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주 메뉴얼①

준비된 광고담당자 되기

임성빈 / LG전자 판촉광고1그룹 부장

자동차와 전자제품이라는 커다란 아이템의 광고주로서 광고업무를 담당하면서 지내온 기간이 어언 15년이나 흘렀다. 돌이켜 보건대, 입사 전에 터득한 알량한 광고관련 지식과 열정 하나만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다니던 초년 시절, 광고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되었다고 우쭐대며 대행사나 상사들에게 제법 논리를 피력하던 중반 시절, 그리고 이제,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게 광고’라고 생각되는 제법 원숙한 광고인이 되었다. 이 글은 지나온 세월동안 나의 광고생활을 이끌어 온 기준들을 중심으로, 선배 광고주 입장에서 신입 광고담당자로서 갖추어야 할 요건들 중 자칫 지나치기 쉬운 중요한 몇 가지 사항들을 위주로 소개한다.

● 첫째, 좋은 광고주가 좋은 광고를 만든다.

이는 광고 업무를 처음 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에 읽었던 책의 제목이기도 한데, 기업체 광고주 출신의 선배가 집필한 광고관련 실무 지침서이다. 책의 내용이 세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한 마디로 요약하면 광고주가 방향을 잘 잡아야 하고, 시안을 잘 선택하고, 집행해야지만 그 광고가 산다는 것이다. 유능한 대행사가 아무리 기발한 광고 아이디어를 제시해 도 그 광고에 대한 1차 소비자인 광고주가 최종 큐사인을 주지 않으면 그 광고는 빛을 보기도 전에 광고로 서의 생명을 잃게 된다. 또한, 엉뚱한 방향으로 편집질을 해서 광고라는 배가 산으로 가게 만드는 것도 광고주의 잘못된 선택에 따른 경우가 많다. 물론 모든 것을 대행사에 맡겨 놓으면 되겠거니 생각할 수도 있으나 현실적인 문제를 감안하면 국내 여건에서는 사실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니, 비록 제작 작업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더라도 모든 공정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사람이 광고주이니, ‘좋은 광고주가 좋은 광고를 만든다.’라는 말은 영원한 진리인 것이다. 이 책이 비록 전문성은 다소 결여되어 있었지만 나의 광고생활 전반에 걸쳐 좋은 지침서가 되어 주었다.

● 둘째. 광고담당자는Specialist이면서 Generalist이여야 한다.

이는 자동차 회사에 근무하던 1998년도에 광고팀장으로 모셨던 K씨께서 말씀하셨던 것인데, 얼핏 알다가도 모를 듯한 말이다. 이 말은 전문가랍시고 광고만 알아서는 될 게 아니고, Sales, 유통, A/S, I/R, 품질 등 회사 전반에 걸친 폭 넓은 이해와 지식이 있어 야만 비로소 광고를 잘 할 수 있다는 말로 지금껏 해석하고 있다. 즉, 광고담당자는 해박한 전문가로서 대행사와 내부 인원에 대한 리드를 해야 하는데, 이는 결코 광고만이 아니라 회사의 일반적인 제반 사항들에 대해서도 명확히 알고 있어야만 그것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렇듯 광고담당자는 적절한 광고전략을 입안하고, 광고관련 주요 의사결정을 주도하며, 이를 바탕으로 결정된 광고시안을 완성된 제작물로 만들게끔 하고, 완성된 광고를 집행하고 그 효과를 분석, Feed back 하는 역할까지를 종합적으로 아우르는 만능 Entertainer이여야 하며, 그 역할이 누구보다도 중요하다. 대행사 조직은 보통 매우 전문화되어 있어서 담당 분야를 깊게 파고 들 수는 있지만, 광고주 담당자는 이뿐만이 아니라 광고의 “A에서 Z까지”전반에 걸쳐 폭넓은 시야를 보유한 속칭 광고업무의 “All Court Player”야 한다는 데에 매력이 있다. 이러한 광고주는 절대로 타고나지 않는다. 실무를 수행하면서 하나씩 배워나가는 과정에서 노하우가 쌓이고, 부단한 노력을 해나간다면 언젠가는 비로소 멋진 플레이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셋째, 광고는 마라톤이다.

불경기이거나 기업이 어려운 경영환경에 처할수록 매출에 대한 부담이 많기 때문에 그 만큼 광고에 대한 경영진으로부터의 관여가 심할 것이다. Brand Management를 목적으로 한 이미지 중심에서 갑자기 딱딱한 U. S. P. 전달 위주로 광고가 변한다든지, 엄청난 할인판매 조건이 갑자기 Head Message로 올라간다든지 하는 경우를 보면, 광고의 기능이 갑자기 1900년대 중반으로 되돌아간 느낌을 받곤 한다. 사실 이러한 경우에 교과서적인 광고 논리를 가지고 경영 진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작년 여름 아테네 올림픽의 마라톤을 생각해 본다. 38Km 지점까지 줄곧 부동의 1위로 달리고 있던 브라질 선수(반데를레이 리마)가 갑작스런 훼방꾼으로 인해 졸지에 3위로 내려앉고 말았다. 그 선수가 지체당한 시간은 몇 십초(약 30초쯤)에 불과했지만 그로 인해 그 선수의 컨디션(호흡, 근육, 심리 상태 등)은 이미 흐트러진 것이다. 그 잠깐 동안의 사이에 말이다.

