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a box | 임신/출산/유아시장의 이해 및 전망

“특별한 내 아이에게 최고의 것을”

서선화 과장, 유지혜 대리 / 시노베이트 코리아 정성 조사 전문팀

300만원짜리 유모차, 9만원이 넘는 명품 아동복. 눈이 휘둥그레 질 정도로 비싼 제품들이지만 구입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예상 외로 많다. 이런 임신/출산/유아 제품들은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임산부와 엄마들의 관심은 어느 시장의 소비자들보다 뜨겁다. 출산율 저하와 여성의 사회 참여 증가, 가족의 의미 제고와 웰빙 열풍 등의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와 함께 고급화, 기능성화, 체험 위주의 제품 가치를 우선시하는 소비패턴의 영향으로 임신/출산/육아 시장 규모는 당분간 더욱 커질 전망이다.

얼마 전 300만원짜리 유모차를 한정 수입 판매했던 한 업체는 스스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워낙 고가인 탓에 제대로 판매할 수 있을지 우려가 앞섰는데, 막상 판매를 시작하자 이를 찾는 고객이 예상 외로 많았던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생소한 은나노 기술을 접목한 유아용 이불세트가 적지 않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팔리고 있었다. 임신/출산/유아 용품은 제품 특성상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상품들이다. 그러나 출산을 전후한 임산부들의 관심은 그 어떤 시장의 소비자들보다 뜨겁고, 그들의 니즈를 반영한 시장의 움직임 역시 여느 시장보다 빠르다. 이번 호에는 임신/출산/유아용품 관련 시장을 좌우하는 라이프 스타일의 경향은 어떠하며, 그러한 경향으로 인해 시장의 상품과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살펴 보도록 하겠다.

가장 먼저 출산율 저하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매년 출생하는 신생아 수는 1970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50만명 수준이며, 2003년 기준으로 평균 1.19명이다. 즉, 한명의 여자가 가임기간 중에 1명이 조금 넘는(?) 아이를 낳는다는 말이다. 이와 함께 핵가족화는 더욱 가속화될 예정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 3.1명이었던 평균 가족수는 2010년에는 2.9명, 2020년에는 2.7명으로 계속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가구당 식구수는 감소하고 자녀는 한명으로 보편화되고 있다. 따라서 이들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상대적 소득은 높아지고, 하나뿐인 자식에게 투자할 수 있는 경제적, 심적 여유가 더 많아지게 된 것이다.

출산율 저하, 웰빙 경향 등이 시장 키워

두 번째로,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고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율이 높아지는 점도 임신/출산/유아용품 시장의 변화에 기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직장에서 일하는 엄마들은 상대적으로 자녀의 양육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박탈감과 함께 죄책감을 종종 느낀다고 한다. 이런 경우, 자녀에게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는 죄책감을 다른 방식으로라도 보상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지기 마련이다. 이런 욕구를 가장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좋은 상품을 적절히 아이에게 구입해 주는 것이다.

세 번째로 IMF 이후 두드러진 가족의 의미 제고와 가족으로의 회귀 현상을 들 수 있다. IMF는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많은 이들에게 고통스런 경험이었다. 이 시기에 평생 직장 개념이 깨지면서 아빠들은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가족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지금 출산을 전후한 세대는 개인주의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1990년대에 사춘기를 경험한 소위 X세대라고 불리던 세대이고, 또한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에 IMF를 겪은 세대이다. 즉, 사춘기에 개인주의를 배웠고, IMF로 인해 가족의 의미가 재평가되는 시기를 거치면서, 국가나 사회나 조직이 아닌 ‘나와 내 가족의 소중함’을 일찍이 깨달은 세대인 것이다. 최근 육아 휴직의 증가는 제도적 보완 장치의 미비에 기인하는 바도 있지만, 분명 가족과 양육의 가치를 중시하는 경향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말부터 불기 시작한 웰빙 혹은 삶의 질 추구 또한 빼 놓을 수 없다. 자신의 삶의 질, 즉 웰빙(Well-being)을 추구하는 부모들이 자녀들에게는 웰본(Well-born)의 환경을 마련해주고 싶은 욕구를 가지게 된다.

위와 같은 경향은 비교적 최근의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러며 앞으로도 별로 변할 것 같지 않은 한국 엄마들의 특성 즉, 뜨거운 교육열로 종종 나타나는 자식을 향한 희생정신도 임신/출산/유아상품과 관련하여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출산을 전후한 엄마들의 소비패턴을 한마디로 요약 하자면, 가치 중심적 소비 즉, 개인의 감성적 효용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서의 소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값이면 양이 많은 것’이라던가 ‘비슷해 보이면 싼 것’이라는 식의 소비는 이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특히 아이들을 위한 제품일 때는 더욱 그렇다. 이 제품이 나에게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 아이에게 어떤 가치를 얼마나 제공해 줄 수 있는가가 소비에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나의 아이는 특별하다’는 것을 누누이 학습 받아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임신/출산/유아용품에 있어서 가치 중심적인 소비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가?

