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광고회사와 프로덕션

 

지상토론 : 광고대행사에 바란다 ①
"사장님, 프로덕션들 정말 고생많습니다"

윤문영(제일프로덕션 대표)

거꾸로 돌아가는 경제흐름 속에서 그리고 광고주 유치라는 그 치열한 경쟁속에서 마음 고생이 많으실텐데 주제넘게 몇마디 늘어 놓게 되어, 부담을 드리는 것은 아닌지 송구스럽습니다. 그러나 저희들 제작사들의 시시콜콜한 넋두리나마 우리 광고계 발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 같아 몇가지 문제를 얘기해볼까 합니다.

우선 광고제작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대행사와 프로덕션과의 불합리한 관행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제작의뢰 시점에서부터 선진국의 대행사에서 일하는 방법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걸 볼 수 있습니다. 대행사의 역할은 방향과 아이디어를 자체내에서 해결하여 광고주의 결재를 얻은 후에 비로소 프로덕션에게 표현을 맡기는 것이 정석입니다만, 선진국의 업무구조는 도입해 놓고도 능력이 따르지 못해 그러는구나 싶습니다.

더욱 곤혹스러운 것은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짧은 시간을 못박아, 그것도 A,B,C안을 급하게 부탁해옵니다. 프로덕션은 그때부터 눈코 뜰새 없이 분주해집니다. 국내외 자료테입을 수도 없이 모니터해야 하고 외국서적, 국내서적할 것 없이 책방을 뒤지느라 부산합니다. 한정된 시일 내에 아이디어를 구하기 위해선 비용이 과다하게 발생되는 것쯤 뒷전이다 싶어집니다. 밤샘을 해가며 아이디어를 구체화했으나, 밀려있는 작화료를 핑계로 시큰둥해하는 콘티라이터를 꼬시느라 침이 마릅니다. 약속한 날짜에 스토리 보드를 제출합니다만, 아이디어가 시원치 않아보인다며 두 세가지를 더 요구합니다.

어렵게 제작에 들어가더라도 제작비에서 또 문제가 생깁니다.

대행사의 제작지원국에서 일방적으로 규정해 놓은 단가표를 보면 이해할 수 없는 항목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PD료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죠. 프로덕션의 PD는 제작의 실질적인 진행책임자로서 대행사 PD와 업무분야가 다르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편집료만 해도 그렇습니다. 포스트 프로덕션은 제작사의 편집자 없이는 편집할 기능을 갖고 있지 않은데도 편집료를 기능면에서 중복되는 것으로 혼동하고 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한번에 끝나는 편집 또한 본 일이 없습니다. 시사는 어디 한번에 끝나는 예가 있었습니까? 그래서 사후 관리비를 인정해 달라는 겁니다.

사장님, 프로덕션들 정말 고생 많이 합니다. 제작지원국이 문자 그대로 제작을 지원하는 부서가 되려면 제세공과금을 5%라도 지원해 주셔야 합니다. 제작비에서 제세공과금 못받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지 않습니까. 제작형식의 절차나 완성도는 선진국 수준을 바라면서 제작비는 깍으면 통한다, 지불은 4개월 짜리 어음을 줘도 받아간다는 식이니 프로덕션들의 부담만 쌓인다는 얘깁니다. 끝으로 제작현장의 분위기를 보면 참으로 우리나라 광고인들, 자신들의 일은 팽개치고 왜들 무리지어 몰려와서 제작을 방해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과도 보기 전에 이래라 저래라 이렇게도 찍어보고 저렇게도 붙여봐라는 등, 우스개 말로 「니 맘대로 하세요」 하고 싶어집니다. 「누구나가 자기 자신의 일에 철저하다면 이 세상은 훨씬 순조롭게 되어갈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루이스 캐롤의 얘깁니다.

지상토론 : 프로덕션에 바란다
전문파트너로서의 위상정립 꾀해야

이용찬 (제일기획 광고5팀 차장)

광고업계에서 일년이상 일한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게 되는 두 가지 재미있는 현상이 있다. 그 첫번째는 「세평이 좋은 광고일수록 제작한 사람들의 수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양제과의 「쵸코파이 정시리즈 광고」는 내가 알고 있는 범위내에서 「자기가 직접 만들었다」고 하는 사람이 줄잡아 100명이 넘는다.

이런 현상은 동서식품의 커피 광고나 제일제당의 「고향의 맛 다시다」 광고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난다. 반면, 별 반응이 없거나. 악평을 듣는 광고는 실제 제작한 감독조차 『아, 그 작품은 내가 바빠서 조감독한테 맡긴거야」라고 발뺌을 한다.

두번째 재미있는 현상은 「광고 회사와 제작사 사이에 노골적으로 벌어지는 책임회피 전쟁」이다. 광고주 사장님의 이유없는 퇴짜로부터 시작되는 이 전쟁은 「추가 제작비」라는 돈문제까지 포함되어 있어 때로 장기전의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영상은 끝내주게 나왔는데, 알고 보니까 기획방향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더라구. 에이 돌같은 친구들』 대개 제작사는 이런 식이고, 『전략이 아무리 좋으면 될 해 ? 마무리가 제대로 되야지. 도대체가 정이 안가요, 저 인간들·.』 광고회사도 뒤질세라 잘못했다는 적이 없다.

이와 같은 두가지 현상을 지금 우리 광고계의 일반론으로 치부하기엔 다소 억지가 있긴 하겠지만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 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위엔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이 만든 제작물의 완성도를 높여서, 많은 사람의 축복속에 전파를 타게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제작사들이 적지 않다. 바로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나머지 자신이 광고인이고 크리에이터란 사실을 망각하는 제작사와는 그 누구도 함께 일하고 싶지 않으리라.