광고도 마찬가지이다. 광고를 통해 꾸준히 쌓아온 브랜드 자산이 언제까지 지속되지는 않는다. 잠깐 외도를 하고 온 사이에 헐값 브랜드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브랜드 자산은 구축하기도 힘들지만 그것을 키워나가거나 지키는 것은 더욱 힘든 것이다. 농부가 작물을 키우듯, 어머니가 아이를 돌보듯 그렇게 브랜드 를 키워야 하지만, 어려운 숙제들이 도처에 널려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광고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고 흔들리지 않는다면, 반드시 좋은 광고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들은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품이 주는 심리적인 만족을 충족시켜 주는 브랜드를 구매한다. 실제로 소비자들은 상품의 세세한 Benefit이나 정보보다는 브랜드 중심의 구매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지금부터라도 마라톤(?)을 뛰자. 그리고 긴 여정 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꾸준히 컨디션 관리를 하자. 골인지점에 다다를 즈음에는 파워브랜드가 되어 있을 것을 확신하며...

● 넷째, 적기에 집행하지 못하면 죽은 광고다.

만약 동해안 경포대 해수욕장에 새로 오픈하려고 하는 가게가 있는데 인테리어가 다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개업을 9월로 미룬다면 과연 잘 했다고 할 수 있을까? 분명 아닐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다른 가게 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시즌은 다 끝나고, 철 지난 바닷가에는 스산한 바람만 찾아올 것이다. 그 만큼 시기나 주변상황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광고의 경우에는 어떨까? 모든 광고는 매체를 통해 소비자들과 만난다. 최소 한 수개월 이상을 준비해서 만든 광고의 궁극적인 목적은 광고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므로 결국 매체 집행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광고라 할지라도 소비자들에게 전달되지 못하면 죽은 광고이며, 매체를 통해 집행까지 되어야만 비로소 생명력을 갖는다는 얘기다.

만일의 경우, 광고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혹은 여타 다른 이유로 인해 집행 시기를 뒤로 미루고자 한다면, 경쟁사의 동향이나 집행을 연기했을 때의 각종 기회비용 등 모든 사항을 점검한 후에 신중하게 결정을 내려야 한다. 차라리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먼저 집행하면서 보완해 가더라도 광고시기를 늦추는 것은 많은 유무형의 손실을 초래하기 때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아주 쉬운 예로, 우리가 시기를 늦추는 사이 경쟁사에서 우리보다 먼저 경쟁브랜드를 출시한다거나 동일한 컨셉으로 선공을 한다면, 마케팅 제1의 법칙(리더의 법칙)에 의해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게 될 것이다. 집행하지 못한 광고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되지 못한다.

● 다섯째, 광고는 예술행위가 아니다.

광고가 이미지 측면만을 강조하다 보면 자칫 광고를 하자는 것인지 예술을 하자는 것인지 아리송해 질 때가 있다. 자칫 대행사의 제작진들이 너무 이미지적인 Creativity에만 몰두한 나머지, 화려하게 치장된 사안에서 종종 발생할 수 있는데, 주객이 전도된 경우이다. 광고가 아무리 제품 그 자체보다 이미지를 파는 것이라 하더라도 제품에 뿌리를 내리지 않은 Creativity는 공허할 뿐이다. 설사 그것이 유수의 광고제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했다고 할지라도 제품의 판매와 관련이 없는 광고라면 과감히 ‘0점’을 주어야 한다. 이런 경우, 광고의 주인(廣告主)으로서 대행사 사람들(특히, 제작진)에게 광고 본연의 목적을 일깨워 주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광고는 Commercial action이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예술과 광고를 분리할 줄 알아야 한다.

얼마 전 대학생들을 상대로 마케팅 성공사례에 대 해서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한 학 생이 당돌한(?) 질문을 했다. ‘광고주는 대행사가 다 만들어 온 것을 선택만 하면 되는데 진정한 광고인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라는 것이었다. 광고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광고의 주인은 전적으로 광고주다. 대행사나 제작사는 광고주의 의뢰를 받아 전문성을 가미해 더 좋은 전략으로 승화시키는 사람들인 것이다. 최초의 광고 발의에서부터 최종적인 확정까지 모두 광고주가 하는 것이고, 그에 대한 책임과 결과도 고스란히 광고주의 몫이다. 최악의 경우 대행사는 다른 광고주를 찾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더 있지만, 광고주는 바로 문 닫고 집에 가야 한다. 그만큼 모든 광고관련 결정에 있어서 광고주의 관여도가 더 높고 신중할 수밖에 없다. 광고의 역할은 소비자들의 마음에 광고 자체가 아니라 제품이나 브랜드를 심어 놓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 여섯째, 대행사는Family이다.

