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지역감정의 해소와 방송의 역할
편견의 조성 및 확산 그리고 그의 경감에 대해서 방송은 큰 영향을 발휘할 수 있다. 그 영향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서 사람들의 판단에 작용하는지를 검토해 보겠다. 사람들의 사회적 판단과정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효율적인 정보처리를 추구하는 존재임을 밝혔고 그러한 효율적 처리에 이용되는 정보처리 방략을 휴리스틱(heuristics)이라 칭하였다. 방송의 효과는 주로 두 가지 휴리스틱을 통해서 사람들의 판단과정에 영향을 미치므로, 이의 분석은 곧 방송이 편견의 해소를 위해 어떠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를 제시할 것이다.
1. 가용성 휴리스틱과 방송
당신은 '우리나라에 비리 경찰관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가?"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우리는 내가 그런 경찰관을 보았는지, 내 주위 사람들의 경험담을 얼마나 들었는지를 더듬고 그러한 기억이 머리속에 얼마나 쉽게 떠오르는가에 따라 대답할 것이다.
이같이 생각해 내기에 얼마나 용이한가에 의해서 판단을 하는 것을 가용성 휴리스틱이라고 한다.63) 많은 경우에 이 방법은 판단에 유용한 도구이지만 기억의 용이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객관적인 발생빈도 뿐 아니라 사건의 중요성, 자기와의 관련성 등이 영향을 미치므로 가용성 휴리스틱은 종종 잘못된 판단을 유도하기도 한다. 언론매체의 보도빈도가 사람들의 판단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게 보여준 연구는 사망률 추정에 관한 휴리스틱 사용의 분석일 것이다.
한 연구 64)에서 사람들에게 여러가지 사망 원인들을 2개씩 짝지워서 제시하고 어느 요인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몇배나 더 많겠는가를 물었을 때 사람들은 실제의 사망원인간의 상대적 비율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응답을 하였다. 예를 들면 '사고사-뇌일혈'의 짝을 제시받았을 때 응답자들은 사고사로 죽은 사람들이 25배나 많다고 평균적인 응답을 하였다. 그러나 연구 당시의 사망통계에 따르면 뇌일혈에 의한 죽음이 모든 사고사로 인한 죽음보다 1.85배나 높다. '태풍-천식'의 쌍에 대해서 응답자들은 태풍에 의한 죽음이 20배나 많은 것으로 보고 있지만 실제로는 천식에 의한 죽음이 20배정도 많았다. '천식-식중독'에 대해서 응답자들이 천식이나 식중독이나 비슷한 것으로 여기지만 실제로는 천식에 의한 죽음이 300배나 많이 발생한다. 이같은 엄청난 차이를 분석한 결과 사망률간에 큰 차이가 있음에도 없거나 적은 것, 또는 반대 방향으로 판단하는 경우는(예: 태풍-천식; primary bias) 응답자들이 각 원인으로 죽는 것을 얼마나 보고 들었는지의 직간접경험의 양에 의함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비슷한 비율의 사망원인을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데는(예: 사고사-뇌일혈; secondary bias) 각 원인에 의해 초래되는 사건이 지닌 파국성(열차사고와 같이)과 죽는 광경을 상상하기가 얼마나 용이한가에 의해 큰 영향을 받음을 보여주었다.
이 자료는 방송매체에서의 출현빈도가 사건에 대한 가용성(availability)을 높여 주어 현실 지각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미국에서 소수민족이나 여성에 대한 방송, 언론의 묘사를 문제시 삼는 배양이론가들의 입장을 지지한다. 배양이론 65)(cultivation theory)에 따르면 자주 접하는 매체의 세계관과 상(像)을 주된 견해 및 현실로 여기고 이를 수용자들이 공유하게 되고(주류화 과정; mainstreaming), 수용자들의 실생활에서 매체의 세계관과 일치하는 정보(즉, 확인적 정보)를 접하므로 해서 TV견해를 타당시하게(공명과정; resonance) 된다고 본다. 따라서 흑인에 대해 부정적인 모습을 편향적으로 계속 그리게 되면 이것은 흑인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을 배태시키고, 계속 확인시켜 견지하게 만들 것이다. 즉 이 메시지에 많이 노출되는 사람들의 가치판단의 한 기준으로서 그같은 세계관이 자리잡게 된다.
