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국내 만화영화산업의 현황 및 문제점
현재 국내 만화산업의 전체 시장규모는 약 1조5천억원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 만화영화 시장이 4천억원, 출판만화 4천억원, 게임 3천억원, 캐릭터산업 2 천억원, 테마파크 2천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l6) 이러한 시장규모는 추정치에 불과하고 음성적으로 외국에서 들어온 시장규모를 합치면 더 커질 것으로 판단된다. 이렇게 정확한 전체 만화시장은 물론 만화영화시장의 규모도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은 그 만큼 국내 만화영화산업 구조가 전근대적이고 경쟁력이 없음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현재 국내 만화영화산업의 구조적 특성과 이에 따른 문제점은 다음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1. 기형적인 만화영화 시장구조 : 미·일 제작물의 국내시장 지배 가속화
국내 만화영화산업의 큰 특징중의 하나는 국내제작 만화영화 물량의 절대적 빈곤과 이에 따른 외국 만화영화의 국내시장 장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는 세계 제3위의 만화영화 수출대국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외국 만화영화의 국내시장 지배라는 상반되고 기형적인 시장구조 형태를 띠고 있다. 즉, 만화영화 수출대국이라는 것은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으로부터 받은 물량에 대한 채색 작업과 같은 단순한 하청생산작업에서 기인한 것으로 결국 국내 만화영화산업의 국제경쟁력은 극히 미약한 상태이다.
이런 기형적 산업구조 속에서 외국 만화영화의 수입 및 배급과 유통은 더욱 심화되고 있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국제하청 발주국가가 미국과 일본으로 편중되어 이에 따른 자본을 비롯한 기술, 시장의 종속화 경향이 심화되는 추세이다. 특히 일본의 영향은 극대하여 작업의 진행방식, 캐릭터의 처리문제, 인물들의 움직임, 배경 등의 작화, 카메라 기법 등의 내용적 측면 외에 물감의 자재 등과 같은 하드웨어적인 면도 관리하여 일본에의 종속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더욱이 미국의 작품발주는 일본과의 합작형태가 많아 일본의 영향력은 그만큼 막강하다고 하겠다. 1993년도 기준으로 지상파 방송3사에서 방송된 TV 만화영화 중 국내 순수 제작물은 6%에 불과하며(만화영화 총 방송시간 중 10시간 내외), 외국사와의 합작물도 14%로 매우 저조한 수준이었다. 이에 반해 외국의 만화영화 수입은 급증하고 있는데 특히 일본의 만화영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1994년부터 1998년 6월까지 방송위원회에서 심의한 총 만화영화 수는 6,476편으로 그 중 일본 만화영화가 3,595편으로 55.5%를 차지하였다. 특히 일본 만화영화의 비율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는데, 1994년 50.2%에서 1998년 6월 현재에는 72.5%를 차지하고 있다((표 1) 참조). 또한 1998년 3/4분기(1998년 7월 1일∼5월 30일) 기간 중 심의·의결된 방송용 만화영화 건수를 분석해보면 총 심의편수는 472편으로 전년대비 24.9%(1997년 378편)가 증가하였는데, 일본의 만화영화가 291편으로 61.7%를 차지하였고, 그 다음 미국 12.9%, 프랑스 1O.8%의 순으로 나타났다. 그 동안 꾸준히 증가해온 일본 만화영화 수입비중은 올들어 최고치를 경신해가고 있다. 그러나 국내 순수 제작물은 단 3편으로 0.6%에 불과하였다((표 2) 참조).
일본 만화영화 수입편중 현상을 1998년 3/4분기의 지상파 방송사별로 살펴 보면, 방송3사 모두 60%이상을 일본에서 들여오고 있으며, 특히 SBS는 방송 3사 중 가장 높은 일본 만화영화 의존도를 보일 뿐만 아니라 국산만화를 제외한 전량을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 한편, 이 기간 중 방송3사가 심의 신청한 472편의 만화영화 중 346편(73.3%)이 '방송가'로, 123편(26.1%)이 '조건부 방송가'로, 3편(0.6%)이 '방송불가'로 심의 의결되었다. 이는 1997년 같은 기간에 비해 '방송가'율과 '조건부방송가'율은 다소 높아진 것이며, '방송불가'율은 상당폭 낮아진 결과였다. 각 방송사별 심의신청 현황은 KBS 124편, MBC 101편, SBS 184편, EBS 63편이었으며, '방송가'율은 EBS가 100% 로 가장 높았으며 SBS가 44.6%로 평균치(73.3%)를 훨씬 밑돌았다. 상대적으로 '조건부방송가'율은 SBS가 가장 높았다((표 3),(표 4) 참조).
