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광고 비즈니스 전문화, 현황과 향방 4 - Media Agency 읽기

발전 가능성 예고되는 미완의 시장

현석준 / 애드젠앤파트너스 대표, sjhyun@adzen.net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를 운영하고 있는 필자가 미디어 에이전시에 대해 언급한다는 것이 어쩌면 어불성설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종합광고회사에서 미디어 에이전시를 분리했을 때의 장단점, 광고주의 요구(needs)와 욕구(wants)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하고, 현재 미디어 에이전시를 활용하고 있는 입장에서 보다 객관적이며 투명하게 미디어 에이전시를 살펴보고자 한다.

Media Agency의 탄생 배경과 발전

미디어 에이전시는 1990년대 후반 미국에서 처음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왜 미디어 에이전시라는 개념의 회사가 등장해야 했을까?

사실 광고회사에서 미디어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임팩트 있는 크리에이티브를 개발했다고 해도 그것이 소비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 아닌가? 물론 ‘대단히 많은’ 광고비를 매체에 투입한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단히 많다는 광고비의 개념도 모호하고, 어느 광고주나 예산의 한계가 있으며, 이에 따른 효율성과 효과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들 때문에 1980년 중반부터 광고효과를 높이는 데에 필요한 여러 가지 매체 관련 이론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효과성을 위한 전략적 이론 중 가장 앞선 것은 TV광고 분야였다. GRP(Growth Rating Points)라는 총 시청률의 합계를 가지고, 경쟁사 대비 우위와 효과를 위한 최소 GRP 개념들이 도입되었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 해 프로그램을 선정할 때 시청률 1% 제고에 소요되는 단가의 개념까지, 새로운 용어와 이론들을 앞세우며 TV매체 노출 시 효과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연구들이 지속된 것이다.

이렇듯 매체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맥켄 에릭슨을 비롯한 기존 광고회사들이 지주회사(holding company)로 남아 크리에이티브 작업을 수행하고, 매체 부분은 독립을 시켜 더욱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틀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지금 전 세계적인 미디어 에이전시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주회사를 갖고 있는 것도 이러한 태생 배경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90년 후반에 태동하기 시작한 미국의 미디어 에이전시는 현재 미국 광고시장에서 약 80%의 빌링을 점유하는 급성장을 거듭하며 확고한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보상제도’가 주요 걸림돌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초부터 미디어 에이전시의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국내에서 글로벌 에이전시들이 빌링 점유율을 높이려는 노력을 시작한 시점과 일치한다. 즉 글로벌 에이전시들이 글로벌 광고주들을 관리하기 위해 미디어 에이전시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독립 미디어 에이전시가 탄생되어 그 규모를 키우고 있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지만, 글로벌 에이전시가 지주회사로서 미디어 에이전시를 분리시키는 것이 주도적인 흐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미디어 에이전시는 미국처럼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지는 못하고 있다. 빌링 점유율을 볼 때 아직 10%에 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정도인데, 한국 광고시장만의 독특한 환경이 미디어 에이전시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흔히 한국은 모든 분야에서 ‘규모’와 ‘크기’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광고시장도 예외는 아니어서 많은 광고주들이 대형 광고회사를 선호한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분석 가능한데, 첫 번째로는 IMC적인 서비스를 받기 좋다는 점이다. 단순한 광고 한 영역만이 아니라 통합적인 마케팅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사세 과시적인 측면도 있다. ‘우리 회사의 광고는 어느 광고회사에서 만들고 있다’는 과시적인 측면은 대내외적인 측면에서 사세 과시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광고시장은 알게 모르게 면허 제도가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적인 필요성(물론 장단점이 있음)을 인지함에도 불구하고, 미디어 에이전시를 독립시키는 것에 다소 주저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편 미디어 에이전시의 생존, 발전과 직접 연계되는 보상 시스템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요소다. 미국의 경우 미디어 에이전시의 노력에 비례하는 피(fee) 시스템이 어느 정도 정착하여 그 수익구조가 매우 탄탄한 편이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피 시스템이 정착되지 못했고,-엄밀히 말한다면 아직 도입조차 되지 않은 상황에서 커미션 스플릿 (commission split)에 의존하고 있다. 미디어 에이전시와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의 평균 스플릿 비율은 3:7 정도인데, TV광고의 경우 KOBACO와 일정 부분을 나누고 10% 남짓한 커미션에서 3%의 수익을 기대한다는 것은 미디어 에이전시의 생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기도 하다. 만약 빌링 규모가 크다면 문제가 없으나,그렇지 않을 경우 전략 수립을 위한 데이터 구입비용, 전문가에 맞는 수준의 인건비, 광고대행을 인정받기 위한 지급보증 수수료 등을 감안한다면 그 수익의 한계가 뚜렷한 것이다.

‘미래’ 기대되는 4가지 요인

그러나 이러한 어려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미디어 에이전시의 전망은 매우 밝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글로벌 에이전시의 광고시장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꼭 좋은 현상이라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외국 글로벌 에이전시의 한국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면 결국 글로벌 에이전시들이 미디어 에이전시의 비중 또한 증대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변수는 있다. 글로벌 에이전시의 시장 점유율 증가가 글로벌 광고주의 비중이 높아지는 데에 따른 것이 아니라, 한국 광고회사의 인수합병에 의한 측면이 크기 때문에 미디어 에이전시의 비중 증진 노력이 언제쯤 가속될지는 단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 일부 광고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이제 광고회사의 역할이 과거 마케팅을 대행해 주던 것에서 나아가 좋은 크리에이티브를 창출하는 것으로 점차 집중되기 시작한 점이다. 이런 현상이 확산될 경우 중 소규모의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에 더 많은 기회가 생길 것이며, 이는 곧 전문 미디어 에이전시와의 업무제휴 증대로 이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셋째, 미디어 에이전시의 적극적인 영업활동도 전망을 밝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최근 빌링 면에서 10대 광고회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미디어 에이전시가 있어 주목 받았는데, 이는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태생된 미디어 에이전시는 생존을 위해 적극적인 영업을 하고 있다는 현상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넷째, 광고주의 태도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즉 좀 더 특화된 매체 서비스를 받기 위한 목적으로 과거와는 달리 매체 분리대행의 필요성을 광고주 스스로 원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미디어 에이전시들도 기존 대형 광고회사와는 다른 차별적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특화된 미디어 전략모델 개발 등의 다양한 노략을 펼치며 광고주의 눈길을 잡고 있다.

피 시스템과 커미션 시스템 간의 차이로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서는 그 점유율이 아직 낮은 것이 우리나라의 전문 미디어 에이전시의 현황이다. 하지만 매체 환경의 변화, 소형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의 약진 등 여러 가지 광고환경의 변화는 국내 미디어 에이전시의 성장 가능성을 예견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향후의 귀추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