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방송제작방식의 변화
1. 방송개념의 변화
방송 프로그램은 하이테크제품인 멀티미디어상품으로 변화해가고 있다. 연극, 영화, 라디오, TV 등 방송·영상매체들은 매체별로 제작기법상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각 매체들은 독특성을 유지한 채 뒤에 발달된 매체가 앞선 매체의 특성을 물려받아 발전하고 있다. 또한 거꾸로 앞선 매체가 뒤에 나타난 매체의 특성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새로운 매체의 등장으로 예전 매체가 사라지지 않고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하고 있지만 발전의 주류는 새로운 매체로 각 특성들이 통합된다는 것이다. 영화는 연극의 시각적 특성과 이야기구조를 바탕으로 라디오의 음향을 더해 필름이라는 소재에 담아낸다. 텔레비전은 영화적 기법에 더하여 여러대의 카메라를 운용하고 스위처(switcher)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한걸음 발전된 형태이다. 텔레비전에는 연극, 영화, 라디오 등 모체가 되는 다른 매체의 기술적 특성이 망라돼 있다. 물론 최근 들어 영화도 특수효과를 위해 여러가지 화면 합성기술을 사용한다는 측면에서 텔레비전 제작기법의 영향을 받고 있다.
매체들의 특성이 통합된 멀티미디어는 텔레비전 제작기법에 일반 문서편집이나 강의 형식까지도 모두 포함하는 제작방식을 사용한다. 청사진(still Picture), 오디오, 비디오, 텍스트등 지금까지 개발된 커뮤니케이션 매체를 모두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를 멀티미디어(multi-media)라고 부른다. 라디오, 영화, TV 등에서처럼 음성과 영상을 이용할 뿐만 아니라 문자와 그래픽을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방송내용이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수용자가 적극적으로 내용을 선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온라인상에서 동시에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다. 멀티미디어형 방송은 인터넷이나 CD롬 타이틀 형태로 나타난다. 멀티미디어상품은 선행투자비용이 많이 들어가나 선행투자 이후에는 한계비용이 급속히 줄어들어 정체되는 하이테크산업이다. 또한 인터넷 방송과 같이 네트워크의 외부성도 두드러진다.
2. 제작 시스템의 통합/제작공간 압축
전통적 제작 시스템19)은 선형의 세계에서 비선형의 세계로 이동하며 통합되고 있다. 수확체감의 세계가 선형의 세계, 즉 작업의 흐름이 선형으로 순차적으로 흐르며 미래가 예측되는 세계라면 하이테크놀로지가 바탕된 수확체증의 세계는 작업의 흐름이 동시다발적으로, 즉 비선형적으로 흐르는 세계다. 경제학에서 뿐만 아니라 비선형 물리할(nonlinear physics)은 20세기의 전통 물리학을 대체하고 있다. 디지털기술과 네트워크기술 발전이 방송제작을 본질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바는 결국 비선형 편집·제작 시스템으로서 모든 데이터를 디지털화하여 하나의 시스템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이를 DTPP(Desktop Program Production)라고도 하는데 DTPP는 컴퓨터가 제작의 중심도구가 되는 시스템이다.20) DTPP 시스템에서는 모든 제작진들과 제작요소들이 컴퓨터 망으로 연결되어 모든 제작과정이 컴퓨터에 의해 이루어진다. 비선형 편집(non-linear editing) 시스템에는 VCR, 비디오 파일, 문자발생기, 오디오 소스, 스위처, DVE 등 모든 기본장비들이 통합되어 종합편집실이나 부조정실(sub-control room)의 기능이 포함돼 있다. 또한 비선형 편집기로 제작된 방송 프로그램은 정해진 순서에 띠라 바로 송출까지도 가능해 주조정실 역할까지도 통합된다. 지금까지는 촬영된 마그네틱 테이프를 편집장비에 집어넣어 그 내용을 재생해 가면서 원하는 장면을 편집해왔다. 그러나 컴퓨터 하드디스크 용량의 확대와 디지털 압축기술의 발전으로, 테이프의 신호를 일단 하드디스크에 저장한 뒤 컴퓨터 내에서 편집을 할 수 있게 되었다.21) 즉, 지금까지는 테이프를 이리 저리 돌려 가면서 원하는 장면을 찾아 편집(선형 편집 : linear editing)했으나 이제는 테이프를 돌리지 않고 컴퓨터 마우스를 움직여 원하는 장면을 하드디스크에서 바로 불러내면서 편집(비선형 편집 : non-linear editing)하게 된 것이다.
