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일본 영상소프트웨어 수입개방에 따른 방송의 영향
1. 우리나라 방송 역사와 일본 영상소프트웨어
1927년 2월 일제 강점하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국 「경성 방송국」이 문을 열었다. 1945년 9일 미군정에서 KBS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1961년 12월 KBS 서울 텔레비전 방송국이 개국했다. 우리나라의 방송이 일제하에서 시작되어 미군정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방송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역사적인 사실은 오늘날 우리나라 방송현실이나 미국, 일본과의 관계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의 방송이 자발적이고 자주적으로 형성 되어온 것이 아니라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시작되고 성장해 왔다는 것은 우리 방송에는 치명적인 취약점이 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이미 1939년부터 텔레비전 실험방송을 실시하여 우리나라가 텔레비전 방송국을 개국할 즈음인 1962년에는 TV수신 계약수가 1,000만을 돌파하였다. 미국은 이미 1951년 CBS에서 컬러TV방송을 개시하였다. 또 미국을 비롯하여 일본도 TV 수상기와 그외 각종 텔레비전 방송용 장비를 자체 개 발하여 이용하고 있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처음부터 일본의 방송장비와 기술로 방송을 시작하였고, 이후 자연스럽게 일본과 미국이 동시에 취하고 있는 방송 표준을 따라 방송을 제작하게 되었다.
또한 세계 방송장비시장을 거의 평정한 소니, 마쓰시타 같은 일본업체의 방송장비를 기반으로 시스템을 구축하고, 지상파 텔레비전의 경우 미국과 일본이 채택한 주사방식인 NTSC방식을 따름으로써 두 나라로부터 방송 제작환경은 물론 구체적인 방송프로그램의 제작에 있어서도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더 나아가서는, 방송프로그램의 국제교류 측면-당시에는 수출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주로 수입에 한정된다- 에서도, 우리나라와는 주사방식이 다른 유럽의 프로그램보다는 미국이나 일본의 방송프로그램을 더 선호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방송방식의 차이로 인해 유럽을 비롯하여 다른 나라의 프로그램을 접하기가 어려웠던 점도 한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우리나라 방송의 태동기부터 비롯된 역사성과 그로부터 파생된 기술적인 문제들로 인해 우리나라 방송은 미국과 가까운 일본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술적인 부문의 문제들로 인해 비롯된 미국과 일본 편향성은 영상소프트웨어에 있어서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무런 기술적 조작없이 접근 가능한 미국과 일본의 영상소프트웨어에 아무래도 더 많이 노출되고, 이것은 또한 알게 모르게 우리나라 영상소프트웨어 제작시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2. 일본 영상소프트웨어 현황
일본 영상소프트웨어 시장은 크게 영화, 애니메이션, 비디오 그리고 방송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 장에서는 영화, 애니메이션, 비디오에 대한 간략한 역사와 현황 등을 살펴보고 다음 장에서는 일본 TV프로그램의 특성에 대해 분석해 보겠다.
(1) 영화
일본에서 영화가 만들어지게 된 것은 1900년경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19O8년에는 최초의 촬영소가 설립되었다. 19l3년 니카츠라는 대형영화사가 처음 설립된 이후 1921년 쇼우치쿠, 1935년 토호, 1942년 다이에이의 일본 3대 메이저 영화사가 잇달아 설립되었다. 이후 1950년대는 일본영화 사상 최고의 호황기였다. 1958년 한 해에만 약 11억2천7백만명6)이 영화관을 찾았다.
