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비평 | ‘김태희’표 광고

예쁜 얼굴, 똑똑한 이미지로 ‘소비’되는 그녀

김홍탁 / 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디렉터 · 광고평론가

 

쉼 없이 돌아가야 하는 스타제조공장에서 한국 광고계가 내놓은 히트 상품 김태희. 싸이언 아이디어, 아모레 퍼시픽 헤라로부터 푸르지오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출연한 광고브랜드는 20개에 육박하며, 품목으로 봐도 휴대폰, 카메라, 음료, 식품, 건설 등 거의 모든 품목에 걸쳐 있을 정도다. 광고모델만으로도 시청자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으며 톱스타의 자리를 유지하는, 이 독특한 한국적인 업계 상황을 분석해 본다.

김태희는 예쁘다. 정말 예쁘다. 김태희가 등장하는 광고에 대한 네티즌의 댓글을 보면 ‘누나 정말 예뻐요’로 집약될 수 있을 정도다. 김태희는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 트로이카 이후 수많은 미녀들이 이름을 올려 온 대한민국 미녀 스타 족보에 오르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미인이다. 게다가 똑똑하기까지 하다고들 한다. 물론 검증된 것은 없지만 서울대 출신이라는 꼬리표 하나로도 그녀는 이미 ‘예쁘고 게다가 똑똑한 연예인’의 범주에 올라 있다. 간판 사회인한국에서 그녀의 학력은 그녀의 진가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사정이 이쯤 되면, 그렇지 않아도 유명인 모시기에 여념이 없는 한국 광고계에서 예쁘고 게다가 똑똑한 김태희를 마다할 리 없지 않겠는가.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김태희는 한국CM전략연구소에서 조사한 소비자 호감도에서 82.96%를 차지하며 1위로 뽑혔으며, 지상파 방송사 3사 PD가 뽑은 가장 아름다운 연예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2007년 한 해 광고 모델료 수입만도 5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2007년엔 김아중과 함께 가장 많은 22편의 광고에 출연함으로써 대한민국 대표 광고모델로 포지셔닝을 굳힌 상태이다.

예쁘고, 게다가 똑똑한 김태희

특히 김태희는 근래 몇 년간 지존으로 군림해왔던 이영애, 고소영, 김남주, 김희선, 이나영, 전지현을 잇는 광고계 스타이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연기자로서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려고 부단히 노력은 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15초 예술이라는 TV광고에서 인기를 한 몸에 받은 스타들이다. 특출난 연기력은 없어도 빅클로즈업 된 얼굴에서 사람의 시선을 붙들어 맬 수 있는 강력한 매력이 있다면 그것으로도 효과를 보기 때문이다. 김태희 역시 ‘중천’과 ‘싸움’ 두 편의 영화와 ‘천국의 계단’, ‘스크린’,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와 같은 드라마에서 연기자의 자질을 선보이려 했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여전히 물음표이고, 빠져들 듯한 촉촉한 눈망울의 광고 스타로 우리에게 훨씬 더 익숙하다.

이처럼 광고모델만으로도 시청자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으며 톱스타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마 독특한 한국적인 상황이 아닐까 한다. 그것은 한국의 광고가 유명인의 후광에 편승해 브랜드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자산을 쌓으려는 마케팅 활동에 유별나게 집중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유명인의 이미지에 편승해 브랜딩하는 이같은 기법은 장단점이 있다. 이미 형성된 유명인의 후광에 힘입어 짧은 시간 내에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면, 유명인의 이미지에 가려 유명인만 기억되고 브랜드의 이미지는 가려질 수도 있다는 것이 위험요소다.

더구나 한국 광고에서는 한 연예인이 여러 편의 광고에 동시다발로 등장하기 때문에 이미지가 분산되어 하나의 브랜드 이미지를 확고하게 구축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특히 한 연예인이 매체비를 많이 쓰는 대기업 광고에 꾸준히 노출될 때 적은 매체비용밖에 투여할 수 없는 중소기업에서 그 모델을 활용할 경우 오히려 대기업의 대변인격인 유명모델의 이미지를 공고히 해주는 꼴밖엔 안 된다. 이영애가 아파트 자이의 대표 얼굴인 시점에서 이영애를 어느 세제 회사에서 잠시 활용한다고 상상해보라. 이영애 브랜드로 각인된 자이에 헌혈해주고 자신은 빈혈에 시달리는 상황에 처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런 관점에서 최근 3년 동안 가장 인기 있는 광고모델이라고 손꼽히는 김태희를 통해 우리네 광고 풍경을 돌아보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일 것이라 생각된다.