따라서 배양이론가들은 내용분석을 통해 특정의 사회집단이 방송에서 얼마나 자주 다루어지고 있는가의 빈도분석과 아울러 그들이 보여주는 역할이 어떠한 것인가를 분석하는 연구를 많이 해왔다. 이들의 연구 주제는 주로 여성과 소수인종에 대한 것인데 이러한 연구들이 비록 우리의 지역감정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할지라도 지역감정의 중요한 요인이 지역민간의 편견이라는 점에서 인종간의 편견과 상응하며 또한 그같은 연구가 지역감정과 관련되어 필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간략히 요약하겠다.66)
지난 40년간 각종 프로그램에서 여성의 출현빈도는 남성이 3명꼴로 나올 때 1명꼴로 등장한다.67) 물론 출현비율은 프로그램의 내용에 따라 상당한 변화가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여성들이 주연이건 조연이건 엑스트라로 등장하건, 내용에서 차지하는 역할의 비중이 남성 보다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빈도에 있어서 뿐 아니라 여성이 차지하고 있는 역할은 주로 아내나 어머니의 역할에 국한되어 나타나므로 여성의 생활의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사 또는 개인적인 대인관계의 것으로 부각되고 있다.68)
또한 여성들이 보여주는 특성은 매우 정서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주위사람들로부터 정서적인 도움을 요구하며, 남자와의 관계에서 대등한 위치로서가 아니라 밑에 놓여 있는 관계를 보이며, 남성에 비해서 상황을 통제하고 타개해 나가는 능력이 부족한 존재로 나타나고 있다. 취업여성으로 나타나는 경우에 그들은 하위직으로(비서, 간호원 등) 나타나고 미혼이기 쉽고, 결혼을 했어도 만족스럽지 못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69) 많은 성고정관념상의 변화가 일어났다고 여겨지는 과거 30년 동안에도(1950-1982) TV시리즈에서 나타난 여성간호원의 상은 별로 변화된 것이 없는데 단지 기존의 전통적인 간호원 역할에 더해서 여성으로서 더 성적으로 개방된 모습이 추가된 것으로 분석되어지고 있다.70) 이같은 역할과 성고정관념적 묘사는 국내에서도 예외적이 아닌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83년까지 15년 동안 방영된 인기순위의 TV드라마 ll편에 나타난 여성상을 분석한 연구 71)에서 "여성상의 변화는 드라마에 따른 시대적 상황과 갈등 문제 상황은 다르지만, 결국은 인내하고 순종하며 자신을 희생하는 현모양처의 전통적인 여인상에서 큰 변화를 보이지 않음"을 발견했다. 한편, 방송에 나타나는 흑인의 빈도와 특성등의 연구에 의하면 흑인들의 출현빈도는 1960년대 이후로 크게 증가하였으나 가장 눈에 띄는 장면들은 코미디프로 등에 한정되었으며, 대체로 하층 노동계층이나 서비스 종사자로서 많이 나오고 있음을 보였다.72) 일주일동안 TV에 나타나는 모든 흑인과 백인가족의 내용을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흑인가족은 결손가정이기 쉽고 가정내의 갈등이 모든 소재의 1/6을 차지하고 있는데 비해 백인가족은 결손가정이 적고 가정내 갈등이 소재로 차지하고있는 비율은 1/10로 나타나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73) 흥미있는 관찰로서 흑백인간의 교류장면을 분석한 결과 그 절대빈도가 매우 적으며, 그러한 교류는 주로 직업상의 교류로 한정되어 나타나 방송 프로그램 편성상에 있어서 인종분리현상이 나타남을 보이고 있다.74)
매스 미디어에 표현되는 특정집단의 이미지가 그 집단 성원 전체에게 주는 영향을 충격적으로 시사해준 것으로 Noelle-Neumann의 연구 75)를 들 수 있다. 전후 독일의 부흥기간중에 수년 간격으로 행해진 조사에서 나타난 특이한 현상은 독일인들의 자화상이 1952년부터 1975년의 기간동안 점점 부정적으로 변한 것이다. 라인강의 기적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성장을 거듭하면서 국민적 자존심이 상승하지 않고 오히려 저하되는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지만 Noelle-Neumann이 1968년초 3개월 동안의 TV의 정치성 프로그램과 전국지의 내용 분석을 한 결과 독일의 국민성에 대한 언급 39개중 32개가 부정적인 내용의 것이었고 독일인의 고정관념과 관련된 보도 82개중 51개가 부정적인 것으로 드러나 독일 국민성에 대한 대중매체의 이같은 보도가 자긍심의 저하를 가져오는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지적된 것이다.