이것은 구로사와 아키라, 미조구찌 겐지, 오스 야스지로 같은 세계적으로 인정 받은 걸출한 감독들이 있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1951년 '라쇼몽'(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1952년 '오하라의 일생'(미조구찌 겐지 감독)이 베니스영화제 그랑프리와 은곰상을 각각 수상했으며, 미조구찌 겐지 감독의 작품은 이후 3 년 연속 베니스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하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이처럼 1950년대 국제영화제 수상으로 세계적인 지위를 얻게 된 일본영화는 시대극이라 불리는 장르로, 사무라이의 의리와 인정, '사회에 대한 정의감 등 일본인의 전통적 풍속과 역사관 등을 잘 표현하여 오늘날까지도 일본영화의 대표적인 형식으로 인정받고 있다. 1960년대에는 주로 일본의 폭력배인 야쿠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협객영화들이 만들어졌고, 1970년대에는 성(性)을 상품화하여 선정적인 에로티시즘을 다룬 로망 포르노라는 장르가 등장하여 일본 영화의 큰 흐름을 만들게 되었다. 1960년대 이후 영화가 좀 더 자극적이고 오락적인 폭력적, 선정적인 주제로 방향을 선회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영화관람 인구가 급감하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후 일본영화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고 계속 상영 편수와 관람객수가 줄어가는 등 쇠락을 면치 못하였다. 실제로 일본영화 입장객수는 1961년 9백만명에 육박한 것을 정점으로 급격한 하락세를 보여, 1990년대에는 평균 입장객수 2백만명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에서 머무르고 있다. 전체 흥행 수입은 1980년대 1,600억 엔대에서 점차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가 작년 1997년의 경우 애니메이션 '원령공주'(미야자끼 히야오 감독)의 역대 흥행 1위 기록달성에 힘입어 1,772억엔의 이례적인 증가를 보였다.7) 그러다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소위 일본영화의 뉴웨이브 세대라는 감독들8)이 나오면서 일부 주목받는 작품들이 나오고는 있지만, 일본인들 스스로도 "이제 일본영화 는 재미없다", "일본영화는 끝났다"라는 말을 공공연히 할 정도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단, 이들 뉴웨이브 감독들이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에 태어나면서부터 텔레비전과 영화,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라난 철저한 영상세대라는 점, 그 들 자신이 1990년대 일본문화의 든든한 힘이 되고 있는 오타쿠9)들이라는 점 등의 요인으로 이들의 향후 행보를 주목해 볼만은 하다.
(2) 애니메이션
일본영화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반면, 일본 애니메이션은 재패니메이션(Japanimation)이라는 시기와 질투가 섞인 별명을 얻을 정도로 세계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아무래도 '만화의 신'이라는 데스카 오사무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데스카 오사무는 1963년 일본 최초의 TV용 시리즈 애니메이션인 '철완 아톰'을 제작하여 제2차 세계대전 패망이후 일본의 어린이들 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현재 일본 과학발전의 기틀을 마련 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후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데스카 오사무의 '정글 대제', '리본의 기사', 도에이 동화사의 '은하철도 999'(1978), 선라이즈의 '기동전사 건담'(1978-) 등 우수한 작품이 계속적으로 발표되면서 '리미티드', '스테이지 스트럭처'10) 등의 일본식 애니메이션 문법 전형을 만들어 나갔다.1980년대에 접어들면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걸출한 감독에 의한 장기독재가 시작된다. 이전의 일본 에니메이션들이 주로 크게 성공한 출판만화를 원작으로 제작되었던데 반해, 1978년 '기동전사 건담'의 성공이후 애니메이션만을 위한 창작 시나리오의 필요성이 확산되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미래소년 코난'(1978)이후 작가주의를 지향하며 창작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중흥기로 이끌었다. '천공의 성 라퓨타'(1986), '이웃의 토토로'(1988), '헤이세이 너구리 대작전'(1994), '원령공주'(1997)로 대히트작의 계보를 차례로 이어갔으며, 특히 1997년의 '원령공주'는 관객 동원 1,300만명을 동원하는 경이적인 기록으로 실사영화를 제치고 역대 흥행 랭킹 1 위의 자리를 차지했다.
1990년대에는 여전히 건재한 미야자키 하야오를 필두로 '아키라'(오토모 가츠히로, 1988), '이상한 바다의 나디아'(안노 히데야끼, 1990), '공각기동대'(오시이 마모루 감독, 1995), '신세기 에반게리온'(안노 히데야끼 감독, 1997) 등이 일본 애니메이션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1997년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 규모는 1,300∼1,500억엔 정도인 것으로 추정되며, 이것은 일본영화 시장 1,772억엔의 80%에 육박하는 규모이다.11)
위와 같은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외에 TV시리즈물의 경우도 전세계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특히 변신로봇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경우는 독보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매년 애니메이션 수출 자체보다 로봇 완구, 캐릭터 상품의 판매에서 천문학적인 수익을 전세계에서 벌어들이고 있다. 최근에는 도에이의 순정 애니메이션 '달의 요정 세일러문'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주인공들이 입고 나왔던 세일러 복장을 전세계적으로 유행시킬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기도 했다.