이와 같이 국내방송사가 자체제작보다는 외국작품 수입을 선호하는 이유는 국내에서 만화영화를 제작할 경우 평균단가가 1억6천만원에서 2억5천만원인데 반해, 광고수입은 8천만원 수준으로 대부분 적자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비디오용 만화영화의 경우, 국내작품은 5%수준이며, 극장용은 전무한 상태로 미국의 디즈니 만화영화가 독점하고 있는 상태이다.17)
2. 만화영화 산업자본의 영세성과 주문형 생산방식에 의한 수출산업구조
국내 만화영화 제작사는 크게 메이저급과 마이너급 제작사로 구분할 수 있는데, 메이저급은 고용인원이 100명 이상이고, 기획실, 연출부, 원화부, 동화부, 채색부, 편집촬영부 등 애니메이션 제작공정에 필요한 부서를 골고루 갖추고 있으면서 연간 20편이상을 제작하는 업체를 의미한다. 나름대로 자체 기획 하여 캐릭터 개발능력을 갖추고 있는 제작사는 대원동화, 세영애니텔, 한호흥업, 에이콤프로, 새롬프로, 코코엔터프라이즈, 한신프로덕션, 영우프로, 알디케이, 선우프로 등 10개사에 불과한 실정이다. 마이너급 제작사는 이들 메이저급 제작사들로부터 재하청을 받아 단순히 채색작업을 하는 소규모업체를 뜻한다. 1996년 현재 마이너급 제작사를 포함한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자협회에 등록된 총제작사는 100여개 정도이나, 협회에 등록하지 않고 개인사업체 형태로 제작공정의 일부분만 담당하는 소규모 업체까지 합하면 약 450여 개사가 난립해 있고, 종사자는 약 2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8)
국내 만화영화산업의 영세성은 관악구 신림동과 봉천동에 밀집해있는 군소 제작업체의 만화촌으로 상징화되고 있다. 메이저급 제작사들의 자본금 규모가 평균 2억에서 5억원 정도로 매우 영세한 형편이고 보면, 이 곳에 입주해있는 업체들의 자본금은 1억원 미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화영화산업이 다른 영상 소프트웨어보다 상대적으로 제작비 투자규모가 큰 자본집약적 산업19)이라는 특성을 고려한다면 현단계 국내 만화영화산업의 경쟁력은 그만큼 열악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겠다.
국내 만화영화 제작사들은 매년 평균 500여편 정도 제작하고 있으나, 대부분 미국과 일본에서 하청 받아 제작하는 해외 작품들이다. 국내업체들의 업무는 창의력이 필요 없는 수동적인 작업만을 주로 하게 되는데, 외국발주회사로부터 구성시나리오, 콘티, 캐릭터의 다양한 모습 및 칼라링 샘플, 배경설정 보드 등의 지침을 받아 촬영 및 편집까지의 과정을 제작, 납품하는 형식이 대부분이다((표 5) 참조).