국내에서 방송을 통해 제시되는 각 지역민들의 상이 어떠한지를 내용분석한 연구는 없다. 다만 필자가 본고를 준비하면서 88년에 방영된 인기 TV 드라마를 중심으로 각 지역민들이 제시하는 모습을 방송안내를 위해 기술된 내용을 바탕으로 살펴본 바에 따르면 호남 출신으로 나오는 인물들의 모습은 긍정적인 면보다도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여겨진다. 예를 들면 「완장」, 「똔방각하」를 들 수 있다. 이들 극은 전라도 지방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극중인물의 행동 특성, 성격 등이 전라도와 관련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연상시키는 면이 적지 않게 나타난다고 여겨진다. 직접적인 내용분석은 아니지만 매스 미디어에서 지역관련 보도를 하는 빈도와 그러한 보도에서 어느 지역을 더 호의적으로 비추고 있는지의 지각을 알아본 연구 76)에서 호남 응답자들은 영남관계 기사가 더 많이 보도된다고 보고 영남에 대해 더 호의적이라고 평가하는 반면 영남 응답자들은 상대지역에 비해서 빈도나 호의도를 '보통'이라고 평가했다. 이 같은 지각이 초래된 것에 방송이 실제로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를 점검하기 위해서 전라도 지역민들이 방송에 등장하는 빈도, 등장하는 이유, 지역민들이 차지하는 사회적 신분, 극중에서의 역할, 행동 및 성격특성에 대한 내용분석적 연구가 매우 요망되어진다.
2. 생동성 휴리스틱과 방송
TV를 통해 제시된 정보는 대체로 인쇄매체를 통한 것보다 생동성을 띤다. 생동성이란 정서적으로 흥미를 일으키고, 구체적인 상을 제시하며, 감각적·시공간적으로 근접성을 띠는 것을 의미한다.77) 이같은 정보는 가당치 않을 정도로 수용자의 태도에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여성들이 유방암에 걸려 희생되는 것을 막으려고 암협회 등의 공공 단체가 통계를 이용하여 많은 캠페인을 폈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그러나 포드 대통령 부인이 유방암으로 인한 절개 수술을 받은 사실의 공표가 많은 여자들을 암 크리닉으로 불러 모은 결과를 초래했듯이 우리는 우리들에게 생동감있게 제시되는 정보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객관적이고 타당성있는 통계수치보다는 몇몇의 선명한 사례에 의해서 부당할 정도로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아무리 사회조사가 전라도민이 다른 지역민과 마찬가지로 신뢰할 수 있다고 주장하여도 개개인들은 자신들이 전라도 사람들과의 직·간접 경험의 결과가 주는 정보를 더욱 신뢰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통계라는 것은 추상적으로 제시되는 데 반해 직접경험 또는 매체를 통해 제시되는 정보는 가시적이며 생생하므로 그 주는 효과가 클 것으로 여겨진다.78) 특히 TV는 이 두 효과를 모두 갖춘 매체로서 어떤 집단에 대한 편견, 고정관념을 심어주기 쉽다. 예컨대 뉴스에서 시위하는 대학생들의 화염병 투척 모습을 계속 보여주는 것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대학생들은 과격하다'라는 인식을 불러일으키기 쉬운 것을 들 수 있다. 그 반대의 논리도 성립한다. 즉 고정관념과 어긋나는 상을 구체적이고 감동적으로 제시한다면 이같은 정보는 생동성의 효과를 가질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앞 절에서 거론된 연구들이 사용한 내용분석법(주로 빈도분석과 제시된 모습을 분석함)은 생동성효과를 밝히기에는 부적절하다. 왜냐하면 이같은 내용분석법은 모든 장면들이 질적으로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고 가정을 하고 있으니 이것은 물론 틀린 이야기이다. 즉 흑인이 주역을 맡고 선한 일을 하는 것과 악역을 맡고 엑스트라의 역할만을 수행하는 경우는 그 흑인 배우가 심어주는 인상은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좋은 예로 국내에도 방영되고 있는 「코스비 가족」 프로를 들 수 있다. 