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이론적 고찰
1. 만화의 등장과 발달
줄거리 만화(comics)는 일러스트레이션에 변화를 가져왔다. 만화는 원래 일러스트레이션에 문구를 삽입한 연속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최초의 연속 만화는 신문에 게재되었는데, 이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만화'라는 어휘는 구한말(舊韓末) 외래문화가 밀려오면서 일본에서 쓰던 것을 그대로 넘겨 받았다. 일본에서도 '만화'라는 말을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은 1899년의 일이다. 그해, 기다자와(北澤樂天)가 시사신보(時事新報)에 입사하여 일요판 부록에 시사만화(時事漫畵)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 그 시초였다1).
우리나라에서도 만화적 성격을 띤 풍자화(風刺畵)가 등장하는 것은 이미 19세기말이지만 본격적인 출발을 하는 것은 1909년 '대한민보'에 게재되기 시작하면서 부터이고 시사만화라는 어휘도 이때를 계기로 차츰 사용되어 만화가 일반적으로 쓰이기 시작하였다.(그림 1)
이처럼 우리나라에 만화가 도입된 것은 80여년전이지만, 사실상 만화의 뿌리 또는 전신으로 볼 수 있는 풍자·풍속화는 이미 단원·혜원의 그림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그 범위를 확대하면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2).
만화는 상징적 체계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고대 이집트 회화에서 그 시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현대만화를 등장시켰고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있는 서구만화는 장르별 구분이 명확한데 다음과 같다.
첫째, 캐리커쳐(caricature)로서 이는 'caricare'라는 라틴어를 어원으로 하는 것인데, '싣는다, 부담한다'리·는 'charge'의 개념으로서, 어떤 특정대상(특히 인물)을 희화화(戱畵化)한 것을 일컫는다. 따라서 이 장르의 특징은 주로 특정 인물의 초상을 변형, 과장, 왜곡, 생략의 기법으로 작가가 원하는 형태로 변화시키면서 메시지 전달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오늘날 정치만화로 불리워지는 캐리커쳐가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규칙은 작가의 공격성과 비판성이 악의적으로 표출되어서는 안되며, 지나친 직설적 방법에 의해 펜 끝으로 찌른 상처에서 피가 '흐르기'보다는 '방울져'떨어질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본 규칙을 깨뜨리고 오버액션이 자주 등장하여 저널리즘의 한계에 대한 비판이 적지않게 야기되기도 한다.
둘째, 캐리커쳐와 명확한 구분의 선을 긋기에 때때로 모호한 성격이 강하지만 그러면서도 뚜렷한 차이점을 갖는 카툰(cartoon)을 들 수 있다. 카툰은 두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풍자화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고 또는 일상 우리식의 만화의 총칭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림 2)는 캐리커쳐로서 이 지도자를 '우리를 지배하는 동물'로서 낙타에 비유하여 표현하고 있다.
(그림 3)은 카툰으로서 사회현상과 모순에 대한 비판을 주요소재로 삼고 있다. 따라서 희화화보다 풍자와 해학이 돋보이며, 자연히 유머와 재치가 담겨있는 위트(wit)의 성격이 강하다.
현대에 이르러 이 장르의 세계가 점차 진지하고 사색인 면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서 '비판적 그패픽'이란 새로운 장르로 구분되어 사용되는 현상을 보이는데, 여기에는 격조 높은 캐리커쳐도 포함된다. (그림 4)
셋째, 코믹스(comics) 또는 코믹스트립(comic-strip)으로 일컬어지는 줄거리 만화는 반드시 주인공이 등장하며 기승전결의 일관된 줄거리가 있다. 흔히 만화의 대명사처럼 인식하고 있는 만화책을 일컫는 것이며, 유통물량에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만화산업의 주류를 이루는 분야이다.
영어에서 코믹(comic)이라고 하는 만화는 2차 대전중이나 궁핍하고 어려웠던 시절, 서구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대중적인 오락물 중의 하나였다.
만화가들은 그들의 예리한 눈으로 세상을 풍자하거나 또는 가진자의 비리를 비판함으로써 서민들의 아픔을 대변하기도 했다.
