한 경제논리의 적용이라 부를 만큼 효율성과 합리성을 중시하여 약 3천5백억원의 경비절감을 목표로 하고 있다. BBC는 자원과 간접비를 절약한다는 방침아래 감량경영을 해왔다. BBC는 전환기 공영방송의 경영철학으로 다음과 같은 가치를 내걸었다.
첫째, 수용자에게 가치를 창출 공급한다(Audience Value). 둘째, 효율성을 제고한다 (Efficiency/Effectiveness). 셋째,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여 영국의 위상을 높인다 (International Impact).22) 인원감축도 지속되어 1992-3년 국내 방송에 종사하는 직원의 9%인 2천명을 감원 하였다.
피터 부룩 영국 문화부장관은23) "BBC가 변하지 않는다면 단기적으로는 수신료, 장기적으로는 BBC 자체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오래전부터 BBC의 비효율성을 들어 경영합리화를 요구해 왔지만 시시비비를 가리는 BBC에 제동을 걸려는 보수세력의 방송통제전략과 밀접히 맞물려 있다.
영국정부는 공영방송이 시청자에게는 가치를 주어야 하고, 효율성을 극대화 하여 경제적인 공조직으로 쇄신할 것을 거듭 요구해 왔다.24) 한편 야당인 노동 당도 BBC에 관한 의견서를 공표하였다. 노동당은 대체로 BBC의 입장에 동의 하는 편이나 몇 가지 특이한 제안을 내놓았다. 이 의견서에 따르면 BBC의 최 고의사결정기구인 경영위원회를 없애고 대신에 관리위원회를 신설하여 독립성과 국민대표성을 강화 한다는 것이다. 노동당이 펴낸 '정부의 BBC보고서에 대한 의견서'에 실린 핵심내용은 아래와 같다. 첫째, BBC의 존립근거인 특허장제를 폐지하고 법률로 대체한다.
둘째, 경영위원회를 폐지한다. 대신 독립성과 국민대표성을 강화한 '관리위원회'(Board of Trustees)를 신설하여 BBC의 국민적 통제를 강화한다. 관리위원회 위원은 의회 특별위원회에서 지명한다.
셋째, 지방국 예산, 인사 등과 관련, 본사가 갖고 있던 권한을 대폭 양도한다.
야당인 노동당은 방송에 많은 관심을 갖고 일찍부터 방송담당 대변인제를 둔 바 있다. 현 방송담당 대변인은 R. 코베트씨로 P. 부룩 문화부장관에게서 한을 보내 BBC개혁에 대한 모든 절차를 완전히 개방하라고 요구하였다. 코베트대변인은 밀실에서 개혁안을 만들지 말고 의회에서 공개토론 등 투명한 논의과정을 거치라고 요청한 것이다.25)
한편 BBC 경영진은 사업 다각화에 더 많은 역점을 두기로 결정하였다. 존 버트 사장은 6개 위성채널에 공동투자 형식으로 참여하며, 유선방송 서비스도 시작할 것이라고 발로하였다. BBC는 주로 다큐멘터리, 자연사, 교육프로그램 중심의 프로그램을 공급하여 상품을 차별화 할 것이다.
3) 기타 공영방송의 개혁
긴축경영은 독일 공영방송이 내건 최우선 경영과제이다. ARD도 긴축경영을 골자로 하여 다음과 같은 일에 역점을 두고 있다.
첫째, 인원증가를 억제한다.
둘째, 급박한 사업을 제외하고는 새로운 프로그램 사업에 투자하지 않는다.
셋째, 국제경쟁력을 높여 국제시장에서 수입을 증대한다.
독일의 ARD와 ZDF는 감원을 신호탄으로 하여 경영합리화를 추진하였으며, 신규 인력충원을 강력히 억제하였다. 제작과 송출에서도 상호협조하여 경비를 절감하고 있으며, 재방송비율을 높이는 등 프로그램 조달방법도 개선하고 있다. 제작비가 많이 나가는 자체 호화쇼 제작도 거의 중단하였다. 궁극적으로 두 채널은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1990년 ARD는 제작비가 24.5%, 인건비 39.0%, ZDF는 제작비 52.3%, 인건비 22.1%로 나타나 ARD는 인건비와 제작비 비중이 함께 올라간 반면 ZDF는 인건비를 줄이고 제작비를 늘리는데 성공했다.
ZDF는 생산성을 급속히 올리기 위해 각종 신규사업을 시작하였다. ZDF는 곧 어린이용 유료서비스방송과 문화교양서비스를 할 것이다. 특히 시청자 주문에 따라 프로그램을 내보내게 될 문화교양채널은 경영다각화의 폭을 넓힌 것이다.
이탈리아 공영방송 RAI의 변화는 많은 교훈을 주었다. RAI는 정당지배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이 최대의 숙제였다. 마침 이탈리아 국민들이 반부패운동과 정치개혁 분위기를 타고 RAI사장은 공영방송의 정당예속을 마감하는 조치를 취했다. 3개 RAI채널의 정당별 밀착관계를 보면 RAI 1은 중앙당(전 기민 당), RAI 2는 사회당, RAI 3은 공산당 채널이라고 오해할 정도로 정당의 입김이 셌다. 3채널이 프로그램을 외주할 때도 관련 정당의 정치인이 후원하는 제작사에 외주를 주던 것이 이탈리아의 전통이었다. 그러나 RAI는 급변하는 환경변화에 적극 대처, 아래와 같은 개혁 청사진을 마련해 성과를 거두었다.
첫째, 3개 채널의 업무가 중복되지 않도록 조직을 과감히 개편한다.
둘째, 불요불급한 인원을 대폭 줄인다.
