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Ⅱ 광고와 언어

광고의 표현법, 왜 레토릭인가

편집실

 

광고는 전략이 먼저다. 표현은 그 다음으로, 표현의 영역인 레토릭(Rhetoric; 레토릭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수사학, 수시집, 수시적 기교, 수사적 표현 등이지만 이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보다는 모든 개념을 두루 지칭하는 레토릭을 그대로 쓰기로 한다)은 부차적인 부분이라 말한다. 이 때문에 남을 설득하는 기술로 설득커뮤니케이션의 원조이기도 한 레토릭은 광고의 영역에서 지금까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전략과 표현은 동시적이며 상호침투하는 변증법적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때로 표현은 전략만으로는 예상할 수 없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광고는 광고주나 제품의 외침이 소비자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통로가 아니라, 광고주나 제품이 소비자와 만나서 서로 관계를 맺는, 설득과 공감의 마당이자 의미 생산의 공간이다. 표현의 미세한 차이가 소비자의 태도에 큰 차이를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광고다.

최근 국내외 광고학계에서는 광고 이미지를 레토릭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언어 분석에 적용했던 기존의 레토릭 개념을 이미지 분석에 끌어들여, 광고의 설득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찾고 있다. 하지만 광고에서 레토릭이 언어의 문제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가장 명백한 증거는, 광고 현장의 크리에이터들이 레토릭을 광고제작 과정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활용해왔다는 사실이다.

레토릭은 궁극적으로 분류의 문제로 귀결된다. 필자가 분류한 결과는 '의인화 하기, 유명세 활용하기, 대구(對句), 위협하기, 펀(Pun), 규정하기, 입증하기, 과장하기, 은유와 환유, 내러티브' 이렇게 열 가지다. 그 중 몇 가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광고에서 의인화

광고 크리에이티브의 가장 기본적이고 고전적인 형태는 제품에 대한 광고주의 목소리가 직접 드러나는 방식이다. 1960, 1970년대 광고에서는 광고주가 직접 나오거나 아니면, 광고주를 대신하는 목소리나 모델을 통해 제품의 특성을 전달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렇게 하면 신뢰는 줄 수 있지만 재미는 많이 떨어진다. 그래서 소비자에게 친근하고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해 제품을 대신하는 이미지나 장점을 전달하는 비유가 사용되었다.

의인화의 첫 번째 유형은 '제품을 사람으로 표현하기'다. SK텔레콤 준의 브랜드 론칭 캠페인은 N세대의 감각과 정서를 여러 면에서 잘 나타냈다. 1차와 2차 두 편의 TV광고 카피는 '어느 날 우연히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준을 만났다'이다. 준은 통신 서비스라는 무형의 상품으로 아무도 그 자체를 볼 수 없는 것이지만 의인화를 통해 제품에 대한 기대나 관심을 한껏 높이고 있다. 3, 4차 TV광고 카피는 '준 영화를 보여줘요'와 '준' 이런 동영상은 보내지마'였다. 여기서 준은 영화도 보여주고 동영상도 보내주는, 마음씨 좋은 사람으로 의인화되어 있다. 삼성전자 브랜드 광고 '또 하나의 가족'도 가정 내에서 혹은 가족과 함께 하는 가전제품을 '또 하나의 가족'이란 말로 의인화함으로써 친근함과 휴머니티를 전달하고 있다.

의인화의 두 번째 유형은 '제품과 관련된 사물을 사람으로 표현하기'다. 태평양 튜닝 샴푸 광고 '댁의 머리는 안녕하십니까?'라는 카피는 머리(카락)에게 마치 사람에게 인사하듯이 잘 있느냐, 즉 부드럽고 숱도 정상책인 상태로 되어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세 번째 유형은 '사물이 스스로 말하기'다. 에쓰-오일(S-Oil)의 TV광고는 차를 의인화하여 '등에 집을 싣고 험난하고 가파른 고갯길을 오르게 해도/힘을 주는 에쓰-오일만 넣어준다면/주인님을 용서한다'며 의인화를 통해 차가 원하는 휘발유라는 메시지를 유머러스하게 전달하고 있다.

