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발언대

내의류 광고 유감

신숙희 <주부>

 

내의류의 패션상품 시대

근래들어 팬티, 런닝, 브래지어, 거들, 슬립 등 내의류, 특히 성인 남녀의 속옷에 대한 개념이, 단순히 겉옷 안에 받쳐입는 기본적인 파운데이션(foundation)이라는 기능성 위주의 개념에서 벗어나 하나의 독립된 패션상품으로 인식되면서 디자인, 색상, 재질 등이 하루가 다르게 화려해지고 대담해지고 있다. 또 제품 자체도 그 종류가 무수히 많아지면서 내의류 회사들의 판촉을 위한 경쟁 또한 치열해져 TV, 잡지 등 각종 대중매체에 내의류 광고가 넘쳐나는 현실이다.

그중에서도 여성지에 실리는 여성 내의류 광고를 예로 들어보고 싶다. 여성지에 실린 여성 내의류 광고를 슬쩍 훑어보면, 대담한 노출에 묘한 포즈로 에로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는가 하면, 아예 속옷을 걸치지 않고 전라(全裸)의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선정적인 자태로 눈을 감고 누워있거나 드러난 가슴을 자랑스럽게 보이는 등 보기 민망한 장면들을 연출하기 일쑤다. 게다가 이런 속옷을 입음으로써 남성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듯한 암시적 문구까지 곁들이는 경우도 있다.

어렇듯 내의류 광고는 제품의 속성상 신체노출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이용, 선정적 분위기를 연출해 광고효과의 극대화를 노리는 경우가 빈번한데, 자연스런 신체 노출에 그치지 않고 교묘하게 퇴폐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그 문제점이 있다고 하겠다.

물론 광고효과를 높이기 위해 선정적인 메시지를 사용하는 광고전략의 역사는 매우 길고, 또 그러한 전략이 전통적으로 매우 유용한 수단이었다는 점도 인정한다. 그러나 이는 광고를 마케팅 도구라는 한가지 속성만으로 단순하게 파악했을 때의 관점으로, 광고의 윤리성, 공익성을 도외시했다는 측면에서 여러가지 사회·도덕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광고의 의의가 인정되어 평가받는 것은 그 광고가 정보전달의 수단으로서「진실성의 원리」,「정직성의 원리」등에 의거, 적정한 범위 내에서 적정한 방법으로 바르게 표현되었을 때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의 상품 구입은 소비생활의 필요성에서 생기는 합리적인 판단에서 비롯되지만 그때 그때의 감정이나 기분에 따른 충동구매의 욕구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기업의 광고활동이 활발해지고 단계적으로 확대되어가면 원래 광고가 준수해야 할 정보제공의 원칙 등을 무시하고 소비자의 감정을 교묘하게 자극하는 광고가 나타나게 된다.

미풍양속 저해하는 선정적 광고들

내의류 광고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선정성의 문제는 전술한 광고의 일반적 폐해인 허위·과장표시의 부작용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큰 해악을 끼친다고 할 수 있다. 허위·과장광고의 폐해는 경쟁업체나 해당 소비자에게 피해가 국한되지만 선정적 광고는 건전한 사회의 미풍양속을 저해할 뿐 아니라 광고에 노출되는 모든 이의 정서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파급효과와 영향력이 가장 큰 TV, 라디오, 신문, 잡지 등 4대 대중매체에 의해 전달되는 선정적 내의류 광고로부터 독자 및 서청자를 보호하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광고물의 사전심의를 하는 방송매체를 제외하면 신문·잡지 등 인쇄매체에 대한 심의는 강제성이 없는 자율규제에다 사후 심의여서 흔히「치고 빠지기(Hit and Run)」식으로 행해지고 있기 때문에 광고규제의 실효성이 의문시되고 있는 형편이다.

한 예로 '93년 3월 패션 내의류 전문 브랜드를 표방한 신규 B사가 몇몇 일간신문에 게재한 런칭 광고에서『때묻은 감각을 벗어내린다. 속옷의 기준을 다시 찾는다』등의 카피와 함께 여인이 착용한 팬티의 오른쪽 상단이 끌어내려져 둔부의 일부가 노출된 단색사진을 게재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소비자단체, 여성단체, 관련업계 및 독자들로부터 선정성 유무에 대한 논란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게 되자 B사는 일간신문 광고를 중지하고 월간 여성지에 광고를 게재했다. 이후 Y지, O지 등 여성지 4윌호에 실린 동일 광고를 놓고 일간지를 제외한 정기간행물에 게재되는 광고를 사후심의하는 관련 심의기관에서는 게재잡지사에 게재중지 협조요청을 하는 한편, 광고주에게 광고물 교체를 수차 권고하였으나 시정되지 않은 채 2∼3개월 동안 지속되다가 슬그머니 광고를 중단 한 사례가 있었다. 이와 비슷한 예는 상당수에 달한다.

