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CM연구/'영상의 문법'에 관하여
정상수/국제크리에이티브국3팀 차장 CM 플래너
1895년 영화가 세상에 처음 소개된 이후로 선구적인 영화 작가들은 그 속에 여러가지 약속(Convention)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영화의 감상자들이 오늘날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는 클로즈 업(Close-up), 팬(Pan), 컷 어웨이(Cut away), 플래시 백(Flash back), 디졸브(Dissolve) 등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이야기 형식(Narrative)'을 갖추고 있다. 정사진과는 달리 영화는 시퀀스(Sequence)가 여러 개 모여 이루어지며, 갖가지 음과 영상이 펼쳐지는 동안에 감상자는 거기서 자연적으로 결론을 이끌어내게 된다. 물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전통적 의미의 스토리텔링(Storytelling)식일 수도 있고, 되도록 감정이입이 이루어지지 않고 이화작용이 일어나도록 구성하는 식일 수도 있다.
어쨌든 영화 작가는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명확하고 강력하게 표현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 TV광고의 경우는 정해진 시간이 너무도 짧고, 영화처럼 집중해서 봐 주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불리하지만, 명확한 주장과 설득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은 똑같다.
지금부터 소개하려는 것들은 '영화 언어'와 '영화 문법'에 관한 매우 원론적인 내용들이다. 항상 시간에 쫓기며 작업에 임하는 우리는 가끔 원칙을 잊어버린 채, 열심히 앞으로 나가는 일에만 몰두하는 경우가 있다. 데생을 완벽하게 익힌 후에 단계를 거쳐 추상화를 그리듯이, 영상 표현을 자유자재로 하기 위해서는 원칙들을 늘 잊지 말아야 한다.
영화에는 기본적인 두 가지 표현 방법이 있다. 첫째로 각각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찍은 그림들을 편집하는 방법이 있고, 둘째로 지속적으로 촬영한 한 샷(Shot) 속에서 피사체를 변화시키는 방법이 있다. 오슨 웰즈의 '시민 케인'은 영화사상 한 샷으로 길게 찍은 뛰어난 작품으로 펑가받고 있다. TV광고도 처음으로 끝까지 편집을 하지 않은 한 샷으로 구성한 것이 더러 있다. 많은 TV광고들이 너무 많은 샷을 연결해서 복잡하고 이해가 어렵기 때문에, 그런 광고들과 섞어서 방송하면 차별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TV 수상기의 크기를 감안하면 역시 클로즈 업을 적절히 섞어 배치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편집이란 신문, 잡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불필요한 부분을 드러내고, 꼭 필요한 부분을 여러가지 미학의 원리에 맞추어 재배열하는 작업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부드럽게 이어지는 고전적 의미의 편집이란 편집이 눈에 띄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1960년대에 이른바 '뉴 웨이브(New Wave)'를 표방하던 쟝뤽 고다르(Jean-Luc Godard) 같은 영화 작가는 그런 전통적인 '규칙들'을 과감히 내던지고, '반 편집(Anti Editing)'을 즐기기도 했다. 시각적 혼란이 생기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점프 컷(Jump Cut)이나 리버스 컷(Reverse Cut) 등을 사용하여 편집을 했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알리면서 극을 전개해 나갔다.
카메라의 렌즈를 통하여 우리가 보는 이미지는 카메라의 주관적 관점으로 찍은 샷이다. 곧 사람의 눈 속에 카메라가 있다고 가정한 것이므로 카메라는 우리의 눈을 대표한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영화의 한 시퀀스 속에서 우리는 아무 혼란도 없이 외부 관찰의 샷으로부터 주관적 관점의 샷으로 옮겨 갔다가, 다른 사람의 주관적 샷으로 옮겨가고, 다시 요즘 즐겨 사용하는 흔들리는 카메라의 관점은 곧 우리의 눈으로 편집없이 사물을 보는 표현이다.
영화의 언어
영화는 정사진처럼 한 샷으로 구성되지 않고 여러 개의 시퀀스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한 샷에서 다른 샷으로 넘어갈 때 우리는 그 이미지들을 분석하고 상상력을 발휘하여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추리물 영화를 볼 때 도대체 어떤 요소가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자세히 영화를 뜯어 보면 어떤 기교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러 시퀀스가 '어떤 식으로' 조합되어 있는지 알게 되는 것이다.
