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천(인피니트 대표)

90년대를 일컬어 문화경영(Cultural Management) 시대라고 한다. 또 마케팅 분야에서는 감성마케팅시대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문화', 그리고 '감성'이라는 말은 매우 복잡하고 미묘하며 설명하기 어려운 단어들이다. 이것들은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작용하는 어떠한 힘, 또는 분위기나 느낌을 가르키기 때문이다.
기업문화(Corporate Culture)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던 월리엄 오우치도 '기업문화란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그 기업만의 독특한 특성을 의미 한다'고 모호하게 설명한 바 있다.
감성마케팅이란 사실(Reality)보다도 인식(Perception)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접근하려는 마케팅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암반 천연수로 만든 하이트맥주를 예로 들면, 소비자들은 암반천연수라는 개념 때문에 더 깨끗하고 더 좋은 물로 만든 더 맛있는 맥주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은 물론 사실에 근거를 둔 주장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인식이다. 지하수가 더 깨끗하고 위생적이며 맥주의 본질적인 맛을 좌우한다고 분명하게 증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사실 이상의 좋은 인식을 갖게된 것이 사실이다.
한가지 사례를 더 들어보면 풀무원의 식용유 경우가 있다. 국내 최고 품질의 식용유를 생산하여 판매하는 어느 한 회사에서 풀무원 식용유가 적지 않게 팔리는 이유를 찾기 위해 여러 차례 FGI조사를 시행했다고 한다. 풀무원 식용유는 내용물이 뿌옇고 일종의 불순물과도 같은 침전물이 많은데도 소비자들이 많이 찾고 있어서, 그 이유를 찾아보려는 것이 조사의 주된 목적이었다.
조사에 의하면, 소비자들은 그 뿌연 식용유에 대해 '풀무원이 만든 것이니까 제대로 진하게 만들어서'라는 생각을 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첨단시설로 맑고 깨끗한 제품을 만든 대기업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억울하겠지만 어찌 되었든 것은 소비자의 바꿀 수 없는 인식인 것이다.
하이트맥주 경우와 같은 제품에 대한 인식, 그리고 풀무원과 같은 기업에 대한 소비자치 인식을 살펴보면, 우리는 사실 그 자체보다도 우리에게 유리한 인식을 형성하기 위한 감성마케팅이라고 하는 힘든 과제에 도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CI, BI와 같은 아이덴티티(Identity)작업이 소비자의 '인식'에 소구하기 위한 모든 작업에 매우 유용한 것이므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아이덴티티라는 말에는 개성화, 그리고 동질성 및 통일성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그러므로 기업이 다른 기업과는 다른 독자적 개성을 정립하고 사내의 모든 사람들, 또는 상품들이 그러한 개성으로 동질화되고 대외적으로 통일되게 보여지는 것을 CI(Corporate Identity), 또는BI(Brand Identity)라고 한다.
최근 대학에서도 이러한 작업을 많이 하고 있는데 이런 경우에 대학CI라고 하면 옳지 않고, UI(University Identity)라고 해야 한다. 또 병원의 경우는 HI(Hospital Identity)가 된다. 또 소매점 아이덴티티는 RI(Retail Identity)라고 한다.
그 밖에도 요즘에 많은 관심과 연구의 대 이 되는 PI(President Identity)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최고경영자의 아이덴티티를 정립해가는 작업을 의미한다. 기업의 전반적인 이미지 형성에 최고경영자의 이미지가 크게 작용하므로 이 부분을 별도의 프로그램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간혹 아이덴티티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CI라고 하면, 기업의 마크를 디자인 하는 작업으로, PI라고 하면 최고경영자의 외모를 바꾸어주는 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아이덴티티를 축소하여 보는 시각이다.