유명한 말이나 명언 등을 활용한 메시지

광고의 목표는 알려지지 않은 제품 혹은 브랜드를 알리고, 친숙하지 않은 제품 혹은 브랜드를 친숙하게 만들고, 믿음이 안가는 제품 혹은 브랜드를 신뢰하게 만들어 궁극적으로 제품 판매에 기여하는 것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이미 잘 알려진 유명한 사람이나 사물, 사실, 개념 같은 것들을 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유명세 활용하기'는 이와 같이 이미 잘 알려진 것들을 광고에 활용하는 방법이다.

광고 컨셉트에 잘 어울리는 유명한 말이나 사람, 사물, 노래, 장소, 개념 등의 힘을 빌려 쓴다면 훨씬 빨리, 쉽게, 그리고 강하게 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해찬들고추장 광고의 키워드는 '매워도 다시 한 번'이다. 이는 1968년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는 유명한 영화 제목을 재미있게 바꿔서 표현함으로써, 맵기 때문에 맛있고 그래서 다시 찾는다는 제품의 메시지를 재미있게 전달하고 있다.

치고 받는 대구(對句)의 재미

광고에서 대구적 표현은 메시지를 재미있으면서도 강력하게 전달하는 절묘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그 장점은 다음과 같다. 첫 번패는 경쟁사와 대비되는 셀링 포인트(Selling Point), 즉 판매 소구점을 부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경쟁사는 저런데 우리는 이렇다, 하는 식으로 차이를 분명하게 제시할 수 있다는 말이다. 두 번째는 서로 반대되는 의미를 비교함으로써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 광고의 메시지가 돋보이게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이미 잘 아는 얘기를 던져놓고, 그것처럼 혹은 그것과 다르게 어떠어떠하다고 말함으로써 듣는 사람의 이해를 훨씬 빠르게 한다.

대구의 유형에는 경쟁사와 대비된 셀링 포인트를 표현하는 '그러나(But)'형이다. '야후에서도 못 찾으면 엠파스' 라는 슬로건을 건 엠파스 광고를 기억할 것이다. '더듬더듬 헤맬 것인가, 한눈에 찾아갈 것인가'로 '더듬더듬'과 '한눈', '헤맨다'와 찾는다'는 대구 대비를 통해 엠파스의 경쟁 우위를 부각시키고 있다. OB맥주의 1980년대 슬로건인 '사람들이 좋다. OB가 좋다' 역시 대구적 표현이다. OB가 좋다고만 표현하면 그냥 흘려버릴 텐데, 사람들이 좋은 것처럼 OB도 좋다고 말을 하니 OB의 좋음이 감성적으로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뼈 있는 말 장난, 펀(PUN)

펀(PUN)은 '말장난, 재담, 익살, 곁말, 쉰 소리, 동음이의(同音異義)의 익살 등을 뜻하는 단어다. 즉 동음이의어 등을 통한 말의 유희 혹은 말장난이 바로 펀이다. 광고에서 '뼈'란 대체로 컨셉트나 핵심적인 셀링 포인트일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장난,놀이, 농담이라는 뜻의 'FUN'과 'PUN'은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단어는 비슷한 점도 있지만 다른 단어다. Pun은 대체로 FUN하지만, Fun하다고 꼭 Pun은 아니다. 광고에서 사용되는 '펀'은 다음과 같은 효과를 갖게 된다. 첫 번째, 펀은 겉으로는 재미를 주고 속으로는 제품의 특성을 전달하는 두 가지 효과를 얻게 해준다. 두 번째, 펀은 누구나 알고 있는 친근한 표현을 통해서 제품의 성격을 쉽게 경제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해준다. 세 번째, 펀은 익숙하지 못한 브랜드 네임과 브랜드 특성, 이 두 가지를 매우 효율적으로 접목시킬 수 있게 해준다.

