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 광고와 대중문화 / 사례 ⑤ 가이코(GEICO)의 케이브맨(Caveman) 시리즈

광고의 인기, 드라마로 이어질 것인가?

유현재 / 루이지애나 주립대 광고학과 교수

영화나 드라마 등의 인기가 높아지면 그 콘텐츠가 광고에 활용되는 것이 이제까지의 정석이었다. 출연배우나 포맷, 유행어 등이 광고에 전격 활용됨으로써 비교적 빠른 시간에 소비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그 방향이 정반대로 바뀐 사례가 미국에서 발생하고 있다. 광고에서의 높은 인기를 발판으로 광고의 주제와 등장인물, 사용됐던 아이디어들까지 그대로 옮겨져 전국 네트워크의 시트콤으로 제작되는 사례가 탄생한 것이다. 바로 2005년 하반기에 시작되어 아직도 절찬리에 방영되고 있는 자동차 보험회사 가이코(Geico)의 광고시리즈 ‘케이브맨(Caveman)’이 그것이다.

올해로 무려 3년째 똑같은 주인공들과 엇비슷한 카피로 TV전파를 타고 있지만 그 인기는 변함이 없다. 케이브맨 시리즈의 슬로건은 “너무 쉬워서 원시인도 할 수 있다!(So easy, acaveman can do it!)”이다. 가이코가 여타의 자동차 보험회사들에 비해 저렴하다는 사실은 소문으로 알면서도 막상 바꾸기를 이래저래 미루던 사람들에게 “너무나 쉬우니 바로 행동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광고의 마지막 장면에는 딱 15분만 투자해서 인터넷이나 전화를 하면, 최소 15%의 보험료가 줄어들 것이라는 약속이 내레이션과 함께 전해진다. 이 ‘너무너무 쉽다’는 광고 콘셉트는 버지니아에 위치한 작은 광고회사 마틴 에이전시(Martin Agency)의 카피라이터 조 로손(Joe Lawson)에 의해 발전되었으며, 그가 만든 케이브맨 시리즈의 모든 에피소드가 놀라운 인기를 끌고 있다.

광고를 보고 기분이 나빠진 원시인들을 만나 “아직도 살아계신 줄 몰랐다.”며 애써 저녁을 대접하는 광고주들을 소재로 한 ‘레스토랑’편, 계속되는 광고의 방영으로 정신쇠약에 걸린 한 원시인이 상담의사를 만나 신세한탄을 한다는 줄거리의 광고, 아무리 항의해도 방영이 계속되자 결국 TV 대담프로그램에 원시인들이 직접 출연해 전국민을 상대로 가이코 광고의 부당함을 알리는 광고 등이 모두 인기순위 상위에 올랐다.

케이브맨 시리즈가 첫 전파를 탄 이후 약 3년이 지난 지금, 광고의 큰 인기와 더불어 가이코는 자동차 보험업계의 대표 브랜드로 급부상하였고, 광고를 제작한 마틴 에이전시는 지난 18개월 동안 무려 7억 달러에 달하는 신규 광고물량을 수주함으로써 업계의 엄청난 화제를 만들고 있다.

광고의 인기 끌고 가기 위해 광고 제작 스태프들 대거 참여시켜

이 같은 획기적인 성공은 이제 해당 광고가 또 다른 대중문화장르인 시트콤으로 옮아가는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다. 미국의 간판 네트워크 ABC가 가이코의 케이브맨 광고시리즈를 시트콤으로 제작, 올해 가을부터 방영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ABC는 이미 일부 에피소드의 제작에 착수했으며, 빠르면 9월부터 한 회당 30분 분량의 시트콤 ‘케이브맨(Caveman)’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공식 발표하였다. 더욱 특별한 것은 광고를 만들었던 스태프들이 시트콤의 제작에 다수 투입된다는 사실이다. 케이브맨 광고 시리즈의 아이디어와 카피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진 카피라이터 조 로손(Joe Lawson)과, 감독이었던 조시 고든(Josh Gordon) 등이 아이디어 개발에서부터 최종제작, 방영까지 전 과정에 걸쳐 참여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언론들은 이번 케이브맨 시리즈의 시트콤 제작을 단순한 연예계 화젯거리로 여기지 않고 대중문화의 장르 이동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의 마이클 로슨월드(Michael Rosenwald)는 가이코의 원시인 시리즈는 보험이라는 상품 및 보험광고에 대한 일반의 다소 부정적인 인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광고에서 창조된 캐릭터와 스토리가 시트콤에서 재창조됨으로써 청중들은 전혀 새로운 문화적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시트콤에 대한 다소 비관적인 예측 또한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즈의 조엘 스타인(Joel Stein)은 시트콤의 많은 콘텐츠들이 이미 사람들에게 많이 노출되어 있어 식상하며, 어쩌면 광고에서 보여준 아이디어를 그대로 모방하는 수준에 머무를지도 모른다는 시각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는 광고산업 측면에서는 대단히 의미있는 시도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광고가 시트콤으로 제작되는 사건은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PPL(Product Placement)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 즉, 기존의 PPL이 가지고 있던 약점인 크리에이티브 콘트롤(Creative Control)의 부재가 말끔히 해결될 수 있는 독특한 마케팅 수단이라는 것이다. 정해진 프로그램에 상품이나 광고가 수동적으로 끼워 맞춰지던 PPL에 비해, 시트콤은 제작자들에 의해 가장 적절한 상황이 창조되어 상품이나 광고의 효과가 배가될 수 있다는 말이다.

진화된 PPL, 시트콤 활용한 전략수립 가능해져

케이브맨 시리즈가 광고가 여타의 대중문화 장르로 옮아간 최초의 사례는 아니다. ABC는 지난 1987년 ‘맥스 헤드룸(Max Headroom)’이라는 시트콤을 TV광고 캐릭터를 활용해 제작했으나 흥행에 크게 실패하였고, 경쟁 네크워크인 CBS 또한 2002년 ‘말하는 인형’이라는 광고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시트콤 ‘베이비 밥(Baby Bob)’을 제작했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광고가 시트콤이 아닌 또 다른 대중문화의 영역으로 전이되어 성공을 거둔 사례는 존재한다. 한 예로 버거킹 TV광고의 ‘임금 인형’ 시리즈는 높은 인기를 얻으면서 게임 소프트웨어로 제작, 많은 유소년 게이머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광고에 등장했던 가분수 인형모자를 쓴 임금 캐릭터가 종횡무진 활약하는 게임이 만들어진 것이다. 광고에 활용되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간단한 게임CD를 만들어 프로모션에 활용하는 경우는 가끔 있었지만, 본격적인 게임 캐릭터로 만들어 독립적인 사업으로 발전시킨 사례는 버거킹이 최초였다.

대중문화에서 콘텐츠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젠 콘텐츠의 탁월함과 대중적 인기에 대한 가능성만 확인되면, 그 순서야 어쨌든 장르간의 활용과 차용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시대가 도래했다. 여타의 대중문화에서 만들어진 콘텐츠들이 광고에 소극적으로 활용되던 오래된 원칙이 무너지고, 이제는 경계도, 정해진 순서도 의미 없는 전면 교류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사실 하드웨어인 미디어들의 경계가 이미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콘텐츠의 경계와 순서를 논하는 것 자체가 이미 고루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광고, 영화, 게임, 소설, 음악 등 이제 우리들 인간이 누리는 모든 대중문화의 장르에서 독자의 영역을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일 듯하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기발한 상상력, 결과물로 얻어지는 대중적 인기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대접받게 될 것이다. 광고인들에게는 무한한 기회이자 크나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