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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문화읽기 ㅣ 전자렌지에 빠진 고양이글 : 정재승 / 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시스템학과 교수
한 두 주쯤 지났을까? 어느 날 그 여학생이 영어로 이야기를 하던 도중 전자렌지를 ‘일렉트릭 렌지’ 라고 말하자 영어 선생님이 그게 뭐냐는 듯이 다시 물었다. 그녀는 자신의 발음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일렉트릭 레~인지’ 하면서 혀를 더 굴리면서 이야기했지만, 선생님은 알아 듣지 못했다. 옆에 있던 다른 학생이 ‘마이크로웨이브 오븐’(microwave oven)라고 말해주자 그제서야 선생님은 ‘아하~’라는 탄성과 함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그 여학생은 그때 무척 무안했었던지 그 후로 수업에서 나오지 않았다. 세상에나, 전자렌지만 아니었어도 우리 잘 될 수 있었을텐데. 미국사람들이 마이크로웨이브 오븐이라고 부르는 ‘전자렌지’ 란 녀석은 - 부엌에 늘 자리하고 있어서 친숙하긴 하지만 - 참 신기한 가전제품이다. 열을 가하지 않았는데도 음식이 데워지니 말이다. 전자렌지를 처음 봤을 때는 어찌나 신기했던지! 그런데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음식을 데운다’ 는 것은 결국 에너지를 가해서 음식을 이루고 있는 분자들을 마구 떨게 만들어 열에너지를 높이는 과정에 불과하다. 따라서 음식을 데우는데 필요한 에너지의 형태가 반드시 열일 필요는 없다.
전파에 의해서 물질을 가열할 수 있다는 전자렌지의 원리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미국 레이톤사의 전기기술자 스펜서 박사다. 그가 전자렌지의 원리를 발견한 과정이 재미있다. 1954년 어느 날, 레이다 시험에 몰두하고 있던 그는 근처에 열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 주머니에 있던 쵸콜렛이 다 녹은 걸 보고 그 이유를 찾다가 레이다용 극초단파가 그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속 연구해서 전자렌지를 발명하게 됐다고 한다. 우연한 발견이 위대한 발명품을 낳은 예로 종종 인용되고 있지만, 스펜서 박사가 이 현상을 그냥 스쳐 지나가지 않고 끈질기게 달려들어 위대한 발명품으로까지 이끌었던 그 후의 노력이 더 중요하지 않나 싶다. 15년 전쯤 미국에서는 전자렌지에 얽힌 엽기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다. 한 할머니가 사랑하는 고양이를 목욕시킨 후 빨리 털을 말리려고 전자렌지에 넣고 돌렸다가 고양이가 저 세상으로 가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 할머니는 사랑하는 고양이가 죽은게 너무 억울하여 전자렌지를 만든 회사(일본 회사라는 얘기도 있고 우리나라 회사라는 얘기도 있다!)에 왜 ‘살아있는 동물을 전자렌지 안에 넣으면 위험하다‘ 는 주의표시를 하지 않았느냐고 소송을 걸어 전자렌지 회사로부터 수 억원의 위로금을 받았다고 한다. 고양이를 전자렌지에 넣은 할머니도 엽기적이지만, 법원의 판결도 만만치 않다. 이 사건에 적용된 법률이 바로 제조물책임법(Product Liability Law), 일명 PL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법은 사용자가 물건을 사용하면서 있을지도 모를 잘못된 사용이나 사고 등으로 인해 정신적, 신체적으로 입을 수 있는 피해를 막기 위한 법이다. 위 사건의 경우, 회사에서 그럴 가능성을 미리 알아서 경고를 했거나 주의사항에 넣었더라면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이제 제조업자들은 물건을 잘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도 함께 소비자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는, 다시 말해 제조업자의 책임을 강화한 법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사건 이후 미국에서는 다양한 경고문이 제품 설명서에 붙게 되었는데, 그 내용이 무척 재미있다. 예를 들면, 헤어드라이기 설명서에 ‘잠자는 동안에는 사용하지 마시오’ 라는 경고가 추가됐고, 다리미 주의 사항에는 ‘옷 입은 채로 다림질하지 마세요’ 라는 메시지가 붙게 됐다고 한다. 또, 옷가게에 전시되어있는 슈퍼맨 쿄스튬에는 ‘주의 : 이 옷을 입고 날 수 없습니다.’ 라는 말이 써있다고 한다. 이런 경고문 중에서 압권은 플레이스테이션2의 게임CD 뒤에 써있는 영어 문구다. ‘주의 : CD구멍에 손가락이나 성기를 넣지 마시오.’ 이 모든 일이 ‘전자렌지에 들어간 고양이’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하니 참 요지경 세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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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전자렌지’ 하면 떠오르는 가슴 아픈 사연이 하나 있다.
대학 때 종로에 있는 한 영어학원에서 영어회화 수업을
들을 때 일이다. 10명 가까이 모여있다 보면 늘 그렇듯
맘에 드는 여학생(혹은 남학생)이 있기 마련인데, 나도
그때 분홍색 스웨터를 즐겨 입던 한 여학생이 좋아서 조금씩
친해져 보려고 이런 저런 궁리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음식물의
대부분은 물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자렌지는 음식에
마이크로파를 쬐여주어 물 분자들을 흔들어 음식을 데운다.
(그래서 마이크로웨이브 오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마이크로파라는
것이 결국 전기장이 진동하는 것이 여서 극성을 띄고 있는
물 분자들이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운동에너지가 증가하는
것이다. 만약 물 분자들이 원래 떨고 있던 자체리듬(물리학자들은
그것을 ‘고유진동수’ 라고 부른다)으로 마이크로파가
밀어주면 물 분자들은 미친 듯이 움직이면서 음식이 데워진다.
마치 그네가 진동하고 있는 리듬에 맞춰 뒤에서 밀어주면
그네가 높이 올라가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물 분자의
진동수와 같은 진동수의 마이크로파를 쬐어주어 운동에너지를
한 순간에 높이는 현상을 ‘공명 현상’ 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바로 전자렌지의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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