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지역감정의 형성에 대한 심리학적 이해
영호남 지역감정의 성립과정을 이해하는 데는 크게 두가지 면에서 분석을 진행시킬 수 있다. 첫째로 우선 두 지역간의 독특한 대립의 역사와 그로 인한 갈등의 첨예화 과정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과 두번째로 고정관념의 형성 및 견지과정에 대한 분석이다.
1. 영호남의 갈등관계로 분석한 지역감정
흔히들 영호남 갈등의 뿌리를 삼국시대로 잡고 신라가 백제를 당나라의 힘을 빌어 멸망시킨 이후로 면면히 내려오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백제의 중심지는 사실상 서울지역이며, 호남지역이 중심지가 된 것은 후백제시대표서 후백제를 세운 견훤은 영남사람이었다. 또한 견훤이 대립하여 싸운 것은 망해가는 신라라기보다는 고려의 왕건이었고 왕건은 나중에 훈요십조에서 전라도 지역민을 제도적으로 차별하는 근거를 남기게 되었는데 이때 역시 갈등의 주체는 영남·호남은 아니라는 것이다.22) 조선조를 통해서도 영호남은 대립의 파당을 형성하기보다는 한 무리로서(남인계통) 기호학파에 대항하였다. 심지어 최근세로 와서까지도 '박정희-윤보선'의 5대 대통령 선거(1963)에서 박정희 후보는 호남에서 과반수 이상의 찬성표를 얻었다.
6대 선거(1967)에서부터 호남에서 박정희 후보는 지지자를 잃기 시작하고 대신 영남에서 많은 지지표를 얻기 시작하고 있다. 이같은 것이 보다 극명하게 나타난 것은 '박정희-김대중'의 대결이었던 7대 선거(1971) 이후이다. 이같은 투표양상은 지역감정의 역사가 그렇게 깊지는 않으며 영호남이 대립관계로 들어선 것은 최근세사의 일이라는 것을 강하게 시사한다.
집단간에 양립할 수 없는 목포를 놓고 목표추구행동을 벌일 때 갈등은 존재한다.23) 영호남권이 대통령의 대권이라는 나누어 가질 수 없는 동일한 목포를 획득하려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지역감정이 배태되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두 지역민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의 징표는 여러곳에서 나타나는데 양 지역의 대학생들 서로가 상대 지역민을 단결력이 강하다고 보면서 자기 지역민은 단결력이 약한 것으로 평가하는 점,24) 그리고 다양한 연령계층의 부산거주 영남출신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전라도 지역민을 경쟁의 첫 대상자로 꼽는 점 등에서도 엿볼 수 있다.25) 또한 전라도와 부산지역이 경쟁적 관계라고 지각하는 사람일수록 전라도민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보이고 있다. 이는 거리감에서도 나타나는데 전라도민과 경쟁관계에 있다고 보는 이들은 전라도민들을 훨씬 더 멀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집단이 한정된 자원을 놓고 서로 차지하려고 다툴 때(zero-sum 상황) 나타나는 것 하나가 상대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다. 좋은 예로써 20세기 전후를 통해서 미국으로 건너간 중국인에 대한 편견의 변천과정을 들 수 있다. 중국인들이 캘리포니아의 금광에 손을 대려 했을 때 미국인들은 그들을 "타락하고 악질적이며‥‥ 탐욕스럽다"고 묘사했고 10년정도 지나서 미국인들은 위험하다고 꺼려하는 대륙횡단철도 부설공사에 중국인들이 나섰을 때는 "온순하고, 부지런하고, 준법정신이 강한" 인종으로 여겼다. 그러나 공사가 끝난 후 남북전쟁의 출전 병사들이 귀향하여 구직난의 시대가 닥쳤을 태 이들은 다시 "뻔뻔스럽고, 교활하며, 우둔한" 종족으로 여겨졌다.26) 이러한 사실은 경쟁관계가 편견을 부산물로 배태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기는 하나 단정적으로 보이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중국인 노동자 집단은 백인집단과 달리 다양한 면에서(교육수준, 지능, 습성 따위) 편견에 걸맞는 면모를 갖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의혹은 Sherif 27)의 현장실험으로 풀어졌다. 아동의 방학 캠프 동안에 아동들을 임의대표 두 집단으로 구분하여(독수리팀과 방울뱀팀) 각 집단 내의 소속감과 응집력을 단체활동을 통해 배양시킨 후 두 집단의 경쟁을 유발시켰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두 집단간 교류는 눈에 띄게 적대적으로 되어 갔고 어느 날 실험자가 상황을 꾸며 독수리팀이 방울뱀팀보다 일찍 캠프 파티에 도착하도록 하고서 두 개의 테이블에 마련된 음식을(질에서 상당히 차이가 있는) 골라서 먹게 하였다. 독수리팀은 맛있는 음식만 골라먹고 남은 것들은 늦게 도착한 방울뱀팀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늦게 온 방울뱀팀은 화가 치밀었고 독수리팀에게 더러운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당연한 권리를 찾아 먹었을 뿐이라고 생각한 독수리팀의 아이들은 이를 되받아 쏘기 시작하여 패 싸움이 벌어졌다. 두 집단 사이의 앙금을 가라앉히기에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경과해야만 했다.
