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② | 스카티광고 출연한 큐레이터 김선정

광고모델에 도전한 프로 큐레이터

글·김미순 <방송광고공사 출판부>

『광고를 만든다는 게 그렇게 힘든 건지 정말 몰랐어요. 고작 15초의 승부를 위해서 하루 종일 적고 또 적고…나중에는 6살짜리 아들아이가 대사를 줄줄 외더군요』최근 쌍용제지 스카티 광고에 출연, 화제를 모으고 있는 큐레이터 김선정 씨의 촬영소감이다.

풋내기 모델(?)이 광고 한 편 찍고 완전히 질려버렸나 싶었더니 그건 또 아니란다.『사실은요, 너무 너무 재미있었어요. 실수를 해놓고도「너무 재미있다」고 했다가 카메라맨 아저씨한테 핀잔도 들은 걸요. 이 무거운 카메라 메고 해도 재미있을 것 같냐고…』아마추어 모델인 자신은 재미있고 신기하기만 했지만, 작업에 참여하는 스태프들은 굉장히 힘들 것 같단다. 본인이 문외한이어서 더욱 그랬을테지만, 모델이야 감독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데 스태프들은 촬영 당일의 여러가지 작업은 물론, 그 이전의 준비작업, 촬영 이후의 마무리작업까지 보통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다고.

그녀가 이번 일에서 자신의 역할이었던「모델」보다 오히려 스태프들의 고충을 더 잘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큐레이터」라는 그녀의 진짜 직업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전시 전반을 기획하고, 작가를 선정하는 일에서부터, 전시회를 홍보하고, 직원들을 교육시키고, 전시회를 끝낸 후에는 작품상태를 보고하는 Condition Report를 쓰는 일까지,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 전시회의 각 과정마다 많은 일들을 완벽하게 처리해내야 하는 자신의 일이 광고로 치면 감독의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동료 의식 같은 게 생기는 모양이다.

그녀의 광고 출연에 그다지 특별한 계기는 없다. 상용제지의 광고를 대행하는 나라기획에서 경쟁사의 빅모델전략과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참신한 이미지의 전문직 여성을 찾고 있던 중, 마침 AE로 일하고 있던 사촌동생이 김선정 씨를 추천한 것. 소구대상인 여성들이 동경할만한 상(像)을 원하던 광고회사에서는 전문직업, 깨끗하고 당차보이는 이미지에 미모까지 갖춘 김선정 씨를 적역으로 판단 했고, 김씨는 큐레이터라는 일반인에게 조금은 생소한 자신의 직업을 알리고, 미술관 홍보도 하고, 또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매력에 이끌려 별 망설임 없이 모델 출연을 수락했다.

모델료는? 말하지 않겠단다.『유명한 모델들은 다 밝히지 않던데요. 최진실도 이야기 안하잖아요』

촬영과정은 즐거웠지만 정작 완성된 광고를 보니 이것저것 아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시사 필름을 보니 영 아니더라구요. 표정도 부자연스럽고, 멘트랑 입 모양도 잘 맞지 않고, 머리카락 삐친 것도 눈에 거슬리고…』광고회사에서도, 광고주도 지나치게 프로냄새가 나지 않아서 오히려 좋다고 말하지만 김선정 씨는 썩 흡족하지는 않은 눈치다. 비록 한번의 외도라 하더라도 본업만큼이나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던 것이다.

광고가 전파를 탄지 한달도 채 못되었는데 여기저기서 반응이 온다. 친구들로부터 한턱내라는 전화도 여러번 받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 가면 알아보고 말을 걸어오는 이들도 있고, 인터뷰 요청만도 10여건에 달한다. 그래서 요즘은 새삼 매스컴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들이「광고에 출연한 큐레이터 김선정」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아버지(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에 대한 관심의 연장인 것 같아서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광고 출연을 결심한 애초의 선택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광고 모델보다는 오히려 코디네이터라면 더 잘 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있다. 광고에서도 준비된 의상이 아니라 본인이 선택한 의상을 입었을 정도로 그녀의 감각은 인정을 받는 편이다.

일주일이면 이들은 지방출장을 떠나는 전문 직업인으로, 변호사인 한 남자의 아내로, 6살바기 아들의 엄마로 바쁘게 사느라 광고는 물론 아예 TV자체를 거의 보지 않았던 그녀가 요즘은 틈만나면 열심히 광고를 들여다본다. 한 편의 광고에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노고가 담겨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후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감동, 자신이 살짝 들여다본 광고라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자신의 많은 역할에 또 하나의 이름을 보태게 한「광고 모델」로서의 책임감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