광고회사는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다. 매체광고만 잘 만들면 되는 시대에서 이제는 광고주의 제품, 가격, 유통, 판촉 등의 마케팅믹스는 물론 경영전략 수립에까지 참여하는,그야말로 광고주의 진정한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풀서비스를 제공해야만 하는 시대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최근 광고회사내에서는 현재 짜여져 있는 광고주의 마케팅전략과는 상이한 관점에서 새로운 마케팅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전제로 한 광고전략을 광고주에게 제안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구체적인 크리에이티브를 만들기 위해 제작사와 상의하게 되는데, 대개의 경우 제작사는 광고회사가 얘기하는 전략 방향을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거나, 어느 때는 『왜 그런 골치아픈 내용을 우리한테까지 설명하려 하느냐」고 반문할 때도 있다. 심한 경우에는 광고할 제품이 어떤 것인지 한번도 보지 않고 스토리 보드를 만드는 초능력을 가진 분들도 많이 보게 된다.

이제 광고주와 광고회사가 변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제작사도 바뀌어야 한다. 적어도 함께 마주 앉아 소비자와 제품과 여타의 마케팅 요소를 분석하고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몇몇 제작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기획팀을 운용하고 있으며 최근 깨어있는 제작사들이 이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내가 TV 커머설을 아무리 예쁘게 잘 만들어도 다른 마케팅 요소가 잘못 믹스되어 안팔린다면 내가 한 일은 무의미해진다는 사고 방식, 한발 더 나아가 그러한 구매장애요인을 적극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광고회사, 광고주를 설득시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프로들이 모여 있는 제작사와 함께 일하고 싶다.

지상토론 : 광고대행사에 바란다 ②
소신있는 광고주 설득 아쉽다

임인규 (광고방 대표)

초창기 광고 대행사들은 대부분 프로덕션 제작물을 완성하여 납품하는 기능을 자체에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광고도, 점차 발전함에 따라서 선진국 형태를 수용한 프로덕션의 독립화가 시작되었다. 그러한 결과로 이제 프로덕션도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추고 광고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대행사와 프로덕션의 관계에 있어 프로덕션이 하청업체로 인식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대행사와 프로덕션은 일의 과정에 있어서 상하관계임은 분명하지만 대행사의 지시에 절대복종하는 하위개념으로서가 아니라 협력업체로서의 인식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여러가지 바램이 있지만 그중에서 몇가지만 열거하고자 한다.

첫째, 광고주에게 신의를 주는, 소신있는 대행사가 되어주었으면 한다. 광고계에 나타난 최근 성향 중 하나로-광고주 유치에 따른 과다 경쟁탓도 있겠지만-광고주 마인드가 광고물제작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점을 들 수 있다.  물론 광고주 마인드를 배제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광고주 누구의 생각이 어떠하기 때문에, 광고주 내부사정이 어떻기 때문에 등등의 이유로 광고물 제작의 기획단계에서부터 많은 혼란을 빚고, 급기야 뚜렷한 소신없이 일을 처리하게 된다면 문제가 아닐까 싶다. 광고의 중심인 상품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논리적인 판단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그리고 모든 크리에이티브도 그로부터 출발하여야만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대행사의 소신있는 광고주 설득과 대화가 중요한 것이다.

둘째, AE, 카피라이터, PD 등의 잦은 인사이동으로 인한 연구부족은 개선돼야 한다. 대행사와의 회의에 참석해 보면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해 담당 AE, 카피라이터, PD가 그 프로젝트에 대한 기본적인 인지없이 회의에 참여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대행사내의 인사 관리측면이나 광고주 요청 등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AE, PD, 카피라이터가 한 프로젝트에 관여할 충분한 기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들이 어느정도 연륜이 쌓여 그 제품에 일가견이 생기고 직책도 높아지면 보통 관리자적 측면으로 돌아서는 경우가 많다.

크리에이터브의 부수적인 관리 업무로 시간을 보내야하는 고급인력을 볼 때면 대행사의 인사관리가 크리에이티브 측면에서 보다 적절히 이루어져야 하며 그들이 대행사에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적정한 대우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인사문제에 있어서도 우선적으로 좋은 광고만들기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세째, 모든 광고물 제작에 있어 보다 계획성 있는 배려를 바란다.  광고주의 계획성 없는 광고의뢰도 문제가 있겠지만 현실적 문제를 고려하여 차질이 없도록 광고주에게 건의하고 설득하는 광고회사의 노력도 필요하다. 계획성 없는 갑작스런 제작으로는 좋은 크리에이티브를 기대할 수 없으며, 모든 제작과정에도 차질을 빚기 십상이다. 또한 아직도 현실화되어 있지 않은 제작비 문제도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부족한 제작비에 맞추어 제작된 광고의 질은 낮아질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광고주 회사에 대한 인식의 질도 낮아지게 되는데 이는 안타까운 일이다.

프로덕션은 이상에서 열거한 문제들을 안고 그동안 많은 제작을 해왔다. 그래서 오히려 밀어부치면 된다는 식의 사고가 팽배한 상태로 제작물을 완성해 왔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 선진국의 광고업계처럼 될 수는 없겠지만 언젠가는, 또 누군가는 조금씩 개선하고 발전시켜야만 하고 그 주체는 바로 대행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하고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광고는 그 어떤 분야보다도 결과치에 대해서 참으로 냉철하다.  과정에 『이러한 문제가, 어려움이 있었구나」라고 용납하지 않는다.  오직 결과물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기 때문에 광고제작은 비정한 작업인 것이다. 그러기에 올바른 광고주가 올바른 대행사를 낳고, 올바른 대행사가 올바른 프로덕션을, 올바른 프로덕션이 좋은 제작물을 낳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