(그림 5)는 만화가 그 어떤 목소리 보다 더 크게 사회에 항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여유로와진 지금에도 만화는 오히려 우리 사회에 더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데, 이는 현대의 복잡하고 불만스러운 현실을 탈피하고자하는 인간들의 자연스러운 마음과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 만화의 생성과 발전은 문화가 일부 특수층에게 독점되었던 상류사회에서 시민혁명을 통하여 대중이 사회의 주체가 되는 대중사 회로의 변천과정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 또 만화의 확산과 영역의 확대는 인쇄기술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며 윤전기의 발달에 따른 신문·잡지 발행부수의 폭발적인 증가에 따라 매스미디어의 위력과 정비례하여 만화의 위력 또한 확대되어 왔던 것이다.
오노레 도미에를 주축으로 한 사회 참여직인 사실주의 화가들에 의하여 격렬한 풍속·비판만화가 신문에 대대적으로 게재되기 시작하였을 당시, 1835년 9월 법령에 의해 강력한 탄압을 받게 되었고, 신문만화는 정치성을 배치한 풍속비판만을 허용 받았다. 그러한 와중에서 지하운동처럼 번져나가던 만화는 첫 만화잡지의 등장과 함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1841년 7월 17일 영국에서 발간된 유머 그래픽(Humor Graphic)이라는 초기 형태의 만화를 많이 게재하였다. 존 크로키는 7월 15일 발행된 펀치에서 '카툰 1번(Cartoon No.1)'이란 말을 사용함으로써 1300년대 사용되던 카툰이란 용어를 5백년만에 새로운 장르 개념으로 확립한 계기가 되었다. 1848년, 자유주의 물결이 유럽을 휩쓸면서 농도짙은 정치색을 띤 만호를 실은 잡지들이 발행되기 시작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1859년 독일에서 창간된 <플리겐데 블레터>, <뮌헨터 빌더보겐>이 있다. 특히 <플리겐데 블레터> 705/7호에 실린 빌헬름 부슈의 만화 <건망증 심한 시(市)서기>는 현대만화의 효시로 꼽히고 있다. 그의 그림체와 그가 그림 만화 <막스화 모리츠>는 이의 상업성에 착안한 미국의 언론기업가 조셉 퓰리처(Joseph Pulitzer)에 의해 도입되어 미국의 거대한 만화산업의 모태가 되었다.3)
2. 만화의 예술성과 매체성
1969년 5월 2일, 미국 코네티컷주의 브리치포트 시에 있는 주 연방 법원은 만화가 예술임을 법으로 선포하였다. 이 사건은 모르트 워커라는 사람이 시러큐스 대학 연구소에 소장하기 위해 1천 55점의 비틀 베일리(Beetle Bailey)의 만화원고를 구입하면서 시작되었다. 물론 모르트워커는 세금을 면제받기 위하여 단순한 '원고'로 신고했는데, 법원은 만화가 예술임을 선고하였으며 워커는 베일리의 만화원고에 대해 '원고'가 아닌 '예술품'으로서 2만 8천 달러의 세급을 물어야 했다. 이는 만화가 사회인식뿐 아니라 '법적으로도 예술'임을 선포한 첫 경우이다.
죤 캐너데이(John Canaday)는, "예술의 기능은‥‥ 우리의 경험을 정화하거나 또는 확대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만화도 예술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만화(Cartoon)를 정의 내리면 아마도 '유머로 빚어내는 시각적 운문(視覺的 韻文)'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따라서 작가가 갖춰야 할 조건으로, 만화적 사고를 통하여 일상의 흔히 접하는 대수롭지 않은 소재를 '대수롭게'조명시키고 이 소재에 '유머'라는 쉽지않은 특수가공 처리과정을 거쳐서 다시 최소의 공간속에 이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으로 시각화(視覺化)해야 한다는 능력이 전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화란 고도의 기법과 철학, 예민한 감각 그리고 풍부한 유머 감각이 조화롭게 일치되었을 때에 태어나는 어렵고도 고급스러운 예술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4).