영화의 '언어'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마찬가지로 어느 한 부분보다는 그것들을 조합한 전체가 더욱 중요하다. 영화를 보고 이해하는 데 특별한 교육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유심히 보면 볼수록 그 속에 들어있는 기교를 잘 찾아낼 수 있다. 영화 언어를 우리가 본능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영화를 전개시켜 나가는 수 많은 약속을 이해한다는 것과 통한다. 영화의 '문법(Grammar)'이라 말하는 이런 장치들은 곧 방향의 변화나 시간의 교차 편집, 전이 등을 뜻하는데, 언급한 바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런 약속을 아무 거리낌 없이 자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아주 자그마한 연결상의 실수로 크게 드러나기도 한다.
'영화 언어'란 너무도 다양하기 때문에, 많은 영화 작가들은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일부러 '규칙'을 무시하는 수도 있지만, 그런 특별한 의도가 없다면 원칙대로 하는 것이 좋다. 감상자에게 시각적 혼란을 주어 '무언가 이론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이상하다'고 느끼게 만들면 그 순간 모든 의도는 날아가 버린다.
TV 광고를 만드는 이들도 언어와 문법에 정통하지 않아 가끔씩 실수하는 것을 보게 된다. 궁여지책으로 연결에 무리가 있는 샷은 무조건 디졸브시켜 부지불식간에 장면이 넘어가게 만든다. 또 여러 명이 함께 나오는 샷에서 클로즈 업으로 넘어갈 때, 인물의 시선 방향이 맞지 않는다든지, 더블 액션(Double Action)이 맞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런 것들은 애교로 보아 넘길 수 있어도, 가장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역시 별 생각 없이 이어붙이기에만 급급한 편집의 경우다.
영화를 좀 더 나아지게 손질하기 위해서는 편집의 시점을 어떻게 결정하는가를 정해야 한다. 어떤 영화는 촬영을 하면서 카메라 안에서 편집을 하기도 하지만, 웬만큼 노련하지 않고는 쉬운 일이 아니다. 편집을 하지 않고는 이미지를 병치(Juxtaposition)하거나, 시퀀스를 만들거나, 쓸데없는 부분을 버리거나, 느슨한 샷을 압축하거나, 병렬 진행을 할 수 없다. 편집을 잘 해야 훌륭한 전개가 가능하다. 흐름을 결정하고 정해진 시간내에서 갖가지 이미지들을 정리할 수 있다. 시퀀스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알고 있으면 촬영을 할 때에도 그 기법상에 많은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올바른 샷 고르기
정사진에서는 피사체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구도(Composition)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영화 화면에서는 피사체나 카메라의 움직임이 구도의 일부분이므로 과연 어떤 행동을 프레임(Frame) 안에 보이게 할 것인지를 우선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움직이는 피사체는 샷의 처음 부분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중간과 끝 부분에서 더욱 중요하다. 그러므로 그러한 움직임이 한 샷에서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잘 생각해야 한다.
돈 리빙스턴(Don Livingston)은 '영화와 감독(Film & the Director)'이란 그의 책에서 '움직임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① 롱 샷(Long Shot)이나 미디엄 샷(Medium Shot)에서 프레임 속의 대상을 좀 더 가까이 보여주기 위하여.
② 대상을 가까이 보여 주는 샷에서 멀리 보이는 샷으로 이동하기 위하여.
③ 한 대상에서 다른 대상으로 관객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하여.
④ 구도에 변화를 주기 위하여. 또 속도감을 주기 위하여.
⑤ 움직이고 있는 대상을 가깝게, 계속 보여 주기 위하여.
⑥ 한 시퀀스의 첫 부분과 끝 부분에서 옵티컬 전환으로 넘어가기 위하여.
아울러 '움직임의 기본적인 형태 12가지'를 제시한다.
① 달리 인(Dolly-In)
카메라가 움직이지 않는 대상을 향해 밀고 들어간다. 관객을 어떤 특별한 인물이나 목표물로 좁혀 들어갈 필요성이 있을 때 사용한다.
② 달리 아웃(Dolly-Out)
새로 전개되는 시퀀스의 중요한 대상을 먼저 보여 주면서 시퀀스를 시작할 때 사용한다.
③ 워크 인(The Walk-In)
대상이 카메라를 향해 다가오는 장면에서 사용한다.
④ 워크 어웨이(The Walk-Away)
워크 인의 반대.
⑤ 팔로우 샷(Follow Shot)
대상과 카메라가 함께 움직이는 경우. 배경은 변하지만 움직이는 대상을 카메라가 쫓아가면서 최대한으로 처음의 구도를 유지한다. 물론 움직임이 짧을 경우에는 굳이 카메라가 따라가지 않고 팬만 하면 된다.
⑥ 새로운 대상을 따라서.