Sherif의 실험이 보여주는 것은 영호남 지역감정이 오늘처럼 심화된 원인을 굳이 삼국시대로 거슬러 가지 않아도 충분히 설명가능하다는 것이다. 대권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쟁취하려는 과정에서 집단간 대립이 본격화되었고, 이때 상대집단의 목적은 내집단의 불이익을 초래하는 것이라는 오도된 지각 28)과 함께 내집단의 성패를 나의 성패로 동일시하게 되어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을 품게 된다.29) 이러한 적개심은 내집단의 결속을 촉구하고 방어의식으로 발전하며 이 상태에서는 나의 적대적 행위, 태도는 정당화되어지고 상대방을 비하시키는 노력과 함께 자신의 긍정적 정체감을 견지하게 된다.30)
지역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견지시키는 과정에서 대중매체의 역할을 무시할 수는 없다. 대권경쟁에 나선 '김영삼, 노태우, 김대중' 세 후보를 여야의 대결로서보다는 영남·호남의 지역간 헤게모니 쟁탈전 양상으로 보도하는 등의 전달 방식은 매체가 지니는 상업성으로 인해 청중들의 흥미를 촉발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점도 인정할 수 있으나, 본질의 문제를 흥미위주로 호도하여 본질이 퇴색되어버리는 부작용을 낳게되고 더우기 이는 집권층의 의도와도 부합해 왔다는 점에서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지역감정이 상당한 정도로 인위적이라는 인식은-즉 일부 정치인들이 당리당략을 위하여 부추겼기 때문이라는-아주 보편화된 인식이고 31) 이같은 부추김에 알게 모르게 큰 역할을 한 것은 언론매체라 할 수 있다.
비근한 예로써 13대 대통령선거에서 대구에서 김대중후보의 유세광경과 광주에서 김영삼, 노태우후보의 유세광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TV 뉴스를 들 수 있다. 그와 같은 광경을 충분히 기대하고 있었던 각 지역민들에게 그 보도는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켰으며 그들이 갖고 있던 적대적 감정을 더욱 부추기는 역할을 했으리라 본다. 아울러 이같은 보도를 접할 때 사람들은 상대 지역민들을 다양한 의견을 가진 성원으로 구성된 지역주민들로서가 아니라 자기 집단에 적대적인 의견을 공유하고 있는 동질적 구성체(outgroup-homegeneity)로 지각되기 쉽다. 이것은 내집단 이익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될 것이다.