가장 쉽게 ‘고급화, 프리미엄화’를 들 수 있다. ‘이왕이면 싼 것’이 아니라, 일단 비싼 것을 사주고 싶은 것이 요즘 임산부와 엄마들의 마음이다. 300만원짜리 유모차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한명뿐인 자녀에게 최고의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이 한국형 ‘소황제’ 현상을 가속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일동후디스의 산양 분유는 보통 분유의 4배가격이다. 그러나 그렇게 큰 가격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일정 정도는 그 가격 차이 때문에, 산양 분유의 매출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일반 분유 시장이 침체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는 더욱 두드러진 다. 유아복 시장 역시 명품 브랜드, 백화점 브랜드의 매출은 계속 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버버리칠드런에서 9만원이 넘는 니트를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것이 요즘 엄마들이다. 저렴한 가격의 제품을 구입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경제적인 효용은 고가의 제품을 구입해 줌으로써 임산부나 엄마들이 느끼게 되는 감성적 만족감에 비하면 미미한 것이다.

고급화, 기능성화, 체험 위주의 소비경향 두드러져

한편에서는 기능성 제품들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실 기업 입장에서 기능성 제품들은 다른 경쟁 업체와의 차별화를 위한 마케팅 전략이겠지만, 엄마들에게는 더욱 완벽하게 출산과 양육을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이다. 다시 말해 꼼꼼하고 완벽한 엄마가 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법인 것이다. 임신/출산과 관련하여 소소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완벽한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은 엄마들의 이런 심리 때문에 기능성 제품들의 인기는 더욱 높아진다.

예컨대 요즘 모유 수유의 중요성이 다시 대두되면서 모유 수유를 돕는 상품들도 많이 출시되고 있다. 사실 예전에는 모유의 가장 큰 장점이 경제적인 이익이었지만, 최근에는 분유 구입 못지않게 모유 수유에 투자하고 있는 실정이다. 모유 생성 유도기를 이용하는가 하면, 수십만원 대의 유축기도 필수 출산 준비용품으로 여겨진다. 최근 아토피 발생률의 증가는 유아용 기능성 제품의 시장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은나노, 유기농, 자일리톨, 은행나무나 한방 소재 등을 이용하여 바이러스나 세균의 살균 효과, 열 흡수 효과, 곰팡이 제거 효과 등을 강조한 옷과 이불이 출시되었고, 스킨케어 제품 역시 저마다의 기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부모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감안하여 아이와 함께 운동을 하거나 인라인 스케이트를 탈 수 있도록 고안된 세바퀴 유모차나, 아기 전용 비데 역시 이러한 기능성 제품의 예이다.

세 번째로 감성적 가치를 중시하는 임산부들을 위해 감성적 체험을 제공하거나 극대화하는 상품과 서비스가 많이 마련되고 있다. 요즘 임산부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대학병원이나 대형 병원에서 출산을 맞이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고, 동네산부인과에서 출산하려는 임산부들은 점점 줄고 있다고 한다. 임산부들에게 출산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경험이고 이벤트이다. 따라서 출산의 기쁨을 극대화하기 위해 더 좋은 시설과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곳을 찾고 싶은 마음이 강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러한 임산부들의 욕구에 맞춰 한 대형 산부 인과는 200억원을 들여 리모델링을 했고 그 결과, 거주 지역을 망라하여 임산부들이 이 병원으로 몰리고 있다고 한다. 출산의 순간을 위한 준비는 그 이전부터 시작된다. 임신의 경험을 오래 기억하려는 임산부들은 임산부 전용 스튜디오로 향한다. 예전에는 불쑥 나온 배를 드러내기가 여간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지만, 요즘 임산부들은 그것을 크게 개의치 않거나 오히려 자랑스러워 한다. 건강한 아기의 출산을 원하 는 임산부들을 위한 요가, 산전 체조 강좌도 인기다. 모두 출산을 전후한 경험의 감성적 효용을 높이기 위해 마련된 상품들이다.

임산부와 엄마들에게 있어 임신/출산/양육은 관심 분야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녀의 수가 줄고,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임신/출산/양육에 대한 관심도 역시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도 관련 시장의 규모가 계속 확대될 예정이라고 한다. 임신/출산/유아용품 시장은 감성적 가치의 효용에 기반해 소비하려고 하는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추어 앞으로도 당분간 고급화, 기능성화, 체험 위주 경향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