일본 영상소프트웨어 수출액은 약 2억달러로 추정되는데, 그 중 약 60%를 애니메이션이 차지하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아시아 46%, 유럽 30%, 북미 19 %의 분포를 보이고 있어 아시아를 중심으로 전세계 시장에 고루 확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1993년 기준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 점유율을 보면 미국이 49.2%, 일본이 24.2%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디즈니가 그 중 50%를 차지하고 있어 디즈니를 제외한다면 일본 애니메이션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49%에 이른다. 참고로 출판만화의 경우는 1994년 기준 세계시장 80∼90%를 차지할 만큼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어 일본 애니메이션의
든든한 받침돌이 되고 있다.12)
(3) 비디오
일본은 1975년 가정용 VTR이라는 기기를 처음 판매하기 시작해 비디오를 전세계적으로 보급시킨 비디오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일본의 비디오 시장은 전통적인 비디오 테이프 뿐만 아니라, 레이저 디스크(LD), 비디오 CD, 그리고 막 보급되기 시작한 DVD(Digital Versatile Disk) 등 복합적 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전통적인 비디오 테이프의 비중이 가장 높은 77% 이고, LD 16%, 비디오 CD 5%, DVD가 1%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일반판매용(Sell Through) 비디오와 대여용 비디오가 거의 비숫한 정도의 점유율(49.2% : 42.1%)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비디오 테이프는 주로 대여점을 통해 유통되고, LD와 비디오 CD 같은 뉴미디어에 속하는 제품들은 주로 일반판매를 통해 유통되는데, 이것은 일본의 높은 뉴미디어 기기 보급률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비디오 대여점도 전국적으로 13,000개 정도가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일본 비디오 시장 매출액은(표 4)와 같다.
3. 일본 TV프로그램의 특성
1997년 현재 일본에는 NHK 2개 채널을 포함, 127개의 지상파방송, NHK 위성 제1, 제2, WOWOW(아날로그 위성)와 디렉TV, 퍼펙TV(디지털 위성) 등 200개 이상의 위성채널, 그리고 180여 개의 CATV사업자 등이 있으나, NHK와 도쿄의 5대 민영방송을 제외하면 거의 수직 네트워크화 되어있거나(지상파의 경우), 혹은 거의 수입 프로그램으로 채우고 있어서(위성방송, CATV), 본 고에서의 주요 분석대상은 NHK 및 5대 민영방송에 한하고자 한다.
(1) 일본 6대 네트워크 개관
*NHK
1925년 사단법인 동경 방송국, 오사카 방송국, 나고야 방송국을 통합한 '사단법인 일본방송협회'로 출범한 세계 최대의 공영방송으로 지상파 2개 채널(종합/교육) 및 위성방송, 단파방송, 문자다중방송 등 거대 미디어그룹으로 현재 일본방송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NTV(니혼 TV)
1953년 최초의 민영방송으로 출발했으며, 일본 최대의 신문사인 요미우리신문, 프로야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 그리고 요미우리 방송사와 같은 계열사로 영업보다는 기획을 중요시하는 풍토와 1994년까지 최고를 구가하던 후지 TV에 대한 철저한 연구, 분석과 벤치 마킹을 통해 현재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 하는 방송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가맹사수는 30개이다.
*후지TV
재계의 이익을 대변할 목적으로 1959년 설립된 일본 제4의 민영방송으로 1980년 이후 '재미있는 TV'라는 슬로건아래 젊은 층의 호응도가 높은 트랜디 드라마와 한 발 앞선 형식의 버라이어티쇼 등을 통해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199O년대 중반이후 성공한 방송사로서의 매너리즘과 제작인력의 신구 교체 지연, 그리고 최대 강점이던 버라이어티쇼의 식상함 등으로 NTV에 뒤쳐진 상황이다. 현재 네트워크 수는 26개이다.