비록 경쟁관계의 인식이 영호남 지역민의 적대적 감정과 태도를 실현시켰다고 보지만, 이같은 경쟁관계가 없이도 지역편견은 형성되고 유지될 수 있음이 밝혀졌다. 그 과정과 원인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2. 고정관념의 획득과 견지과정
호남인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기 지적감정의 중요한 측면으로 부각된 이상 그것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고 견기되는가를 규명할 필요가 크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실제 자료의 객관적인 분석에 의해서 고정관념이 습득되기보다는 사회화 과정을 통해서 전승되었거나, 한 두 가지의 경험적 관찰로부터 갖게 된 믿음이 여러가지 정보처리상의 자연적 편파(natural bias)에 의해 견지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1) 사회화 과정에서의 획득
유아는 성장하면서 공식·비공식적인 학습과정을 거쳐 많은 지식을 습득해가며, 주위 환경에 적응해가는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습득되는 지식중에 역할기대, 편견 또는 고정 관념이 포함된다. 흑·백 아동들에 대한 1년 동안의 장기관찰을 통해서 Goodman은 3, 4세의 아동들에게서 이미 인종에 대한 편파적인 가치관이 자리를 잡기 시작함을 보이고 있다. 즉 흑인처럼 되고 싶다는 백인 아동은 없지만 흑인 아동들은 자기의 피부색을 싫어하거나 검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어하는 방어기제(defence mechanism)를 보이는 것이다.32) 흥미있는 것은 아동들이 비록 미숙한 수준이기는 하나 인종차별적 가치관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부모들은 이를 거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 현상은 편견적 태도가 언어적으로 표현되어지기 이전에 이미 행동적으로 표현되며 아이들이 이러한 단서를 습득해서 3살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 그같은 태도를 갖추게 된 것임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같은 차별의 조기 사회화 과정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1) 사회적 학습: 부모들은 아동에게 특정의 가치관을 갖도록 강요할 수도 있지만 굳이 그러하지 않아도 아동들은 부모와 동일시 과정에서 부모가 지닌 가치관을 자기것으로 내재화(internalization)하는 경향이 강함은 정신분석학이나 발달심리학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부모가 지역민간의 편견을 갖고서 아동들에게 "ХХ도 아이들과는 놀지마!" 라든가 "ХХ도 사람들은 저렇다니까!" 등의 언동을 보일 때 아동들은 무비판적으로 그러한 가치관을 전승받게 된다. 왜냐하면 아동들은 가정밖의 '세상을 파악하는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고 부모형제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아동이 경험하는 세상사라는 것이 부모들의 편파되었고 왜곡된 현실인식이라는 필터에 걸러진 것들이기 때문이다.33)
조경근 34)은 대구와 광주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들의 70.2%가 지역감정적 언사를 가정내에서 들은 적이 있음을 보이고 있으며, 김혜숙 35)은 지역민에 대한 고정관념이 2세들에게도 전수되어짐을 보였다. 이것은 지역감정을 심어주는 씨가 가정내에서 뿌려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아동의 사회화 과정에서 부모형제가 차지하는 역할에 못지 않게 중요한 역을 맡게 된 것이 TV 등의 방송매체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방송매체에서 투영해주는 흑인들의 모습을 내용분석한 연구 36)들의 검토에서 "196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대중매체에서 흑인이나 소수인종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이들이 나타나는 경우가 없진 않았지만 그 경우 이들은 좋지 않은 문제와 관련되어 나타났으며, 그 모습은 종종 부정적인 사회적 통념과 합치한다"고 결론내렸다. 이러한 보도양상은 기실은 인종차별을 내포할 뿐만 아니라 이같은 나쁜 소재들이 뉴스거리로 잘 팔리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37)
국내에서 사람들이 갖고있는 지역민들에 대한 고정관념이 방송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는 조사되어진 바가 없다. 내용분석 기법을 이용한 이같은 조사가 시급히 이루어져 부지불식간에 지역간 고정관념을 정당화, 확대, 홍보하는 관행의 여부를 점검해야 할 것이다.