그러나 만화가 '예술'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기에 장애물이 되었던 점은 과거 풍자만화의 대상이었던 상류 계급의 거부감이 크게 작용하였으며 일반대중의 인식부족 때문이었다. 또한 신문, 잡지가 갖는 일과성(一過性), 소모품적 매체의 단명성(短命性)에 따른 질이 나쁜 종이와 인쇄상태 탓이었으며, 진지하고 엄숙한 예술 형태에만 익숙해 있던 보수적 사회에서 과장·왜곡·생략이라는 기형적 형태와 풍자와 해학이라는 만화의 내용적 특성이 천박하게 받아 들여졌고, 따라서 이에 대한 비하의 시각이 만화가 지니는 정치·사회·경제적 의미를 깨닫는데 커다란 저해요소로 작용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매스 미디어의 위력이 확산됨에 따라 만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게 되었다. 예리하고 압축된 비판적 기능은 점차 시각화 되어가는 현대사회의 추세와 고속화되어가는 현대의 구조속에서 활자문화의 한계가 점차 분명해지면서 천마디 말을 한 칸에 담은 만화의 탁월한 정보 전달 능력의 재인식, 그리고 예술이 '창조적 인간정신의 조형적 행위'라는 원천적 개념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융통성있는 개념해석에 의하여 1960년대부터 만화에 대한 근본적인 재조명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1967년 '만화책과 설명적인 그림'이란 전시회가 루브르 박물관에서 열려, 만화가 <모나리자>곁에 걸렸으며, 이미 1944년에 밀턴 캐니프의 <해적테리>란 만화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됨으로써 세계 최초로 만화가 박물관에 등장하게 되었다5). 또한 순수회화 쪽에서 새로운 대중문화 시대에 적응을 시도하여 로이 리히텐스타인에 의해 회화에 만화를 도입한 팝 아트라는 새로운 장르가 개막되기도 하였다.(그림 6)
이처럼 만화가 냉혹한 세평(世評)속에서 점차 지위와 인식을 개선하여 이제는 비판적 그래픽이라는 결코 비하할 수 없는 품위있는 표현으로 지칭될 단계에까지 격상된 것이다.
미국의 만화가들 사이에 전해지는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다. 어느날 한 만화가가 복도에서 출판업자를 만났는데 그가 만화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의 지난번 만화는 아주 좋았어요. 네칸으로 구성된 그 만화에 대해 우리가 100불을 지불한 것 같은데, 네칸 이상의 만화도 100불로 가능할까요?"
그 만화가는 대답했다. "아! 당신은 내 예술을 확실히 이해 못하는군요. 만일 내가 그 만화를 세 칸으로 끝낼 수 있었더라면, 가격이 1000불은 되었을 것이요6)."
기본적으로 많은 카툰 일러스트레이터에게는 아이디어와 데상력이 요구된다. 많은 유명 작가들의 초기 작품들을 살펴보면 아이디어가 그 두가지 요소 중에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그림 7)
그런데 심미적 요소, 즉 색채 감각과 회화성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훌륭한 카툰 일러스트래이션을 만들 수 없을 것이다.
현대 만화의 지위에 대하여 평론가 엘커 허쉬는 이렇게 말한다 '만화라는 사생아는 마치 시집 잘간 천박한 태생의 여인과도 같다. 이 여인은 호가스, 도미에, 그로츠 정도로도 모자라 레오나르도 다빈치, 고야, 피카소까지 자신의 치마폭에 감싸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 이 여인은 자유투쟁의 기수로, 여성해방의 길잡이로, 아카데미즘에의 저항아에서 더 나아가 미래를 향한 선구자로까지 격상되었다.' 현대사회의 만화는 강렬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 힘을 과시하는 예술이라고 불리워지는데에 손색이 없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만화를 '새로운 예술양식', 즉 말과 그림을 묶어 독특한 목적을 수행하는 커뮤니케이션 유형으로 적평하고 있다.
