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국제경쟁에 대비한 선행투자
박화만(R&D센터 국장)
광고회사에서의 R&D 부서에서의 역할은 장기적인 경영전략 차원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고 광고 전략과 제작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각종 시스템과 맨파워,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영역 개발을 위한 기초연구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R&D부서는 광고 회사 내부의 실상을 예리하게 통찰하여 사회 현상과 광고 환경의 변화를 내다보고 창조적인 발상을 하여 과제를 설정하고 과감하게 도전해 나갈 수 있는 연구요원 개개인의 능력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역사학자인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역사발전의 법칙을 도전과 응전의 관계로 풀이한 바 있다. 사회이론가들은 사회변혁에 참여하는 세력을 이론가(Men Of Theory,) 행동가(Men Of Action), 동조자(Men Of Follow)로 나누어 볼 수 있다고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기업들은 격변하는 경영환경과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선진 노하우를 도입하고 전문인력을 영입하는가 하면 신제품을 내놓기도 하며 해외시장에 거점을 확보하는 등 혁신을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미래형 첨단기업이라 할 수 있는 광고회사들은 광고환경의 변화에 전략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조직을 정비하고 인력양성을 위해 과감하게 투자하는 등 가용자원의 동원에 전력 투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으로는 각종 마케팅 광고관련 연구소의 신설 또는 정비, R&D 전담조직의 신설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광고회사들이 왜 연구개발 기능강화에 눈을 돌리고 있는가? 그것은 광고회사들 또한 미래의 치열한 국제경쟁 시대에 살아남으며 나아가 발전을 꾀하려면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하는 위기의식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미래의 핵심적인 경쟁역량을 향상시키기 위한 선행투자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본 글에서는 광고회사에서 R&D기능의 형성과정과 현황, R&D를 필요로 하는 환경변화 전망, R&D기능 구축방법 등을 살펴봄으로써 이제 막 시작단계에서 있는 R&D의 필요성을 좀더 세부적으로 다루어 보고 그 역할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광고회사에서의 R&D 현황
국내 광고회사
요즈음 광고업계에서 부각되기 시작하는 R&D기능의 원형은 사실상 현대적 광고회사의 출현과 더불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광고회사들은 창업 초기부터 광고주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는 수준의 대행능력을 갖추지 못함으로써 선진사와의 제휴. 임직원의 해외연수를 통한 선진 노하우의 도입, 해외 전문가초청 교육과 같은 방식으로 경쟁력을 배양하기 위한 기초를 다지기 시작했다.
전문인력의 양성을 위해 각종 사내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해외광고전문가를 영입했으며 80년대 중반 이후 빈번해진 해외연수나 출장 및 선진사와의 Co-Working 등을 통해 국제화에 대비한 기본적인 역량을 길러왔다. 취급고와 인력이 증가하고 민주화의 흐름이 조성됨에 따라 전체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한 연구개발 분위기가 형성되어 해외연수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스터디 그룹 운동이 구체적인 R&D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보다 장기적이며 조직적인 연구개발은 광고전략 연구소(코래드 1985), 광고연구원(KOBAC0 1987), 마케팅연구소(제일기획 1991) 등과 같은 광고관련 연구소의 출현으로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그러나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스터디 그룹 운동이나 프로젝트팀 단위의 연구개발은 회사발전에 적지않은 기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으로 연구개발의 지속적 심화과정이 결여되었고 경영전략과의 연계성 부족, 관련 부문 간의 커뮤니케이션 부족 등으로 실효성이 크지 않았다고 평가되고 있다.