3년간 TV광고 66편 출연, 거의 모든 품목 망라해

김태희가 광고모델로서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2004년 휴대폰 LG싸이언과 화장품 오휘 모델로 등장하면서부터였다. 다음 해 2005년부터 본격적인 광고모델 활동에 돌입한 김태희는 2005년 10개 브랜드의 31편 광고에 출연했고, 2006년엔 4개 브랜드의 13편 광고에, 2007년엔 7개 브랜드의 22편 광고에 출연함으로써 광고계를 거의 평정하다시피 했다(tvcf.co.k 에 올라 있는 광고물에 근거). 3년 동안 66편의 광고에 출연함으로써 1년 평균 22편의 광고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매달 2편의 광고를 찍은 셈이 됐다. 정말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가 출연한 광고 브랜드는 싸이언 아이디어, 아모레 퍼시픽 헤라, 마티즈, 비씨카드, 올림푸스, 에쓰오일, 오휘, 클라쎄, 아이리버, 광동 옥수수수염차, 청정원 양조간장, 캔맥스웰하우스, 남광 하우스토리 등으로 20개에 육박하고 있다. 품목으로 분류해 본다면 휴대폰, 카메라, mp3,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화장품, 신용카드, 자동차, 오일, 음료, 식품, 건설에 이르는 거의 모든 품목에 걸쳐 고루 등장했으며, 굳이 거론한다면 제약 광고만 빠져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인터넷에서 떠돌던 우스개인 ‘이영애의 하루’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게다가 김태희는 2008년부터 김남주를 잇는 푸르지오 아파트의 차기 모델로 계약을 마침으로써 대한민국 대표 광고 품목인 아파트 광고모델에도 이름을 올리게 됐다.

이 사실은 제품과의 관련성 없이 당대 가장 뜬다는 유명인을 광고모델로 활용하는 한국 광고제작의 메커니즘을 여실히 보여 준다. 김태희가 그녀의 이미지와는 별관계가 없어 보이는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자동차, 오일, 건설, 신용카드에까지 등장했다는 것은 결국 예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광고계의 톱스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역으로 알려 주는 것이다. 물론 예쁘게 태어나기도 힘든 게 사실이지만, 예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몇 십억 원 대의 현금을 쥘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광고산업에서 광고모델이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CF스타로 자리매김 시켜준 싸이언, 김태희의 학벌에 묻어가려는 비씨카드

각 품목별로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김태희를 확실한 CF스타로 자리매김하게한 싸이언 아이디어는 2005년 론칭부터 시작해서 현재까지 김태희를 중심으로 제작이 이루어지고 있다. 상대역으로는 현빈, 원빈, 다니엘 헤니, 강동원 등 4명의 남자를 갈아치웠지만 여자 주인공은 여전히 김태희다. 그만큼 김태희의 모델 파워는 크다. 그녀는 25편의 싸이언 아이디어 광고에 등장함으로써 그녀의 광고 작품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광고에선 김태희의 깜찍 발랄한 이미지를 통해 제품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려 한 흔적이 역력하다. 특히 김태희의 진가는 초창기 원빈과의 장난스런 일상의 얘기를 통해 제품의 기능을 드러냈던 일련의 시리즈 광고와 초콜릿폰 론칭광고, 그리고 ‘고이 접어 폴더레라’의 슬림 폴더폰에서 절정에 달했다. 김태희의 개인기에 전적으로 의존한 광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유명인의 유명세 하나에 묻어가려는 우리네 기본 광고전략을 따른다면 아무리 아이디어가 뛰어나고 스토리 라인이 탄탄하다 해도 결국은 연예인의 얼굴을 제대로 보여주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 하나의 스토리 속에서 김태희가 맡은 역할이 분명히 있긴 하지만, 그 역할이 부각되기도 전에 시청자들은 김태희의 눈부신 얼굴과 총총한 눈동자에 빠져 들고 마는 것이다.