현대사회의 많은 기능과 관련하여 만화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하나의 독특한 커뮤니케이션 양식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미술의 한 섹션으로밖에 인식되고 있지 않았지만 지금은 만화의 예술성 보다는 매체적 특성을 더욱 중시하여 부각시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화를 그린 사람은 청전 이상범(靑田 李象範), 심산 노수현(心汕 盧壽鉉)같은 한국화의 대가들이였다.7)
(그림 8)은 1924년 조선일보에서 연재된 우리나라 최초의 네칸 만화인 '멍텅구리 헛물켜기'로, 조선 말기 우리나라 화단에서 명성을 날렸던 심산이 그린 것이다. (그림 9)는 정확하고 생동감 있는 데생력으로
일본에서 더욱 유명했던 김용환의 만화 캐릭터 '코주부'이다.
진주햄 소시지 광고 만화와 여러 가지 홍보만화로 우리에게 친숙한 신동우 화백과 그의 형 신동헌씨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만화영화를 제작한 선구자이다.
이처럼 초창기 우리만화의 흐름은 한국화가를 필두로하여 실력있는 화가들에 의해 다듬어 졋으며, 만화매체의 특성을 더욱 잘 살릴 수 있는 전문 일러스트레이터의 손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유럽,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만화가 예술로서의 확실한 위치를 되찾은데 비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저질만화의 탓도 있지만 마구 양산해내는 제품이 커다란 장애물이 되고 있다. 따라서 한국 만화를 만화가 차지하고 있는 예술로서의 본령으로 되돌려 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작가들의 자부심과 자존심이 절대적인 조건이 되어야 하며, 이를위해 작가 스스로의 부단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림 10)은 1991년「주간만화」에 발표된 오세영의 만화로 일본의 영향을 받은 만화가 범람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한국만화의 예술성을 충분히 보여 주고 있다.
3. 비규격(非規格) 일러스트, 만화
가. 카툰 일러스트레이션의 개념
만화를 지칭하는 '카툰(cartoon)'이라는 단어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어인 '카드(card)'와 '페이퍼(paper)'에서 유래한 것이다. 원래 '카툰'이라는 것은 예술작품을 만들기 위해 실물 크기로 그리는 예비적인 스케치로서 한컷 그림을 말한다. 그러나 지금은 일반적으로 드로잉에 곁들여 재미있는 말이나 비평, 아이디어 등 캡션(자막(caption))을 넣은 하나의 완성된 그림을 지칭한다. 그리고 카툰은 '우스개 그림(funny papers)'으로부터 탈피하여 확장된 상품시장속으로 질주하고 있다.
만화는 유머를 암시한다. 이러한 것은 '카툰', '코믹스(comics)' 그리고 '훠니즈(funnies)'와 같은 단어들이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유머러스 일러스트레이션은 글과 연계되어 커뮤니케이션을 전제로 그려지는 그림의 형식이 만화적이며 단편적으로 그려지는 것을 말하는데 이의 장점은 부담없는 형식과 재미에 있다.8)
현대의 만화작가 또는 전문 일러스트레이터들은 미술 표현법을 통해 그림을 그림으로써 자신들의 유머감각을 가장 적절한 시각적 표현으로 구성 짓는다. 일러스트레이션은 '인쇄와 영상을 전제로 한 합목적적(合目的的)인 시각언어'이다.
일러스트레이션의 복제화 특성은 회화의 단일성(單一性)과 구분된다. 이 복제(reproduction)된다는 것은 대중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며, 여기에서 회화의 작가 중심적 제작동기와 수용자(대중) 중심적 제작동기의 차이가 존재하게 된다.
