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광고의 성공젼략 | 모토로라

세계에 팔리는 한국 크리에이티브의 힘

송은아 기자

2004년 정우성이라는 빅모델을 기용해 한국에 집행한 뒤 햇수로 2년. 모토로라는 세계적으로 히트한 레이저의 한국 론칭과 함께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광고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그 중 레이저 라임, 모토 뷰, 크레이저로 이어지는 이 광고들의 특징은 외국에서 만든 광고 같지만 사실은 로컬 광고라는 점. 크레이저 광고는 한국에서의 호평에 힘입어 일본, 홍콩, 중국 등지에서 글로벌 제작 광고를 제치고 방영되기에 이른다. 모토로라의 한국 광고를 제작한 오길비&매더 코리아로부터 광고 제작의 뒷이야기들을 들어본다.

칸느나 클리오와 같은 세계 유수의 광고제를 다녀온 한국 광고인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엇갈린다. 하나는 왜 우리는 저렇게 상 받는 광고를 못 받는가, 이고, 또 다른 하나는 어차피 다른 문화니까 서구 중심의 광고제에 기대할 바 없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간에 서구 광고에 대해 강력히 의식을 하고 있으며, 광고비 규모에 걸맞지 않는, 광고의 ‘주변국가’로 한국을 자리매김했다는 사실이 느껴지는 언술(言述)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한국 광고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도 많고, 한국에서 제작되었지만 아시아 태평양 지역이나 글로벌로 방영범위를 넓혀가는 광고도 많다.

오길비&매더 코리아가 제작하는 모토로라의 광고도 그렇다. 모토로라가 제작해 방영 중인 크레이저 광고는 일본, 홍콩, 중국 등의 지역에서 방영하기로 최근 결정됐다. TBWA시카고가 제작한 글로벌 광고를 제친 것이다. 오길비&매더 코리아의 제작광고는 현재 글로벌 집행도 타진 중이다.

“기본적으로 글로벌 브랜드들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전 세계적으로 관리하기 때문에 광고 콘셉트나 표현이 글로벌 본부에서 내려오죠. 거기다 글로벌 본부는 이미 큰 시장에서 성공이 입증된 캠페인들을 로컬에서 방영하길 원해요. 그래서 글로벌 광고 캠프에서 만든 작품에 한글을 입혀 내보내라고 왔는데 우리 입장에선 이게 로컬에서 효과가 있을 내용이 아닌 거예요. 그 광고의 아이디어가 나쁘다는게 아니라, 시장에 따라 ‘먹히는’ 아이디어가 다르잖아요.”

그래서 광고주 설득작업에 들어갔다는 것이 홍성수 오길비&매더 코리아 기획 부장의 말. ‘한국 소비자에게는 한국에서 만든 광고여야 한다.’는 이들의 의견을 모토로라 코리아 쪽에서 흔쾌히 받아줬고, 이렇게 만든 로컬 작품이 이번 해외진출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해외로 진출한 이 작품은 오길비&매더 코리아가 올해 세 번째로 제작한 모토로라 로컬 광고였다.

로컬 광고 제작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정우성을 기용한 2004년의 광고 이후 몇 년 간, 모토로라는 자체제작한 광고 없이 해외에서 제작된 광고들을 가져다 한글 등을 삽입한 뒤 그대로 틀었다. 전기(??機)는 모토로라가 신상품 레이저(RAZR)를 한국에 도입하면서 찾아왔다. 레이저는 모토로라가 몇 년 간의 부진을 씻고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주도권을 탈환하기 위해 내놓은 전략 상품. 모토로라 측은 잘 빠진 미녀가 끙끙거리며 간신히 스키니 진을 입은 뒤 핑크 레이저를 뒷주머니에 가볍게 찔러 넣는 모습으로 레이저의 얇고 멋진 디자인을 소구한 글로벌 광고를 가져왔다. 모토로라의 한국 광고회사 오길비&매더 코리아가 눈독을 들인 건 뒤에 이어질 라임 레이저광고였다.