초창기 남녀간의 발랄한 사랑 이야기로 광고 스토리를 전개해오던 싸이언은 근래에 사이버 느낌의 세트를 배경으로 제품의 기능을 소구하는 형식의 뷰티폰 시리즈를 시작했는데, 이 역시 김태희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뷰티폰 시리즈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는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여전히 김태희가 핵심이 된다는 전략에는 변함이 없을 듯하다. 요약하면 싸이언 아이디어 광고는 김태희의 개인기와 이미지로 이끌어 가는 광고라 할 수 있다. 결국 최종적으로 기억되는 것은 ‘김태희의 싸이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애니콜=이효리, 싸이언=김태희’의 등식이 각인되는 것이다. 그것이 시장의 반응을 불러오니 제품판매의 관점에선 효과적인 광고라 할 수밖에 없다. 제품의 모델명이 아니라 ‘김태희 폰’으로 시중에 알려져 있을 정도니 말이다.

비씨카드는 2007년 10월부터 김태희를 광고모델로 등용한 광고를 새롭게 선보였다. 비씨카드는 김정은을 등장시켜 인지도와 호감도에서 효과를 보았던 ‘BC로 사세요’ 캠페인 이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 때의 영광을 다시 누려보려는 듯 이번엔 김태희 카드를 꺼내 들고 ‘똑똑한 김태희의 천재적 카드 생활’이란 캠페인을 시작했다. 핵심 슬로건이 말해주듯 이 캠페인은 철저히 김태희의 이미지에 묻어가려는 전략을 내세운다. 아마도 김태희가 등장한 수많은 광고 중에서 그녀의 역할이 가장 크게 부각되는 광고일 것이다.

이 캠페인의 논리는 간단하다. ‘효율적으로 신용카드를 활용하려면 비씨카드를 쓰세요’란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김태희를 끌어 온 것이다. 그녀를 등장시킨 이유는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연예인이라는 점 외에도 서울대라는 출신성분이 크게 작용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브랜드 슬로건에 ‘똑똑한 김태희’란 문구를 집어 넣을 정도라면 애초부터 그녀의 출신성분을 강조하려 했다는 점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금융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금융상품에 대한 안내자(endorser)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합리적인 구매를 하는 연예인으로 각인될 만한 이미지를 가진 사람도 아니다. 한국광고의 모델활용 논리가 얼마나 표피적인가 하는 것을 잘 보여 주는 사례다.

문제는 신용카드가 비교적 고관여 제품이고 신뢰를 상징으로 하는 제품이라는 데 있다. 한 번 맛보고 아니면 안 사먹지라고 넘길 수 있는 천 원짜리 스낵제품이 아니지 않은가. 이성적으로 구매해야 하는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제과 광고처럼 가볍고 장난스럽게 접근하는 이 같은 캠페인이 과연 장기적인 관점에서 비씨카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주 대중적인 신용카드로 포지셔닝하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겠으나, 일부러 프리미엄 이미지를 포기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인지도가 거의 없던 현대카드가 광고를 통해 고급스럽고 갖고 싶은 카드로 포지셔닝하는 데 성공한 예를 참고해야 할 듯 싶다.

뿅망치가 등장했던 티저 광고에서 참참참 놀이를 좀 잘한다고 김태희를 천재로 부각시키는 내용을 보면서 차별화를 위해 무리수를 둔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비록 필자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 개인의 이미지를 카피화하여 핵심 슬로건으로 등장시키면서까지 비씨카드의 운명을 올인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카메라폰과 카메라 광고 겹치기 출연, 같은 업종에 브랜드 바꿔 나오기도

다른 품목의 광고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김태희의 이미지와 개인기에 의존하고 있다. 아이리버 썸씽광고는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 달라고 김태희가 아이리버의 사무실을 찾아가서 화난 얼굴로 불만을 쏟아 낸다는 내용이었다. 참 별난 화법의 이 광고는 김태희에게 모든 걸 의존한다는 측면에서 특별히 새로울 것은 없었지만 인쇄 광고에 등장할 법한 레이아웃을 과감하게 활용했다는 점에서 시각적 새로움 주었던 광고였다. 이 역시 김태희를 따질 건 따진다는 식의 똑 부러진 이미지로 각인시키려 한 혐의가 짙다. 물론 김태희의 이미지와는 겉도는 느낌이었다. 고소영이었다면 모를까.

