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 Centric Thinking | 에스티 로더

“난 내 이름이 빛나는 것을 보고 싶었다” - 에스티 로더

박정훈 / 마케팅팀장

들어가는 글

2004년도에 영면한 유명인사들이 한둘은 아니지만 마케터 입장에서 눈에 띈 사람은 단연코 에스티 로더였다. 지난 해 4월 24일 심장 및 폐기능 장애로 뉴욕 맨하튼 자택에서 97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는데, 특별히 그녀를 주목한 이유는 단순히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의 창업주였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의 이름 자체가 로레알과 더불어 전 세계 화장품 시장을 실질적으로 양분하고 있는 ‘에스티 로더’ 브랜드이며 그녀의 인생 자체가 ‘에스티 로더’라는 기업의 역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비록 1995년에 자기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는 했으나, 1946년 창업 이후, 아니 그 이전부터 시작해 경영일선에서 물러날 때까지 그녀가 보여준 모습들은 추후 마케팅 및 브랜드 관리에 있어서 교과서적인 전형이 되었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녀는 마케팅 교과서가 제대로 씌여지기 전에 그 자신이 몸으로 마케팅 교과서를 썼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 1998년 에스 티 로더를 20세기 경영 천재 20인 가운데 유일한 여성으로 선정한 바있다.

국내에서도 너무 많은 수입 화장품들이 군웅할거하고 있는 관계로 잘 언급되고 있지 않지만 에스티 로더는 매출관점에서 수입화장품 1위 기업이다. 물론 거기에는‘에스티 로더’ 브랜드 만이 아닌 ‘아라미스’, ‘클리니크’, ‘오리진스’, ‘맥’, ‘라메르’, ‘바비 브라운’, ‘토미 힐피거’, ‘스틸라’ 등 에스티 로더가 보유한 16개 의 다양한 다른 유명 화장품 브랜드 매출이 집계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로레알 또한 전 세계적으로 500개에 달하는 브랜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지적은 별스럽게 들리지 않는다. 도리어 100조 원에 달하는 전 세계 화장품 시장에서 1위부터 4위까지 차례로 포진한 로레알, P&G, 유니레버, 시세이도가 모두 진출한 한국 시장에서 매출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대단한 성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에스티 로더가, 미국에서 줄곧 경쟁자였던 헬레나 루빈스타인이나 엘리자베스 아덴보다도 최소 20여년 늦게, 그것도 가내 수공업형태로 화장품 사업에 뛰어 들었으며, 회사 설립 또한 50년 이상 늦게 시작한 상황에서 이룬 성과라는 점, 그리고 그 성과는 철저한 브랜드 관리에서 기인했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에스티 로더의 성공 요인

에스티 로더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1953년 ‘유스 듀’라는 목욕오일용 향수를 출시하고 나서부터이다. 1946년 남편과 공동으로 회사를 설립하여 크림팩, 클린싱오일, 스킨로션으로 본격적인 사업을 한 지 7년 만의 일이었다. 그 뒤 출시한 향수 품목은 1985년에 출시된 ‘Beautiful’, 1995년에 출시된 ‘Pleasure’가 미국내 역대 판매1~2위를 차지할 정도로 성공적이어서 에스티 로더를 대표하는 캐쉬 박스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였다.

그러나 진정 에스티 로더를 마켓리더로 자리매김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품목은 에스티 로더가 자랑하는 스테디 셀러 ‘어드밴스드 나이트 리페어’와 같은 기능성 화장품 라인이나 기초 화장품 라인들이어서, 색조 화장품 라인에 상대적으로 더 신경을 썼던 레브론 같은 대다수의 경쟁사보다 제품 본연의 의미에 충실했던 마케팅 전략이 중요한 성공 요인이었다는 지적은 흥미롭기까지 한다.

따라서 광고에서 보여지는 여성도 현대적인 모습의 여성을 묘사하는 경쟁사와 좀 다르게 우아하고 도도한, 그렇지만 쉽게 다가 갈 수 있는 지적이고 다소 고전적인 느낌의 여성상을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즉 본래 화장품이 갖고 있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려고 마케팅 차원에서 노력한 것이 시장에서 경쟁력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어디까지나 총론적인 이야기이고 각론적인 차원에서는 타경쟁사 보다 총체적인 브랜드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것을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한 마디로 기업을 경영하는데 있어서 브랜드 중심적인 사고로 의사결정을 한 것이 가장 우월한 경쟁력이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탁월한 브랜드 네임의 선택, 패키지 디자인의 혁신, 유통 경로 차별화를 통한 브랜드 이미지 구축, 브랜드 체험을 통한 고객 관계 구축이 바로 그것이다.