그렇다고 대행사를 하청업체 취급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대행사가 광고주와 동일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지만 좋은 광고전략과 크리에이티브를 생산해 낼 수 있다. 정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정보를 제대로 전달해 주지 않으면 절대로 명확한 광고를 만들 수 없는 것이다. 만약 2등을 하고 있으면서 1등이라고 잘못 알려 준다면 대행사는 주어진 정보 안에서 충실하게 1등 전략을 짜올 게 뻔하다. 2등에는 2등에 맞는 전략이 반드시 필요한 법, 1등이 멋있다고 1등을 따라간다면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이다. 대행사를 믿지 못하여 거짓 정보를 전달하거나, 정보의 양을 제한적으로 제공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들은 언젠가 반드시 독화살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내부에서 정보를 공유하듯 이 대행사와도 정보를 공유하고 한 가족처럼 서로의 호흡을 느낄 수 있어야 비로소 좋은 광고를 만들어 내는 좋은 광고주, 좋은 대행사가 되는 것이다. 대행사도 광고주의 정보를 생명처럼 여기고, 외주 제작처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주로 정보는 대행사가 아닌 제3의 제작처를 통해 유출되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정보의 양을 제한하는 것은 또 다른 커다란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므로, 대행사의 보안 수준을 믿지 못 하겠거든 차라리 대행사를 바꿔라. 한편, 대행사 조직원 한사람 한사람에게도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한다. 따뜻한 말 한마디, 경조사 챙기기, 힘들고 어려울 때 함께 기울여 주는 술 한잔이 결국에 좋은 광고를 잉태하여 돌아온다. 예전에 대행관계에 있던 어떤 사람이 부친상을 당했을 때 차가 들어가 지도 않는 시골까지 내려가서 문상을 간 적이 있었다. 대행이 끝난 지금까지도 그는 각종 업계 동향을 파악 해 주는 훌륭한 정보원이 되고 있다. 대행사와 광고주가 한 가족이라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 일곱째, Big Model은 마약이다.

얼마 전, 광고계를 뜨겁게 달군 사건 하나가 있다. 소위 "연예인 X 파일"이라고 해서 국내 유명 연예인 들에 대한 미확인 사생활 정보 보고서가 인터넷에 유포되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 바로 그것인 데, 왜 이러한 보고서가 필요했을까? 스타급 광고모델에 관한 자료 수집을 통해 모델로서의 가치를 파악하고, 모델의 개인 사정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사전에 관리하여 광고주의 유무형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문제 삼고 싶은 것은 보고서 자체가 아니라 빅 모델 전략의 맹점이다. 광고의 Impact를 높이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스타급 Big Model을 활용하는 전략인데, 이는 사실 광고의 컨셉이나 목적에 부합되지 못하고 스타 연예인의 대중적 인기도에 단순 편승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광고에 있어서 모델은 전적으로 주연(제품이나 컨셉)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훌륭한 조연이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광고에서 주객이 전도된 경우를 접할 수 있다. 광고에 나온 모델은 기억하는데, 무슨 제품의 광고인지,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는지, 심지어는 무슨 브랜드인지도 기억하지 못한다면, 과연 그 전략이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엄청난 규모의 모델비와, 경우에 따라서 생길지도 모르는 스캔들로 인한 엄청난 이미지 훼손을 생각한다면 결코 좋은 전략이라고 판단되지는 않는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모델의 인기도 보다는 광고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컨셉과의 적합도에 우선 초점을 맞추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명 연예인의 효과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나, 모델 자체의 대중적 인기도 보다는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얼마나 잘 보완해 줄 것인지, 얼마나 극대 화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빅 모델 전략은 전략적 대안이 약할 때 쓰는, 쓰면 쓸수록 중독되는 마약과도 같고 미인계와도 같다. 결코 외형에 현혹되지 말고 잘 따져 봐야 한다.

우리 회사도 빅 모델 전략을 꽤 잘 활용하는 편이다. 지금도 국내 정상급 빅 모델들을 우리의 모델로 활용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빅 모델 전략을 구사하고는 있지만, 늘 잊지 않고 대행사에 주문하는 것이 있다. 그 것은 “빅 모델을 많이 보여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조금 보여주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는 것이다.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인데, 한마디로 말하자면 결국 빅 모델이라 할 지라도 철저하게 조연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내가 담당했던 광고 중에서 빅 모델을 철저하게 조연으로 활용한 좋은 사례가 있다.