*TBS(도쿄방송)
1955년 두번째 민영방송으로 출발하여 드라마와 보도 왕국으로 20여년간 명성을 유지해 왔으며, 민방 최초로 시대극과 뉴스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한발 앞서 갔으나 지나치게 차분하고 딱딱한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해 현재는 시청률 3위에 그치고 있다. 현재 가맹사수는 28개이다.
*TV아사히
1959년 교육전문국 'NET'로 시작하여 1973년 종합편성을 하는 방송사로 전환, 가맹사 23개사를 거느린 일본 제4위의 민영방송으로 하루 9시간 가량의 뉴스와 정보프로그램을 방송하는 뉴스정보 스테이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TV도쿄
1964년 일본 '과학기술 진흥재단 텔레비전'으로 출범하여 1973년 TV 아사히와 함께 종합방송국으로 변환했으나 현재 단 6개의 가맹사만 확보한 다소 열세에 있는 방송사로 음식, 여행, 경제정보, 만화프로그램 등에 강점을 가진 차별화 된 채널 특성을 보이고 있다.
(2) 일본 TV프로그램의 특성
기본적으로 '재미있는 TV'를 지향하는 일본 방송사들의 특성상 거의 모든 장르에서 -심지어 보도부문에서도- '오락적 요소'를 강하게 담고 있으며, 이를 대표하는 장르는 가장 일본적이라 불리는 '와이드쇼' 이다. '와이드쇼'는 TV도쿄와 TBS를 제외한 일본 민영방송에 가장 보편적으로 많이 편성되어 있는 프로그램으로 아침부터 밤까지 적어도 하루 5∼6시간씩은 방송하고 있으며, 주된 소재는 충격적인 사건과 연예 스캔들로 요약할 수 있다.
다음으로 사실상 일본방송의 시청률을 주도하고 또한 한번 히트하면 장수할 수 있기 때문에 각 민방들이 사활을 걸다시피 하는 '버라이어티쇼'는 요란한 배경의 스튜디오에 스타급 연예인들이 다수 출연해 신변잡담으로 웃고 떠드는 코미디성 쇼 프로그램으로 우리나라 방송사들이 가장 많이 벤치 마킹하는 장르라고 하겠다.
그리고 드라마의 경우, 시대극, 일일극, 미니시리즈, 드라마 스페셜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데 그 중 밝고 화려한 트렌디물과 가족 대상의 미니시리즈가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 외에도 오락적 요소가 강한 다큐멘터리 토크쇼, 대단히 연성화된 뉴스프로그램 등도 일본 TV프로그램의 특성이라 하겠다.
(3) 일본 방송시장의 규모
일본 방송시장의 규모는 다음의(표 5)와 같이 1990년에 지상파방송이 2조3,000억엔, 위성방송이 149억엔, CATV가 190억엔 규모였으며, 1983년 이후 1990년까지는 지상파의 경우 매년 5%의 성장을 보이다가 이후 2000년 까지는 3.5%의 성장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면에 위성방송의 경우, 같은 기간동안 56.3%의 비약적인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이는 디렉 TV와 퍼펙 TV, 곧이어 출범할 JskyB등 디지털 위성방송의 등장에 기인한 것이라 하겠다.
4. 일본 영상소프트웨어 개방이 우리나라 방송에 미치는 영향
1998년 10월 20일에 발표된 정부의 일본문화 개방일정에 따르면, 방송과 음반부문을 가장 늦게 개방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현재의 예상으로는 한일 공동으로 월드컵을 개최하는 2002년 즈음 전면개방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만큼 일본문화 개방이 미칠 파장과 영향이 다른 장르에 비해 훨씬 더 클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장에서는 구체적으로 일본문화 개방이 우리 방송과 방송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예상해 보고자 한다.