이는 곧 일러스트레이션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으로 대중성, 사회성, 공공성, 윤리성 등 대중 전달매체로서의 기본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조건이 성립한다. 또 합목적이란 일반적으로 일러스트레이션이 클라이언트(출판사, 잡지사, 광고주, 방송사 등)의 요청에 의하여 그들의 희망과 조건에 맞춰 제작되는 예가 대부분이므로 무엇보다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수반하기 때문에 붙는 단서이다. (그림 11), (그림 12)
물론 달력이라든지, 그림엽서 등에서는 목적성보다는 순수한 감상을 위한 일러스트레이션도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일단 일러스트레이션의 가장 포괄적인 범주는 합목적성에 있다고 볼 수 있다.9)
광고 일러스트레이션은 고객을 상대로 하는 시장을 위해 창조된 이미지나 상품 또는 서비스를 팔기위해 들어가는 그림을 말하나 넓은 의미로는 공공 일러스트레이션(Institutional illustration:기업 또는 공공단체를 위한 일러스트레이션)도 여기에 속한다. (그림 13)
광고 일러스트레이션을 출판 일러스트레이션과 구별하는데 있어서 삼아야 그림의 형태나 방법보다는 이것이 쓰여지는 목적을 기준으로 한다10).
그렇다면 일러스트레이션이 인쇄나 영상을 통하여 대중에게 특정한 목적을 시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함을 주요 기능으로 한다고 할 때, 일러스트레이션의 생명력은 결국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얼마나 정확하고 신속하게 표출할 수 있느냐는 점과 역시 시각예술로서 필수적으로 갖춰야할 심미성(審美性)일 것이다. 심미성이 결여된 시각 예술이란 일반적으로 그 목적성을 강조하고 예술을 빙자한 수준 낮은 조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카툰 일러스트레이션은 색채감각, 회화성 그리고 아이디어가 적절히 결합했을 때 그 목적성이 더욱 명확해 질 수 있다.
목적성, 심미성을 갖춘 일러스트레이션이라면 그 형태와 내용면에서 규격(規格)일러스트레이션과 비규격(非規格)일러스트레이션으로 크게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규격이란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기초조건, 즉 원근법이라든가 사실적 묘사 등 일반적으로 감상자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인지상태에 부응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지적 규격에서 벗어난 형태나 내용을 비규격이라 규정한 단면 과장, 왜곡, 변형, 생략을 통한 형태, 내용의 의외성을 지닌 일러스트레이션이야말로 비규격 일러스트레이션에 속하며 일러스트로서의
만화를 개념 규정하는 기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11)
서구에서의 만화에 대한 개념은 그 형태보다도 담고 잇는 내용에 따라 크게 카툰(cartoon), 캐리커쳐(caricature), 코믹스(comics), 비판적 그래픽(critical graphics), 카툰 일러스트레이션(cartoon illustration) 등으로 분류함으로써 서로 개념상의 혼동을 막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서구에서 분류하는 이 모든 개념들을 만화로 총칭하기 때문에 사실상 크게 다른 영역을 차지하는 각 분야들의 한계가 명화하지 않다. 그러나 서구에서 여러 가지 명칭이나 개념으로 구별되는 만화들과 우리가 만화라 부르는 종합적 시각요소는 바로 과장, 왜곡, 번형, 생략을 통한 형태상 내용의 의외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으며 이 의외성은 또한 유머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공통의 전제조건을 가지고 있다.
물론 전혀 유머감각이 동원되지 않은 순수한 줄거리 전개 위주의 만화도 적지 않으나, 만화를 일반적인 개념으로 총칭하여 언급한다면 역시 형태나 내용에서 만화가 갖는 의외성과 그로 발생하는 유머감각은 만화를 비규격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여타 일러스트레이션과 구별하는 분기접이 되는 것이다12).
나. 일반적인 특징
카툰 일러스트레이션은 만화가 갖고있는 일정한 기본적 특징을 보여준다. 본질적으로 만화는 단순화하거나 과장하는 그림이다. 대부분 3차원의 세계를 2차원으로 재현시킨다는 점과 개요(outline)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현상을 단순화하고 있으며, 인간의 얼굴과 모습을 왜곡시킨다는 점에서 과장하고 있다l3).
형태의 구조, 음영, 그리고 모양만을 제시하며, 불필요한 대상과 세부사항은 삭제되어 버린다. 카툰 일러스트레이터는 가능하면 한개의 선으로 충분할 곳에 두개의 선을 사용하지 않는데, 세부사항을 첨가하지 않는 채로도 (그림 14)와 같이 여러 가지 느낌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렇게 단순화되고 과장된 얼굴들은 대체로 '재미있게' 보여진다. 그러나 단순화와 과장에는 몇가지 조건이 부가된다.