가령, 병원의 아이덴티티, 즉 HI라 하면 물론 병원의 마크나 로고색상, 유니폼, 각종 안내사인물 등을 디자인하는 것도 포함되지만 그 병원이 추구하는 의료서비스 정신을 정립한다거나 환자의 정신안정, 치료에 도움이 되는 색채 연구 등도 포함된다. 소아과의 경우엔 유아환자들의 불안, 공포감을 감소시켜줄 환경디자인을, 장기 입원환자들의 병동에는 의욕을 잃지 않고 쾌유에 대한 의지를 갖게 해주는 환경디자인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또한 이용객들이 입원실이나 각종 검사실 등을 쉽게 찾아 갈 수 있는 동선 유도 디자인도 연구되어야 하는 것이다. BI도 이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레이블(Lable)을 디자인하는 작업만을 의미 하는 것은 아니다. 상품의 개념 (Concept)에 맞는 언어적(Verbal), 시각적(Visual)요소의 총체적 작업을 일컫는다.
언어적 요소라 함은 제품의 이름(Brand Name), 혹은 제품 슬로건 등을 말하며 시각적 요소라 함은 레이블, 포장, 용기디자인 등을 말한다.

일본에 '토마토뱅크'라는 은행이 있다. 처음에는 지방은행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가장 유명한 은행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름도 토마토뱅크라는 독특한 이름을 갖고 있고 심벌마크나 실내 인테리어 디자인도 토마토를 디자인화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 은행의 연차보고서를 펼치면 '우리 은행은 독특한 이름과 CI때문에 매년 30억엔 이상의 광고홍보비를 절감하고 있습니다'라는 자랑 섞인 글이 늘 실려있다.
회사명을 포함한 CI의 위력을 이야기 해주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의 하나은행의 경우도 이름과 CI의 혁신성을 통해 남다르고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해 줄 것 같은 참신한 이미지를 심는데 성공한 예이다. 대부분의 금융기관의 이름이 한자어인 때에 '하나'라는 쉬운 용어를 사용 하였고, 프리터치 기법의 심벌마크 역시 신선함을 주었다.
우리는 이러한 사례를 통해 사명이나 CI가 커뮤니케이션 활동의 중핵이 됨을 알 수 있다. 사명이나 CI전략은 기업의 이미지를 새롭게 변경하고 대내외의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기 위한 기초가 되는 것이다.
또 한 예는 진로유통센터가 지난해에 '아크리스백화점'으로 명칭을 바꾸고 새로운 CI로 전환한 것이다. 그 결과 전환한지 100일도 채 안돼 140% 가까운 매출증대효과를 거두었다는 기사를 주요 일간지에서 볼 수 있었다.
'진로 = 소주', '소주 = 서민적 저가격 상품'이라는 고정적인 이미지를 CI개선을 통해 극복한 것이다. 진로가 고급 상품을 판매하고, 고급제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장소나 경영전략의 큰 변화 없이 매출이 급상승했다면 CI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처럼 어느 한 업종에서 강력한 이미지를 구축한 기업의 경우 고정화된 이미지가 다른 업종으로의 진출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이미지 저항'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 심도 깊은 기업이미지 연구와 이미지 개선을 위한 CI전략이다. 즉, 기존의 이미지를 연장시키고 통합시킴으로써 함께 상승효과를 볼 것인지, 아니면 별도의 이미지를 구축함으로써 이미지 저항을 피해가는 것이 효과적인지 신중히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무공해 콩나물과 두부로 유명해진 풀무원은 종합식품회사로, 또는 화장품 등 타 분야까지 사업을 확장하기에 앞서 자연을 담는 큰 그릇이라는 테마의 CI를 먼저 도입함으로써 진로처럼 소주 외의 사업에서 이미지 저항을 받지 않고 각종 사업전개를 무리 없이 펼쳐가고 있다.
아무리 유능한 광고인이라고 해도 농부의 형상을 한 사람을 놓고 대중들에게 그를 첨단정보산업을 주도해 나가는 인물로 각인시켜 보라고 하면 난색을 표할 것이다. 그를 소개하는 광고전략을 수립하기에 앞서 그의 외모나 말투나 행동양식을 바로 잡는 일부터 손을 대야 할 것이다.
동양전자공업주식회사와 소니(SONY), 이 두 회사에 대한 각각의 느낌은 어떻게 다른가? 사실 이 두 회사는 같은 회사이다. 동양전자공업주식회사가 세계시장으로 진출하면서 국제적 감각의 기업위상을 만들고자 소니로 사명과 CI를 교체했는데, 많은 마케팅전문가나 학자들은 소니의 이러한 변신이 없었다면 과연 오늘날의 세계적인 기업 소니가 될 수 있었겠는가 하고 의문을 제기한다.
