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브랜드와의 대화 | 에이스 침대

43년의 ‘침대과학’ 에이스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김동욱 기자

 

에이스 침대 침대에 대한 니즈 자체가 없던 시절 에이스의 도전은 시작되었다.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캠페인을 통해 침대를 일반가구와 분리시키며 침대 전문 브랜드로서 입지를 다졌고, 이후 젊은 감각과 세련된 이미지를 브랜드에 부여하기 위한 감성적인 캠페인 전략을 시도하기도 했으며, ‘침대과학’을 ‘생명과학’으로 확장시켜 브랜드 가치의 제고를 꾀하기도 했다.

1963년 대한민국. 그저 등을 대고 누울 수 있는 따뜻한 방 한 칸과 이불만 있으면 충분했던 시기에 에이스침대는 설립되었다. 1963년은 당시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가 민정당 윤보선 후보를 간발의 차이로 누르고 제 5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제 3공화국의 첫 장을 장식한 해이며, 삼양식품이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들여와 국내 최초 라면인 10원짜리 ‘치킨라면’을 생산한 해이기도 하다. 최소한의 의식주마저 충분하게 해결되지 못한 상황에서 침대라는, 그 당시로는 생소한 제품을 생산하겠다는 에이스침대의 도전은 일견 무모해 보일 정도이다.

비록 1963년에 회사 문을 열기는 했지만 에이스라는 브랜드가 정립되기 시작한 것은 약 30여 년이 지난, 1992년을 전후한 시기였다. 당시는 국민들의 생활수준 향상과 더불어 삶의 모든 면에서 서구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침대 시장 역시 그 흐름을 따라 본격적으로 성장기에 진입하기 시작했는데, 종합가구회사들이 앞다투어 침대 시장에 진출하여 경쟁이 치열해졌다. 이들은 장롱, 서랍장 등과 침대를 일괄적으로 판매하여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고자 했는데, 이 때문에 에이스침대는 소비자 인식 속에 가구와 침대를 분리시키는 한편, 침대 전문 브랜드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할 필요가 있었다.

에이스침대는 1992년 에이스침대공학연구소를 설립하여 ‘침대의 과학화’를 위한 토대를 만들었으며, 동시에 1993년,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캠페인을 통해 침대 전문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사실 1998년에서 1991년까지 집행된 일련의 광고들은 에이스실리라는 브랜드명을 사용하고 있으며 세계적 침대회사 실리와의 기술 제휴를 부각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에이스침대만의 브랜드와 기술적인 독자성을 어필하지 못하고 있었다.

‘침대는과학’ 메시지로 전문브랜드 입지 다져

반면, ‘다음 중 가구가 아닌 것은?’이라는 시험 문제에 한 초등학생이 ‘침대’라고 답했다는 일화는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캠페인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는 말은 우리의 기대에서 벗어나며 상식을 깨뜨린다. “침대가 가구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호기심을 가지고 광고를 지켜보던 소비자들은 이어지는 ‘과학입니다’라는 카피를 보고 이 비상식적인 광고카피에 수긍하게 된다. 세계 최초의 침대연구소, 국내최대 규모의 매트리스 공장 등 실제로 과학적인 침대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을 광고를 통해 충분히 보여줌으로써 국민들의 암묵적인 동의를 얻어낸 것이다. 소비자들이 ‘침대는 과학’이라는 에이스침대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이 광고카피가 인구에 회자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며 위와 같은 일화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캠페인으로 인해 에이스침대의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진 것은 물론, 실제 판매도 급신장했다. 에이스침대 내부 자료에 의하면, 캠페인 이후 매출이 30% 가까이 신장했으며 시장점유율 역시 13.3%에서 28.8%로 15%P 이상 증가하며 침대시장의 리딩 브랜드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캠페인은 침대의 기능성에 대한 구매 관여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앞서 말했듯이 당시에는 다수의 종합가구회사들이 경쟁적으로 침대시장에 뛰어들어 일반 가구와 침대를 일괄적으로 판매하는 경향이 강했다. 소비자들도 구매의 편의성과 인테리어 효과 등을 이유로 일괄 구매를 택하곤 했다. 하지만 이 광고 이후, 소비자들은 침대는 일반적인 가구와 달리 인체에 맞게 과학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으며, 침대를 가구와 일괄적으로 구매하는 행태에 변화를 주었다.

젊은 모델과 감각적 영상 통해 오래된 이미지 극복 노려

2000년에 들어서는 에이스침대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침대과학’이라는 브랜드 자산 위에 젊은 이미지를 덧 입히기 위한 전략이 시도되었다. 대부분의 장수 브랜드들이 그러하듯 에이스침대 역시 오래된 브랜드라는 이미지는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했다. 에이스침대의 기술적인 우수성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았지만 브랜드의 전통적인 이미지, 그리고 일반 종합가구 브랜드들의 심플한 디자인에 비해 비교적 투박하고 튼튼한 인상은 주요 소비자군인 젊은 부부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침대는 길게 보면 10년 이상 사용하는 제품이기 때문에 결혼을 해 새롭게 가정을 꾸리는 신혼부부들은 놓쳐서는 안되는 타깃이다.

