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캠페인 | Beyond 광고기획

‘광고회사의 꽃’이라고 불려졌었다
- 포스트 광고기획시대, 추억할 때 보다 바꿔줄 때다

김은용 / 이노션월드와이드 국장

누구에게나 추억은 아름답지만, ‘AE는 광고기획이야’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다녔던 입사 초년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광고기획? 내 손안에 있지.’ 하던 기라성 같은 AE선배들은 바로 같은 공간에서 매일 얼굴을 마주하던 살아있는 전설이었고, ‘광고기획’이란 언제나 모든 작업의 출발이었고, 또 마지막을 승인하는 요술방망이 같은 것이었다.

포스트 광고기획시대의 도래

현실에서 우리의 추억 속 광고기획 속알맹이는 이미 옆 테이블에 앉아있는 AP(Account Planner)나CD(Creative Director), 혹은 On-line기획자, 프로모션 Planner, 심지어 얼마 전 AE에서 자리를 옮긴 당신의 광고주에게까지 넘어가고 있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이제 현장에서 ‘광고기획이란 회전문을 돌리지 않는다면 크리에이티브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라는 Jean Robaire의 말을 신뢰하는 사람은 AE 외에는 없다. 오히려 적지 않은 크리에이터들은 광고기획은 돌아서 나오는 그냥 회전문일 뿐이라서, 대부분 빅아이디어의 거추장스런 푯말일 뿐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젠 광고주를 방문할 때 노골적으로 들어야 하는 ‘같이 안 들어 오셨어요? AP분, CD분…아, 인터넷 담당자분, 그때 미디어플래너로 오셨던 분, 프로모션 플래너…’. ‘왜 그래? 선수끼리, 먼저 시안부터 보자구. BTL은 없어요?’라는 질문이 그렇게 불편하지 않다. 이제 전통적 의미의 광고기획도, 그 전담자로서의 AE 역할도 모호한 바야흐로 포스트 광고기획시대가 되었다.

무엇이 비극을 잉태했나?... Steven Spielberg에게 묻다

어쩌면 그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오스카상을 받은 Steven Spielberg가 느와르적 SF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발표할 때인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 모르겠다. 영화에는 미래의 광고가 소비자들에게 어떤 의미일지 시사하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신문들은 광대역 무선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소식들을 계속 전하고, 시리얼 포장박스에 부착된 생생한 광고방송을 보여주는 홀로그래픽 감지기를 통해 개별 소비자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광경을 보여준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기술들은 전혀 공상과학영화 같지 않다. 오히려 영화 속 몇몇 장면들은 실제 마케팅 툴로 개발되고 있다고 하니, 지금의 광고과잉사회를 조금 과장한, 곧 다가올 미래 정도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마치 전통적 광고기획으로는 대응이 되지 않는 전혀 다른 미래가 올 것이란 것, 결국 바로 이런 근본적인 패러다임이 도래하기 때문이란 것을 예언하는 것처럼 보인다.

광고기획 주도권의 이동

광고기획의 위상이 바뀐 또 다른 이유는 날로 증폭되는 광고주와 대행사 역할모델의 모호한 동거 때문이다. 물론 과거에도 간혹 있었으나, 이젠 대부분의 대기업, 외자계 광고주의 마케팅부서에 광고회사 출신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곳에서 나름대로 잘나갔던 광고회사의 후배, 동료 AE들, 심지어 크리에이터를 광고주로 만나는 것이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더욱이 다양한 광고회사들의 기획서가 바로 웹하드에 오픈되고, 여러 종류의 마케팅컨설팅펌의 웬만한 마케팅자료들도 손쉽게 온라인 상으로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지금까지 광고회사, 좁게는 AE들이 독점하던 정보의 공개는 이미 제품 정보의 우월적 지위에 있던 광고주가 광고기획에서도 주도할 수 있는 절대적 역할을 하였다. 이제 광고주들에게는 자신들의 전략을 증폭시킬 수 있는 테크닉이나 빅아이디어가 반영된 크리에이티브, 새 마케팅 툴이 더 중요할 뿐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광고기획을 제공해온 대행사는 그 역할이 축소되고, 이것을 전담해온 AE들의 역할도 대한 새로운 해석을 받아야 할 시점이 되었다.

