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Ⅰ | 기업, 문화의 창조자로 거듭나다 - 문화마케팅

스폰서십을 넘어서는 문화마케팅 고도화 전략

심상민 / 성신여대 문화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ssmin@sungshin.ac.kr

문화의 세기인 21세기를 맞아, 각 기업들은 '문화'를 적극적인 마케팅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기업의 문화마케팅 활동은 문화판촉, 문화지원(Sponsorship), 문화연출, 문화기업, 문화후광 등으로 세분화할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그 뜻이 문화지원으로 축소돼 사용되어 온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자신의 브랜드 이미지에 부합하는 문화코드를 찾아, 그 콘텐츠를 활용한 다양한 문화마케팅을 실시하는 기업의 수가 늘고 있다. 생산하는 제품과 서비스 속에 '문화적 인센티브'를 더하기 위한 효과적이고 구체적인 전략들을 모색하고, 단순 지원에서 문화의 생성자이자 주체자로 문화마케팅의 범위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청담동은 죽었다고 봐요!" 대한민국 최신 유행 1번지 청담동이 혹평을 받곤 한다. 외국인이 찾아 갈 만한 식당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는 지적이다. 서울에 왔으면 한국다운 뭔가를 흠뻑 느낄 수 있는 멋진 신천지를 찾게 마련인데, 청담동에 가보면 어설픈 양식과 퓨전만 가득할 뿐이라는 얘기다. 덩달아 청담동 화랑가도 싸잡아 꼬집게 된다. 한국다운 아트 컨셉트가 살아 있는가? 이쯤 해서 반론이 나올 수 있다. 우리에겐 인사동, 북촌, 삼청동이 있지 않느냐고. 리움도 있고 아트선재센터, 아라리오도 있다고. 좋다. 문화마케팅 차원으로 집중해서 정리해보자.

우선 이미지 통합이라는 요소를 꼭 봐야 한다. 기업에게 CI(Corporate Identity)가 있듯이 한 지역과 사회의 품격에도 이미지가 통합되는 문화적 정체성이 생명이다. 소니가 '소니다움'을 찾아서 숱한 시행착오를 겪은 것처럼 문화마케팅 주체가 되는 개인 · 기업 · 국가도 '나다움'을 찾아 구도의 순례를 떠나야 한다. 이미지 통합 면에서 볼 때 청담동은 겉만 화려한 비문화로 난개발 되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둘째로 문화 소격효과라는 게 있다. 소격은 무언가로부터 소외되고 격리됨을 말한다. 본래 독일의 저명한 작가 브레히트(Bertolt Brecht)가 말한 예술의 본질로서 '낯설게 하기'에서 따온 개념이다. 문화로부터 소외되고 격리되는 것은 언뜻 보면 문화마케팅과는 상반되는 듯 보인다. 문화를 가까이 하는 게 문화마케팅이라고 알고 있는데 소격이라니? 그런데 실제로 한국의 문화마케팅이 보여주는 최대 특징이 문화를 후원할 뿐 스스로 문화 속으로 동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 문화 소격효과를 이해할 수 있다. 스폰서십만 있지 자기 스타일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다보니 청담동을 갔을 때 한국 하면 떠오르는 기업이 보이지 않을 수밖에. 북촌, 인사동, 삼청동에도 삼성, LG, 현대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삼성, LG, 현대는 "청담동, 북촌에 우리 브랜드가 부각되어 있으면 이상하잖아. 더구나 디지털 첨단 이미지인데"라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니 스폰서로만 남게 되는 꼴이다. 상상해보자. 청담동 컨템퍼러리에 현대나 포스코가 개입하면 더 많은 이야깃거리가 된다. 북촌, 인사동 한옥에서 삼성과 LG가 테크노댄스를 추면 참으로 신통해 보일 수밖에 없다. 이게 바로 문화 소격효과다.

