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편의점을 사례로 하여 혁신 소매업 유형의 성장이 가져오는 소매업 구조에 대한 영향과 공간적 표출 방식을 살펴보았다. 연구의 방법은 소매업 활동의 경제 구조적인 측면에 대한 이해와 소매 기구의 변화 방식에 관한 이론들에서 출발하여 입지 산업인 소매업의 고유한 입지 논리를 규명하는 순으로 전개 되는 것이다. 편의점이 새로운 소매 기구로 한국에 등장한 지 얼마되지 않기 때문에 기초 자료의 부실로 사례 분석이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자료들을 중심으로 편의점의 성장과 공간적 확산 과정 및 그 분포 특성 등을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편의점은 혁신적 소매 기구로서 선진국으로부터 기술 도입을 통해 국내에 소개되면서 본격적인 확산이 시작되었다. 한국의 소매업 구조 변화가 자생적인 반성과 변혁의 추진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외국에서 이식된 소매 기구매 의해 주도되므로써 변화에 따른 사회적 파급 효과가 바란직한 형태로만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 제한된 시장을 둘러싼 경쟁에서 선진 기술을 채택한 대형 편의점 업체들은 국내 유통 환경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유통 근대화의 명분 아래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르도록 강요하게 되는 것이다. 편의점의 성장은 특히 소규모의 구멍가게형 식품점의 존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형 수퍼마켓은 주로 아파트 단지를 신 개발 주거지에서 적절한 상권과 점포 단지를 확보할 수 있었으나 편의점은 입지와 유연성이 풍부하여 영세 소매점들이 주로 자리잡은 재래 시가지에서 이들과 직접 경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편의점과 재래의 소형 식품점은 시장 지분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여서 두 경제 집단은 화해될 수 없는 모순 관계에 있다. 그리고 편의점의 영업 방식은 선진국에서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재래 부문의 업태에 비해 훨씬 큰 매력을 소비자에게 주고 있기 때문에 경쟁력에서 월등히 앞서고 있다.

둘째, 편의점은 기존의 소매업 혁신 확산과 다른 독특한 방식의 공간적 확산 과정을 보이는데 이는 혁신 확산의 주체인 편의점 업체의 유통 기능 수행 방식과 업체간 경쟁 전략을 통해 설명이 가능하다. 전국적인 도시 계층을 따라 순차적이며 점진적인 방식으로 확산이 진행되기 보다는 광역권 단위로 혁신 도입 시기가 일정한 순서와 시차를 보이는 동시 다발적이며 단속적인 확산 진행 방식이 편의점 확산 과정의 특성으로서 이는 개별 점포 단위가 아닌 배송 센터 혹은 벤더 체제를 중심으로 한 도미넌트 출점 전략에 주된 원인이 있다. 수도권 도시들의 경우에서 확인된 바에 의하면 광역 지역 내부에서는 배송 거리의 제약성에 따른 전염 확산의 형태로 편의점의 공간적 확산이 진행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편의점의 유통 기능 수행 방식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은 전국적으로 체인화되어 통합적인 관리와 통제에 의하여 전개되는 소매 유통 기구의 확산에서는 그 확산의 한계 규모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전국적인 수준에서 소비 공간의 차별화가 더욱 뚜렷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도시 내부에서의 복산 과정은 업체별 점포망 구성 전략 차이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지만 국지적 상권 규모의 측면이 주요한 변수가 된다.

세째. 편의점의 혁신은 재래 부문의 혁신 업태인 수퍼마켓에 대한 소비자의 수요가 구매 주체. 시간, 장소 등의 측면에서 다양화 분산화되면서 이 새로운 수요를 효과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었다는 데 그 성공의 토대가 있었다. 따라서 편의점은 수퍼마켓과 달리 매우 다양한 입지 유형을 보이게 된다. 주거 지역만이 아니라 사무가, 상가, 유흥가. 학원가. 역세권 등 유동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상권에도 상당히 많은 입지를 보이고 있다. 편의점의 분포 해석은 이러한 다양한 입지별로 상권 특성을 파악하는 작업이 토대가 되어야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매우 복합적이고 다양한 특성의 입지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동별 수준에서의 분석조차도 과잉 해석의 여지가 많으며 매우 피상적인 수준의 결론 이상으로 진전되기 힘들다. 그런데 한국에서 편의점의 분포는 도시의 물리적 특성과 소매업 구성, 사회 경제적 조건 등에서 유사한 일본의 편의점 분포에 근접해 가는 것으로 보이며 미국의 경우와는 명백한 차별성을 보인다.