처음에 소개된 대상이 화면 밖으로 사라지면서 새로운 대상이 들어와 화면의 중심을 잡는 경우. 이 움직임은 한 대상에서 다른 대상으로 관객을 원활하게 유도하는 데 효과적이다.
⑦ 한 대상에서 많은 대상으로의 이동.
처음의 대상이 화면 밖으로 사라지지 않는 점만 다를 뿐 ⑥번의 경우와 비슷하다. 한 대상에서 많은 대상으로 관심을 확대시키는 방법이다.
⑧ 그룹에서 한 대상으로 이동.
카메라가 한 대상으로 이동하거나, 그룹 속에서 한 대상이 카메라로 다가오는 방법이다.
⑨ 그룹에서 이탈하는 한 대상으로 이동.
그룹 속에서 한 대상이 걸어 나오면 카메라가 그를 향하여 따라가고, 다른 대상들은 자연히 화면 밖으로 제외되는 경우. ⑩ 구도를 수정하기 위하여 카메라는 화면 속의 대상이 움직임에 따라 구도를 유지하기 위하여 살짝 팬이나 틸트를 한다. 예를 들면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를 미디엄 샷으로 잡고 있었는데 그가 일어선다면 카메라도 따라 틸트하는 경우.
⑪ 역방향이 되는 대상의 움직임.
대상이 이매지너리 라인(Imaginary Line)을 넘어오면 카메라가 이동하여 구도의 균형을 유지한다.
⑫ 반대로 움직이기.
한 대상이 움직이면 다른 대상은 그 반대쪽으로 움직여 미리 계획된 위치로 가서 균형있는 구도를 유지한다.
그러나 움직임이 많은 경우, 그 움직임에 따라 카메라의 초점을 계속 변화시켜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제작팀은 가급적 달리 샷을 쓰지 않는다. 쉽게 광각렌즈(Wide-Angle Lens)를 사용할 수 있지만, 팬을 할 때 대상이 왜곡되는 문제점이 따른다.
각각의 독립된 샷은 다른 고유의 특성을 갖고 있어서 한 샷을 다른 샷과 병치할 때의 효과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롱 샷에서 미디엄 샷으로 연결하면 더 작은 부분으로 관심이 집중된다. 전쟁터의 긴박감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전투가 격렬해짐에 따라 샷의 길이를 점점 짧게 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반대로, 상황은 지속되는데 카메라를 움직이지 않고 한 샷을 길게 만들면 초조함을 표현할 수 있다.
화면의 구성
영화 화면을 구성할 때는 두 가지 방법에서 정사진과 다르다. 첫째로 다른 샷과 어떻게 조합할지, 둘째로 샷의 길이 내에서 움직이는 대상을 프레임에 어떤 식으로 배치할지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훌륭한 구도는 과학이 아니지만, 그 규칙들이 깨질 때, 결점이 확실히 드러난다. 균형이 맞지 않고 혼란스럽게 구성된 샷은 그 샷 자체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잘 구성된 샷이 왜 좋은지 확실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구도를 잡는 데는 몇 가지 가이드 라인이 있다.
우선 두 가지 요소를 생각한다. 하나는 '앵글(Angle)'이고, 또 하나는 '프레임'이다. 말 그대로 앵글은 카메라가 대상을 보는 높이인데, 시퀀스의 구도에 다양함을 주기 위해 조정한다. 카메라가 대상보다 높이 올라간 상태가 부감 샷(Bird's Eye View)이며, 주로 대상을 압도하는 느낌을 준다. 앙각 샷(Worm's Eye View)은 반대로 높이와 우월성을 강조하는 데 쓴다. 대상이 더 크고, 강하고, 중요하게 보이도록 한다. 특히 어린 아이가 어른을 볼 때나 전차가 카메라를 향해 오다가 카메라를 넘어가는 샷 등을 찍을 때 사용한다.
다음은 프레임인데, 롱 샷은 관객이 객관적 입장으로 보게 하며, 클로즈 업은 주관적 입장이 강하게 한다. 챨리 채플린(Charlie Chaplin)의 영화에서는 가련한 처지의 주인공이 스크린에서 홀로 왜소한 존재로 보일 때 관객의 동점심을 일으키게 만들어져 있다. 화면에 깊이를 주고 주인공을 더욱 외롭게 보이게 하기 위해 카메라에 가까운 전경(Foreground) 부분에 나뭇가지나 창문의 틀, 현관의 기둥을 걸쳐 찍기도 한다.
다음 요소로 '균형(Balance)'이 있다.
