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케이션 제작노트-사이판 편

100% 수중찰영, 1주일에 OK

박동희 <CM 뉴스 감독>

『가능할까요?』삼희기획 조차장의 전화를 받고 회의하러 가자마자 들은 이야기다.「신감각 스포츠센터」라는 슬로건 아래 출범하게 될「창아스포츠센터」론칭 TV CF. 콘티의 모든 내용이 수중에서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다. 그때까지 국내에서 제작한 수중활영은 2건에 지나지 않았고, 게다가 일반 풀장도 아닌 열대 물고기가 보이는 천연 바다 속이 이 CF의 세트였다. 『네, 가능합니다』 YES를 했지만 막상 돌아와 생각하니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물고기, 물색깔, 수심 등 기타 여러가지 장비와 촬영조건을 기준으로 여러 장소를 이모저모 따져본 결과, 촬영지를 사이판으로 결정키로 했다.

그러나 첩첩산중이랄까, 스태프 구성에서 문제가 생겼다. 바로 전문가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CF는 100% 수중촬영이기 때문에 모델이나 활영기사 모두 바다속에 잠수할 수 있는 스쿠버 자격증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전문가가 국내엔 드물 뿐더러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수배에 어려움이 많았다. 다행히 김광희 씨와의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스태프 구성이 급진전되어 무사히 팀구성을 마칠 수 있었다.

스태프 구성의 제1과제, 수중촬영 전문가를 찾아라

드디어 출발, 사이판은 서울에서 4시간 남짓 가면 나오는 열대의 산호섬으로, 하루에 한번 오후 늦게 비행기가 출발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 로케이션 때보다 여유가 있어 좋았다. 그러나 좋은 기분도 잠깐, 갑작스런 비행기의 고장으로 우리는 두시간을 기다려서야 사이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자, 지금부터 시작이다』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훅!」하는 사이판의 열대성 바람이 맨 처음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약간 복잡한 수속을 마친 후 현지 가이드 한인희 씨를 만나 앞으로 묵게될 사이판 리베라호텔로 향했다. 검은 육지의 화려한 실루엣과 밤에도 여전히 푸른 남국의 하늘, 가끔 스쳐지나 가는 원주민 차모로의 눈과 이가 더욱 빛나보였다.

도착하자마자 먼저 출발했던 헌팅팀과, 가이드, 기술팀과 헌팅장소, 장비에 대한 장시간의 회의를 마친 후에야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사이판은 한국에서 동남쪽으로 3,000km 떨어진 서태평양에 활모양을 그리며 남북으로 이어진 14개의 섬으로 이루어 진 마리아나 제도의 하나이다. 우리가 잘 아는 티니언, 로타, 괌, 사이판이 바로 마리아나 제도의 주요 섬으로, 그중 괌은 미국 영토로 구분되어 행정상으로 분리되어 있다. 남북으로 21km나 뻗어 있는데 반해 폭은 8.8km밖에 되지 않아 좁고 긴모양을 한 사이판은, 동쪽으론 태평양, 서쪽으론 필리핀해와 접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흡사한 동고서저형으로 면적은 185km²이다.

1565년 스페인이 영유권을 선언한 이래 독일, 일본순으로 주인이 바뀌었다가, 1981년 국민투표에 의해 사이판, 티니언, 로타 등 마리나제도는 북마리아나연방으로서 미합증국 자치령이 되었다.

인구는 약 16,000명 정도로 차모로족이 대부분이지만, 그들 역사가 보여주듯 순수 차모로보다 혼혈인이 우세하다.연평균 27℃, 7월에서 8월까지 우기이며, 이 기간에 많은 비가 오지만 일종의 스콜 다빈 현상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미국령이고 주민은 차모로지만 실질적인 힘을 가진 자는 경제권을 쥐고 있는 일본인이다. 그러한 불합리한 현상은 여기저기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서해안에 들어선 초호화 호텔들이 모두 일본인 소유로, 과거 다른 촬영건으로 차모로인에게 장소협조를 구했다가 일본인 지배인에게 정중하게(?) 거절을 당하는 일을 여러번 겪었다.

푸른 하늘, 투명한 물빛, 열대의 산호섬, 사이판

촬영 첫 날, 먼저 도착한 헌팅팀이 모은 자료를 가지고 사이판 서해 산호해안을 따라 헌팅을 시작했다. 수질과 기타 촬영조건을 따져본 후, 마냐가하섬 가까운 해안에 촬영포인트를 정했다.