마티즈 광고는 김태희의 굴욕과 복수라는 주제를 가지고 접근했다. 이 광고는 당연히 김태희를 공주취급해줘야 할 것 같은 상황에서 김태희에게 굴욕을 준다는 가벼운 반전의 에피소드로 재미를 선사했다. 꾸며진 드라마이긴 하지만 연예인 김태희를 일상인 김태희로 묘사하려 한 점이 재미를 배가시켰다.

헤라 광고는 처음부터 몽환적인 이미지와 미스터리한 스토리 속에서 제품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려 한 광고였다. 초창기 모델 이혜상의 바통을 이어받은 김태희는 첩보영화 같은 스토리 속에서 신비의 여인으로 등장하는데, 이런 류의 영상에서 등장하는 팜므파탈의 분위기를 내뿜기에는 함량이 모자란 느낌이다. 얼굴은 예쁘지만 콘셉트가 표방하려는 아우라 에 적합한 인물은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로 치자면 일종의 미스 캐스팅인 셈이다. 오히려 이전 모델의 이미지가 훨씬 더 분위기에 적합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광동 옥수수수염차 광고도 어릴 적 김태희에서 성인 김태희의 사진으로 끝을 맺는 김태희 광고였다. 얼굴의 V라인이 한 사람만의 특권이어서는 안 된다며 김태희와 경쟁하라는 도발적 문구를 내건 이 광고는 성형외과 광고도 아닌 음료광고에서 너무 과장된 주장을 펼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옥수수수염차를 마시고 V라인이 된다면야 얼마든지 먹어 줄 용의가 있지만, 아무리 슬림한 몸매와 갸름한 얼굴이 이 시대의 몸의 담론을 이끌고 있다 하더라도 음료광고마저 이런 식의 과장된 표현을 쓸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0cal 음료라는 제품 특성이 V자형 얼굴과 갖는 논리적 상관관계는 무엇일까.

맞선 본 남자 앞에서 내숭을 떤다는 내용의 올림푸스 뮤 광고 역시 김태희의 아주 예쁜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광고이다. 제품의 특징이 웃는 모습을 카메라가 인식하여 자동으로 찍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미 휴대폰이 디지털 카메라와 다름없는 제품이 되어 버린 요즘 세상에서 김태희란 한 인물이 휴대폰과 디지털 카메라 광고에 동시에 출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싸이언 아이디어 뷰티폰 광고가 완벽한 정사진, 동사진 촬영기능을 표나게 알리고 있는 지금, 같은 모델 김태희가 얼굴을 제대로 찍는다는 내용의 카메라 광고에 같은 시기에 등장한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광고회사나 모델 매니저가 실기를 한 것이겠지만, 이 정도의 페어플레이 정신은 지켜 주는 것이 상식 아니겠는가.

이 같은 상황은 화장품 광고에서도 나타난다. 비록 시간 차이가 있었다 할지라도 한 모델이 두 화장품 광고에 등장한다는 것 역시 납득하기 힘들다. 2006년 오휘의 대표 얼굴이었던 김태희는 불과 6개월 후 헤라 광고에 등장했는데, 직접 경쟁이 되는 품목이라면 시간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타사 제품광고엔 등장하지 않는 것이 예의 아닐까. 오늘은 이 제품이 좋다고 열심히 홍보하다가 내일은 저 제품이 좋다고 선전한다는 것은 아무리 한국광고가 연예인 잔치라 하더라도 기본적인 게임의 룰을 지키지 않는 한심한 수준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 주는 예라 하겠다.

   

김태희를 일상인으로 묘사한 광고가 많은 까닭은?