1. 브랜드 네임의 개명(改名)

통상 미국의 대다수 화장품 혹은 패션 브랜드들이 그렇듯이 에스티 로더는 사람 이름이면서, 회사명, 그리고 상품을 지칭하는 네임이다. 브랜드 고유의 식별 기능에 충실하고 자 하는 서구적인 문화 속에서 브랜드 네임은 애당초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에스티 로더의 행동은 이런 상식에서 벗어났다. 에스티 로더의 이름이 처음부터 에스터 로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에스티 로더의 결혼 후 공식 이름은 조세핀 에스터 로터 였다. 그녀가 바라는 대로 자기 자신의 이름이 빛나는 것을 보기에는 이름이 너무 길었고 또 발음하기도 어려웠으며, 어떤 느낌도 주지도 못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 자신의 이름과 성을 바꾸었다. 그녀의 중간 이름인 에스터(Esthe) 와 자기 어릴 적 별명인 에스티(Esty)를 가지고 이리 저리 조합해보다가 결국 두 번째 ‘e’에 액센트를 준 Estee로 결정을 하였고, 결혼 이후 성이 된 로터(Lauter) 를 로더(Lauder)로 바꿨다.

결과는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에스티 로더는 독특하면서도 발음하기 쉽고, 기억하기도 쉬웠다. 또한 이것은 분명히 여성적이었고, 모호한 유럽 스타일의 발음이었다. 여성적이고 세계적인 것, 이것이 바로 에스티 로더가 자기 제품과 이름에 부여하고자 했던 컨셉트였던 것이다.

2. 패키지 디자인의 혁신

1940년대 후반 화장품 시장의 가능성을 본 에스티 로더는 어떻게 하면 고급 미용제품을 개척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브랜드 이미지를 고급화하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제일 먼저 행한 작업은 패키지 쇄신이었다. 그 당시 화장품 용기는 유리 용기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것을 에스티 로더는 “너무 의학적이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녀는 ‘순순한 매력’을 팔기 위해서는 치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경쟁사 제품의 패키지와, 통상 화장을 하는 장소인 화장실 인테리어를 주의 깊게 관찰하였다. 그것을 바탕으로 에스티 로더는 순수하고 시원한 터키석 색깔의 용기를 새로 내놓았다.

그녀는 이 색이 호화로우면서도 화장실 카운터나 약품선반에 올려놓았을 때 우아하게 보인다고 확신을 했으며, 여성들은 못생긴 단지 같은 것이나 화장실 장식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용기에 담긴 화장품은 절대 사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녀는 고객들이 자기의 제품으로 자랑스럽게 (화장실을) 장식하길 바란 것이다. 이 기념비적인 컬러는 결국 “에스티 로더 블루”로 유명 해졌고, 반세기가 훨씬 넘은 지금도 회사 최고의 브랜드 인 에스티 로더 제품군을 포장할 때 사용되고 있다.

3. 유통 경로의 차별화

에스티 로더는 자신의 제품이 어디서 팔리느냐, 그리고 소비자들이 그녀의 화장품을 어떤 장소에서 만나느냐가 브랜드의 미래와 회사의 장기적 비전을 결정할 거라고 믿었다. 따라서 계속해서 고급 이미지를 지향해 온 에스티 로더로서는 약국, 슈퍼마켓과 초저가 상점은 애초부터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설사 그런 유통 라인에 관심이 있었더라도 그런 판로를 개척하는데 필수적인 대규모 자금 동원력이 에스티 로더에게는 처음부터 없었다. 또한 에스티 로더는 메이크업 경험이 별로 없는 여성들에게 접근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화장품만 판매하는 미용 상점 같은 판로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손수 화장하기를 선호하는 이들을 타겟으로 삼았기 때문에 엘리자베스 아덴이나 헬레나 루빈스타인 같은 살롱 유통 방식도 피했다. 대신 삭스 피프스 애브뉴(Saks Fifth Avenue), 니만 마커스, 블루 밍데일, 그리고 마셜 필드 등 당시 최고급 백화점 입점에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 에스티 로더는 다수의 중류층과 부유한 고객들, 즉 세련되고 우아한 고가 제품들을 살 능력이 충분한 고객들과 접하길 원했다는 점. 둘째, 교통이 편리한 장소 즉, 소비자들이 제품을 ‘충동적’으로 구매하기 쉬운 장소를 바랬다는 점. 셋째, 여성들에게 한번 화장을 해주고 상품에 대한 반응이 어떠한지를 직접 점검하기 편리한, 다시 말해 현장 구매가 활발한 장소를 판로로 선호했다는 점, 마지막으로 신용 카드 서비스가 없던 시절에 구매가 좀 더 용이하게 이루어 질 수 있는 신용 판매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판로는 고급 백화점이 유일했다는 점이 고려된 것이었다. 즉 향후 시장 성장 가능성과 고급 이미지 구축을 위해 경쟁사들이 전혀 신경을 쓰지 않던 소수의 고급 백화점을 유통경로로 주력했던 것이다.