6∼7m의 수심 속에서 다이버들과 함께 물속 지형을 살피기 시작했다. 연신 배와 바다 속을 오가며 체크에 체크를 하면서 자기들 전문용어로 말하는 스쿠버들을 보면서 이번 촬영이 예사 촬영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덧 사이판 바다에 낙조가 들고 우리는 아쉬운 마음으로 숙소로 철수했다.

참고로 마냐가하섬은 사이판의 유명한 관광지로, 입장료 5달러를 받고 있는데, 오후 5시가 되면 섬을 폐쇄시킨다. 현지 가이드에 의하면 돈많은 일본인이 사이판 정부로부터 연간 몇백만달러를 지불하고 섬 전체를 전세내어 관광객 입장수입을 올린다고 한다. 일본인들의 대단한(?) 상술에 혀를 차보지만 더운 날씨에 혀만 고생스럽다.

도착하자마자 촬영스태프들은 오늘 헌팅한 장소와 콘티를 보며 내일 촬영에 필요한 장비확인과 콘티연구에 분주했고, 모델들은 각자의 장비체크와 현지 다이버와의 협조체계에 대한 의논으로 첫 날을 마감했다.

출발 당시 스케줄 때문에 함께 오지 못했던 메인모델 최윤정 씨가 그 다음날 새벽에 도착하기로 되어있어 가이드 한 선생과 AD 1명이 새벽 1시에 공항으로 마중나갔다.

액정 모니터로 촬영을 지시하며

촬영 둘째 날. 7시에 전원 기상 하여 짐을 싣고 어제 물색해놓은 마냐가하섬으로 이동하기로 했는데, 그만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전날 전세로 계약한 배가 하루 한번만 승객을 싣고 마냐가하섬까지 운행하기로 한 약속을 어기고 무려 다섯번을 왕복하는 바람에 해가 중천에 떠서야 촬영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

닻을 내리고 김석훈 씨가 헬스복을 착용하고 헬스기구를 갖고 동료 다이버들과 물 속에 뛰어들면서 첫 씬 촬영이 시작되었다. 불행히도 사이판에선 다이버 라이센스가 없는 사람은 장비 대여가 안되고 또한 잠수를 못하게 금지시키고 있어서 나는 스킨 스쿠버용 고글을 쓰고 핀킥을 하면서 부감(?)으로 촬영 지시를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다만 수중촬영의 귀재로 유명한 김광휘 고문이 전날 회의했던 대로 잘 찍어 주기를 바라며 오전을 보냈다.

무사히 첫 씬을 마치고 선상으로 올라온 스태프들과 나는 포켓용 액정 모니터를 카메라에 연결해 찍은 그림을 살피기 시작했다. 국내 CF에서는 보지 못했던 서태평양의 바다 속, 수면에 닿은 태양광선이 물속에 스며들어 만들어놓은 독특한 공간으로 일단 화면은 신선감이 넘치지만, 열대어가 부족하고 물빛이 탁하다는 평에 따라 장소를 약간 이동하고 열대어를 자연스럽게 모으기로 했다.

AD의 몸놀림이 바빠지고 헬스 씬과 골프 씬을 번갈아 가며 찍기 시작했다. 수중촬영은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몇 컷 찍지도 못하고 자연산 HMI(?)가 빛을 잃는 바람에 아쉬운 철수를 해아 했다.

현지에서 빌린 산소통을 반납하고「아리랑」이라는 한국식당을 찾아가 거의 본토(?) 수준인 우리 음식으로 촬영의 피로를 풀었다. 낮 촬영건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면서 즐거운 식사 시간을 보낸 후 내일 촬영을 위해 숙소로 돌아왔다.

촬영 삼일 째. 라켓볼 촬영부터 했다. 전날의 문제였던 열대어는 김석훈 씨의 아이디어로 소시지를 이용해 모으는데 성공했다. 당초 여자 모델 김미연 씨가 하기로 했던 라켓볼이 많은 힘을 필요로해 보조 스태프 최부균 씨로 교체한 것을 제외 하고는, 모두 열심히 도와준 덕에 모든 촬영이 무리없이 진행되었다.

그때 배주위를 수영하던 신참 구 PD가 갑자기 허우적대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우스워 우리는 그냥 장난인 줄 알고 그저 웃기만 했다. 때마침 산소통을 교체하러 올라온 최부균 씨가 없었다면 구 PD는 사이판 처녀를 잡아가는 아주 무시무시한 총각귀신이 될 뻔했다. 끌려 오자마자 구역질하는 구 PD를 보면서도 모두 실소를 금치 못했는데, 이유인즉슨 그 모습이 완전히 공기방울세탁기 같았다고나 할까….