촬영 전에 대상을 화면의 상단이나 우측으로 움직여 보거나, 프레임의 크기를 조절하여 항상 균형을 유지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3등분의 법칙(The Rule Of Thirds)'이란 것이 있다. 프레임 안에서 두드러진 대상이나 그룹, 또는 선을 어떻게 배치하는가의 문제다. 다시 말하면 관심의 중심을 화면의 기하학적 중심에 놓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아침 해가 솟아오르는 수평선이 보이고 인물이 화면을 2등분하지 말고, 셋으로 나눠서 다양한 불균형의 면을 만들어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더 좋다.
또 하나 구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색이 있다. 흑백 화면 속의 아주 작은 빨간색 점 하나가 화면의 비례를 좌우한다. 마찬가지로 균형이 잘 잡힌 구도라 하더라도 그 속의 색들이 복잡하면 이상하게 보인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구도의 법칙은 '단순하게 하라(Keep it simple)'는 것이다.
시퀀스 만들기
모든 영화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떤 인상적인 샷을 만들어냈다 하더라도 결국 그것은 시퀀스 안에 들어가서 관객이 그것을 이야기식으로 해석하도록 만든다. 영화를 감상하면서 관객은 어느 샷 다음에 어느 샷이 이어질지 나름대로 예상하는데, 만일 상황과 전혀 관계 없는 두 샷이 이어지면 혼란이 생기고, 곧 그 둘을 이어줄만한 가상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특별한 의도를 갖고 점프 컷이나 리버스 샷을 이용하여 관객에게 충격을 주려는 계획이 아니라면 연결이 되지 않는 연결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다.
우선 프레임 속에서의 인물의 위치는 같은 곳에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롱 샷에서 인물이 화면의 왼쪽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어지는 미디엄 샷에서도 같은 왼쪽을 지켜야 한다. 그래야 관객이 같은 인물이라는 사실을 착오없이 금방 인지하는 것이다. 만일 그런 규칙을 어기고 화면 왼쪽의 인물이 다음 샷에서 갑자기 오른쪽에서 나타난다면 어색하고 혼란스런 충격이 된다. 때에 따라 생각지 않았던 '충격' 샷이 나타나는 수가 있다. 롱 샷에서 바로 빅 클로즈 업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그에 해당하는데, 역시 중요한 계획이 없었다면 미디엄 샷으로 넘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음으로 이른바 '이매지너리 라인'이 문제가 된다. 한 인물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찍은 후에. 카메라가 갑자기 그의 진행방향 너머로 이동하여 다시 그의 걷는 모습을 찍으면 혼란이 생긴다. 만일 앞의 샷에서 그가 프레임의 오른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면, 다음 샷에서는 카메라의 위치 변화로 인해 반대방향으로 걸어가는 혼란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인물의 진행방향을 넘지 않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이 경우도 특별한 목적을 갖고 선을 넘어가서 효과를 볼 수는 있다.
마치 연극무대를 카메라에 담은 것처럼, 카메라를 한 군데 고정시키고 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모든 액션을 다 찍은 샷을 '매스터 샷(Master Shot)'이라 한다. 초창기 영화는 그런 식이 많았다. 카메라, 즉 관객은 수동적인 관찰자의 시점을 유지한다. 이런 샷은 매우 정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에 시퀀스를 좀 더 재미있게 멋지게 만들기 위해 다른 앵글이나, 클로즈 업, 인서트 샷, 컷 어웨이, 리액션 샷 등을 매스터 샷 사이에 집어 넣는 것이 보통이다.
'병렬 액션(Parallel Action)'이란 것이 있다. 위에 소개한대로 매스터 샷만으로 시퀀스를 구성한다면 정적이고 극적 효과가 약하므로, 매스터 샷과 같은 장소에서 벌어지는 액션이 아니더라도 매스터 샷과 관계가 있는 다른 신을 사이에 끼워넣고 진행하는 방법이다. 일종의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효과가 있다. 예를 들어 여자 홀로 잠자는 침실 샷과 칼을 들고 계단을 올라오고 있는 악당의 샷을 병렬진행으로 편집하면 그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은 비록 드릴러나 추적의 장면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다. 매스터 샷과 과거의 회상이나 미래의 암시 등의 샷을 병치시켜 새로운 심리적, 정서적 차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관객들은 영화 언어의 약속 때문에 그러한 두 장면을 연결하여 이해하는 데 익숙하다.
시간과 공간의 조정
영화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왜곡시킬 수 있다. 일주일의 시간을 영화상의 시간으로는 1분에 압축시킬 수 있으며,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금방 넘어갈 수도 있다. 이러한 영화 언어의 관습적 도구로는 페이드, 디졸부, 와이프, 휩 팬, 컷 어웨이, 점프 컷 등이 있다.
