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t DATA_HOME $env(UNIWEB_DOC_ROOT) source $DATA_HOME/init.appl ] 해외 광고 동향 | 불황기의 광고 전략

해외 광고 동향 | 불황기의 광고 전략

글 · 김병희 / 서원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불황기에 기업은 가장 면저 광고 예산을 줄이려 하지만, 이 시기는 오히려 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는 호기일 수도 있다. 광고 효과는 즉각적이지 않기 때문에 지속적인 브랜드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불황기에 광고비를 늘려야 하느냐 줄여야 하느냐에 대하여 많은 논의가 있어왔다. 불황기에 접어들면, 기업의 예산 편성자들은 가장 먼저 광고비부터 줄이려고 한다. 그들이 손쉽게 이렇게 관행적으로 판단하는 데에는 광고비를 마치 불필요한 비용의 낭비나 가외비용의 지출이라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불황기의 광고 전략 및 효과에 관한 연구들의 전반적인 결론을 보면 광고비를 줄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업계에서도 불황기가 오히려 광고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입장들도 있다. 세계적인 미디어 컨설팅 기업인 스타컴 미디어베스트의 잭 클루스 사장은 경기가 어렵다고 광고비를 줄이는 것은 식견이 부족한 탓이라고 지적하고 오히려 불황기가 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본다. 이를 뒷받침하듯 경기 침체기에 광고비를 줄이면 장기적으로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는 인식이 외국 기업들 사이에는 확산되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인 카너 퍼블리싱(Cahner Publishing)의 보고서에 따르면, 불황기에 공격적으로 광고를 집행한 기업은 보수적으로 운영한 기업에 비해 시장점유율 상승폭이 평균 8배나 높았다고 한다. 불황기에 광고 예산을 줄인 기업의 시장점유율은 경기가 호황으로 돌아섰을 때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기도 하였다. 또한, 맥그루-힐 연구소에서 미국 내 6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불황이었던 1981년과 1982년에 공격적으로 광고를 집행한 기업은 1985년까지 판매증가율이 275%에 도달한데 비해 광고 예산을 줄였던 기업의 판매고는 평균 19% 증가하는데 그쳤다.

