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광고회사의 구조적 변화 - 인수합병 및 전략적 제휴
불과 4∼5년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아시아 주요 국가 중 유일하게 다국적 광고회사가 Top10의 순위에 올라 있지 않았던,
외국인의 시각에서 보기엔 매우 특이한 국가중 하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광고시장은 재벌기업의 하우스 에이젼시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지난 98년 이른바 IMF란 국면을 맞이하면서부터 그 양상은 빠르게 바뀌어 갔다. 물론 그 이전부터 다국적 광고회사들이
직접 진출 또는 전략적 제휴 등 다양한 형태로 국내시장에서 활동해 온 것이 사실이나 근자에 들어 더욱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국내 광고계도 다국적 광고회사로 인해 급변하는 구조적 변화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놓여지게 된 것이다.
전략적 제휴인가? 인수합병인가?
외국광고회사의 국내진출의 유형은 크게 단독투자에 의한 독립법인의 설립, 국내 광고회사와의 투자지분 공유를 통한 인수합병의 형태,
단순히 상호간의 전략적 목적에 의한 업무제휴 등으로 구분되어진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IMF이전의 외국 광고회사의 진출유형이 대개 전략적 제휴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으나 최근 들어서는 보다 적극적인
인수합병 또는 단독투자 등 그 양상이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수년간 한국시장을 업무제휴의 형태를 통해 탐색한 후 본격적인 구도를 갖추어 가는 다국적 기업의 일반적인 절차상 관행이랄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IMF를 통해 맞이한 국내 광고계의 위기상황을 시기 적절히 활용하여 경제효과를 거둔다는
다국적 광고회사의 전략적 포석의 차원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아시아 2위의 광고시장을 포기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이를 증명하듯 국내 유수의 광고광고회사들이 외국 유수의 광고회사들과 인수합병을 시작했다. 금강기획은 C.C.G와 동방기획은 BBDO와,
또 한인기획은 FCB와 각각 손을 잡았으며, DDB Needham은 Lee&Partners와 함께 Lee&DDB를 만들었고,
TBWA는 태광기획을 인수하여 TBWA Korea를 설립하였다. 그런가하면 단독투자 법인으로 진출한 JWT는 Adventure의
지분을 인수하여 새로운 비즈니스를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으며 웰콤은 퍼블리시스그룹과 손잡고 퍼블리시스 웰콤을 탄생시켰다. 최근에는
덴츠와 공동투자로 설립된 휘닉스컴이 새로이 덴츠이노박이란 신규법인을 내놓았다.
왜 전략적 투자 및 제휴가 일어나는가?
3년 전쯤 Lintas 아시아 총괄회장이 국내진출을 위해 파트너를 찾고 있었다. 당시 모 하우스에이젼시와 긴밀하게 협상을 진행할
때였다. 국내 광고회사의 한 중역이 왜 우리나라에 투자를 하려하는지를 질문하자 Lintas는 다음과 같은 명쾌한 답변을 했다.
첫째,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거나 예정에 있는 우리 회사의 주요 광고주를 보다 잘 관리하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비록 지금 한국경제가 힘들다고 하지만 광고시장으로서의 한국의 성장 잠재력에 희망을 걸기 때문입니다.
셋째, 지정학적으로 한국은 아시아 제일의 시장이 될 중국의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1세기 중국을 겨냥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시장에서의 확고한 경쟁력은 필수요건이기도 합니다.
물론 위의 답변 뒤에는 치열한 국제 광고시장에서 뒤쳐질 수 없다는 다국적 광고회사의 세계경영에 대한 포부가 숨겨져 있다.
그렇다면 국내 광고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전략적 제휴나 인수합병이 왜 필요한 것인가?
주지하듯이 그 한가지 목적은 ‘경영의 안정화’이다. 대개의 국내 광고회사들이 그렇듯 열악한 광고회사 보상체계, 수개월짜리의 어음수취
관행으로 인한 부실채권 발생에 대한 위험 등 구조적 부담을 안고 있는데, 이러한 부담을 덜고 경영의 안정과 내실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급변하는 국내 시장환경에 적응하고 대처하기 위해서다. 최근 들어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무너지거나,
외국의 다국적 기업 또는 펀드세력에 의해 그 주인이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다국적 기업과 손잡고 조직의 구조를 탈바꿈한다는 것은
곧 생존을 위한 길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더욱더 가속화되리라 본다.