첫째, 단순화와 과장이라는 조건은 만화가 되기위한 필요조건일 수 있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다시말해 거리의 약도처럼 단순화되고 과장되었지만 카툰이 아닌 그림도 많이 있다.
둘째, 모든 만화에서 단순화와 과장이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회화에서 극사실주의는 분명히 현실을 가장 충실히 모사(模寫)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반적인 시각적 경험이 포착해내지 못하는 측면까지도 정밀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장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만화의 과장을 바라볼 수도 있다. 특히 1980년대 이후의 우리의 만화에서 지배적인 경향으로 자리잡은 사실주의적인 만화에서는, 단순화를 통한 과장보다는 오히려 극사실주의적 방향에서의 과장이 발견되고 있기도 하다.
셋째, 단순화와 과장에 대한 충분조건으로서 두가지 요소가 있다. 하나는 만화를 그리는 사람의 정서적 개입이다. 만화의 경우 정서적 개입이란 그리는 사람의 비판이나 감정적 공감 등 보다 적극적인 의미를 포함한다. 박재동 만화에 대한 평에서 황지우가 예기하듯이 "만화의 두께, 만화의 깊이란 갱지위에 말해진 것에다 말해지지 않은 것을 포갤 때 생겨나는 겹일 터인데, 이 침묵의 발언은 말의 목적어(대상)에 대한 주어(만화가와 독자)의 '마음의 매개 작용'"인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만화는 단순히 매체의 수준을 넘어 예술의 경지로 접근한다. 이것이 바로 만화의 정의에 포함되는 의도성의 구성 요소이다.
두 번째는 앞과 연관되어 만화에는 일정한 이야기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단지 한 컷짜리의 그림이라 해도 그것이 만화가 될 수 있으려면 거기에는 일정한 현실적인 이야기가 존재해야 한다. 이때 이야기는 그림만으로 표현될 수 있지만 많은 경우 글의 보충을 받아 구성된다14).(그림 15)
만화에는 정상적인 시각세계를 모사하는 것 외에 보지 못하는 것들을 그려낼 수 있는 일련의 상징들이 존재한다.
예를들어 움직임의 방향 및 속도를 표시하기 위해 '행동선(action lines)'을 첨가하는데, 어떤 사물이 신속하게 움직일 때 뒤에 먼지 구름을 남겨놓아 은유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냄새 또는 연기를 표현하고 있으며 이 선들은 시각 은유의 기호이다.
'만화 어록(the lexicon of comicana)'의 저자 모르트 워커(walker)는 먼지덩어리를 '브리핏(briffit)', 신속한 행동을 나타내는 수평선은 '하이츠(hites)'라고 하였다. 또한 이리저리 움직이는 작은 행동선은 '아지트론즈(agitrons)'라고 명명하였다.(그림 16)
만화의 다양한 종합 미학 상징중 대표적인 것은 생각풍선과 말풍선이다. 행동선, 생각풍선, 그리고 말풍선으로 행동, 사고 및 언어를 투입시킨다. 만화의 '칸'안에는 여러 가지의 상징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 '칸'도 만화의 중요한 상징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나누는 역할을 한다.
칸의 모양과 크기도 가지각색인데 이 '칸'은 신문광고에서는 outline이 되고, 잡지광고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경계선이 없는 한면만 화의 형태로 나타난다. 언어와 행동의 결합은 만화를 하나의 독특한 예술양식으로 구분 짖게하는 부분인데 광고에서는 주로 글과 그림의 상호 의존된 결합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 (그림 17)
만화에 대해 언어적인 캐리커쳐를 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만화는 하나의 '형태'이다. 그것은 '변형시키는(deform)' 것으로써 '전달하는(inform)'것이다.
만화는 하나의 '형태', 즉 예술가가 독자를 위해 사용하는 도상적 및 언어적 상징을 통해 창조된 하나의 의사 세계이다.15)
다음 페이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