어쨌든 무사히(?) 그날 촬영을 마치고, 팀을 나누어 광고주와 모델은 호텔로 향하고, 우리는 며칠째 말썽인 배를 구하기 위해 항구로 향했으나 쉽지 않았다. 사이판 원주민 차모로 특유의 지나친 여유와 앞서 언급한 교묘한 일본인의 정중한 거절 속에서 겨우 미국인 소유의 작은 쾌속보트 2척을 구할 수 있었다.

물속에서의 볼링게임, 여자모델이 입수하다 그만 …

촬영 나흘 째. 어제 구한 2척의 배에 인원을 나눠 싣고 촬영지로 출발했다. 웬만하면 여기서의 촬영은 오늘 끝내겠다는 각오와 함께 !

다행히 날씨도 그런대로 괜찮았고 컨디션도 좋았기 때문에 다이버의 양해를 얻어 산소통을 매고 잠수를 시도했다. 카메라 기사인 김광휘 고문 옆에 바짝 붙어 자세를 가다듬었다. 처음엔 입에 문 산소통이 낯설어 겁이 나기도 했지만, 조금씩 수압에 몸이 익숙해지고 요령이 생겨 얼마후에는 완전히 몸이 편안해졌다.

물 속에서 볼링공 컬러가 제대로 보여질까 걱정하면서 볼링촬영을 시작했다. 그런대로 좋았다. 김광휘 고문에게 0.K 사인을 내리고, 유일한 여성 다이버 김미연 씨의 다이빙과 인어에 가까운 유영, 푸른 바다와 온갖 색깔의 열대어들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그림(?)을 모두 찍은 후에 촬영을 끝냈다.

어쨌든 충분한 촬영소스를 확인한 후 모두 만족해하며 바다촬영을 쫑 내기로 했다. 바다 속 촬영이 무사히 끝난 것을 기념하며, 그동안 도와준 다이버들께 감사의 인사로 사이판 중심가에서 조촐한 파티를 벌였다. 그날 열대의 밤은 뜨겁기만 했다.

촬영 다섯째 날. 마지막으로 메인모델 최윤정 씨의 클로즈업만 남았다. 드디어 나의 차례! 그런데 물속에서 그렇게 멋있던 수중용 카메라가 수중용 하우징을 해체하니까 꼭 8mm 카메라처럼 너무도 볼품없었다.

마지막 멘트를 끝으로 드디어 촬영 끝! 얼마나 기뻤던지, 모델과 스태프 모두 어우러져 1회용 수중카메라로 기념촬영도 하고 수중촬영도 했다. 풀장 물 속에서 서로 공기방울을 만들며 수중촬영에 열심인 그들을 보니 『물에서 나서 물로 돌아가라』(?)고 했던 옛 성현의 말이 생각 났다.

마지막 날. 호텔 체크아웃하고 나니 새벽 2시 30분, 서울발 비행기를 타기까지 넉넉하게 한나절이 남았다. 밴에 승차한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사이판 관광을 했다. 한국인 위령탑이 있는 반자이 절벽, 기적의 샘, 끝없이 펼쳐진 태평양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사이판섬 정상인 인타포호산을 거쳐 간단한 쇼핑을 마친 후 해변가에 모였다. 바베큐파티를 하면서 그동안 짧지도 길지도 않았던 여러가지 일들에 대해 사람의 냄새가 푹 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이 세상에 불가능이란 없다

개인적으로도 이번 창아스포츠 수중촬영을 하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스쿠버다이버의 생활과 여러 수칙 등 단편적이나마 짧은 기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또한 그것이 광고와 만났을 때 어떤 연출이 효과적인지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국내 최고의 다이버이자 수중촬영기사, 육지보다 바다가 더 좋다는 김광휘 고문. 모델도 아니면서 끝까지 훌륭하게 연기해준 다이버 김석훈 씨, 김종훈 씨, 김미연씨, 옆에서 지원해준 최부균, 권병수 다이버, 메인모델 최윤정씨, 가이드 한인희 씨, 필리핀인 준 …. 이분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그리고 훌륭히 촬영을 마칠수 있었다.

사이판의 새벽을 가르며 나르는 비행기 창문너머로 보이는 빽빽한 호텔 불빛은 역시 사이판다움으로 찬란하다. 다시 한번 바다의 신 포세이돈께 감사하며 다짐한다.

아무도 안했기에 가능하리라고 믿었던 우리 모두의 용기가 이번 창아스포츠 CF를 살렸다. 이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