각종 연구소 또한 시일이 경과함에 따라 설립취지나 목적이 퇴색되거나 변질되기도 하고 광고업무 현장과 괴리되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제일기획이 지난 8월 31일 선언한 '신광고서비스선언'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마케팅 연구소를 확대하며 소비자 연구 중심으로 방향을 재정립하고 별도로 R&D센터를 신설한 것은 위에서 지적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포석이라는 점에서 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일본 광고회사
하쿠호도는 60년대 초부터 R&D에 지속적으로 투자해 왔는데 81년 9월 博報堂생활총합연구소를 설립하고 기업이념으로 재정립한 '마케팅 엔지니어링'이념을 실현 하기 위해 광고회사로서 생활자를 조사연구하기 시작했다. 한편 업무현장에 밀착된 과제 -표현개발 Support System, 상품개발 관리 패키지 등-연구개발은 각 스탭 부서에 위양해서 추진해 오다가 89년부터 추진 방법을 통일시켰고 91년 5월 각 부문에 흩어져 있는 조직을 모아 'R&D센터'를 발족했다. R&D센터는 현재 30여 명의 인원으로 운영되며 연 1회 R&D포럼을 개최하여 결과를 사내에 공유시키고 있다.
덴쯔는 덴쯔의 21세기 전략을 고려하여 '電通總硏'을 97년에 설립하고 인간의 가치관의 연구, 커뮤니케이션의 연구를 대상영역으로 설정했다. 電通總硏은 생활자의 연구, 미디어의 연구, 사회영역에서의 국제화 및 성숙화의 문제, 21세기를 향한 기업의 위치, 도시문제 등에 주목 하며 현재 20명 내외의 연구개발 요원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회사내부의 업무개선이나 전략무기 등은 외부 전문기관에 위탁 개발하는 경향이 강하다.
광고환경의 변화와 R&D
그동안 단편적이거나 업무현실과 거리를 두었던 연구 개발 업무가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직화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광고환경의 변화에서 주된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되어 이를 광고주 관련환경, 매체환경, 국제화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하겠다.
우선 광고주 대행관계의 변화를 보면, 광고주의 광고 회사에 대한 요구가 점점 다양화, 고도화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광고전략의 수준향상은 물론 각종 자료의 서비스 및 SP, PR영역 등을 포괄하는 총합적 전략환의 제시를 요구받고 있으며 우수한 제작물과 효율적인 집행으로 뒷받침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광고주로부터 광고대행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날로 격화되어가고 있는 점도 광고회사들이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에 불을 당기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회사 단위는 물론 브랜드 단위의 경합프리젠테이션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각 광고회사들은 기존 광고주들과의 거래를 유지하거나 신규 광고주들을 유치하기 위해 피나는 경쟁을 벌여야만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매체환경 변화측면을 살펴보면, 90년대 중반부터 벌어지고 있는 매체환경의 변화는 과거 수십 년 동안 우리가 경험했던 것보다 변화의 폭과 깊이가 훨씬 크기 때문에 앞으로 소비자들의 매체접촉 행태 패러다임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TV 매체의 다채널화 및 로컬화, CATV와 멀티미디어로 대표되는 뉴미디어 시대의 도래, ABC공사와 같은 광고매체 평가척도의 발전 및 제도화로 광고회사들이 매체대행 기능을 전문화, 과학화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광고의 국제화 측면에서는, 우루과이라운드, WTO체제의 출범 등 코앞에 닥쳐와 있는 시장개방의 거대한 물결을 타고 들이닥칠 것으로 예상되는 국제경쟁시대에 능동적·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선진 노하우를 앞세운 다국적 광고회사들과의 한판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그동안 각종 제도적 장치라는 보호막 속에서 향유(?)해 온 우리 광고산업의 기득권이 선진국들로부터 밀려오는 압력에 의해 모두 사라진 오픈된 상태에서 우리 광고 회사들이 얼마나 강력한 경쟁력을 유지해 나갈 수 있겠는가.
광고회사들이 이와 같은 환경변화에 대응하는 전략은 R&D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기존의 기획부서를 활용하여 중장기 전략을 세워 변혁을 추진해 갈 수도 있고, 조직을 강화하는 방식으로도 상당부분 커버해 나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D기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광고실무 현장에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문제의 본질에 근원적으로 접근하여 장기적인 관점에서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할 필요성 때문이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동안 단편적으로 분산 추진되곤 했던 연구개발 내용들이 조직원들의 전반적 동의를 얻어 장기적인 생명력을 갖고 새로운 광고를 위한 혁신의 축이 되기 위해서는 보다 집중적이며 심층적인 연구개발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많은 광고회사들이 성장 일변도의 길을 걸어오느라 지나쳐 버렸던 기초체력을 강화하지 않고서는 재도약을 위한 일관성 있는 경영전략을 펼쳐나갈 수가 없게 된 것이 사실이다.
