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Players | ‘가로수 길이 뭔데 난리야’ 내놓은 TBWA코리아 박웅현 ECD, 이예훈 부장

현상을 넘어 인간과 시대정신을 읽습니다

송은아 기자
사진 : 한지유

 

광고회사가 책을 내놓았다. 그런데, 광고 기획이나 제작, 마케팅에 관한 책이 아니다. 지금 서울에서 가장 트렌디한 가로수길이 주제다. 가로수길이 지금 왜 인기가 있는지, 이러한 인기의 저변에 놓인 것은 무엇인지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내용이다. “광고는 시대의 거울이라고들 얘기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광고만 거울이 아니었다. 가로수길도 거울이었다.”는 말로 책의 시작을 설명하는 TBWA코리아의 박웅현 ECD, 이예훈 부장을 만났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히로인 제인 마플. 평생동안 영국의 조그만 마을 세인트 메어리 미드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지만, 어떤 어려운 사건사고도 해결하는 명탐정이다. 사람들의 조그만 행동도 예사롭게 보지 않고 주변의 어떤 변화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 그녀는, 그러한 관찰에서 얻은 통찰력으로 유사한 심성에서 빚어진 유사한 범죄를 조곤조곤 논리적으로 풀어낸다. 윤준호 선생이 지난 달 ‘카피와 아이디어를 위한 메타포’에서 “카피는 콜롬보도 선생이다.”라고 했거니와, 사소한 일로부터 인간 본성을 파악하는 미스 마플 역시 훌륭한 광고인일 터. “광고가 하는 일은…사물이나 현상을 들여다보고 그 속을 꿰뚫고 있는 무엇을 찾아내는 일”이라는 박웅현 TBWA코리아 ECD의 말은 미스 마플과 많이 닮아 있지 않은가? 여기, 눈 밝은 박웅현 ECD와 이예훈 TBWA 부장, TBWA 주니어 보드 12명이 함께 만든 책 한 권이 있다. 남들에게는 그저 거쳐 가는 길, 세련되게 먹고 마시고 소비하는 공간쯤으로 여겨질 장소에서 ‘시대정신’을 밝혀낸 책이다. 제목은 ‘가로수길이 뭔데 난리야?’.

“TBWA코리아가 가로수길 초입으로 이사한 게 3년 전인데, 그 땐 정말 아무 것도 없었어요. 꽃집, 찻집이 하나씩 있었나? 그런데 그 3년 사이에 굉장히 많은 숍들이 생겼다 사라지고 독특한 가게들이 늘어났어요. 사람들도 몰리기 시작했고요. 그런 부분이 재미있게 여겨졌어요. 지금 트렌드나 현상을 전달하는 책들은 많잖아요. 현상 이면에 흐르는 원리, 시대 흐름을 읽어보자 했죠.”

그들의 눈에 비친 가로수길은 ‘로망’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로망’이고, 그러한 꿈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사람들에게서 또 다른 꿈을 끌어낸다는 점에서 ‘로망’이다. 이 ‘로망’의 거리는 곧 우리 시대가 개개인의 다양한 니즈와 욕망에 솔직해졌음을 증언한다. 8, 90년대 청담동을 풍미했던 ‘과시의 욕망’과는 전혀 다른 노선이다.

“가로수 길에서 소비되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 문화에요. 이곳의 커피 값은 ‘커피 한 잔’과 등가 교환되지 않고, 꽃값도 꽃 몇 송이로 단순히 치환되지 않죠. 예를 들어, 80년대 청담의 로데오거리는 당시 꿈의 나라 미국을 복제한 거라고 할 수 있어요. 부자가 되고 싶었고, 로데오나 비버리힐스에서 폼나는 인생을 구가하고 싶었던 거죠.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어요. 많은 사람들이 해외여 을 다니면서 유럽 같은 곳으로 시야를 넓혔고, 노천카페 등을 즐길 수 있게 됐어요. 인생의 가치도 성공 지향에서 삶의 여유와 자아실현으로 바뀌었어요.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나를 위한 삶을 추구하게 된 거죠. 왜 우리는 이런 문화가 없을까, 왜 우리는 이런 삶이 없을까, 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지금 가로수길에 모여 있어요.”

이렇게 간단치 않은 콘텐츠는 더 녹록하지 않은 디자인으로 책의 꼴을 갖췄다. 디자이너는 바로 백종열 감독. 광고에서 자주 선보인 그의 손글씨도 친숙하지만, ‘큰 글자들의 공격성과 작은 글자들의 불친절, 의미 없음의 생략’과 같은 특유의 불편함도 여전하다. “책이라는 존재에 ‘읽기’와 ‘보기’ 두 가지가 공존한다면, 이 책은 후자와 결혼했다.”는 백감독의 말은, 사회현상에 대한 분석을 담았지만 그릇은 광고적이고 싶었던 저자들의 소망과 맞닿아 있다.

“제목 짓기가 참 어려웠어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가로수길을 모르는 사람도 염두에 둬야 하는 게 아니냐, 가로수길이 뭔데 난리냐 하는 사람들도 많을 거다…라는 말이 튀어나왔어요. 표지는 가로수길 사진이 나오는 게 정석이겠죠. 하지만 더 재미있게 가는 게 맞는 거 같았어요. 이 정신 없는 표지는 ‘난리’에 초점을 맞췄을 뿐 아니라 제목의 가벼움을 상쇄시켜 주고 있죠.”

출판사는 이 책을 놓고 예상 판매부수도 못 잡겠고, 서점의 인문·사회 분야에 놓아야 할지, 비소설에 둬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단다. 처음 보는 카테고리의 책이라는 게 그들의 이야기였다고. 책을 읽어줬으면 하는 사람들의 스펙트럼도 트렌드를 공부하는 사람들로부터 마케터, 문화비평가, 책 만드는 사람들, 광고인들까지 폭넓다. 특히 광고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이유라면, 광고가 바로 통찰력의 직업이기 때문. 오늘 가로수길을 응시하는 이들의 눈은 가로수길이 아니라 그 너머 인간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바, 광고인들이 미스 마플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인간을 따뜻하게 신뢰하려 한다는 사실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