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Rating Research | 시청률 바로보기 Ⅴ

시청률을 통한 사회 변화 읽기

배진아 / MBC 편성국 객원연구위원, 공주대 영상광정보공학부 교수

시청률은 어떤 사람들이 어떤 채널의 어떤 프로그램을 얼마나 많이 시청하는지에 관하여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는 매우 소중한 자료이다. 단순히 특정 프로그램의 시청량에 관한 정보뿐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그 프로그램을 시청했는지, 같은 시간대에 방송된 다른 채널의 프로그램과 비교했을 때 전체 시청자 가운데 몇 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는지 등등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이 가능한 매우 풍부한 정보들을 담고 있다. 이러한 정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방송사에서는 편성 전략을, 광고주들은 텔레비전 광고 계획을 수립한다. 뿐만 아니라 시청률 자료는 국내 시청자들의 텔레비전 시청의 전반적인 경향을 읽어내고 이를 통해서 방송 문화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데 활용되기도 한다. 그동안 연재했던 글들을 통해서 ‘방송사의 시청률 활용’과 ‘광고주들의 시청률 활용’에 대해서 살펴보았으며, ‘시청률을 통한 시청 패턴 읽기’에 대해서 구체적인 시청률 수치를 적용하여 자세히 짚어 보았다. 시청률 자료는 이외에도 사회의 전반적인 흐름이나 변화의 양상 등을 설명하는 데에 유용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즉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텔레비전은 어떤 의미인지, 우리들이 현재 공감대를 형성하고 감동을 공유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과거와 현재의 문화적 코드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등등을 시청률 자료를 토대로 추론하거나 예측해볼 수 있는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바로 이러한 ‘시청률을 통한 사회 변화 읽기’ 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지상파 방송의 시청점유율 변화

시청률 수치를 통해서 사회의 변화를 읽어내려 한다면 당연히 장기적으로 누적된 시청률 자료를 분석해야 할 것이다. 국내에서 시청률조사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시점을 대략 1992년으로 보고, 1992년 이후의 시청률자료를 토대로 사회의 변화 양상을 살펴보겠다.

먼저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 3사의 시청점유율 변화를 통해서 국내 방송 환경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국내방송환경은 1995년 케이블 방송 시작과 2001년의 위성방송 도입으로 채널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큰 변화를 겪었다. 이러한 변화는 지상파 방송의 시청점유율 변화 추이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그림은 지상파 방송 3사의 4개 채널이 차지하는 시청점유율이 지난 1992년 부터 최근까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1995년 케이블 방송이 시작되기 이전까지는 지상파 방송의 시청점유율이 100%에 가까웠지만, 2000년을 기점으로 지상파 방송사의 시청점유율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시청점유율의 하락은 1995년 케이블방송이 시작된 시점부터 서서히 시작되었겠지만, 2000년 이전까지는 많은 케이블 채널들이 시청률 조사에 합류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청률 계산에서 누락되어 그림에는 반영되지 못하였다. 어쨌든 지상파 방송 3사가 전체 텔레비전 시청량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던 10여년 전과 달리 2004년 현재에는 지상파 이외의 기타 채널이 차지하는 시청점유율이 26.1%에 달하고 있다. 이는 다채널 방송 환경하에서 시청자들의 관심과 시청 습관이 점차 다양해지고 전문화해 가고 있는 경향이 시청률 자료에도 어느정도 반영된 결과라 하겠다.

그런데 여기에서 반드시 생각해보아야 할 점은, 시청률 분석에서 기타로 분류되고 있는 케이블 및 위성채널의 수가 수십여개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즉 수십여개 채널의 시청률을 전부 합친 것이 지상파 방송 4개 채널의 시청률의 3분의 1이 채 안되는 것이다. 결국 전체 시청률에서 지상파 방송사가 차지하는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전반적인 텔레비전 시청행태는 지상파 방송에 크게 집중 되어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향후 이러한 변화는 오랜 기간 동안 장기적으로 지속되면서 텔레비전은 아주 서서히 대중매체에서 전문화된 매체 내지는 개인화된 매체로 진화해 갈 것으로 예측해 볼 수 있겠다.