옵티컬 효과로서 페이드 인(F.I.)과 페이드 아웃(F.0.)을 쓸 수 있다. 페이드 아웃에서 흑색화면으로 넘어가면 장면을 마무리할 수 있다. 페이드 인으로 시작하여 페이드 아웃으로 끝난다면, 관객들은 시간이 경과했다거나, 장소가 변화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디졸브는 일종의 연결용 샷으로서 페이드 아웃처럼 마지막에 쓰이는 것이 아니고, 샷과 샷을 연결할 때 시각적 흐름을 창조하기 위해 사용한다.
액션을 압축하는 방법으로서 인서트, 컷 어웨이, 리액션 샷 등을 쓸 수 있다. 시간을 줄이거나, 슬쩍 넘어가기 위해 이용한다. 컷 어웨이는 다른 샷을 끼워 넣는 방법인데, 액션을 늘리기 위하여 쓴다. 점프 컷은 인서트와는 달리 일부분을 들어내어 연결하는 방법이다. 스크린 상에는 급격하게 나타나거나, 잘 감지되지 않는다.
카메라의 속도를 조정하여 시간을 직접적으로 왜곡시킬 수도 있다. 흔히 보는 물방울이 튀기는 모습, 추적의 장면 등을 속도지정으로 실감나게 만든다. 고속 촬영을 통해 스턴트 장면이나 매우 짧은 샷을 확실히 보도록 슬로우 모션으로 만들어 극적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막간'이라는 초현실주의 영화에서는 장례 행렬로부터 달아나는 영구차가 나오는데, 영구차가 거리를 질주하고, 그 뒤를 문상객들이 쫓아가는 모습을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준다. 그들의 발은 마치 땅에 달라붙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매우 느리게 쳐지고, 팔은 으스스할 정도로 느리게 앞뒤로 흔들린다. 거기서 아주 매혹적인 코믹 효과가 얻어지는데, 왜냐하면 관객들은 그 장면 속의 인물들이 정상적으로 달리는 모습을 느리게 만든 것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양식화된 도약 동작을 보고 있는 것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스틸 사진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스틸 사진은 잡지의 그림이나 영화포스터의 용도로만 이용되는 것은 아니다. 움직이는 영화 장면들 사이에 삽입된 스틸 사진은 무척 이상한 느낌을 준다. 움직이는 샷의 시간적 성질이 스틸 사진으로 옮겨지면서 괴기할 정도로 딱딱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진에서는 이런 엄격한 고정성을 느끼기가 어렵다. 보통 사진에는 움직임이라는 차원이 적용되지 않는 데다, 그 사진을 들여다보는 데 걸리는 시간이 사진 속의 사건이 일어났던 데 걸린 시간과 같은 시간으로 간주되지 않는 까닭이다.
디졸브 이외에, 몇 개의 샷을 동시에 보여주는 방법이 또 있다. 사진의 건판을 한 번 더 노출시킨 것과 같은 효과를 갖고 있는 이중노출(Superimposition)이 그것이다. 혼란이나 혼돈을 묘사할 때 유용하다. 춤추는 장면과 밴드의 장면을 순서대로 편집하면, 여기에 춤추는 사람들이 있고, 여기에 밴드가 있다는 사실 전달 외에는 별 감동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중노출은 그런 장면들의 추상적 본질을 표현하는 간단한 방법이다. 사건을 단순하게 제시하기 보다는 사건의 의미와 분위기를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 수법은 편리한 반면에 '인공적'이라는 결점을 갖고 있다. 사실적 수법에 의한 서술적인 영화에서는 이중노출이 이질감을 주기 쉬우며, 그것이 다른 형식을 방해한다는 사실과, 잘만 사용하면 제재를 왜곡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잘 해석하고 형상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동시에 생각해 두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반사된 이미지(Mirror Image)를 이용할 수 있다. 실제의 피사체 대신에 반사하는 물체에 비친 이미지를 찍는 것이다. 특히 그것을 반사된 이미지라고 생각치 못하다가 나중에 알아차리게 사용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물 위에 비친 얼굴이 소개되다가 갑자기 돌이 날아와 수면에 파문을 일으키면 화상이 출렁거리고 왜곡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착상이 교묘하게만 적용된다면, 관객은 처음에 그가 보고 있던 이미지가 물 위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영화의 언어와 문법에 관한 내용들은 지극히 원론적인 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러한 원론을 토대로 얼마나 효과적이고 감동적인 영상을 만들어내는가에 달려 있다. 실험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TV 광고의 경우에는 필수적으로 광고 목표를 갖고 시작하기 때문에 '실험을 위한 실험'이나 '영상 제일주의'의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도 기억해 두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