그래서 이 시기 광고들은 그동안 효과를 본 ‘침대과학’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제시하는 대신 감성적인 접근법을 시도했다. 모델도 기존의 이정길, 박상원 등 신뢰감을 주는 모델들에서 탈피, 최지우와 김성택이라는 젊은 연예인을 기용하였다. 먼저, 2001년에는 ‘밥이 보약’이라는 말을 패러디한 ‘잠이 보약입니다’ 편을 선보였다. 광고는 제품에 대한 직접적인 소구 없이 침대에서 그야말로 달게 자고 있는 모델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이 광고를 통해 침대라는 제품이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하는 ‘편안함’을 표현함으로써 이미지를 선점하는 한편, 건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한 시기임을 감안, ‘에이스=건강’이라는 등식을 성립시키고자 했다.

다음에 이어진 ‘Change the morning’ 캠페인에서는 침대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광고의 배경 역시 침대에 어울리는 밤이 아니라 하루가 시작되는 이른 아침이다. 3편의 광고는 각각 가벼운 발걸음으로 누구보다 가장 먼저 출근하는 남자, 휘트니스센터에서 아침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남자, 이른 아침 공항에서 상쾌하게 탑승을 준비하는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카피는 “몸에 투자하십시오. 아침이 바뀝니다.” 에이스침대를 사용함으로써 잠자리가 편안해지고, 따라서 당신의 아침이 바뀔 수 있다는 내용의 이 광고는 ‘침대과학’이라는 단어를 굳이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에이스침대의 기술력이 주는 편안함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 광고들은 뉴욕페스티벌 TV부문과 스위스 국제광고제 TV부문 파이널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침대과학’은 ‘생명과학’ 브랜드 가치 확장 꾀해

2004년, 이효리를 내세운 광고들은 젊은 타깃들에게 어필하려는 시도와 함께 한동안 사라졌던 ‘침대과학’이라는 단어를 다시 살려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침대는 과학’이라는 기존의 카피를 반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침대를 위한 과학은 곧 ‘생명을 위한 과학’이라며 가치를 확장시키고 있다. 침대과학을 지고의 가치인 생명과 연결시킴으로써 그 중요성을 다시한번 강조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반면, 2005년에 집행된 ‘빌보드’ 편은 독특한 분위기와 특수효과의 활용 때문에 눈길을 끌었는데, 모두 잠든 저녁, 빌보드 광고 속 두 남녀가 하늘을 날아다니다가 다시 돌아온다는 설정의 이 광고는 ‘에이스를 꿈꾸다, 침대 그 이상’이라는 카피를 통해 프리미엄 침대 브랜드로서의 가치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동시에 기존의 침대 광고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감각적인 영상과 특수효과로 인해 브랜드에 젊고 세련된 이미지를 부여하고자 했다.

에이스침대는 TV광고를 중심으로 한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본 기업 중의 하나이다. 물론 제품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총 매출의 10% 이상을 마케팅 비용으로 꾸준히 지출하면서 2000년이후 시장점유율이 한 번도 30%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만큼의 실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에이스침대가 진행한 일련의 캠페인들은 메시지의 일관성이라는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일관된 메시지 부족 지속적인 캠페인 전략 있어야

에이스침대라는 브랜드가 정립되기 시작한 1992년 이후, 1993년의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캠페인부터 ‘잠이 보약입니다’, ‘Change the morning’을 거쳐, ‘침대과학은 생명과학입니다’와 최근의 ‘에이스를 꿈꾸다, 침대 그 이상’까지 각각의 광고 캠페인들은 나름의 이유와 명분을 가지고 이루어졌지만 하나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작년 11월 집행된 ‘기술’ 편에서는 다시 90년대 이전의 사실적 소구 광고로 회귀하려는 모습까지 보인다. 그때그때 시류에 맞게 혹은 광고주의 의중에 따라 캠페인의 방향이 이러저리 흔들리는 것보다 일관된 메시지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집행되는 캠페인이 효과적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3천억 원에서 3천6백억 원 정도로 추정되는 침대시장은 국내 경기 침체에 따른 건설 투자의 급감, 그로 인한 전체적인 가구 시장의 침체 등과 맞물려 성장세가 극히 저조하다. 출산과 혼인의 감소 역시 침대 시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이미 국내 가구당 침대 보급률이 68%에 달하고 있어 침대시장은 이제 전형적인 포화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에이스침대도 지속적인 캠페인을 준비하고 실행할 때이다. 마케팅을 위한 비용을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 생각이라면 가장 효율적으로, 효과적인 방법을 통해 지출해야 할지 않을까?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캠페인 이후 소비자의 기억 속에 남을 캠페인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지난 44년간 침대만을 만들며 결국 국내 침대 브랜드 1위에 올라 선 에이스침대만의 끈기와 고집이 광고 캠페인에도 발휘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