이전에도 미국에서 방영된 흑인 주연의 코미디프로는 여럿 있었지만 이들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부정적인 흑인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않는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코스비는 그러한 고정관념과는 거리가 멀어 지적이고, 성공적인 의사이며, 중류층의 매우 원만한 성격의 소유자로 나타나고 있다. 이 인기있는 연속물은 이전에 인기가 덜한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부정적인 흑인 이미지를 쇄신시키는 커다란 효과가 있으리라고 여겨진다(함몰가설:drench hypothesis 79)). 이같은 프로는 고정관념과 상치되는 사례를 매우 생생하게 제시한다는 점에서 특히 직접 경험에 의하지 않고 막연한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편견을 압도할 수 있는 효과가 기대되어진다.
3. 지역감정의 해소와 방송
잘 짜여진 TV드라마는 전후 맥락을 잘 모르고 시청하는 시청자들에게 허구가 아닌 실제로 오인되어 현실의 왜곡된 인식을 초래할 수 있음은 익히 지적되어 왔다. 이같은 가능성은 파란을 일으킨 TV드라마들에 의해 그 예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논의가 새롭게 지적하는 것은 TV에 방송된 것을 사실인 것으로 지각하고 나아가서 인지과정상의 여러가지 편파성으로 인해 단순화 및 일반화시킴으로 해서 결과되는 현실의 잘못된 파악과 과정, 그리고 이같은 파악이 지역감정에 기여할 수 있다는 측면이다.
우리는 상대 지역민에 대한 나쁜 고정관념이 지역감정의 씨앗이며 그 결과가 되기도 하며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럼 어떻게 이러한 편견을 감소시킬 것인가? 상대 지역민들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은 잘못된 것이라는 홍보영화를 만들어 이를 널리 방영시키며 교육을 도모하면 되는가?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사람들이 자기의 기존 신념과 어긋나는 정보를 수용하기 싫어하며 선택적으로 그러한 것에의 노출을 피하기 때문에 효과가 의문시된다. 예로써 1940년대초에 미국에서 소수민족에 대한 편견을 줄이기 위해 폴란드계와 이태리계의 미국인에 대한 프로를 제작 방영했는데 그 청중은 편견의 피해자들이었지 가해자들은 매우 적었던 것으로 나타났다.80) 따라서 교육 또는 홍보를 명시적으로 표방한 제작물들은 그 효과가 매우 제한적이다. 이러한 것들에 의해서 편견의 감소를 보일 사람들은 편견을 반신반의하거나 약하게 지니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뿌리」(Alex Haley 원작)가 12시간에 걸쳐서 TV 황금시간대에 8일간 방영되었을 때 그 드라마가 흑인에 대한 차별, 편견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연구 81)들도 영화의 시청이 백인들에게서 많은 동정감, 감정이입을 유발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인종차별의 태도를 뒤바꾸었다는 증거는 확인하기 힘들었음을 보여 여기서도 선별적 지각 및 노출의 과정이 개입된 가능성을 짚어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떠한 역할을 방송이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지금까지의 논의는 지역감정 해소를 위한 방송의 역할을 두가지로 구분하여 준다. 그 하나는 소극적인 감시의 역할로서 방송이 지역간의 대립과 고정관념-특히 나쁜 편견-을 부지불식간에 조장 내지는 확산시키지 않는지를 자체 감시해야한다. 구체적 방안으로서는 첫째, 특정 사회 계층간, 정치적 성향간의 차이를 지역간의 차이로(지역 이데올로기) 변질 해석되게끔 보도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TV 뉴스나 대담프로는 세상을 설명해주는 기능을 하며 자신들이 처해있는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영상들을 제공해 준다. 잘 편성된 뉴스는 세상사의 이해를 돕는 큰 역할을 한다는 면에서 뉴스의 가치는 일반인들의 가치 및 세계관으로 내재화하게 된다.