송소고택의 Prescription, 창조적 파괴

과연 이런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기존 광고기획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대응하여야 할까?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안동하회 마을방향으로 가다 보면 아흔아홉칸 고택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송소고택이 나온다. 이곳은 그 존재감이 주는 고즈넉한 운치로 인한 볼거리보다 따뜻한 온돌아랫목에서 처마 사이로 쏟아지는 별들을 쳐다보며 잠을 청하는 이색적인 숙소로 더 유명해졌다. 마당 위 굴뚝을 통해 한가로이 퍼져 나가는 연기냄새를 맡으며 아이들 웃음소리, 다정한 젊은 연인들을 구경하다 보면 이미 이곳은 관광지의 여느 한옥고택이 아니라 자신 속으로 사람들을 품어주는 살가운 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송소고택은 자신의 숨겨진 가치를 요즘 사람들의 새로운 욕구에 맞추기 위해 자신을 창조적으로 파괴하였고, 이를 통해 시대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었다.

포스트 광고기획시대. 이제는 모드를 바꿔줘야 할 때···

이제 광고기획도 새로운 미래변화에 맞추기 위해 송소고택이 창조적 파괴를 통해 새로운 가치로 거듭난 것처럼, 자신의 모드를 바꿔줘야 할 시점이다. Peter F. Drucker가 “격동기의 최대위기는 격동 그 자체가 아니라 과거의 논리대로 행동하는 것이다…과거의 습관이나 관행에 얽매이지 말라”고 얘기하듯이, 사실 노스웨스턴 Don Schultz교수를 중심으로 확산되었던 IMC이론도 매스미디어의 급팽창 속에서 광고기획의 중요성이 극대화되며 날로 영향력이 커져가는 광고회사를 광고주들이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등장한 것이었다고 한다. 처음 AP직종이 영국의 Saatchi & Saatchi에 등장했을 때도 더 이상 경쟁적 관점의 포지셔닝 전략만으로는 광고기획의 한계가 분명해지자, 소비자의 잠재심리를 선점하는 차별화 전략관점의 필요에 의해 그때까지 정량 데이타를 요약해 주던 시장조사 전문가들에게 숨겨져 있는 소비자심리에 대한 해석을 요구하면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시대는 변하고 거기에 맞는 광고기획의 모드는 항상 따로 있어왔다.

- 첫번째 ··· Multi-Player

첫번째 모드는 ‘멀티플레이어’이다. 이젠 TV-CM이나 인쇄광고 위주에 맞춰있던 이전 광고기획의 클릭을 새로운 멀티미디어채널과 스탭들에게 옮겨줘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도움을 받되 최종 게이트키퍼는 당신이 되어야 한다. 포스트광고기획시대에서 가장 나쁜 광고기획은 AE가 자신의 정보와 역량을 과소평가하여 단순히 새로운 전략들을 여과없이 광고주와 연결해주는 역할에 머무는 것이다. 이전에 TV-CM의 한 컷, 바디카피 한 줄을 놓고 CD와 Copy-Writer와 밤을 새워 싸우면서 합의해 나갔듯이 새로운 당신의 스탭들과 당신의 새로이 넓어진 업무의 폭을 즐기면서 피곤한 시어머니가 되어야 할 것이고, 그들과 토론할 수 있도록 새로운 정보와 사례를 항상 수집하여, 멀티플레이어 역량을 갖춰야 한다.

- 두번째 ··· 創造性

창조적인 인터페이스 모드를 갖춰야 한다. 물론 당신의 제작 브리프 속에는 새로운 환경을 고려한 충분히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디어가 담겨야 하겠지만, 어떻게 나의 스텝들에게 창조적인 영감을 선물할까를 고민하는 산타클로스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광고주에게도 창조적 상상력을 어떻게 줄 것인가를 늘 고민해야 한다. 회의하는 방식, 기획서를 쓰는 방법은 물론 심지어 옷 입는 방법, 취미생활까지도 어떻게 나의 창조성을 키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모드로 바꿔야 한다.

- 세번째 ··· 感性

Rosser Reeves는 “가장 좋은 이론적 배경은 주장들을 감성으로 둘러싸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소비에트연방의 해체와 더불어 이젠 左腦가 아닌 右腦의 시대가 되었다. 광고기획도 이젠 딱딱한 틀을 벗어나야 한다. 얼마 전 러브마크의 저자 Kevin Roberts가 그의 두 번째 저서 ‘SISOMO’에서 Sight, Sound, Motion이 세상을 움직인다라고 말하듯이, 이제 새로운 미디어툴로 소통하는 Neo Consumer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광고기획은 그들의 만국공통언어인 感性으로 모드를 전환해야 한다. 그리고 AE는 이 감성의 神物을 옆에 두고 새로운 광고의 미래를 정복하는 태왕이 되길 꿈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