과잉노출 광고에는 강력한 규제책을

한편 방송광고를 사전심의하는 방송위원회 내 방송광고심의위원회 규정에는 내의류 광고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명시되어 있다. 즉, 제105조(내의류)를 살펴보면,『내의류(거들, 브래지어, 란제리, 팬티 등) 광고는 다음의 표현을 하여서는 아니된다. 1. 인체에 직접 입혀놓은 장면 또는 이와 유사한 장면 2. 신체부위의 과잉노출 3. 선정적이거나 비속하게 보이는 표현』, 또 이와 관련된 조항으로 제 76조(광고시간대 제한)에는『다음에 해당하는 제품의 텔레비전 광고는 22시 이후에 방송할 수 있다. 다만 제2호에 한하여는 22시 이후와 토요일, 일요일 및 공휴일을 제외한 평일의 8시 30부터 16시까지 방송할 수 있다. 1.주류 2.제품이 보이는 거들, 브래지어, 란제리, 팬티 등 성인용 내의류…』, 그리고 제90조(품위)에는『광고방송은 시청자의 정서를 해치거나 방송의 품위를 손상하는 다음의 표현을 하여서는 아니된다. (중략) 3.공포감이나 혐오감을 조성하는 내용 4.음란하거나 선정적인 내용(하략)』등으로, 모델의 신체부위를 지나치게 클로즈업시킨 광고표현은 상기 제 3호「혐오감을 조성하는 내용」과 제4호「선정적인 내용」에 해당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동위원회가 '94년 발간한「방송심의 사례집」을 보면, 모사의 P브라('92. 6월)의 경우 율동하는 무용수의 모습과 함께 제품을 소개하는 화면내용에서 브래지어컷이 여자 모델의 가슴부위에 겹쳐지는 화면 구성으로 인체에 입혀놓은 것과 유사한 장면 표현이 문제가 되어 부분적인 수정 조치후 방송이 가능하다는「조건부」결정이, J패션 내의 ('92. 2월)는 남자모델과 두 명의 여자모델, 그리고 어린이 등 4명이 춤을 추면서 제품을 입는 모습이 담긴 화면 중 내의를 착용하는 장면에서 신체부위를 과잉노출 한 선정적인 표현이 문제되어「방송불가」판정이 내려진 바 있다.

그렇다고 인쇄매체에도 강제성을 띤 사전심의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은 아니다. 광고는 일종의 언론행위이고 창조적 작업이기 때문에 법으로 규제되기 보다는 윤리로 규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인지도의 극대화만을 노리는 선정적 광고는 자제되어야 마땅하다. 특히 일간신문보다도 특정 독자층을 겨냥하고 있는 잡지의 경우, 여성 내의류 광고에서 유두나 음모가 비치거나 유방·둔부가 과잉 노출되는 사례가 너무나 빈번해 선정성의 도가 더욱 심하므로 좀더 강력한 사후 규제기능이 요구된다 하겠다.

광고규제에 있어 타율규제가 자율규제보다 앞서는 우리에 비해 타율규제와 자율규제가 균형을 이루면서 규정의 강화와 완화가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미국의 경우도 내의류 광고에 있어서만은『남성과 여성 및 어린이 속옷(유아용품 제외)의 경우, 실존하는 모델이 속옷만 입고 있는 장면의 노출은 그 것이 건전하게 제시되었을 경우에만 허용된다…』(NBC 광고방송시행기준, 1993)고 한정하고 있다.

노골적인 성적 묘사는 혐오감만 줄 뿐

성(性)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성은 진정한 성의 자유화나 개방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성의 상품화, 성의 남용, 선정주의라는 개념으로 왜곡되어 가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광고 분야, 그중에서도 여성 내의류 광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성적 묘사가 주의집중에 효과적이고 광고 상품에 대한 흥미를 유발 시키며, 소비자의 구매의욕을 자극한다고 많은 사람들 특히 광고제작 관련업무 종사자들이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아름답고 관능적인 자태의 모델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소비자들의 잠재된 심층 심리에 더욱 깊숙이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무조건 강렬한 성적 자극만 주면 광고 효과가 높아질 것이라는 환상에서 이제는 모두 깨어나야 할 것이다. 너무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성적 광고는 대개 일단은 보고 즐기는게 사실이지만(당혹감이나 혐오감을 주는 경우도 많이 있으나), 그 광고가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나 내용은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광고에 대한 감시·비판은 소비자단체, 여성단체, 종교단체, 청소년단체, 학계 등에서 나름대로의 기준에 입각해 이루어지고 있고, 140여 가지의 광고규제법규도 제정되어 있다. 7,8개의 정부관련부처도 광고를 감시, 규제하며, 전국 400여개의 행정단위 조직도 개별 규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법이나 규제에 의한 타율적 정화보다는 광고계 스스로의 건전하고자 하는 노력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