네째, 편의점은 재래 부문의 식료품점들과는 상이한 상권 구성 방식을 바탕으로 하위 계층의 상업 중심지 체계를 재편하는 주체가 되므로써 소매업 구조 변화와 함께 도시 공간 구조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금까지 소형의 소매점들이 업태간에, 그리고 공간적으로 분산되어 담당하던 편의품 판매 기능을 복합하여 다목적 구매의 효용을 제공하는 매력을 바탕으로 하위 계층의 상권 규모를 평균적으로 상향 조정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 올 것이다. 그리고 편의점의 자본 투자가 큰 규모이고 본사의 치밀한 상권 조사에 근거한 입지 선정을 하기 때문에 편의점의 입지 분포는 무질서하고 임의적이라기 보다는 각 지역별 구매력 수준과 상권 범위를 가시적으로 식별시켜 주는 하나의 지표로서 도시 상업 공간의 하위 계층의 분포도를 작성케 해주며. 보다 상위 계층의 상업 중심지는 편의점의 근접, 중복 입지 정도의 조사를 통해 어느정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편의점은 무질서하고 복잡하게 보이는 도시 내부의 유통 활동 과정과 공간 체계를 보다 정돈된 현실 과정으로서 이해하고 개념화할 수 있는 물적 조건을 강화해 준다.