낯설게 함으로써 더욱 당기게 만드는 것. 이런 마술은 단순한 문화예술 후원만으로는 꿈도 못 꾼다. 문화 속으로 들어가는 창조적인 문화마케팅으로만 추구할 수 있는 성취다.

하나 : 스폰서십을 넘어서서

문화마케팅이라는 개념은 대체로 문화콘텐츠를 활용하여 홍보나 광고 등 커뮤니케이션 효과를 얻으려는 일반 기업의 관점에서 발달되어 왔다. 일반 기업이라 함은 문화마케팅의 소재인 문화콘텐츠 관련 비즈니스를 주업으로 하지 않는, 이른바 콘텐츠 외계에 속하는 기업을 뜻한다. 때문에 문화콘텐츠를 타자의 차원에서 대상으로 바라보는 일반 기업의 문화마케팅은 철저하게 기업의 의도와 목적에 부합하는 발상과 전략 프로그램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예컨대 기업이 주체가 되는 관점에서 문화를 후원하거나 제품에 반영하여 판매한다든지 하는 차원에서 문화마케팅을 분류하고 분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문화마케팅 관련 연구와 사회적 논의들도 대부분 기업 메세나 활동과 같은 기업의 문화, 예술 활용 마케팅을 대상으로 한 경우였다. 여기에 문화마케팅의 함정이 있다. 기업의 생각으로 문화를 보게 되면 자연히 돕는다거나 후원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창조적인 지평으로 치닫기가 어려워진다. 스폰서십을 넘어 서는 창조적인 문화마케팅은 우선 기업 문화마케팅의 고도화를 달성할 때만 가능하다.

기업이 하는 문화마케팅의 가장 낮은 차원은 문화판촉(Sales)이다. 문화를 광고 · 판촉 수단으로 활용하는 형태다. 그 다음이 문화지원(Sponsorship)으로서 자사를 홍보하거나 이미지를 개선하는 방법으로 문화 활동과 행사를 지원하는 유형을 말한다. 이 스폰서십 단계를 넘어서게 되면 ▲ 문화연출(Synthesis) : 제품(서비스)에 문화이미지를 체화해 차별화 ▲ 문화기업(Style) : 새롭고 독특한 문화를 상징하는 기업으로 포지셔닝 ▲ 문화후광(Spirit) : 국가의 문화적 매력을 후광효과로 향유 등으로 고도화할 수 있다.

결국 기업이 문화를 남의 일로 보고 거들어주는 단계를 지나 문화와 기업 자신이 일체화가 된 경지로 나아가는 큰 작업이 문화마케팅의 진화 발전이다. 물론 그 과정은 아주 낯설고 부자연스럽기도 하고, 여러 갈래의 저항도 따를 수 있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 하면 불도저 이미지를 떠올리고 '현대맨' 하면 청색 점퍼가 연상되는데, 이들이 베트남 하노이 같은 신흥 시장의 심장부에 문화센터를 짓는다면? 이 경우 현대가 건물만 넘기는 것하고 건립 후에도 운영을 맡아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선보이며 문화첨병이 되는 것, 어느 쪽이 더 확실할까? 아웃소싱이 능사가 아니라고 누구라도 쉬이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막상 현대가 문화센터를 관리하고 운영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알깨기가 될 터이다.

닦고 조이며 기름 치던 손이 디자인하고 서비스하는 손으로 거듭나야 하니 우여곡절도 많겠다. 하지만 문화는 만국의 공통 언어, 만인의 리조트가 아닌가. 낯설게 해내야만 하는 문화마케팅을 통해 현대가 새로운 현대다움을 쟁취하는 것. 이것이 단순한 후원과 지원을 넘어서는 '문화마케팅 고도화'인 셈이다.