Golding 82)은 방송의 뉴스가 제작자의 의도나 계획과는 무관하게 시청자들에게 왜곡된 세계관을 심어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분석하면서 사회적 인간관계의 과정(social process)과 권력구조(social power)때문에 뉴스가 현실을 잘 통합된 사진으로 제시하는 한 그것은 이데올로기의 전파기능을 함을 주장한다. 이데올로기의 문제는 그것이 특정의 사회집단, 특히 사회계층의 세계관이며 그 계층은 현존 체제의 지배적인 계층의 것이기 쉽다. 이러한 점에서 국내의 방송은 종종 정권의 시녀라는 비판을 받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언론의 보도가 대통령 선거 등의 이슈를 여야간의 갈등, 사회계층간의 갈등으로 지적하는 대신에 지역간의 갈등으로 호도하였다는 인식에서 지역감정을 허위의식이라고 비판하는 시각이 있음을 의식할 필요가 있다.83)
둘째로, 다원적 무지에 의해 지역감정이 촉발되거나 확대되어지는 과정을 막기 위해 중요한 사회적 이슈(국토개발, 선거 등)에 대하여 내외집단 성원들의 견해가 다양하다는 것을 지역내 뿐 아니라 지역간에도 홍보하여 진상을 알리는 노력이 요구된다.
세째로, 현행 보도 프로그램이나 드라마에서 각 지역민이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를 점검하여 지역민간의 부정적인 편견이 방송에서 기정사실로서 제시되는 일이 최소화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 최근에 방송위원회(1990. 4. 20)에서 TV와 라디오에서 불필요할 정도로 사투리 (특히 경상도)가 아무런 제재없이 사용되는 것을 지적한 것은 적절한 것이다. TV 보도가 어느 한 지역을 편중적으로 취급하거나 특정지역의 인사를 주로 출연시키거나 더욱이 출연인사들이 드러내 놓고 사투리를 쓰는 경우 보는 이의 입장에 따라 상당한 위화감을 조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국내 방송계에서도 지방시대를 표방한 KBS에서 지역 드라마들을 제작 방영한 바, 있다(예:「갈매기 처녀」, 「영산강」). 이러한 드라마의 제작동기가 지역적 정체감을 견지하고 애향심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을 때 84) 지역정신을 구현한다는 것이 잘못 타 지역민을 상대적으로 저하시켜 묘사·제세한 점은 없는가, 또 흥미, 서정성, 작품의 가치 판단에 의해서 작품연출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그 작품이 보여주는 '지역민상'이 현실의 반영이라는 명목으로 일반적인 고정관점과 부합하여 본의 아니게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오지 않는가를 점검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 MBC에서 방영되고 있는 「똔방각하」는 부동판 투기에 의해 피폐해가는 농촌 실정을 보여준다는 의도와는 무관하게 전북도민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연상시키는 등장인물들의 행동이 많이 눈에 띄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물론 이같은 지역민에 대한 묘사가 제작자와 작가의 인식 때문에 그러하리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그들의 동기는 전혀 전라지역민에 대한 해를 끼치는 것과 무관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라지역민들이 부정적인 성격 특성과 연관되어 반복적으로 제시된다면 시청자에게 주는 무의식적인 효과는 특히 전라지역민을 긍정적으로 제시하는 다른 기회가 상대적으로 풍부하지 않는 한 무시하기 힘들 것이다.