4. 샘플링를 통한 브랜드 체험 강조

사실 에스티 로더는 자기 회사 설립 이전에 그 당시 화장품 전문가로 꽤 알려져 있던 외삼촌 스코츠 박사 회사의 일을 오랫동안 도왔다. 외삼촌이 제조한 제품의 판매를 주로 담당하였는데, 주 판매 방식은 초창기 많은 화장품 업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화장품 주 소비처였고 고객들이 많이 모여 있는 미용실을 직접 방문해 일일이 제품 시연을 보이고 물건을 파는 직접 판매 방식이었다. 에스티 로더는 여기서 아주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어쩌면 나중에 70~80세가 되어서도 열성적으로 직접 판매현장을 뛰어다니던 그녀의 모습은 이 당시 이미 예고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녀는 아주 뛰어난 화장품 세일즈맨이었는데, 그 과정에 서 그녀는 무료샘플 배포와 그로 인한 소비자구전 효과의 중요성을 경험적으로 학습하게 된다.

따라서 회사 설립 이후에도 마케팅에 있어서 무료 샘플 배포를 중시하였는데, 지금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 프로모 션 기법이 당시에는 ‘사업을 말아먹을 행위’로 규정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혁신적인 프로모션 정책이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한 일화가 있다.

1950년대 초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광고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어 광고비로 5만불이라는, 에스티 로더 입장에서는 비교적 큰 액수(?)를 설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찾아갔던 BBDO에게 퇴짜를 맞은 적이 있었다. 그 당시 경쟁사라고 할 수 있던 레블론의 광고, 판촉, 판매 모든 비용 이 총 2천 2백만 달러나 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퇴짜는 당연한 것이었지만 에스티 로더는 이에 분노하고 광고 예산 전부를 무료 샘플 배포에 쏟아붓기로 결정하였다.

백화점 중심의 될 성 싶은 고객들에게 집중적으로 시행한 이 대규모 무료 샘플 행사는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고, 무료 샘플 배포가 고객과 브랜드 간의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데 효과적인 도구라는 사실을 입증한 역사적인 첫 사례가 된 것이다. 그 이후 화장품 업계에서 고객의 체험을 강조하는 이 무료 샘플 배포 행사가 아주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마케팅 도구로 자리잡은 사실은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나오는 글

이상을 요약하면 에스티 로더는 과학적인 브랜드 관리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던 시절에 브랜드 관리의 중요성을 경험적으로 인식하고 그에 상응하는 의사결정을 했었다는 데에 그 위대성이 있다고 하겠다. 뿐만 아니라 무료 샘플 배포나 백화점 중심의 유통 정책에서 볼 수 있듯이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걸어감으로써 의식적이든 아니든 간에 경쟁자와 차별화하는데 성공을 했고 결국에는 이것이 오늘 날 파워브랜드로 자리 매김하는데 결정적 성공 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실행적 차원의 각론적인 성공 요인들도 따지고 보면 앞서 잠깐 지적한 화장품에 대한 에스티 로더의 인식, 즉 여자를 아름답게 해주는 화장품 본연의 의미와 기능을 인식하고 제품 품질이라는 기본을 강조하는 정신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즉, 사업에 대한 철학, 브랜드에 대한 원칙, 고객에 대한 인식 등 기본 충실이 브랜드 중심 사고의 첫걸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