엑스캔버스 “실감영상” 캠페인(03~04년, 전 3편) 에서 모델 한석규 씨를 맨 마지막 장면에 약 1초 정도로 짧게 활용하면서도 전반적인 브랜드 인지도와 광고 선호도를 향상시킨 사례가 그것이다. 영화에서도 훌륭한 조연 때문에 주연이 오히려 돋보이는 경우가 있듯이 이 캠페인은 그야말로 빛나는 조연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빅 모델을 조금만 보여주었다고 해서 성공했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을 함으로써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으며, 모델비가 아깝지 않다. 오늘 밤, TV를 켜 놓고 찬찬히 보라. 과연 저 광고 가 제품을 위한 광고인지, 아니면 모델 자체를 위한 광고인지.... 무명모델이거나 모델이 아예 없으면서도 훌륭한 광고는 얼마든지 많다.

● 마지막으로, 단 한 사람의 적군이 나를 죽인다.

광고 업무를 하기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매우 많은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회사 내부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대행사, 제작사, 매체사, 이벤트사, 판촉업체 관련된 사람들 등 광고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여러분들과 관계를 맺게 될 것이다. 그러나 소위 광고 바닥이 하는 일의 규모에 비해서 매우 좁고 전문성이 뛰어 나다 보니, 이직이 매우 심한 업종이 바로 광고계이기도 하다. 한 두 다리 걸치다 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당연히 대인관계가 중요하다. 정보가 매우 중 요한 업무이다 보니 사람들에 대한 인물 정보도 급격한 속도로 공유되는 것 같다. 2000년도에 지금의 회사로 옮겼을 때의 일인데, 첫 출근하는 날부터 나에 대한 각종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인간성이 어떠하더라, 실력이 어떻더라, 업무 스타일이, 성격이... 정말 좁은 세상이다. 만약에 전 직장에서 무슨 좋지 않은 문제라도 일으키고 이직을 했더라면 아마도 지금쯤 서울역에서 노숙생활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 이다.

어떠한 업종이나 마찬가지로 대인관계가 중요하겠지만,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고도로 전문화된 사람들이 제한된 좁은 업계에서 일하다 보니 광고 업무에 있어서 그것의 중요성은 훨씬 더 큰 것이다. 더군다나 광고주라는 지위 특성상 여타 광고회사에 근무하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은 이직률이 광고주보다 높기 때문에, 내가 상대방을 기억할 확률이 상대방이 나를 기억해 줄 확률보다 매우 낮다. 나를 기억해 준다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기억을 당하기만 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사실, 내가 기지고 있는 명함은 1만장이 훨씬 넘는데, 애석하게도 그 중에서 내가 기억하는 사람은 2천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만났던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는 재주를 가졌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평소에 자기 관리를 잘 해 놓을 일이다. 아니다 기억한다 하더라도 가급적 많은 사람들한테 좋은 기억을 갖게끔 관리해 둘 필요가 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웅덩이 물을 다 흐려 놓는다 는 말이 있듯이, 누군가가 악한 마음으로 특정인을 해하려 한다고 가정하면 그것처럼 쉬운 일도 없을 것이다.

몇 년 후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이고 중간관리자 정도의 위치가 되면, 광고주 및 광고계 각층의 사람들과 함께 할 시간들이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그 때까지 쌓아온 각자의 인간관계가 실체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광고계에서 떠돌던 각종 개개인에 대한 평가가 화살이 되어서, 혹은 약이 되어서 돌아올 것이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바로 평가될 것이다. 100 명의 우호적인 평가보다 단 1명의 혹평이 나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군을 만들지는 못할망정, 적군을 만들지는 마라.’그들은 치명적인 독화살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 끝맺으며...

모든 면에 능통한 좋은 광고주가 어디 하루아침에 만들어 지겠는가. 보다 장기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부단히 학습하며, 만나고, 실행하고, 차곡차곡 쌓아가다보면 어느새 좋은 광고주가 되어 있을 것으로 믿는 다. 꽁수가 통하지 않는 세계가 바로 광고계라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된다. 우리 부서에는 입사한지 1년이 갓 넘은 사원이 있는데, 나는 최근에야 이 직원에게 고유한 업무를 주었다. 지금까지는 훗날 “All Court Player”가 될 역량을 쌓기 위해 모든 방면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시간적인 배려를 함과 동시에 마케팅이나 광고 관련된 실력을 더 쌓을 수 있도록 소위 우리식(?)의 엄격한 훈련을 시킨 것이다. 이제 새로운 고유 업무를 부 여받고 열의에 차서 달려 나가는 준비된 또 한 명의 새로운 Rookie를 바라보며, 영원한 진리를 다시 되새겨 본다.

“좋은 광고주가 좋은 광고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