이러한 형태로 외국에 수출한 만화영화 물량은 매년 증가하여 1993년 6천2백여만달러, 1994년 7천4백여만달러, 1995년 8천4백여만달러, 1996년 9천2백여만달러, 1997년 1억달러 이상의 실적을 나타냈다. 특히 1997년의 경우 국내 영상분야 수출액 중 만화영화의 점유율이 99%를 차지하는 수치이다. 이러한 수출실적은 국가별로 1993년을 기준으로 미국 수출이 74%, 그 다음 프랑스, 일본의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표 6),(표 7) 참조). 이러한 상당한 수출액 뒤의 국내 만화영화의 현실은 그 이상의 부가가치를 생산하지 못하는 단순 하청액이라는 점에서 허약한 경쟁력을 단편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영세한 국내 만화영화산업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중의 하나는 불안한 회사 경영과 이에 따른 인사관리의 부재이다. 대부분의 국내 만화영화 제작사가 독창적인 기획에 따라 제작한다기 보다는 대부분 선진국의 물량을 하청, 수주 받아 채색작업 등의 마무리 작업을 해서 수출하는 형태를 띠고 있는 상황속에서, 그나마 국내 인건비의 상승으로 국제하청이 중국과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로 이양되고 있어 하청물량이 급격히 퇴조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국내 만화영화 제작업체의 물량확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으며, 물량확보에 따라 작업의 성수기와 비수기가 교차되어 회사경영과 인사관리가 불안한 실정이다. 국내 소규모 만화영화 제작사의 성수기와 비수기의 교차는 미국의 TV 만화영화 방영구조와 그 맥을 같이 한다. 미국의 TV 만화영화는 주로 9월에서 12월에 집중적으로 방송되는데, 이에 따라 미국의 기획사들은 12월부터 다음 해 3월 까지 제작기획과 스케줄을 완료한다. 이후 국내 하청물량이 폭주하기 시작하는 때는 4월부터 11월 까지로 제한된 시간에 많은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신림동 만화촌의 군소업체에 재하청이 이루어지게 된다. 따라서 재하청물량에 따라 일시적인 업체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현상이 반복되는 성수기와·비수기의 싸이클적 특성을 보이고 있다.
두번째 문제점은 기획/연출분야의 미흡한 성장기반을 들 수 있다. 만화영화 제작의 하부시스템인 단순노동 분야(채색위주의 기능인력, 작업 노하우 등)만 이 집중적으로 개발되어 있을 뿐, 보다 중요한 상부시스템의 노하우 실적은 저조하여 자생적인 기획 및 제작능력은 상당히 미약한 실정이다. 예컨대, 1996년 한국무역협회가 추정한 만화영화산업 종사 인구분포를 보면, 2만 여명의 종사자 가운데 시나리오 종사자 10여명, 연출 1백명, 원화 1천여명, 동화 5천여명, 동화체크 4백여명, 선화채색 8천여명, 배경 1천여명, 복사 4백여명, 촬영 5백여명, 제작 2천여명, 행정 및 번역 1천여명으로 집계되고 있다.20) 비공식 집계에서 보듯이 국내 만화영화 제작인원은 시니리오 기획 및 연출분야 등 고 급 창작인력이 매우 미흡한 반면, 하부 제작인력은 상대적으로 과도하여 불균형적인 인력수급구조를 이루고 있다.
한편 메이저급 제작사의 경우, 평균 3백명에서 4백명의 제작인원이 있으나, 정식 직원보다는 프리랜서나 계약직 사원이 대부분이고 여러 제작사에서 복수로 일하는 경우도 많아 공식적인 집계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렇듯 국내 만화영화제작 종사자에 대한 공식적 집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그 만큼 국내 만화 영화산업의 전근대적 시장구조를 단편적으로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결론적으로 상부제작체계의 노하우 축적이 미흡함에 따라 진정한 창작작업 능력이 부족한 실정이고, 국내에서 기획, 제작하는 TV용이나 극장용 작품의 경우에서도 상부의 기획, 연출 노하우는 미국과 일본 등의 선진국에 의뢰하는 경우가 상당히 있는 실정이다.
3. 외국 배급사 및 국내 대기업의 배급·판매·유통체계 장악 가속화
브에나비스타 코리아(월트 디즈니사의 한국지사)로 대표되는 외국사의 극장용 만화영화와 대여용 비디오 만화영화의 직접배급방식이 점차 확산되는 추세이다. 반면 국내 대기업들은 영상산업분야에의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선점하기 위해 외국 만화영화 수입 및 판매 경쟁의 각축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대기업과 방송사의 무분별한 외국만화 수입 및 해외판권 수주 경쟁의 심화는 수익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인데, 이는 궁극적으로 국내 만화영화 제작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기피하게 하는 표피적인 상업주의에 불과하다고 하겠다.