다시 말해서 광고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난다면 불황기에 줄이고 호황기에 늘리는 고무줄 정책을 탄력적으로 운용해도 무방하겠지만, 두루 알다시피 광고 메시지의 지체 효과(Lagged effect)나 수면자 효과(Sleeper effect) 그리고 이월 효과(Carry-over effect) 등은 광고 효과의 문제가 투입 대 산출이라는 맥락으로 단순하게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반증한다. 특히 전통적으로 광고는 판매를 위한 수단이었으나, 소비대중사회에 접어들면서 매우 독특한 사회제도의 하나로 인식되기에 이르렀기에 불황기에 접어들수록 광고와 브랜드 가치의 관계를 보다 면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 사회철학자 알뛰세는 현대 광고를 “상품관련 정보만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한 사회의 의식과 가치 및 이념을 반영하고 창출하는 이데올로기적 기구”라고 하였는데, 이는 광고가 판매의 수단이라는 전통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광고가 현대 소비대중사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제도의 지위에 올랐다는 현상을 포괄적으로 설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 현대 광고는 단순한 마케팅 도구에 머무르지 않고 산업사회의 공식 예술이 되었으며, 자본제 생산 양식에 소비의 의미를 부여하는 이념적 장치로 기능하는 동시에, 정교하게 빚어진 문화 장치로 작용하는 것이다.따라서 광고는 현대 소비대중사회에서 가장 특징적인 사회.경제.문화 기구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지속 가능한 브랜드 관리 차원에서 광고 메시지는 호황과 불황에 관계없이 늘 소비자 곁에 있어야 한다. 광고는 기업 경영에서 매우 미세한 영역이라고 보는 관리자들이 많은데 제품(製品)과 상품(商品)이라는 의미 차이를 이해하면 이러한 생각들이 얼마나 잘못 되었는지를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영어로는 둘 다 프로덕트(Product)라고 한다. 그러나 제품이란 공장에서 만들어서 창고에 보관 중이거나 소비자가 선택하기 전까지의 물건들을 가리키는데 비해, 상품이란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리며 매장에 진열되어 있는 물건들을 가리킨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제품 광고라는 말은 부적절한 표현이며 상품 광고라는 말이 바른 표현이라고 할 것이다. 광고는 상품과 소비자의 중간에서 상품판매 메시지를 매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 경영에 있어서 광고를 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든다 할지라도 소비자에게 내 물건이라는 의미로 다가가는 상품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저 1950년대의 제품의 시대를 지나 브랜드 이미지가 중요한 상품 선택의 준거가 되는 소비대중사회에서는 마치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소비자의 마음을 붙잡는 것이 좀처럼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광고가 전달하는 기업이나 그 기업의 브랜드 메시지는 기업 경영의 최종적 가치의 하나라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따라서 광고는 기업의 실재 가치와 더불어 잠재적 가치까지 높여주기 때문에 기업과 소비자를 소통시키는 매우 섬세한 의미 작용의 소프트웨어라고 할 것이다. 국내외적으로 광고를 통하여 기업의 실재 가치를 높인 사례가 많은데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포스코는 광고를 통하여 기업의 존재 의의를 설명하였다. 포스코는 우리의 기억 속에 1970년대 산업화의 지렛대 역할을 한 철강업체로 남아있지만 포항제철이라는 옛 이름 때문에 우리네 일상 생활과는 거리가 먼 조금은 투박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래서 호황이건 불황이건 관계없이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중요한 일을 한다는 기업 이미지를 제고할 필요가 있었는데, 광고 창작자들은 그것을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입니다”라는 정교한 메시지로 전달하였다. 철강회사 광고라고 하면, 씩씩한 행진곡 풍의 음악에 용광로에서 쏟아져 나오는 벌건 쇳물과 땀 흘려 일하는 근로자의 얼굴을 내세우는 그림을 보여주고 “열심히 땀흘리는 당신” 어쩌고저쩌고 하는 카피가 주류를 이룬데 비해, 이 캠페인에서는 철(鐵)이 없다면 우리네 생활이 멈춰버릴지도 모르는 상황들을 제시함으로써 결국 철이 있어서 우리네 삶이 얼마나 풍요로워지는가를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런 광고로 인해 소비자들은 포스코를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매우 중요한 일을 하는 기업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둘째, 동아제약 박카스 사례는 동일한 제품을 가지고 광고를 통하여 새로운 타깃을 개척한 경우이다. 박카스는 40여년간 동아제약의 효자 상품이었는데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는 “활력을 마시자”라는 카피로 성공을 거둔 이후, 1990년대 들어 “싱싱한 생명력” “승리는 체력에서” “그 날의 피로는 그 날에 푼다” 같은 신한국인 광고 캠페인으로 국민적 브랜드로 떠올랐다. 그러나 최근 들어 드링크는 후진국 사람들이나 마시지 않겠느냐는 젊은이들의 인식 때문에 박카스는 중.장년층이나 마시는 추억의 상품 같은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들어 젊은이들에게 소구하기 위해 “지킬 것은 지킨다”라는 캠페인을 통해 20대 시장 개척을 모색하였는데 그 중심에 광고가 있었다. 남학생이 귀가 시간 전에 여자친구를 집까지 바래다준다던가 길거리 농구장이나 지하철역에서 생각이 건강한 젊은이들의 일상을 광고 표현으로 승화시킴으로써 박카스는 신세대 시장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가 있었다. 새로운 시장을 인식하여 적극적으로 광고 커뮤니케이션을 전개한 결과 이제는 젊은이들도 종종 강의실에서 박카스를 마신다.

셋째, 롯데 자일리톨 껌 광고는 광고가 소비자를 교육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자일리톨 껌 광고는 껌이 충치를 유발한다는 고정관념을 탈피하여 오히려 충치를 예방하는 성분을 첨가한 제품을 만들어 기존의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연상을 심어준 경우이다. '자기 전에 씹는 껌'이라는 제품이 세상에 어떻게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광고 캠페인에서는 핀란드 사람들을 예로 들면서, 자기 전에도 껌을 씹을 수 있겠구나, 그렇다면 양치하기는 좀 귀찮고 껌으로 대신하지, 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함으로써 과대 광고가 아닌 광고의 교육적 특성을 시사하였다. 광고에서 고정관념을 탈피하라는 투의 메시지를 반복해서 노출한 끝에 소비자의 공감을 얻었다고 할 것이다. 특히 '자기 전에 씹는 껌'이라는 광고 카피와 더불어 상품의 충치예방 효과가 서서히 알려지면서 시장은 급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시장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제품과 관계된 새로운 상황을 찾아내 제품의 용도를 늘리거나 변화시키면 새로운 시장에 대한 새로운 용도가 태어나게 된다.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머릿속에 새로운 상황을 각인시켜 새로운 연상 작용을 일으키도록 해야하는데 이 광고는 그 역할은 충실하게 수행했다고 할 것이다.