(2) 동조: 편견이 특정 사회집단에 대해 과도히 단순화된 부정적 인식이 한 집단내에 공유되고 있는 것이라고 볼 때 편견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이 집단내에서 용인되어질 뿐 아니라 조장되는 면이 강하다. 즉 공유된 태도에 부합하는 행동은 심리적 강화를 받게되고 그에 어긋나는 행동은 집단에서 따돌림 따위의 처벌을 받기가 쉽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속에서 개인이 집단의 '규범'을 따르는 행동을 보이기 쉽다. Pettigrew 38)는 흑백의 차별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는 웨스트 버지니아의 한 석탄 광산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막장에 들어가서는 흑인, 백인 구분이 없이 협동작업을 하지만 일단 일터를 벗어나서는 양 인종집단은 거의 두절된 생활을 영위하는데 이것은 일터에서의 규범과 일상생활에서의 규범이 별도로 존재하고 사람들은 각각의 상황규범에 맞춘 동조행동을 보이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Watson 39)의 연구에서 유태인에 대한 편견이 없던 사람들이 뉴욕시로 이사를 하고나서 반유태주의(anti-Semitism)자들과 교류를 통해 반유태적 감정을 품게 된 점, 군에 입대한 남부출신들이 인종간 단합이 요구되는 군대의 규범을 좇아 흑인에 대한 편견이 줄어든 것 40)은 사회적 규범에 대한 동조성향에 의해서 편견의 습득이 영향을 받음을 보여주는 자료들이다. 편견적 태도가 집단규범에의 동조현상 때문에 나타날 수 있다는 간접적 증거로서 상당수의 연구들은 편견이 높은 개인들은 집단규범에의 동조성향이 특히 강한 사람들임을 보이고 있다.41)
이같은 집단에의 동조행동은 규범의 정확한 파악에 의해서 나타날 수 있지만 왕왕 그릇된 지각에 의해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거나 약하게 존재하는 차별의식에도 불구하고 이를 과장되게 여김으로써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즉 다수의 백인들이 지니고 있는 흑인에 대한 태도는 비차별적이고 편견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나는 예외야, 다른 백인들은 매우 차별적임이 틀림없어" 하고 믿음으로써 실제보다 훨씬 과장된 형태로 집단간 갈등의 문제가 심화되어질 수 있다. 이러한 다원적 무지현상(phenomenon of pluralistic ignorance)은 영호남의 지역감정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박정순 42)은 대구·광주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상대지역민에 대한 응답자의 개인적 호감을 묻고 '같은 지역민들은 상대지역민을 어떻게 생각한다고 보는지'를 물었고 아울러 '상대 지역민들은 자기 지역민을 어떻게 생각한다고 보는지'를 물었다.43)
<표 5>에서 보듯이 두 지역 주민들은 자기 지역주민들이 갖고 있는 상대지역민에 대한 배타감정이 실상보다 더 강하고 보편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음이 나타났다. 대구의 경우 호남인들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43.6%임에 비해 84.1%의 자기 지역민들이 호남인들을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같은 현상은 그 격차가 약간 적게 나타나고 있으나 광주인에게서도 나타나고 있다(실상은 34.9%, 인식은 72.9%). 이같은 과잉지각은 상대지역민들이 내 지역민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문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는 광주 응답자들중 34.9%가 대구 지역민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데 비해 대구 응답자들은 광주인들의 86.1%가 대구인들을 나쁘게 생각한다고 믿고 있으며, 실상은 대구 응답자의 43.6%가 광주인들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광주 응답자들은 대구인들의 83.5%가 광주사람을 나쁘게 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같은 다원적 무지현상은 지역감정의 또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즉 "우리들의 머리속에 있는 인식-영남사람들은 호남사람들을 배척할 것이고 호남사람들은 영남사람들을 배척할 것이다"라는 과장된 생각-때문에 계속 존속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 머리속의 인식은 매스 미디어 보도에 의해 확인되어질 가능성이 높다. "가장 단적인 예가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의 유세장 폭력사태에 대한 보도이다.-선거 유세시의 유세장 폭력사태는 일반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던 일이기도 하다. 유세장 폭력 뉴스의 보도는 이같은 일반 사람들의 예상과 기존관념을 확인시켜 주는 역할을 하였으며, 비록 그것이 극히 일부 사람들의 행동에 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호남 사람들이 믿고있던 상대지역 사람들의 배타감정을 일반화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45)
다원적 무지는 집단내 성원간의 자유스러운 대화, 통신을 막는 터부나 심적·물리적 장애가 존재할 때 심화되어 나타난다. 따라서 방송은 이 현상을 막는 방안으로서 내집단 성원들이 갖고 있는 의견의 다양성을 내외집단에게 알리는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는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사회화 과정에서 습득되어지는 과정을 분석해 보았다. 이것은 편견이 이미 존재해 있는 상황에서 그것이 다음 세대에게 전승되고 성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과정의 설명일 뿐 애당초 그러한 편견이 어떻게 성립되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기에는 불충분하다. 이제 편견이 성립되는 과정을 밝히는 심리학의 발견들을 소개하고 이에 관련된 방송의 역할을 논의해 보겠다.