이상에서 살펴 본 것처럼 근래 3년간 가장 활발히 광고모델로 등장했던 김태희의 광고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우리네의 유명인을 활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이기도 하지만, 제품과의 관련성 없이 김태희의 예쁜 얼굴과 앙증맞은 표정, 똑똑하다는 이미지로 모든 내용을 커버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모든 광고가 김태희 개인기 광고로 전락하고 있다. 심지어는 주, 종이 전도되어 김태희를 광고해주는 뱀파이어 이펙트(vampire effect)까지 발생하고 있다. 헤라, 오휘, 클라쎄 김치냉장고와 비타민 에어컨, 비씨 카드, 그리고 광동 옥수수수염차 등의 광고에서 이런 정황은 더욱 두드러진다.

둘째는 재미있는 현상인데, 김태희란 이름을 직접 들먹이면서 연예인보다는 일상인으로서의 김태희를 부각시키려는 시도가 무척 많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똑똑한 김태희의 천재적 카드 생활(비씨 카드)’, ‘김태희가 넘어갔다, 강동원의 선물 바나나에…(싸이언 아이디어)’, ‘김태희는 백마 탄 왕자가 필요했고…, 김태희의 굴욕(마티즈)’, ‘김태희 내숭떨지마(올림푸스 뮤)’, ‘날 때부터 V라인인 그녀, V라인이 한 사람만의 특권이어서는 안된다. 김태희와 경쟁하라(광동 옥수수수염차)’, ‘2005년 어느 봄날 김태희가 아이리버 사무실을 찾아왔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태희,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아이리버)’, ‘제가 김태희 친구거든요. 태희가 요즘 그렇게 노래를 불러대더라구요… 나는 에쓰오일 에쓰오일…(에쓰오일)’ 등에서 보이듯이 마치 일상 생활에서 김태희를 마주친 것처럼 김태희를 포지셔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선 김태희가 드라마나 영화로 부상한 스타가 아닌 관계로, 그러한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형성된 이미지가 없는 까닭이다. 가령 김태희가 커피 프린스와 같은 드라마에서 떴더라면 광고에서도 드라마의 역할 이미지를 끌어 왔을 것이다. 다시 말해 김태희는 광고모델로 태어나고 광고모델로 단련되어 가는 광고스타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연예인이 아닌 일상인 김태희의 이미지를 십분 활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적극적으로 실명을 거명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김태희의 예쁜 얼굴과 똑똑할 것 같다는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기 위한 전략이다. 요약하면 김태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자산, 즉 예쁜 얼굴과 똑똑한 이미지를 무기로 한국 광고계를 평정하고 있는 셈이다.

스타제조 공장은 멈추지 않는다

쉼 없이 돌아가야 하는 스타제조공장에서 한국 광고계는 쉽게 말하면 이효리를 이을 히트 상품 김태희를 내놓았다. 2003년 근 일 년 동안 이효리를 띄우기 위해 스포츠 신문들이 연일 그녀에 대한 기사로 지면을 도배했던 것은 특출난 스타가 없던 그 시대의 답답함을 잘 반영한 사건이었다. 이후 이효리가 이영애를 잇는 광고모델로 한동안의 영화를 누렸고 여전히 누리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같은 상황이라면 김태희를 이어받을 만한 누군가를 또 찾아내야 할 것이고, 그 누군가를 찾기 위해 모든 연예 기획사들이 대박을 꿈꾸며 제조 공장을 돌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스타는 전문 광고모델이라는 희한한 직업으로 한 시대를 호령하면서 부와 명성을 거머쥐게 될 것이다.

김태희는 흡인력이 있다. 예쁜 얼굴과 학벌에 우호적인 이 사회에서 그녀는 다른 길을 걸었더라도 남보다 보이지 않는 혜택을 더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전공이었던 의상디자인을 살려 패션 디자이너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직장에 취직해 남자직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는 앵커가 되어 밤 9시 뉴스에 등장해 똑똑하고 예쁜 앵커의 계보를 형성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광고스타를 택했다. 아직 그녀에게 연기자라는 타이틀을 달아 주는 데는 모두가 주저한다. 그녀는 물신의 화신으로서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서 살인 미소를 보여 주기를 요구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도 언젠가는 늙을 것이다. 늘 새로운 인물탐색에 안테나를 곤두세우고 있는 광고계에서 언제라도 단물이 빠지면 팽개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제의가 들어오면 가리지 않고 겹치기 광고출연을 마다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본인과 한국 광고계 모두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