안으로부터 부는 바람
최근 들어 각종 언론을 통해 외국 기업과 합자한 국내 기업의 직원들이 겪는 애로사항 및 변화들을 자주 보고 듣게 된다. 하지만
타조직보다 자율과 창의성이 중요시되는 광고회사에서의 조직변화에 대한 강도는 사뭇 다를 수 있다.
한 회사가 외국 광고회사와 전략적 투자관계를 체결했다 해서 급속하게 조직구성원의 업무나 일의 관행이 바뀌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개의 국내 광고회사의 경우 기존 업무의 영역과 국제광고의 업무영역으로 나뉘어지는 것이 통례라 할 수 있지만, 지분투자에 동참한
외국 파트너의 경영간섭 및 참여의 강도에 따라 회사별 변화의 폭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설사 조직구성원 전체가 그러한 인식의
변화를 단시간에 공감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외국 광고회사의 전략적 파트너쉽을 구축한 회사는 필연적으로 근본적인 체질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하게된다.
기존체계와 변화된 새로운 체제간의 가장 큰 차이는 회사의 성장을 어떤 관점에 두고 있느냐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국내 몇위의
광고회사라고 하면 우선 총취급고를 놓고 따지게 된다. 즉 지금까지 성장의 척도는 규모(빌링)였지만 이제 외국 광고회사와 공생관계에
놓인 새로운 상황에서의 성장의 척도는 매출액과 수익률이다.
사실 빌링이란 것은 단순히 전표에 지나지 않는다. 월간 AD Age를 살펴보더라도 세계 광고회사의 랭킹을 국내처럼 취급고 기준으로
매기지는 않는다는 점만 보더라도 규모 및 성장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이제 단순히 취급 빌링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투입된 비용대비 수익율(ROI)을 고려한 효율적 성장이 주요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 다른 부분은 목표에 의한 관리경영(MBO:Management By Objec-tive)이란 점을 들 수 있다. 이제, 연간
매출목표, 수익목표, 그에 따른 인원충원 및 재배치, 신규 투자계획 등 일련의 경영계획은 체계적이고 가시적인 목표설정에 의해
이루어지며 그 결과 역시 목표달성에 대한 과부족으로 평가되는 시대이다. 따라서 조직 구성원은 철저한 목표개념과 수익개념을 몸에
익혀야 한다. 물론 기존의 국내 광고회사에서 역시 이러한 목표관리를 해온 것이 사실이지만 새로운 조직체계에서는 이전보다 그 중요성이나
정확성에 대한 부분이 훨씬 더 강조된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또한, 자사 광고주 또는 신규 경쟁 프리젠테이션에서 그 중요도나
비중이 높은 건의 경우 외국의 전문인력들과 국내 팀이 연합하는 등 새로운 형태의 프로젝트 수행 등이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이를
통해 국내 광고회사의 조직 구성원들은 외국의 선진 Creative 및 마케팅 전략 등을 체험하고 익힐 수 있는 보다 폭넓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국내 광고시장은 국경없는 경쟁시대를 맞이했다. 외국계 광고회사라 해서 외국광고주만 다루는 곳이라는 고정관념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어질 것이다. 다국적 광고회사의 이러한 행보는 비단 광고뿐 아니라 보다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영역으로 그 진로를 넓혀나갈 것
같다. 우리보다 광고선진국이라고 일컫는 일부 외국 경우에 비해 낙후된 BTL (Below The Line), Media, Interac-tive
분야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좀 더 나아가 특정분야에 전문화된(예를들면 IT, Kids, Female, Silver 또는 B2B
등) 특화 에이젼시(Specialized & Segemented Agency)도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국내의 중소규모의 전문화된 광고회사 또는 프로덕션 등과 같은 전문 Boutique들과 외국의 minor 및 Spe-cialized
agency간의 전략적 제휴 및 인수합병도 심심찮게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날, 어제까지 늘 만나오던 어느 국내 광고주의 마케팅책임자가 낯선 외국인으로 바뀌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