삶에 밀착된 스타일리시한 휴대폰, 모토로라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휴대폰 시장은 세계의 다른 어느 나라의 시장보다 더 격렬한 전쟁터다. IT, 모바일의 선진국 한국, 6개월마다 휴대폰을 갈아치우는 까다로운 소비자들, 한 달에도 몇 종씩 새로운 휴대폰을 내놓는 업체들. 더군다나 이 시장은 기술 우위와 빅 모델들로 기선을 잡은 삼성의 애니콜, 디자인에 무게 중심을 놓은 싸이언, 마니아 군단을 이끄는 스카이 등 군웅(群雄)이 할거하고 있는 곳이다.

“모토로라 글로벌에서 레이저를 내놓으면서 제시한 브랜드 콘셉트는 두 가지였어요. ‘영웅으로서의 휴대폰 (Phone as a Hero)’과 ‘디자인 테크놀로지(Design Technology)’죠. 그런데, 한국에서 기술 콘셉트를 갖고 애니콜이랑 붙기도 힘들고, 결국 디자인인데 그 자리도 싸이언과 스카이가 이미 들어서 있는 곳이잖아요? 우리가 디자인만으로 이야기를 할 순 없었어요. 한발 더 나아가야 했죠. 사람들의 삶 속에 디자인이 어떻게 녹아들어가 있는가. 레이저의 강력한 디자인 요소가 어떻게 삶 속에서 변주되느냐. 어떻게 삶을 스타일리시하게 바꾸느냐···.”

이종규 CD의 말에는 이 공략하기 어려운 시장에 대한 고민이 듬뿍 묻어난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라임 레이저의 광고는 스타일리시한 삶을 꿈꾸는 사람들, 다른 누구보다도 주목받기 원하는 사람들이 바로 라임 레이저의 소유자라는 콘셉트를 저변에 깔았다. 배경은 집행 시점인 8월을 염두에 둔 수영장. 섹시한 검은 수영복을 입은 여자가 뭇 남성들의 시선을 공공연히 즐기며 수영장을 거니는데,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여자가 라임 레이저로 앞선 여자의 수영복 끈을 끊고 라임 레이저를 비키니에 꼽은 채 사라진다는 내용이다. 면도날(Razor)이라는 제품의 이름, 시선을 독점하고 싶어 하는 패셔니스트들의 인사이트, 슬림하다는 제품 특징까지 모조리 녹아 있는 이 광고는 케이블에서 방영된 뒤 인기를 얻어 지상파에서도 집행되었다.

라임 레이저 광고의 성공은 오길비&매더 모토로라 광고팀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후속 작품은 모토 뷰 광고. 모토 뷰는 모토로라가 내놓은 첫 DMB 휴대폰이었다. 모토로라에서는 휴대폰에서 TV가 나온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 했지만 한국 시장에서는 빛을 못 볼 콘셉트였다. 결국, 모토 뷰 역시 ‘스타일리시한 DMB폰’으로 포지셔닝되었다. 광고의 주인공은 외출을 하려던 젊은 남자. 그는 거울을 보며 뭔가 불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갸웃하더니, 걸쳤던 셔츠를 벗고 시계니 목걸이니 액세서리를 풀고 급기야는 머리마저 밀어버린다. DMB폰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얇고, 깔끔한 외관을 지녔다는 모토 뷰의 메타포였다.