펀의 첫 번째 유형인 중의적 표현이다. '2%부족할 때'의 광고 키워드 '날 물로 보지마'에서 물의 의미는 '실제 먹는 물'과 '흐리멍덩한 사람' 두 가지다. 이 광고는 두 가지 물의 의미를 의도적으로 혼동시켜 이야기의 재미를 더해주며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두 번째 유형인 동음이의어 사례로는 '돼지바'라는 아이스크림 광고를 들 수 있다. 브랜드네임이 '돼지바'인데, '되다'의 어미활용형인 '되지'와 동물의 '돼지', 그 발음의 유사성을 이용해 재미있고 유머러스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세 번째 유형에서 펀은 익숙하지 못한 브랜드 네임과 브랜드 특성을 매우 효율적으로 접목시킨다. 제약 광고의 브랜드 네임은 대체로 어렵다. 그래서 제품 특성과 브랜드 네임을 연결시키는 게 제약 광고의 주된 과제인 경우가 많다. 감기약 코리투살의 광고키워드는 '코, 코, 코, 코, 코리투살'이다. 여기서는 브랜드 네임인 코리투살의 첫음절이면서 감기와 깊은 관계가 있다. 화콜 광고의 키 워드는 '확!' 이다. 감기를 단번에 잡는다는 의미에서 '확'을 썼는데, 이것은 화콜의 두음과 관계가 깊은 단어다. 이를 통해 브랜드 네임도 연상시키고 제품의 성격도 전달하는 이중적인 효과를 노리는 광고다.

펀 광고의 네 번째 유형은 운(韻)의 활용이다. 단어나 어구의 첫음이나 끝음을 되풀이해서 쓰는 두운(頭韻)과 각운(脚韻)이 있다. SK그릅의 'OK, SK'는 짧으면서도 함축적이고 인상적인 슬로건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펀은 '뼈있는 말장난'이어야 하지만, '뼈', 즉 핵심적인 컨셉트나 셀링 포인트는 보이지 않고 '말장난'에만 그칠 때, 펀의 광고 생명력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이야기의 재미, 내러티브(Narrative)

'보이는 것만 믿으세요'라는 카피가 있는데, 사실 보이는 것만 믿어야 한다면 이 세상은 참 삭막하고 건조할 것이다. 보이는 것이 결코 전부는 아니다. 내러티브라고 불리는 그런 이야기 혹은 드라마는 광고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효과를 갖는 것일까? 내러티브의 가장 중요한 점은 제품이나 브랜드에 의미와 개성을 부여하여 이야기로 풀어냄으로써 그것이 마치 소비자의 마음속에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던 것처럼 친숙하게 만드는 일이다.

내러티브 광고의 유형으로는 '비주얼 내러티브'가 있다. 내러티브 광고 하면 흔히들 카피 위주의 광고만을 떠올리기 쉽다. 그렇지만 사실 우리는 비주얼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상상하거나 말할 수 있다. 사진작가 올리비에로 토스카니(Oliviero Toscani)가 주도했던 베네통(Benetton)의 'United Colors of Beneton' 캠페인의 광고 4편은 단순한 셔츠에 불과한 베네통을 휴머니즘의 사상을 담은 세계적인 브랜드로 인식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줬다. 소비자들은 신부와 수녀가 키스하는 모습을 담은 광고를 보고 사랑과 종교, 자유와 금기, 이런 개념들과 관련된 무한한 이야기를 상상하게 되면서 베네통이라는 브랜드가 노리는 보편적 휴머니즘의 세계로 안내받게 되는 것이다.

이미지의 시대, 영상의 시대에 맞게 광고에서 말이나 글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내러티브는 말이나 글을 통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상이나 이미지를 통해서도 갈수록 정교하고 감동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광고에서 내러티브 없는 영상과 이미지는 그 생명이 짧다. 따라서 소비자의 가슴에 오래 남는 영상과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내러티브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