우선 일본 방송프로그램 수출 현황을 개괄적으로 살펴보자. 1992년 총수출량은 시간으로 47,062분이었으며, 수출액은 37억엔이었다. 이 중 북미 유럽 대상이 39,394분, 아시아 대상이 7,668분으로 나타났는데, 판매단가는 미국 프로그램의 약 3분의 1에서 2분의 1 가격대에 형성되어 있으며, 아시아 대상으로 판매할 경우는 유럽 대상 판매가격의 약 10분의 1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큐멘터리는 유럽을 중심으로 한국, 대만 등에 수출되고 있으며,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유럽, 북미, 아시아지역에 골고루 수출되고 있다. 드라마는 소수 트랜디 드라마가 위성방송인 스타TV를 통해 방송된 바 있다. 버라이어티쇼 등의 쇼 프로그램은 문화적 차이로 인해 완성품 형식으로는 수출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퀴즈 쇼 같은 일부 쇼 프로그램의 포맷 판매가 이루어진 사례가 있다. 물론 성공사례는 아직 거의 없는 형편이다.
(1) 영화
먼저 방송프로그램에 직접적으로 미치게 될 영향부터 장르별로 구분하여 살펴보면, 일본영화의 경우는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1950년대의 고전이나 1990년대 뉴 웨이브 감독들의 신작 경우에는 먼저 단계적인 극장용 영화 수입 개방 일정과 맞추어 향후 텔레비전에서도 방송될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 극장용 영화 상영 후 최소 6개월 이상의 기간을 두고 비디오를 출시 하고, 또 그로부터 수개월 내지 수년의 기간이 경과한 후 지상파 텔레비전과 케이블 텔레비전에까지 배급되는 관례를 고려할 경우, 올해 1998년 말까지 상영된 일본 영화라 하더라도 최소 2년 정도 후에나 방송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영화의 경우는 극장용 영화시장에는 얼마동안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지만,13) 방송에 미칠 영향은 그렇게 클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물론, 초기에는 일본영화의 호기심 때문에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키겠지만, 그렇게 큰 파장을 미치지는 못하리라고 전망한다. 왜냐 하면 구로사와 아키라나 미조구찌 겐조 같은 일본영화 고전의 경우 이미 각종 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경로를 통해 볼 만한 사람은 다 본 상태이고,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들이거나 영화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매니아 계층 외에는 1990년대 말의 정서로 볼 때에는 그렇게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영화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영화의 큰 흐름을 이루고 있는 협객영화, 야쿠자영화나 로망 포르노 같은 영화들은 어차피 작품 자체의 폭력성과 선정성으로 인해 텔레비전으로 방송되기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만일, 이들 영화들을 무리하게 잘라내고 방송을 한다 하더라도, 처음에는 사회적 이슈성 때문에 관심을 끌겠지만, 잘라낸 분량이 너무 많아 영화적인 재미를 느낄 수 없을 것이고, 곧 관심이 수그러들 것으로 생각된다. 1990년대 주목을 받고 있는 뉴웨이브 감독들의 작품도 위에서 예를 든 두 가지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여, 일본영화가 방송에 개방된다고 해서 온통 텔레비전을 장악해 버리는 일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 TV드라마
다음으로 드라마를 살펴보자. 일본 드라마의 경우 아시아 시장에 한해서만 약간의 수출실적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왜냐 하면 구미지역의 경우에는 문화적인 차이, 등장 인물들에 대한 저항감 등이 큰 저항요소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일본 드라마가 아시아 시장으로 진출하게 된 계기는 199l년에 방송을 개시한 스타TV였다. 스타TV는 상대적으로 프로그램 내용에 대한 규제가 적은 홍콩을 근거지로 차고 있으며, 여러 채널을 한꺼번에 운영하면서 스타 Plus 같은 드라마 전용채널을 채울 만한 영상소프트웨어가 부족했기 때문에 동지에 저렴한 가격에 많은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 일본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홍콩, 태국, 말레이지아 같은 아시아지역 지상파 방송국에서도 일본 드라마에 대한 수요가 발생하기는 했으나, 아직 주목할 만한 정도는 아니다. 왜냐하면 아시아지역에는 아직도 일본에 대한 감정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고, 시대극이나 트렌디 드라마류에 치우쳐 있는 편향성 때문에 일본 드라마의 수준에 대한 의문도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단 향후 일본문화가 더욱 확산 되어 아시아지역 주류문화로 등장할 경우, 일본 드라마의 영향력도 더불어 대폭 신장될 가능성은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다큐멘터리 및 쇼 프로그램
다큐멘터리의 경우는 NHK만이 유일하게 경쟁력있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생산해오고 있는데 이 또한 물량면에서는 그렇게 많은 건은 아니고, 과거에도 몇 차례 방송된 사례가 있어, 당장 개방된다고 해도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다. 버라이어티쇼나 와이드쇼 같은 쇼 프로그램류는 일본내에서는 가장 인기있는 장르 중의 하나이지만, 일본 내부에 치우쳐 있는 제작내용과 시의성 등으로 인해 그대로 수입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일본 쇼 프로그램의 제작전형을 따르면서, 전략적 ·수출지향적으로 쇼 프로그램을 제작할 경우에는 시장 잠식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여기에 일본 대중음악 개방을 등에 업고 일본 대중음악 스타들이 가세한다면 상당한 파괴력을 행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14) 하지만 일본 대중음악이 완전 개방된다면 일본 대중가요 스타들의 한국공연이나 직접 한국방송에 출연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므로 일본 쇼 프로그램을 직접 수입하는 사례가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이다.