텔레비전 시청자 구성의 변화

개인시청률 자료를 활용하여 장기적인 변화 양상을 살펴보면 텔레비전 시청자의 구성이 전반적으로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확인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향후 어떠한 방향으로 변화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다. 그림은 성별, 연령대별로 시청자 집단을 분류하여 각 집단의 개인시청률 수치의 변화 양상을 연도별로 표시해 놓은 것이다. 그림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것은 50세 이상 여자 집단의 개인 시청률 변화이다. 1992년 29%이던 50대 이상 여성의 개인시청률은 이후 꾸준히 증가하여 2004년 38%로 무려 10% 가까이 높아졌다. 이와는 반대의 의미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집단은 20대 여성이다. 20대 여성의 개인시청률은 1992년 21%대이던 것이 2004년에는 12%대로 크게 낮아진 것을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연령대에서도 전반적으로 20, 30대의 젊은층의 시청량은 줄어드는 반면 40, 50대 장노년층의 시청량은 늘어나는 경향이 발견된다. 젊은이들의 경우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매체로 적극적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장·노년층에게는 텔레비전이 여가를 활용하는 매체로 오히려 점점 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가 장기적으로 지속된다면 사회 전반적인 고령인구 증가 추세와 맞물리면서 텔레비전 시청자의 연령대가 점진적으로 높아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청자의 고령화 추세는 새로운 미디어의 지속적인 도입, 확산과 더불어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인기 프로그램의 변화

살펴본 바와 같이 채널 전체에 대한 전반적인 시청률 변화라든가, 텔레비전 시청자 구성의 변화 등은 텔레비전 시청이 큰 맥락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텔레비전이 여가 활동으로서 우리 사회의 구성원에게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를 폭넓게 설명해 준다. 더 나아가 시청률 자료를 근거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문화적 코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를 확인코자한다면, 각 연도별로 시청률 상위 프로그램의 목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면상의 한계로 인하여 1992년 이후 각 연도별 시청률 상위 프로그램 목록을 전부 다 제시할 수는 없지만, 다음에서는 다양한 사례들을 언급하면서 인기 프로그램의 변천 과정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한다면 대략 어느 정도의 시청률 수치를 기준으로 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요인들이 고려되어야 하겠지만, 대략 평균 시청률이 30% 이상이라면 크게 인기를 끈 프로그램으로 분류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최근에 시청률 면에서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되는 <대장금>(MBC)의 경우 2004년 시청률 평균이 52.0%이었으며, <파리의 연인>(SBS)은 41.4%이었다. 1992년 이후 시청률 30% 이상을 기록한 프로그램을 연도별로 찾아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발견된다. 시청률 30% 이상을 기록한 프로그램의 숫자가 해를 거듭하면서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1992년에 시청률 30% 이상을 기록했던 프로그램이 43편이었으며 1993년과 1994년에는 각각 41편, 38편이었던 것에 비해 2002년에는 8편, 2003년과 2004년에는 각각 7편에 불과하 다. 그나마 2004년의 경우 7편의 프로그램 중 축구중계와 1회성 특집프로그램을 제외하면 3편밖에 남지 않으며, 이러한 현상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눈에 띄게 나타난다. 이처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프로그램이 점차 줄어 들고 있는 현상은, 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같은 시간에 묶어두는 텔레비전의 대중적 기능의 중요성이 조금씩 미약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케이블, 위성 등 채널의 증가로 인하여 텔레비전 시청자들이 분산되고 있으며, 인터넷의 확산이나 다양한 취미 활동의 증대로 남는 시간을 그저 텔레비전 앞에서 보내는 여가활용 방식이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인기를 누렸던 프로그램의 유형을 연도별로 살펴보면, 1992년, 1993년도에는 <PD수첩>(MBC, 1992년, 31.7%)이나 <긴급진단>(SBS, 1993, 42.1%)등과 같이 시사성 높은 기획 및 특집물이 인기 프로그램 목록에서 눈에 띈다. 반면 1994년 이후에는 시사 프로그램이 시청률 30% 이상을 기록하는 사례를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다. 사회전반적인 분위기가 시사나 정치 문제로부터 점차 멀어지면서, 텔레비전의 이용도 다소 무겁고 사회 고발적인 프로그램보다는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드라마나 버라이어티쇼 프로그램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990년대 중반의 인기 프로그램 목록을 살펴보면 <판관포청천>(KBS2, 1995년, 43.3%)과 같은 외화시리즈물이나, <터미네이터>(KBS2, 1996, 36.1%), <나홀로 집에>(MBC, 1996년, 34.6%), <다이하드>(KBS2, 1997년, 38.5%) 등의 영화 프로그램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1998년 이후에는 영화나 외화시리즈가 3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사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비디오나 DVD가 대중화되고 케이블 등의 영화 채널이 등장하면서 더 이상 지상파 방송에서 제공하는 영화나 외화시리즈가 큰 매력을 갖지 못하게 된 것이다. 또한 방송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국내 드라마 제작에 대규모의 자본과 수준 높은 인력이 투입되어 높은 경쟁력을 갖게 되면서, 더 이상 외화시리즈물이나 영화가 많은 사람들의 여가 시간을 붙잡아두는 장르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드라마 장르는 1992년 이래 높은 시청률 수치를 기록하면서 최근까지 꾸준히 인기 프로그램 장르로 기록되고 있다. 시기별 특징을 살펴보면 1990년대 초반에는 <MBC 베스트극장>(MBC, 1992년, 33.7%)이나 <제3 공화국>(MBC, 1993년, 34.3%), <신년특집극 남과여>(MBC, 1994년, 36.7%) 등 단막극이 높은 인기를 누린 반면,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젊은이의 양지>(KBS2, 1995년, 34.0%), <바람은 불어도>(KBS1, 1996년, 48.7%), <목욕탕집 남자들>(KBS2, 1996년, 40.1%), <첫사랑>(KBS2, 1997년, 51.5%), <정때문에>(KBS1, 1997년, 38.1%), <보고 또 보고>(MBC, 1998년 43.0%)와 같은 일일드라마 내지는 주말드라마가 높은 시청률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작가, PD, 탤런트 등 인적 하부구조나 자본 등의 차원에서 드라마 제작을 위한 여건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한 1990년대 초에는 참신한 기획으로 경쟁력을 갖는 단막극이 인기를 누린 반면,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평범한 서민들의 일상을 잔잔하게 그려가면서 시청자들과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일드라마나 주말드라마가 인기를 누려온 것이다. 이러한 1990년대의 경향과 달리 2000년대 이후에는 대규모의 자본이 투입된 역사드라마나, 스타배우를 전면에 내세우는 미니시리즈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 수치를 기록하는 경향을 보인다. <허준>(MBC, 2000년, 54.2%), <태조왕건>(KBS1, 2001년, 40.3%), <야인시대>(SBS, 2002년, 37.1%), <올인>(SBS, 2003년, 36.2%), <대장금>(MBC, 2004년, 52.0%), <파리의 연인>(SBS, 2004년, 41.4%), <천국의 계단>(SBS, 2004년, 35.1%) 등이 그 사례이다.