다섯째, 이러한 공간적 충격들은 지역적으로 동질적이지 않은데 이는 소매 기구간의 경쟁에 의해 혁신 업태의 발전이 제약을 받고 그 진로가 수정되기도 한다는 이론에 근거하여 설명이 가능하다. 특히 비교적 근대화된 신개발 지역의 대형 수퍼마켓과 구시가지의 소규모 수퍼마켓 및 구멍가게들은 각각 상이한 성격의 제약성을 편의점 성장에 대해 가하게 되어 이 양 지역간에 편의점 확산 경로와 분포 특성이 달리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편의점의 사업 임계치가 재래식 식품점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상권 밀도가 낮아서 편의점의 입지가 이루어지지 않는 지역이 발생하며 이러한 지역과 편의점 입지 지역간에는 일상적 소비 공간이 이질적임은 물론 지역민의 소비 양식간에도 전근대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이라는 식의 차별화가 생겨나서 사회적 동질성을 손상시키는 하나의 물적 토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대규모 조직의 논리에 따라 전개되는 편의점의 입지와 운영 방식은 지역민의 요구(needs)에 입각한 계획 체계의 논리와 상충할 가능성이 높다. 소매업 구조 변화에 대한 충격적 영향에서 확인된 바 있는 편의점 시스템의 경직성은 사회 공간적 측면에서도 문제를 유발할 소지가 있는 것이다. 1993년 7월부터 시행되는 제3단계 유통 시장 개방으로 한국 유통 시장에 대한 외국의 대형 유통 업체들의 진출이 본격화될 전망이고 국내 대자본의 유통업 진출은 더욱 적극성을 띠면서 구체화되어 가고 있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깊숙히 편입되어 있다는 한국 경제 구조의 성격으로 인해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은 필연적이다. 생산 부문의 국제화에 비해 국민 경제적 테두리 속에서 상대적으로 안정된 구도를 유지하던 한국의 유통 산업 부문도 이제 개방화의 거센 물결에 휩싸이며 급격한 구조 변동의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유통 산업은 도시 공간과 소비 양식의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경제 활동 부문이기 때문에 유통 산업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나타날 사회적, 공간적 충격들은 공간 정책가의 중요한 관심 영역이 된다. 본 논문 역시 이러한 문제 의식하에 현 단계 유통 산업의 재구조화가 도시 및 지역의 사회와 공간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탐색하는 데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이 있었다. 편의점은 이러한 목적을 추구하는 데 하나의 적절한 사례로서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례 분석의 결과는 소기의 목적에 도달하는 데 미흡한 점이 적지 않음을 보여 준다. 일차적으로는 소매업의 활동에 대한 산업적인 측면과 공간적인 측면이 유기적으로 통합된 이해의 방법론이 취약하다는 데 문제의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본 논문에서 분석의 수단으로 동원한 이론들은 기본적인 관점과 내용에서 편차가 심하여 체계적으로 종합되기가 힘들었다. 따라서 실제의 분석 과정에서는 그 중 일부의 이론들만이 적용되는 경향을 보였으며 분석의 결과를 이론적 논의와 충분히 결합시키지 못하였다. 또다른 문제의 원인은 편의점이라는 새로운 소매업 유형에 대한 기존의 논의가 전무하였기에 본 논문에서 편의점에 대한 연구의 전제들을 모색하는 데 많은 노력이 소모되었으며 따라서 연구 목적에 충실한 분석의 과정이 상대적으로 취약해졌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편의점이 번성한 외국의 관련 정보와 편의점 업체들에서 수집한 자료가 매우 빈약한 내용들이었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다. 분석 대상에 대한 정보의 부족은 분석의 결과에 대한 신뢰도를 심각하게 손상시키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에서 비롯된 분석 결과의 제한된 성과로 인해 소매업, 나아가서 유통 산업 전반적인 구조 재편과 관련한 일반화된 논의를 이끌어내는 데 많은 제약이 있다. 연구의 과정에서 더욱 진전된 논의를 위해 탐구되어야 할 문제 영역으로 인식된 것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유통업체 중심의 연구가 지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계층적으로 세분되고 정형화된 소비 양식들의 총체인 소비 구조에 대한 논의를 도입하여 공급과 소비 측면이 통합된 사회 재생산 양식의 관점에서의 접근이 궁극적으로 추구되어야 한다.

둘째, 생산 자본과 상업 자본간의 역동적 관계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생산 자본과 상업 자본의 관계는 예전에 비해 갈수록 밀접해지고 있기 때문에 양자간의 관계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가 없이는 유통 산업의 변화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불가능하다. 특히 생산 부분에서 진행되는 유연적 생산 방식의 확산과 상업 부문에서의 집중화 및 다각화 경향은 서로 인과 관계를 가지며 맞물려 있으면서 사회 재생산 양식의 변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세째, 소매 자본간의 경쟁에 대한 구체적인 실증 연구의 축적이 필요하다. 이러한 측면에 관한 현실 과정의 충분한 파악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변화의 전망을 구체화시키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외국 유통 업체와 국내 대자본의 진출 방식과 이에 대한 재래 부문 업체들의 대용 방식 등에 관한 실증적 분석을 통해 역동적인 변화의 과정과 그 경향성을 일반적 논의 수준으로 연결시키는 작업은 중요하다. 특히 소매 기구의 입지에 관한 풍부한 현장 조사를 통해 비공간적 과정에 치중되기 쉬운 재구조화 논의를 더욱 구체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네째, 유통 산업의 재구조화가 가져올 충격들에 대한 공간 정책적 입장에서의 분석과 평가 작업이 필요하다. 먼저 지역 불균등 문제의 심화가 우려되는데 서울에 중앙 통제 기능이 집중된 전국화된 체인점 형태의 각종 소매업 유형들이 지방의 발전에 미치는 영향은 신중히 검토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역간 및 도시 내부의 소비 공간 차별화 문제 역시 점점 가시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특히 사회 구조적 차원에서의 논의와 연결시켜서 소비 양식의 계층간. 지역간 분화라는 측면에서 분석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공간 정책의 규범과 지향성에 대한 논의와 동시에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