2) 고정관념 형성의 인지과정
"아니땐 굴뚝에 연기나랴?" 는 속담은 편견에는 한 톨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즉 "ХХ도 사람'들은 간사하다", "△△도인은 무뚝뚝하다"는 것은 실제로 각 지역민이 그러한 성격·행동상의 특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즉 우리가 귀인한 것을(예: 간사한 또는 무뚝뚝한 탓으로 여기는 등) 자극 대상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라고 보지 않고, 자극 대상 안에 실재하는 특성이라고 본다는 점에서 현상학적 절대주의(phenomenal absolutism)46)라 한다. 이 현상학적 절대주의가 가당성을 갖기 위한 전제조건은 우리 인간이 관찰자의 행동에 대한 다양한 증거를 접한 후에 그 자료를 바탕으로 그의 특성에 대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가 그러한 합리적인 판단가인가 하는 의문은 여러번 제기되었고 그에 대한 답변의 추구는 인간을 합리적인 정보분석가라기보다는 효율성을 추구하는 분석가임을 밝히고 있다.
(1) 범주화된 지각(categorical perception): 일찌기 Allport는 인간이 세상사를 파악하는 것은 일반화, 개념화, 범주화를 통한 단순화 작업이며, 이 작업에 본질적으로 나타는 것이 편향성(propensity to prejudice)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마치 하나의 표본이 그 소속범주의 전형(典型)을 보이는 것으로 여기는 범주화된 지각은 대상이 특출하게 부각될 경우 더욱 강하게 나타나며 그 특출성이 갖는 독특한 범주가 형성되고 그 개체의 행위는 그 범주 전체의 특성으로 확대인식되는 것이다. 자연물의 지각에서 우리는 범주화된 지각을 통해서 얻는 것이 많다. 즉 우리는 은행나무 한 그루를 보고 모든 은행나무의 특성을 파악하는데 이 경우 크게 틀리지 않는다. 매 한가지로 강아지, 자전거 등등의 개개차이가 크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그러한 특정 사례가 보인 속성의 일반화가 별 문제없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한 소속 성원의 행동이 그가 속한 집단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고 하기에는 매우 힘든 대인지각의 경우는 문제가 다르다. 예를 들어 한 미국인을 만나 알게 되었을 때 그가 보인 행동이 미국인 전체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긴다는 것은 잘못이기 쉽다. 이같은 범주화된 지각은 일견 매우 비합리적인 면을 갖고 있지만 인간의 정보처리 능력에 한계가 있고 그 한계성을 갖고서 세상사를 유목별로 파악함으로써 갖게되는 경제적 효율성과 환경에 대한 적응적 기능으로 그 생물학적 근거의 가능성마저 논의되고 있다.47) Tajfel 48)도 고도로 복잡한 사회상황에 처해서 일관성, 단순성, 그리고 예언성을 희구하는 욕구의 탓으로 고정관념이 등장함을 시사하고 있다.