어떻게 R&D를 추진해야 하는가
우리나라 광고회사들의 연구개발 관련조직은 대체로 기초연구에 중점을 두고있는 각종 연구소와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돕거나 조정자들로서의 역할을 하는 기획스탭, 임직원 개개인의 능력개발을 담당하는 관리·교육스탭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하쿠호도의 경우처럼 R&D부서를 설치하여 본격적인 R&D를 추진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아직 생소한 일일 수 있다. 우리 광고회사들이 이제까지 운영해 본 경험이 없는 R&D부서를 어떻게 포지셔닝해 가며 역할을 수행하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언급하는 것은 다소 막연한 감이 없지 않으나 제조업체들의 경험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역할과 특성
광고회사에서의 R&D부서의 역할은 장기적인 경영전략 차원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고 광고전략과 제작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각종 시스템과 맨파워,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영역 개발을 위한 기초연구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순수한 학술적 연구에 비해서는 광고업무의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고 경영전략의 기획에 비해서는 이론과 원리에 기반을 둔다고 하겠다.
R&D부서는 광고회사 내부의 실상을 예리하게 통찰 하며 사회현상과 광고환경의 변화를 내다보고 창조적인 발상을 하며, 선정된 과제에 끈질기게 도전해 나갈 수 있는 연구요원 개개인의 능력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장애요인
R&D부서가 성공적으로 운영되려면 우리의 조직문화 풍토에서 광고회사들이 극복하지 않으면 안될 장애 요인들이 잠재해 있다.
첫째, R&D담당부서와 현업부서와의 커뮤니케이션 단절현상이 일어나기 쉽다는 점이다. R&D에 대한 소극적 고정관념을 깨는 노력 없이는 당초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R&D에 성공을 거둔 선진 기업들의 경험이다.
둘째, 소위 '간접부서'인 R&D부서를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단시일 내에 결과를 기대하는 우리의 조직문화 풍토에서 과연 얼마나 끈기 있게 연구개발을 지원하며 기다릴 수 있을 것인가? 최근 수년 동안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면서도 R&D센터를 계속 운영하며 오히려 그 기능을 강화하는 하쿠호도의 예에서 우리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추진방법
R&D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회사차원에서 예상되는 장애요인들을 효과적으로 극복해야 함은 물론 R&D 부서원들의 연구개발에 대한 소신과 열정이 무엇보다도 중요 하다. 전담부서가 따로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맡겨버릴 수도 없으며 전체 회사 구성원들이 다같이 공동의 과제로 인식하고 협조해 나가는 분위기의 조성여부가 성패를 가름하지 않겠는가 생각된다. 연구과제의 뿌리는 업무의 현장에 있고 전담부서를 두는 것은 이를 좀더 효율적으로 추진해 보자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연구과제가 선정되면 과제의 특성에 따라 수시로 현업부서의 인력지원을 받는다든가 R&D 요원의 현업복귀를 보장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하겠다.
그러면 R&D부서원들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첫째, 업무의 현장에서 호흡해야 한다. 현업부서와의 커뮤니케이션 단절로 인한 폐쇄성 및 고립감을 극복하고 실천력 있는 연구결과를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미래에 주목하고 새로운 시각에서 과제를 선정 하고 접근해 들어가야 한다. 광고산업은 다른 어느 분야 보다도 많은 위험과 기회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문제의 근원으로 끈질기게 파고 들어가야 한다. 광고의 경우 각 부문을 분리해서는 문제의 본질을 찾아 낼 수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광고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를 움직여 가는 것은 소수의 창조적 집단이다. 광고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창의력이 강한 성향이 있다고 하겠으나 R&D 담당자들만큼 창조와 개혁의 열정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지금은 낡은 껍질을 벗어버리고 때로는 희생을 감수할 수 있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한 때이다. 동기나 과정이 정당했을 때 성공여부를 떠나 회사가 그 결과를 포용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