셋째, 출판·음반·국외판매·광고사업 등 자회사를 하나로 통합한다.
넷째, 수입 프로그램을 줄인다.
다섯째, 외부제작프로그램을 줄이고, 적극적인 가격협상으로 경비를 절감한다.
우선 막대한 적자 및 은행부채를 정리하기 위해 RAI주식의 일부를 매각할 방침이다. RAI는 은행부채가 8,294억원, 올해 적자가 2,496억원이다. 디마트 사장은 정경유착으로 보신에만 급급했던 간부들도 정리하는 등 인적 청산도 개시하여 보도책임자 및 국장급 인사를 거의 물러나게 했다. 국회도 새 RAI의 탄생에 필요한 법을 개정하여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새 방송법에 따르면 16명으로 구성되었던 이사회를 5명으로 축소하고 12명의 본부장을 둔다. 이 중 5 명은 반드시 여성본부장을 임명하고 모든 본부장은 전문성과 독립성이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고 못박았다.26)
이탈리아 RAI는 좀더 구체적으로 자체 기능개편안을 내놓았다. 이 안에 따르면 1채널은 종합채널, 2채널은 실험채널, 3채널은 지역채널로 각기 기능을 차별화 하되, 3개 채널의 사장과 보도본부장을 따로 둔다는 것이다. 채널차별화 정책을 좀더 자세히 보면 제1채널의 경우 저녁시간대는 가족용 편성, 아침은 주부용 편성, 오후에는 어린이용 편성, 늦은 밤에는 정보제공으로 시간별 차별을 두어 기간채널의 성격의 명백히 하였다. 제2채널은 대상층을 명확히 설정, 혁신성과 실험성을 갖춘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제3채널은 지역프로그램과 교양프로그램채널로서 서비스를 제공한다. 언론매체는 공영방송의 전면적인 개혁을 두고 '새 RAI가 옛 RAI의 잿더미 속에서 새로 태어났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한편 지역방송이 다시 한 번 쟁점이 되었다. 과연 국제화 시대에 방송의 지역화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많은 논의가 있다. 그런데 지역채널은 다음 6가지 독특한 양식이 있다고 한다.27) 첫째, 중앙종속형 지역채널이 있다. 이는 지역채널이 인력, 예산에서 본사에 종속되고 자체 제작률이 낮아 본사의 부속 품처럼 기능하는 것이다. 둘째, 본사와 협동형 지역채널이 있는데 이는 자체 지역뉴스를 만들고, 전국용 뉴스를 본사와 협동하여 제작하는 양식이다. 네덜란드 제1공영채널, 프랑스 F3 가운데 일부, 이탈리아 RAI 3채널, 스페인 공영 방송 RTVE 1채널이 협동형 지역방송이다. 셋째, 하루 한 시간 정도의 지역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자체적으로 문화나 오락프로그램을 생산하며 더러는 광고를 하는 지역방송으로 이는 부분 독립형 지역방송이라 할 수 있다. 영국 BBC지역국, F3, 독일 ARD와 RTVE의 일부 지역방송이 여기에 해당된다. 넷째, 연립형 지역방송으로 이는 편성권과 예산을 갖고 프로그램을 제작하되 어디까 지나 방송협회에 가입하거나, 본사와 직접 연결된 지역방송을 말한다. 아이슬랜드의 RTP-Azores와 RTP-Madeira, 바르셀로나에 있는 RTVE지역국 등이 연립형 지역방송이다. 다섯째, 본사와 관계없이 자치적으로 운영되는 자치형 지역방송으로 여기에는 벨기에 공영방송 Societies, 스위스 SSR, 스페인의 자치채널, 영국 웨일즈의 S4C가 있다.
그런데 구미 방송개혁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방송개혁은 무엇보다도 민주주의 절차를 존중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오스트지아 0RF는 이런 면에서 모범이다. ORF사장은 방송조직을 개편하기 위해 먼저 '독점에서 시장지배자로'라는 팜프렛을 만든 후 사내 여론을 수집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절차를 거치고 있다.
팜프렛 배포(1993년 1월)-전 부서 및 지역국 토론회 개최(1993년 2월)-토론회 종료, 개별적인 제안 접수(1993년 2월)-3번에 걸친 워크숍과 토론회 결과 보고 및 검토(1993년 2월)-본사에서 최종 정리(1993년 4월)-집행부가 결과 발표-사장이 직원들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답변-새로운 정책 방향에 관한 지침서 출판-시청자위원회와 감사위원회에서 공포(1993년 6월).
이렇게 지루할 정도의 절차를 거쳐야 개혁안이 나온다. 이런 것은 오스트리아에만 한정되지 않고 영국이나 다른 곳에서도 거의 비슷하다. 영국 정부는 BBC에 대한 1차 보고서를 낸 후 1년이 지난 후인 1994년 초에 제2차 보고서를 낸다고 하며, 이 보고서는 6개월에 걸쳐 공개토론회 등 여론수렴 과정을 거친다.
이상에서 논의한 내용을 요약하면 구미 각국에서는 공영방송이 심각한 재정난으로 고심하고 있으며, 수신료제도는 본질적인 한계를 드러내 더 이상 주요 재원이 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체재원의 확보가 향후 공영방송의 존립여부를 결정하는 관건이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비용절감과 수입증대를 통한 생산성향상에 사력을 다하지만 국민의 신뢰를 향상하는데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영방송은 치열한 시장경쟁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왔다.
그러나 항구적인 공영방송의 재원이 무엇인지 명화한 답이 나오지 않고 있다. 또 다채널시대에 공영방송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도 정답이 나오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방송은 어디에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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