(2) 근본귀인오류: 범주화된 지각의 특성에서 한가지 중요한 것은 대상인물이 보인 행동이 그 행위자의 내면적 성격, 특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여기고 이 특성을 범주전체의 내적 속성으로 일반화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행동이 내적 특성 탓이라 보는 것은 사회심리학에서 잘 알려진 근본귀인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의 현상이다. 이것은 행동의 원인이 여러가지 있을 수 있음에도(즉 절박한 상황 탓, 집단의 규범, 판단 착오, 동기, 성격 등) 불구하고 다른 원인요소들을 무시하고 성격이나 동기 등 행위자의 내적 특성 탓으로만 여긴다는 점에서 오류라고 볼 수 있다.49) 지역편견으로 나타나는 어휘들은 모두 지역민들이 갖고 있는 내적 성향을 보여주는 단어들이며 이는 그 지역민들이 앞으로도 그러한 특성에 부합하는 행위를 보일 것이라는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상대 지역민이 어떠한 상황에서 그러한 행동을 보였는가에 대한 고려는 전혀 배제된 것이라는 점에서 근본귀인오류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같은 현상은 특히 외집단 성원이 좋지 않은 행동을 보였을 때 잘 나타난다.50)
외집단이 친숙하지 않거나, 외집단의 특성에 대해서 모르고 있을 때 외집단 성원이 보인 행동으로부터 외집단의 특성을 추론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이는 외집단 구성원간에 동질성이 크게 지각될 때 더욱 그러하다는 것이 시사되고 있다.51)
근본귀인오류는 특성이론 52)(dispositionalism)의 한 형태이고 이 특성이론은 개인의 책임을 묻는다는 점에서 "문명사회의 날줄"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문화권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이 행동의 원인으로서 특성이론적 견해를 점차 강하게 갖게 되는 것은 놀라울 것이 없다.53) 다만 그 경향은 행동의 상황적 영향력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지나친 단순화이며 종종 불필요한 대인갈등의 소지가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3) 상관의 착각: 범주화 지각에 결부된 또하나의 특징은 독특성이 범주로서 형성된다는 것이다. 독특한 범주들이 기실 아무 관계가 없는 경우에도 자주 같이 발생하는 것으로 여기는 현상을 상관의 착각(illusory correlation)현상 54)이라고 한다.
집단의 대다수가 ХХ지역민이고 소수만이 △△지역민이라고 했을 때 △△지역민은 소수이기 때문에 잘 구별되어지는 독특성을 갖게된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대부분 사회적으로 탓할 것이 없는 행동을 보이는데 간혹 비난받을 행위를 한다면 이 비난받을 행위는 역시 독특성을 갖게 된다. 이같이 드물게 여겨지는 두 개의 독특한 범주가 우연히 같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즉 △△지역민이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를 하는 경우) 이 경우는 다수를 점하고 있는 ХХ지역민에게 쉽게 눈에 뜨이고 마치 무슨 관련이 있는 것처럼 여겨져 두 범주의 동시 발생빈도가 실제보다 훨씬 높게 지각되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을 실험상황에서 도입시킨 연구결과는 55) 위 현상을 여실히 보여 주었을 뿐 아니라 독특한 행위가 바람직한 행동일 경우에도 마찬가지의 현상이 일어남을 보여주어 상관의 착각현상이 실제 자료로서는 정당화할 수 없는 범주간의 상관을 지각하게 함을 보여주었다. 후의 연구 56)는 이같은 상관의 착각이 개개의 정보가 순차적으로 처리될 때 나타나며 정보를 종합적으로 요약해서 파악할 경우에는 나타나지 않음을 보여 주었다. 또한 피험자들이 자극을 순차적으로 제시받은 후에 제시된 자극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표를 같이 제시받은 경우에도 상관의 착각현상은 요약표가 없던 상황에서와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상관의 착각에 의해 갖게된 부정적인 고정관념은 보여진 행동영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평가의 일반화'와 '기술(記述)적 일반화'57) 과정을 통해 보여지지 않은 다른 특성에 있어서도 특정집단을 부정적으로 보게 됨이 나타났다. 즉 사회적 교류상황에서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표적집단은 전혀 정보가 제시되지 않은 다른 활동면에 있어서도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된다.