외국의 경우를 보아도 휴렛팩커드의 경우, 불황임에도 불구하고 2004년의 광고예산을 지금까지 광고 예산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4억 달러 이상으로 책정하였다. 컴팩과 합병한 이후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의 소비자들에게 불황에도 끄떡없는 마케팅 활동을 전개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보다 공격적인 광고비 집행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은 아이디어의 문제이다. 광고를 새로 창작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이전에 만든 광고 중에서 수작들을 골라 약간의 수정 편집과정을 거쳐 다시 방영하는 문제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예컨대, 롯데제과 목캔디 광고를 담당한 광고 창작자들은 돈이 많이 드는 컴퓨터그래픽 부분은 그대로 사용하고 모델이 연기하는 장면만 새로 촬영해 제작비의 50% 이상을 절감하였다. 컨셉트의 변화만 없다면 이전의 광고들을 재활용하고 그 차액으로 매체 노출 비용을 늘리는 문제를 고려할 수도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제작비를 절감한 하나은행의 ‘북극곰’ 광고, 롯데칠성음료의 ‘레드데블스’ 광고, 그리고 영풍의 ‘알카바건전지’ 광고 등이 광고 제작비를 대폭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의 반응은 남달랐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불황기에 검토할 수 있는 표현 방안의 하나로 섹스 어필 기법을 활용해볼 필요가 있겠다. 예컨대, 로얄토토 비데 광고에서는 모델 최여진이 눈을 감은 채 등장하여 머리를 치켜들고 눈을 가늘게 뜨다가 급기야 치마를 손으로 움켜잡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 장면에서 소비자들은 야릇한 상상을 할 것이다. 곧이어 “1초에 70개의 물방울로 깨끗함이 다르다”라는 카피를 등장시켜 비데 사용시의 만족감을 성적인 코드로 전환한다. 이러한 방법은 저 예산으로 만들었지만 중의적 표현을 통하여 핵심 소비자 혜택을 강조함으로서 오히려 광고에 대한 주목을 높인다. 필립스전자의 무선주전자 광고도 성적인 소구를 하고 있는데, 비즈니스를 위해 처음 만난 모델 정애연과 김준성이 즉석에서 서로에게 반해 키스를 나눈다. “순식간에 끓어오른다”는 소비자 혜택을 남녀간의 순간적인 사랑의 감정에 비유함으로써 불황기에도 매출 증대에 기여한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경기가 나빠지면 광고비부터 먼저 줄여야한다는 말은 아날로그 시대의 자린고비 정신이다. 더욱이 온라인 마케팅에서는 웹(web) 기반마저도 아날로그로 보고 서버(server)를 갖춘 상태만이 모름지기 디지털이라고 보는 경향이 많은데, 이러한 상황에서 무조건 광고비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은 아날로그적 발상 중에서도 가장 뒤쳐진 경우라 할 것이다.

모든 속담과 격언은 시대 상황에 따라 그 맥락이 다르게 해석되는 경우가 많은데, 지금처럼 건전한 소비 가치를 중요한 생활의 덕목으로 삼고있는 현대인의 일생생활에서는 자린고비의 의미가 점점 퇴색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광고비를 맹목적으로 줄이기만 하는 것은 너무나 근시안적인 판단이요 광고 전략 부재 상태임을 기업 스스로가 자임하는 셈이다. 광고 메시지는 소비자의 마음이라는 은행에 장기적으로 이미지를 저축하는 것이 아닐까?

불황기에 보다 주목할만한 광고를 창작하는 것은 기본이겠지만 그밖에도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최적의 미디어 수단을 선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매체간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미디어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데, 5C(Commerce, Coordination, Content, Community, Communication)를 기반으로 소비자의 심리 타점을 겨냥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어떠한 브랜드를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를 가리지 말고 브랜드 자산을 관리하고 이미지 구축을 위해 전력투구해야 한다.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건해지듯이 어려울 때 투자한 광고비가 나중에 브랜드 자산을 빛내주는 기름진 거름이 될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