비선형 편집 시스템은 일반 컴퓨터와는 다를 바 없이 생겼지만 촬영된 테이프를 재생해 하드디스크에 저장한 뒤 편집한다. 편집된 화면은 다시 테이프에 담아 방송하면 된다. 이 방식을 사용하면 테이프를 돌려가며 원하는 장면을 찾는 시간이 절약되므로 선형방식보다 편집시간을 10배 이상 줄일 수 있다. 또한 디지털신호를 처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스위처나 DVE가 없이도 와이프, 디졸브는 물론 갖가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미 YTN등 많은 방송사에서 이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소규모 프로덕션도 이 시스템만 있으면 큰 장소나 인력의 부담없이도 방송국 수준과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한걸음 발전하여 테이프로 촬영해 그것을 재생하며 하드디스크에 담을 필요 없이 촬영단계의 녹화를 플로피디스크 같은 소재에다 한 뒤 그것을 다시 하드 디스크에 복사하는 방식도 등장했다. 즉, 테이프 대신 디스크를 장착해 촬영하는 카메라를 이용하는 것이다. 아직 압축기술이 모자라 디스크가 마그네틱 테이프보다 무겁기 때문에 범용화되지 못하였으나 멀지 않은 장래에 실용화될 것이다.
DTPP 시스템에서는 또한 제작기획서의 결재, 제작비 청구서 등 관련 서류의 회람, 공지사항 등 방송지원 부분과 큐시트, 대본 등이 온라인화되어 처리 되는 것은 물론 제작에 쓰일 화면의 편집, 제작, 교류도 온라인상에서 처리된다. 예를 들어 담당 프로듀서가 컴퓨터상에서 제작기획서를 만들고 제작비를 청구하면 관계자들이 온라인상에서 이를 처리해 준다. 연출자는 구성작가가 작성해 놓은 큐시트와 대본 파일을 불러내어 수정 또는 보완해 완성 사인을 내면 카메라맨, 기술감독, 조명감독 등 제작에 관련된건 스탭과 크루는 자신의 컴퓨터상에서 이 내용을 확인하고 제작을 준비한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광케이블망을 이용한 화상점보의 교환으로서, 편집요원은 자신의 컴퓨터에서 카메라맨이 촬영해서 저장해 놓은 화면과 자료실에 있는 화상자료를 불러내어 비선형방식으로 원하는 화면을 편집한다. 연출자는 이 편집원본을 자신의 컴퓨터상에서 확인해 수정, 보완하고 녹화나 생방송 때에 불러내 사용한다. 완성된 프로그램 또한 컴퓨터 서버에 담겨 있으므로 주조정실 요원(MD : Master Director)이 완성된 프로그램을 불러내는 순서를 정해 입력해 놓으면 컴퓨터가 자동적으로 필요한 프로그램과 광고를 순차적으로 불러내며 송출해 준다.
이같은 DTPP 시스템은 이미 국내에서도 초보단계이기는 하지만 일부 이루어지고 있다. 케이블TV 뉴스채널인 YTN은 1995년 개국 당시부터 미국 CNN, 영국 ITN 등에서 사용하는 'BASYS'라는 뉴스 프로그램 제작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해 큐시트와 뉴스 기사 작성 및 분배, 취재일정 관리 등을 온라인상에서 처리하고 있다. 취재와 제작에 관계된 요원들은 어느 컴퓨터에서도 자신과 관련된 기사와 정보의 흐름을 즉시 확인할 수 있으며 생방송이나 녹화 시에도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대본과 큐시트를 활용한다. 기자가 기사를 작성할 때 방송화면에 표시될 문자(기사요약이나 장소표시 등)를 써넣으면 따로 문자발생기에 입력하지 않아도 생방송 때에 자동적으로 그 문자들이 준비된다. 뉴스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의 VPB에서도 하드디스크에 수록된 리포터 패키지를 재생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압축기술이 더욱 발전하고 하드디스크의 용량이 커져 가격이 싸지면 텍스트 뿐만 아니라 화면도 온라인상에서 교환되는 방식으로 발전할 것이다. 가상 스튜디오 또한 디지털기술의 발전 덕택이다. 이 기법은 이미 KBS, MBC, SBS 등 각 방송사의 선거방송 등에 사용하고 있다. 이 방법은 파란 스크린 앞에 선 등장인물의 화면과 컴퓨터 내의 그래픽 화면을 크로마키 기법으로 한성하여 마치 그 공간 안에 사회자가 실제로 있는 것 같은 효과를 내게 하는 것이다. 과거 크로마키 기법은 평면적 화면과 사회자를 합성시켜 사회자의 움직임과 배경화면이 연동되어 움직일 수 없었으나 가상 스튜디오에서는 두 화면 속의 움직임을 연동함으로써 일치감과 현실감을 만들어낸다. 이 기법으로 제작이 불가능한 상상 속의 스튜디오를 구성할 수 있고 스튜디오 공간 비용과 세트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게 되었다.