일본문화 개방에 따라 이미 대기업들을 포함한 국내 수입업체들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데, 출판만화와 비디오용 만화영화는 이미 열려 있어, 극장용 만화영화 판권이 경쟁의 초점이 되고 있다. 국내의 대표적인 메이저 만화영화 제작사인 대원동화의 경우, 일본 비디오용 만화영화 중 프랑스에서만 50만 관객을 동원할 정도로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1995년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인 '공각기동대'의 국내 판권을 이미 확보했다. 이외에도 대원동화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붉은 돼지', '마녀배달부 키키', '귀를 기울이면', '헤이세이 너구리 대작전', '추억은 방울방울', '반딧불의 묘지' 등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 중 4∼5편은 가계약이나 구두계약으로 우선권을 확보한 상태이며, 극장판 '에반게리온' 2편도 이미 '에반게리온' 비디오시리즈를 출시해 기득권을 인정 받을 확률이 높다. 동아수출공사도 '스트리트 파이터', '뱀파이어 헌터'를 포함한 극장용 3∼4편의 계약을 거의 성사시켰다. 서울문화사는 '원령공주'를 포함하여 20여편을 타진하고있는데, 작품에 따라 국내 대기업과 공동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이 회사는 1996년 국내 비디오 판권을 산 '엑스' 를 놓고 재협상을 진행중이다. 개방에 따라 배급사인 일본의 마루베니상사측이 극장용 판권을 포함, 재계약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 동안 비디오 판권만 넘겼던 일본 제작사는 조든 판권을 함께 구입하며 재계약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었다. 1998년 10월초 현재 업계는 이미 계약한 일본작품이 20여편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원령공주'와 '에반게리온'과 같은 흥행대작 대부분은 아직 정식 계약을 맺지 않은 상태이다. 이렇게 지연되는 이유는 판매가가 갈수록 상승하는 상황에서 일본 제작사들이 좀 더 기다리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판권 가격은 20만달러 내외에서 형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가격은 1997년에 비해 2배 폭등한 것이다. 작년에 일본은 '붉은 돼지'로 40만달러를 요구했고, '원령공주'는 50 만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경우에 따라 1백만달러를 웃도는 작품도 나올 전망이다.21)
일본의 경우, 출판자본의 내용 있는 투자와 NHK 등 방송사의 지속적인 지원, 그리고 만화가의 장인정신이 애니메이션 제작사와 결합되어 만화영화관련 부문간의 유기적인 협조체제 아래에서 체계적이고 내실 있는 투자와 협조가 이루어지고 있어 우리나라와 큰 대조를 보이고 있다.
4. 캐릭터산업의 미발달
1980년대 중반 국제저작권협약에 가입하여 캐릭터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으나, 아직까지는 주로 외국만화의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는 초보적 단계에 머물고 있다. 즉, 국내 캐릭터산업은 영화 홍보차원 수준으로 캐릭터의 인지도를 이용하여 상품판매의 극대화를 도모하는 단계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만화영화의 경우, 캐릭터산업 또는 완구업계와의 연계강화로 제작비용을 경감하도록 유도해야 하나 아직 이 단계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제작한 만화영화의 캐릭터를 개발하여 상품화에 성공한 사례는 아기공룡 둘리(3억5천만원)와 날아라 수퍼보드(1억원) 등 일부에 지나지 않는 실정이다.22)
이러한 국내 캐릭터산업의 미발달은 국내 만화영화 유통구조의 전근대성에도 크게 기인하고 있다. 영상산업은 유통단계별로 고부가가치가 창출되는 산업으로서 유통구조의 합리화를 통한 창구효과의 극대화는 필수적이다. 일본 만화영화는 출판만화-OVA-극장용-TV-비디오-캐릭터, 완구-게임-음반 등의 상호 연관적이고 순환적인 유통구조로 창구효과를 최대화하고 있다.23) 따라서 우리나라도 유통구조의 세분화를 통한 합리적인 유통구조의 정립과 투명성을 확보함으로써 관련 캐릭터산업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다음 페이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