둘 : 스스로 문화가 되는 문화마케팅

기업이 정작 문화마케팅 고도화라는 과업을 해낸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내부에 전문가도 거의 없고 한정된 자원을 문화라는 이질적인 영역에 투입하는 것 자체에도 난관이 즐비하다. 때문에 좋은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기업이 파트너십을 통해 이 어려운 문화마케팅 고도화 과업을 명쾌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파트너는 기존에 문화마케팅의 대상자였던 문화하는 사람, 예술하는 조직이다. 그들과 함께 보통 스폰서십에서 정체되기 십상인 문화마케팅을 끝내 고도화하는 멋진 플레이를 연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기업의 문화마케팅과 다른 문화 · 예술인의 문화마케팅을 이해하고 이에 동화하는 일이다.

문화 · 예술인의 문화마케팅은 세 가지 차원으로 구분하여 제시할 수 있다. 우선 첫 번째로는 문화콘텐츠의 직접 사용 · 간접 사용의 차원이 있고 둘째는 개별 콘텐츠 중심과 콘텐츠를 에워싼 주변 맥락, 즉 콘텍스트(Context) 중심을 가르는 차원이 있다. 끝으로 셋째는 이들 이분법적 구분에 구애받지 않고 초월적 위치에 있는 독자적인 영역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위 그림에서 다룬 것처럼 횡축 두 개의 영역은 문화콘텐츠 아이템 자체를 중심으로 마케팅을 펼쳐나가는 차원으로서 이는 '문화콘텐츠를 위한 마케팅(Marketing of Culture or Marketing for Culture)'으로 풀이할 수 있다. 마케팅 기법과 수단을 동원하여 문화콘텐츠 자체를 돋보이게 만드는 노력의 일환인 셈이다. 같은 횡축의 영역에서 이와 구분되는 대척점에 서 있는 차원은 문화콘텐츠 아이템 자체보다는 콘텐츠가 위치하는 상황과 맥락, 의도 즉, 텍스트를 더 강조하는 차원이다. 이는 '문화콘텐츠를 통한 마케팅(Marketing through Culture or Culture for Marketing)'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마케팅을 위한 문화콘텐츠의 동원과 활용이라는 측면은 흡사 기업의 문화마케팅 활동과 같은 듯한 느낌을 주지만 실상은 근본적인 차이가 내재해 있다. 문화 예술인이 원하는 마케팅 목적에는 판매 촉진이나 이미지 제고와 같은 기업의 목적과는 상당히 다른 가치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 · 문화적 영향력 제고나 새로운 트렌드 창조, 예술적 표현, 정치적 선언, 자기 발언 등 다양하고도 무정형적인 개념들이 포함되기 마련인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두 가지 차원이 위 모델의 횡축이 구분하고 있는 내용이다.

또 다른 한 축은 문화콘텐츠의 원형, 즉 오리지널 콘텐츠를 직접 사용하는 경우와 문화콘텐츠의 변형, 즉 메타 콘텐츠(Meta Content)를 간접적으로 사용하는 경우 등 두 가지 차원을 구분하여 보았다. 이는 달리 말해 문화 · 예술인이 자신의 콘텐츠를 그대로 사용하여 마케팅 활동을 벌이는 경우와 자신의 콘텐츠를 또 다른 형태로 변형 · 축약 · 재구성 · 재창조하는 부가적 편집 과정을 거침으로써, 마케팅 활동 자체를 또 하나의 콘텐츠 생성 및 표출 과정이자 행위로 간주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끝으로 제시하는 차원은 이들 횡축과 종축의 총 네 가지 차원과 영역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별도의 차원이다. 또는 모든 네 가지 영역에 다 걸쳐 있고 속해 있으면서도 어느 한 차원에 전형적으로 편입되지 않는 독립적인 차원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 다섯 가지 영역과 차원의 문화 · 예술인 문화마케팅 유형들을 차례로 규명해보자.

이와 같이 기업의 문화마케팅이 고도화되기 위해서는 '문화 · 예술인의 문화 마케팅'이라는 또 다른 창조적인 지평에 대한 이해와 만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