이처럼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아이덴티티 관련내용들을 검토해야 한다. 우선 전달하고자 하는 대상인 기업이나 관공서, 혹은 개인, 단체 등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으며,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그 문제점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커뮤니케이션 활동은 그 한계점 이상을 초월할 수가 없게 된다.

무조건 CI를 새롭게 도입했다하여 모두가 성공한 것은 아니다. BI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것은 광고를 했다고 모든 제품이 잘 팔리지 않는 것과 같다.
성공적인 CI전략을 수립하고, 그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방법에 대해 알아 보자.
우선 새로운 CI를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훌륭한 전문회사를 파트너로 선정하는 일이다. CI, BI 업계의 경우도 광고업계에서 말하는 기획사무실, 즉 크리에이티브 기능정도만 보유하고 있는 소규모회사로부터 종합광고회사에 해당하는 기획업무, 브랜드네이밍 업무, 각종 소비자조사, 디자인 업무, 기타 컨설팅 업무 등 종합적인 능력을 보유한 회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CI, BI회사 중 이른바 메이저급의 회사로는 인피니트, 디자친파크, 심팩트, 디자인포커스 등이 있고, 그 다음규모로 두킴디자인, 디자인가이드, DC&A, 크로스포인트 등이 있다.
이 업체들은 초기에 주로 미대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형성되었었지만 보다 전문화되고 다양화됨에 따라 전문회사들이 주도하는 시장으로 변화되었고, 미대 교수가 운영하는 연구팀으로는 올커뮤니케이션, 서울그래픽센터 등의 회사들만이 아직 활동을 하고 있다.
직간접적으로 국내에 진출한 외국 CI, BI회사들로는 미국의 '랜도 어소시에이츠'사와 'L&M'이 한국영업소 또는 지사를 각각 운영하고 있고, '시글앤게일', 'AGP', 일본의 파오스 등도 진출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외국전문회사들은 서비스가격이 비교적 고가이고 한국기업이나 한국소비자를 이해 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초대형 다국적 기업, 혹은 해외진출용 제품의 BI 등 특별한 경우에 주로 활용되고 있다.

최근 기업의 해외시장진출과 지방자치 제도의 본격시작으로 CI 개편작업을 진행한 회사 및 관공청이 많았다. 이렇듯 각 기업, 단체들이 CI전략 개편을 서두르고 있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소비자의 감성적인 측면을 이해하고 CI의 중요성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CI의 도입과, 광고 커뮤니케이션 운영에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CI는 소비자가 접하는 다양한 매체, 즉 제품자체의 디자인, 포장디자인, 기업로고나 캐릭터, 상징색, 그리고 광고 표현 등을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이미지 전략이다. 가장 대표적인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인 광고는 새로운 CI를 일반인들에게 소개하고, 반복적으로 집행되는 광고를 통해 단시일내에 변화된 CI를 인식시키는데 유용한 수단이다. 또한 훌륭한 CI는 그 자체로서도 광고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많은 의미를 담고, 소비자의 감성에 소구하여 전달하는 힘을 갖기 때문에 어쩌면 가장 저렴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일 수도 있다. 기업의 마케터는 항상 소비자의 이미지에 촉각을 세우고 시시각각 변하는 소비자의 마음을 읽어내야 하며, 장기적인 CI전략 및 광고, 이벤트, 캐릭터 등 다양한 도구를 이용하여 마케팅 목적을 극대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CI, BI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디자인작업이라는 관점을 벗어나 보다 전략화되어야만 한다. 또 최근에 들어서는 국제적으로 지적소유권 보호가 강화되는 등 관련분야의 법적문제가 중대해지고 있으므로 상호나 상표, 또는 디자인의 법적 보호문제에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작은 실수가 기업에 손실을 가져다 줄 수 있으므로 법적인 문제는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문화경영시대, 감성마케팅시대에서 성공하는 기업이 되려면 CI, BI가 정말로 중요한 수단임을 깨닫고, 보다 전략적으로 대응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