3. 생산조직의 수평화와 개인화
(1) 수평화
방송조직은 기본적으로 수평적인 성격을 가진다. 소품종을 대량생산하는 전통적 상품과는 달리 각기 다른 다양한 프로그램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방송사들은 패량생산세계의 조직 구조를 지식세계산업에 적용시켜 수직적인 구조를 보여왔다.22) 이러한 계선조직 구조는 방송상품의 성격과 상충되어 변화되는 세계의 모습을 순발력있게 프로그램에 반영하는 것을 막았다. 최근 들어 CP제도(책임프로듀서 제도)의 도입등 수평적 조직으로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수평화의 모습을 잘 드러내 주는 것이(그림2)와 같은 매트릭스(matrix) 조직이다. 매트릭스 조직은 프로그램 개발과 제작을 위해 수시로 프로젝트팀을 구성해 운영하는 컷이다. 팀원은 각 업무별로 최적임자를 선발해 충원한다. 매트릭스 조직은 수시로 필요에 따라 프로젝트팀을 구성하기 때문에 조직 구성원들은 개방된 자세로 목표를 위해 상호 높은 수준의 융통성과 협조를 발휘해야 한다. 이런 조직 형태가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방송산업에 적합한 모델이다.
(2) 개인화
디지털기술은 방송기술의 핵심인 촬영·녹화 시스템의 디지털화를 가져왔다. 현재의 방송제작에 있어 주된 VCR형식인 베타캠(BETACAM)23)방식은 본래 아날로그였으나 수년 전부터 디지털 베타캠방식이 출현했다. 디지털기술은 아날로그 베타캠보다 선명한 화질에, 보다 가볍고 작은 카메라와 녹화기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손에 잡힐 정도로 소형화된 디지털 카메라지만 화질은 기존 아날로그 캠코더를 능가한다.24) 촬상관(CCD)25)이 3개에다 디지털방식이므로 여러 번 복사해도 화질이 떨어지지 않는다. 촬영후 휴대용 편집기를 이용해 현장에서 바로 편집을 한 뒤(특히, 시간을 다투는 뉴스의 경우) 위성전화를 이용해 그 자리에서 방송국으로 송출할 수 있다.
방송장비가 경량화·개인화되면서 과거에 여러 사람이 필요하던 작업이 점차 한 사람이 가능한 시스템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실제로 미국 뉴욕 맨해튼 지역의 케이블TV 24시간 뉴스채널인 NY1(New York One News)은 이미 1993년 개국 때부터 기자 한 명이 캠코더를 직접 들고 나가 취재, 촬영, 리포팅, 편집 등 전 과정을 혼자 다 처리하는 방식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VJ(Video Journalist)라고 부르며 기존 기자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다. 장비가 개인화될 뿐아니라 값도 싸지면서 개인적으로 다큐멘터리나 뉴스 스토리를 제작해 방송사에 파는 프리랜서 VJ도 늘어나고 있다.26) VNI(Video News International) 같은 프로그램 유통회사들은 이들 프리랜서들의 제작물을 사들여 도매상처럼 방송국에 다시 납품하기도 한다. 멀티미디어에 방송이 연결되는 것도 방송장비의 경량화·개인화 덕분이다.
군소 멀티미디어 프로덕션이나 개인들도 감싸고 화질좋은 카메라를 구입해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범용화된 장비로 원하는 장면을 촬영한 뒤 컴퓨터 비디오 편집 프로그램으로 편집해 CD롬 타이틀의 소재로 사용하거나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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