지역감정 해소를 위한 이같은 소극적 감시기능과 더불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방송은 취할 수 있다. 우선 국민화합과 일체감의 배양을 도모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 국가적 일체감을 조성하고 이를 견지하기 위해서 영국의 공영방송인 BBC가 프로그램 제작에 기울인 정성과 그의 효과를 점검한 글 85)은 이러한 노력이 공영방송체제이기 때문에 훨씬 용이하게(권력층의 보이지 않는 간섭을 적절히 배제한다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시사하고, 이같은 목적에서 BBC가 방송하는 「전국은」(Nationwide)이란 프로그램의 예를 들고 있다. 시청반응조사에서 많은 시청자들이 그 프로에서 제시되는 영국국민의 자기상을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의 경우에도 이같은 국민적 일체감을 조성하는-국수주의적 분위기를 위함이 아니라 소외계층·지역민을 관심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프로그램의 개발과 그 효과의 평가를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TV에서 특정 지역집단의 행동, 직업, 성격, 사회적 신분을 그 집단의 전형과는 거리가 먼 상으로 제시하거나 또는 그 집단 성원의 다양성을 간과하게끔 특정의 행동, 직업, 성격 등으로만 묘사하여 제시한다면 이러한 것은 오락으로서의 가치는 있을지언정 왜곡된 현실관을 시청자에게 전달해주는 잠재기능, 역기능을 하게 된다. 이는 특히 시청자들의 현실 지각이 실제적인 접촉에 의해서보다 대중매체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더욱 그러할 것이다.86) TV 드라마가 교묘한 방법으로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특정집단의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배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한다면 이것을 이용해서 지역감정을 없애고 점검해 나가는 시도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TV에서 드라마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인종간의 잘못된 부정적 고정관념을 허물고 소수인종들의 자긍심을 고양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Fairchild 87)는 사회심리학의 연구결과 제시된 편견과 집단갈등의 해소를 위한 접촉가설 88)과 방송효과에서 논의되는 함몰가설이 시사해 주는대로 흥미있는 과학적 공상물을 제작하였다. 「우주의 십자군」(Star Crusaders)이라는 제목의 이 프로에는 5명의 주요인물이 등장하는데 이들중 2명은 흑인남자, 1명은 동양여자, 1명은 백인남자, 나머지 하나는 멕시코계 남자로 구성되었고 그중 흑인남자가 주인공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동등한 지위를 지니고 각기 독특한 능력을 갖고서 우주제패를 노리는 인종차별주의자인 악당과 맞서서 종국에는 승리를 거둔다는 이야기이다. 내용분석 결과 백인의 출현시간이 전체 장면의 64%, 흑인 59%, 동양인 25% 등이었고, 남자 87%, 여자 46%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104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소집단으로 나누어 극을 보여준 후에 극의 내용에 대한 평가를 받았는데 24%의 응답자들이 인종차별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되었다고 응답했다. 국민학교 아동들을 대상으로 이 극을 상영했을 때 주인공인 흑인과 같이 되고 싶다는 동일시 욕구가 아동의 '피부색과 관계없이 높이 나타나고 있었으며 극의 주제인 인종간 화합의 중요성이 잘 인식되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극은 단막극이어서 그 극의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하는 것이 의문시될 수 있다. Fairchild는 이 극을 본래의 취지를 유지하여 발전된 형태로서 연속극으로 제시함으로써 시청자들의 인종간 편견을 불식시키고 화합에 기여하는 정도를 밝히는 연구를 계획하고 있다.89)
이같이 지역민의 화합을 촉구하며 편견을 감소시키기 위한 드라마는 극히 아동들을 대상으로 할 때 그 효과가 더욱 기대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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