귀인오류나 범주화된 지각 그리고 상관의 착각으로 인해서 우리 지역과 구별되어지는 상대지역의 범주가 형성되면 상대지역 성원들은 개인차가 무시되고 동질적으로 지각된다. 따라서 개개의 관찰이 범주전체의 관찰인 것으로 여겨져 고정관념이 배태되어 진다. 이같이 형성된 고정관념 및 편견은 각기 상대방에 대한 믿음, 즉 가설로서 작용하며 이러한 가설(이론)은 추후 획득되어지는 정보(자료)들에 비추어 그 타당성을 검증받게 된다
(4) 가설 확인적 검증방략: 인간이 가설을 검증할 때 철저한 과학자의 자세를 취해 가설과 부합하는 정보와 부합하지 않는 정보를 종합해서 가설의 타당성을 점검한다면 잘못 형성된 가설의 경우 그 진위가 곧 판명나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심리학의 많은 연구들은 우리들의 가설검증이 매우 편향된 형태를 취하고 있어 일단 형성된 가설은 좀체로 부정되는 일이 드물다는 것을 보이고 있다. 이 과정을 세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우선 자료의 수집에서 나타나는 편향성이 있다. 즉 우리는 가설을 검증할 때 가설을 부정해주는 자료보다는 가설을 지지하는 자료를 찾는 경향이 강하다. 이같은 가설검증은 결코 한 가설이 맞다는 것을 알려줄 수 없으며 가설은 부정적인 증거에 의해서 그르다는 것만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라는 Popper 58)의 견해(그리고 널리 수용되고 있는 과학철학의 입장이기도 함)와 배치되며 이같은 확증적 정보검색방략은 아주 좌심스러운 가설마저도 경험적으로 지지되는 정보를 얻게 만들어 그럴듯하게 치장하여 준다.
둘째로, 자료의 해석상에서 나타나는 편향성이 있다. 즉 애매모호한 정보를 접했을 때 이를 기대에 걸맞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ХХ지역민은 간사하다'라는 가설을 지녔을 때 그 지역민 갑이 나에게 보인 친절은 나를 속이기 위한 친절로 여겨질 수 있다. 또한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 행동은 상황특수적인 것으로 여긴다.59) 따라서 부합하지 않는 행동이 다른 기존의 정보의 맥락에서 설명되어진다면, 그 행동은 이제 더이상 모순성을 띠지 못하게 된다.
세째, 기억의 용이성에서 나타나는 편향성이다. 즉 기대와 부응하는 사건의 발생 빈도를 과다하게 평가할 뿐 아니라 그러한 사례가 보단 쉽게 떠오르는 것이다.60) 심지어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억을 고정관념에 맞추어 재구성하기도 한다. Allport61)가 피험자들에게 신사복을 입은 흑인과 면도칼을 든 백인의 사진을 보여주고나서 후에 그 사진을 회상하도록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백인이 신사복을 입었고 흑인이 면도칼을 들고 있던 것으로 여김이 나타났다. 사회적 행위의 해석과 회상은 이같이 사전 기대감에 의해 왜곡되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같은 편향성들에 의해 얻어진 지역민에 대한 편견을 지지해주는 실례들은 그 편견의 타당성에 대하여 과신을 갖게 만든다. 예로서 'ХХ지역민은 믿을 수 없다'는 가설을 갖게된 사람들의 경우 그는 그 지역민들이 신뢰롭게 행동하는 증거를 찾아서 가설이 잘못 되었다고 이를 부정하는 대신에 '신뢰롭지 못한 ХХ지역민'들의 사례를 찾고(틀림없이 성공할 것임 !) 그러한 사례들의 발견으로 지닌 가설을 견지하게 된다. 그가 찾으려고든다면 그 가설을 부정해 줄 수 있는 많은 자료들을 발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자료는 가설의 타당성과 무관한 듯이 또는 예외적인 경우로 여기는 것이다.
확증적 정보탐색은 가설지지적인 자료를 구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편견의 대상인물과 교류시 그로 하여금 편견에 부응하는 행동을 보이게끔 만들기도 한다. 이를 심리학자들은 자성예언현상(phenomenon of self-fulfilling prophecy)이라고 한다.62) 예를 들어 상대방이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그와 상대할 때 우리 자신을 충분히 드러내지 않을 것이고 이러한 우리의 태도를 접한 상대방도 역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꺼릴 것이므로 결국 우리는 "역시, 이 사람은 음흉하고 믿을 수 없군" 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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