(4)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의 경우도 현재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잠식률이 8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더구나 지난 1998년 7월 10일 문화관광부가 고시한 「국산만화영화 TV 의무편성비율과 인정기준」의 영향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이 국내방송을 장악해 버리는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현재 각 방송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애니메이션의 물량이 얼마되지 않고 그나마 재방, 삼방을 통해 여러 번 방송되었던 것들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을 우려는 상당히 크다. 뿐만 아니라 만화 영화 시리즈를 제작하기 위해 투입되어야 하는 엄청난 제작비 투자도 각 방송사에 상당한 압박요인이 되고 있고, 최소 1년 6개월 이상 걸리는 제작기간도 상당한 무리요인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 방송사와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 사간에 최소한의 국산 인정기준15)만을 넘긴 합작 영화들을 양산해내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어 우려가 되는 상황이다. 이 경우는 명목상으로는 합작에 의한 국산 애니메이션이지만, 실제로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일본 영상소프트웨어가 방송에 완전 개방된다고 하더라도 수치상으로는 우려했던 만큼의 파괴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은 단순히 외형적인 부분에 그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실제로 더 큰 영향력과 파장이 우려되는 부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적이 측면이다. 우리나라 방송프로그램들은 그 동안 표절시비에서 보았던 것처럼, 일본문화가 철저하게 금기시되어 있던 상황에서도, 가요, 드라마, 쇼, 심지어는 다큐멘터리나 특집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각종 방송 콘텐츠를 차용해왔다. 따라서 일본문화가 완전 개방될 경우 아예 드러내 놓고 일본 프로그램 베끼기를 감행하거나, 정상적인 경로를 거쳐 프로그램 포맷만을 수입하거나, 또는 각 프로그램의 꼭지들을 일본에서 수입하는 등의 사례가 폭증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까지 온갖 편집기술을 이용하여 애써 감추어왔던 각종 일본색을 더 이상 감출 필요가 없어지므로,16) 시청자들은 상상하지 못했던 구석구석에서 튀어나오는 일본문화를 확인하고 문화적 충격상태에 빠질 우려도 있다.
이러한 내면적인 충격은 그 영향력을 수치로 계량화할 수는 없지만, 실상 일본문화 개방을 앞두고 가장 우려되는 측면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텔레비전 이라는 매체가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자칫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전세계적으로도 가장 높은 수준의 텔레비전 시청률을 보이는 나라이다. 최근 모 방송국의 드라마가 70%대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였다고 하는데 이런 사례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연예오락 산업의 기반 미비로 텔레비전이 전국민들에게 가장 보편적이고 저렴한 오락수단이며, 실제로도 여가시간의 대부분을 텔레비전을 시청하면서 보내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수치상으로 크게 증가하지는 않지만 과거처럼 감출 필요가 없이 방송프로그램의 구석구석에서 출현하는 일본문화의 융단 세례에 시청자들이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다면 그 충격파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 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대략 2년 정도로 생각되는 완전 개방의 유예기간동안, 우리 방송은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책을 연구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며, 이에 따라 보다 질 높고 우수한 방송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일본 영상
소프트웨어의 우리나라 방송에 대한 완전 개방에 대비하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 콘텐츠 상품의 세계화를 이루기 위한 몇 가지 대안적인 고민과 대응방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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