한국에서 제작된 크레이저 광고, 일본, 홍콩 등지로 수출

모토로라 코리아는 11월, 전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둔 레이저의 후속작을 내놓게 된다. 사실 레이저는 새로운 휴대폰을 경쟁적으로 시장에 쏟아 붓는 우리나라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005년 여름 론칭한 이후 모토로라는 2006년 후반기까지 레이저를 꾸준히 시장에 내놓았다. 장수의 힘은 제품의 완성도와 ‘컬러마케팅’. 모토로라는 은색과 검은색 일색의 휴대폰 시장에 핑크 레이저를 내놓으며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고, 그 후속으로 내놓은 라임 레이저도 세간의 호평을 받았다. 여성 타깃을 고려한 핑크 레이저, 여름이라는 시즌을 생각한 라임 레이저까지, 모토로라의 시장 점유율 자체는 크지 않아도 제품별 점유율에서는 레이저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런 레이저의 후속작이라는 명패를 달고 나온 제품이 바로 크레이저다. 레이저보다 폭이 작으면서 기능은 상대적으로 많이 첨가된 제품으로, 모토로라 글로벌측에서 제시한 제품의 콘셉트는 ‘반사(Reflection)’였다. 반짝반짝 빛나는 강화유리라는 제품 소재의 독특성을 반영한 콘셉트다. 글로벌 광고 역시 데칼코마니같이 똑같이 만들어지는 영상을 통해 사물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할 수 있는 제품의 소재를 예술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만든 광고는 달랐다. 강렬하게 반사된 빛에 깜짝깜짝 놀라고 심지어 넘어지는 사람들이 잇따라 나오는 화면, 알고 보니 그 빛이 크레이저에서 반사된 것이었다는 줄거리다. 여성 타깃, 크리스마스라는 시즌을 겨냥한 크레이저 파이어의 광고에서는 반사되는 빛이 붉은 색으로, 크레이저를 사용하는 사람이 여자로 바뀌었고, 그 빛을 피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좀 더 과장되어 있다.

이제까지 한국에서 만든 모토로라 로컬 광고들의 평은 대체로 하나로 좁혀진다. 한국에서 만든 광고 같지 않다, 굉장히 세련되면서도 소위 말하는 스타일이 살아있다는 의견이 그것이다. ‘그렇게(외국에서 만든 것처럼) 보이게 만든 광고’라는 게 이종규CD의 말이다.

“다른 글로벌 브랜드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가 로컬에서 재량껏할 수 있는 부분들이 무척 적어요. 대부분 지역 본부의 확인을 받아야 하죠. 거기다 한국에서 진행되는 광고라고 해도, 일종의 내부 비딩을 거쳐야 합니다. 아시아 태평양 사무소 전체에서 광고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서로 경쟁하게 되거든요. 그러니 소위 말하는 ‘한국적인 분위기’가 들어갈 수가 없어요. 아이디어만의 싸움이 벌어지죠. 문제는 글로벌 브랜드라는 아이덴티티를 살리면서 한국, 더 나아가 아시아인들의 인사이트를 꿰뚫는 표현을 끌어내는 데 있어요. 각국의 오길비&매더 사무소들과 살벌한 경쟁 끝에 우리가 계속 우리 안(案)을 지켜왔다는데 자부심을 느낍니다.”

‘한국인에게는 한국 광고’ 믿어준 광고주가 성공의 견인차

정상수 오길비&매더 코리아상무는 ‘식상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이라며 오길비&매더 코리아를 신뢰해준 모토로라 코리아측에 감사를 표시한다.

“사실 모토로라가 광고물량을 대거 집행하거나 입소문을 일으킬 만한 처지가 못돼요. 한국 업체들의 아성도 워낙 강하고요. 그러나 레이저라는 좋은 제품을 들여오면서 한국인의 정서에 보다 맞는 광고를 제작해야 한다는 광고회사에게 힘을 실어준 결과가 지금의 성과를 얻었다고 봐요. 광고주가 밀어주지 않는데, 우리가 광고를 만들어야 한다는 욕심을 부리진 못했겠죠.”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번 모토로라 광고들이 이룬 성취는 빅모델 일색의 한국 광고계에서, 정해진 글로벌 콘셉트를 따라야 하는 크리에이티브의 제약 속에서 한국에 맞는 광고를 탐색하려고 애썼다는 점, 한국인에게 맞는 광고가 목표였으면서 결국 세계인도 공감할 수 있는 광고를 만들었다는 점이 아닐까.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우리가 이제껏 외면해온 그 영역이 우리 앞으로 성큼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