이러한 인기드라마의 변화는 드라마를 제작하는 방송 산업의 여건에 의해서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텔레비전 이용과 관련한 우리 사회의 정서적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1990년대 초반에 드라마는 오락장르이기에 앞서 일종의 문학적인 의미를 지니는 서사 장르로서 원작 소설 등을 단막극으로 각색하여 제작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시청자들도 이러한 형식의 드라마에 크게 호응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다가 매일 혹은 매주 같은 패턴으로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습관이 형성되는 등 텔레비전이 우리 일상 생활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매우 친숙한 매체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와 더불어 우리 이웃들의 평범한 삶을 그리는 일일드라마나 주말드라마가 사람들의 일상의 한 부분으로 편입되면서 높은 인기를 누리게 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또한 최근 들어 일일드라마나 주말드라마의 시청률수치가 다소 낮아지는 대신 대규모의 자본이 투입된 대형사극이나 블록버스터 드라마들이 시청률 상위권을 대신하고 있는 것은, 영화 등을 통해서 눈이 높아진 시청자들의 욕구 가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시청자들은 이제 텔레비전에 대해서도 스케일이 큰 볼거리를 제공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텔레비전을 통해서 그러한 욕구가 충족되지 못할 경우 미련없이 다른 매체로 떠나 버리고 말 것이다.

epilogue

시청률 수치가 단순히 사회적인 취향이나 감수성의 변화만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방송산업의 여건이나 다른 매체의 확산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시청률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률 자료의 장기적 변화 추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양한 관점의 사회적 의미 부여와 해석의 가능성이 무한히 열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청률 자료를 토대로 편성 전략이나 광고 집행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연구가 수없이 많이 이루어 졌던 것에 비해, 시청률의 사회적 의미를 해석하는 작업은 많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앞으로 시청률을 통해서 사회를 읽어내려는 시도가 더욱 많이 이루어져, 시청률 자료가 좀 더 폭넓게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