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구매와 구매충동
성영신(고려대 심리학과·교수)
후기 산업사회에 이르러 우리 인류는 역사상 최대의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다. 기술의 발달로 제품과 서비스는 나날이 새롭고 다양해지고 있으며, 대중매체는 인간의 물질문명이 얼마나 편리하고 풍요로울 수 있는가에 대해 무한한 가능성과 환타지를 제시하여 준다. 시장과 백화점에 쌓여 있는 그 많은 상품과 기발한 아이디어로 가득찬 그 다양한 서비스는 매 순간 우리를 유혹하고 있으며, 소비자의 하루하루는 모든 것을 지금 당장 사고 싶고 갖고 싶은 욕구와의 싸움으로 가득찬 것이다. 게다가 신용카드, 현금자동인출기, 원거리 쇼핑 (teleshopping) 등의 마케팅 혁신은 사전 계획 없는 구매를 보다 용이하게 만든다.
충동구매의 일반화
이와 같은 소비환경의 변화는 소비자의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마저 변화시켜 무계획한 구매 결정과 소비 행동이 보다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이제 무계획구매 (unplanned buying)는 특정인의 독특한 소비행동이 아니며 특정제품의 구매에만 한정된 것도 아니다. 실제로 미국의 한 조사 결과에 의하면 백화점에서의 구매 중 약 40%가 사전에 계획이 전혀 없었던 구매로 비교적 합리적 소비자로 알려진 미국인의 경우에도 무계획한 구매가 만연함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형태의 구매는 연령에 관계없이 모든 소비자 층에 걸쳐 골고루 나타나는 현상이나 특히 35세 이하의 젊은 층과 노인 층에서 비교적 많으며, 전체 구매 중 무계획 구매가 차지하는 비율은 제품에 따라 좀 차이가 있으나(30%∼ 70%) 빵에서 서적, 화장품, 의류에 이르기까지 조사품목 전반에 걸쳐 골고루 나타나고 있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결과는 시내 중심가에 나오게 된 동기가 쇼핑일 때 다른 목적으로 나왔다가 백화점에 들른 경우보다 무계획 구매의 빈도가 더 많다는 점이다.
그러나 사전에 계획이 없었던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충동에 의한 구매(impulse buying)로 분류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백화점에 진열되어 있는 어떤 상품을 보는 순간 갑자기 그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기억 난 경우의 구매행위나, 바겐세일을 하는 백화점에 가기 전에 괜찮은 물건이 있으면 사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만을 하고 간 후 형편을 보고 물건의 구매여부를 즉석에서 결정하는 계획된 충동구매 등은 충동구매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 엄격한 의미에서 충동 구매란 소비자가 그 제품의 구매에 대해 어떠한 생각이나 계획도 없이 쇼핑을 갔다가 제품을 보는 순간 꼭 사고 싶은 마음이 생기거나 혹은 그 제품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구매하는 경우를 지칭한다.
그러면 충동구매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심리적 충동이란 의식적으로 계획된 것이 아니고 어떤 자극에 접하는 순간 즉각적으로 유발되는 것으로서, 인간의 많은 행위는 생화학적 및 심리적으로 자극된 충동에 의해 끈질긴 힘을 지니고 있어 일단 유발되면 더 이상의 그러나 주저함이 없이 즉각적으로 행동으로 옮겨지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충동을 억제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자극에 대한 신속한 반응이 모두 충동적인 것은 아니며 습관에 의한 자동적 행동일 수도 있으므로 그 두 가지를 겉모습만 가지고 구분하기는 어렵다.
즉, 충동적 구매에서는 사려는 물건에 대한 세심한 평가나 브랜드간 비교 등의 인지적 노력은 극히 적은 반면 구매상황에서의 정서적 자극의 역할이 크므로 상품의 포장이나 진열, 상점의 분위기, 배경음악, 판매자의 센스 등 POP 판촉활동이 매우 중요하게 된다.
구매충동의 심리적 특성
충동적으로 어떤 상품을 구매하고 싶어하는 소비자는 그 순간 무엇을 느끼고 생각할까? 이제 구매충동(buying impulse)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분석해보자.
첫째, 구매에의 충동은 소비자 자신도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어느 순간 갑자기 떠올라 소비자가 '즉각' 어떤 상품을 살 것을 재촉한다. 예를 들어,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던 중 아이스크림 판매코너 앞을 지나는 순간 갑자기 사먹고 싶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이 충동은 대개 그 상품에 시선이 가는 순간이나 어떤 판촉물을 본 순간 유발되지만 때로는 아무 것도 눈에 띄지 않은 상태에서도 구매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이를테면 휴일 날 집에서 편안히 쉬고 있다가 갑자기 외출하여 무언가 좀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이다.
심리적 충동의 두 번째 특징은 즉각적으로 행동에 옮기고 싶은 욕구가 무척 '강하고 절박하다'는 점 이다. 구매충동을 느낀 소비자는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사고자 하는 욕구에 복종할 수 밖에 없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백화점 안을 거닐다 무척 마음에 드는 옷이나 장식물을 보는 순간 그 상품은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리게 되므로 그 앞을 지나쳐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해도 내내 그 상품만을 생각하게 된다. 다른 물건을 쳐다보고 만지며 다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해도 결국은 그것을 살 때까지는 그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는 일종의 강박적 상태가 되는 것이다. 구매충동의 심층에 도사리고 있는 힘은 이렇게 강력하기 때문에 마치 배고픈 상태에서와도 같이 이성은 그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셋째, 구매충동은 소비자를 '자극'하고 '흥분'시킨다. 물론 사람에 따라 얼마나 흥분하는가 하는 정도가 달라 비교적 차분하고 합리적인 성격의 소비자는 구매충동을 느꼈을 때도 별로 특별한 느낌이 없이 살 것인가 말 것인가 만을 고려한다. 그러나 보다 많은 경우, 소비자들은 추리소설이나 괴기영화를 볼 때처럼 전율과 흥분을 느낀다고 한다. 충동은 불시에 일어나서 소비자의 계획과 행동의 흐름을 방해하므로 충동이 너무 클 때는 본인 스스로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하기도 한다. 이와는 달리 충동은 우리에게 신선함, 자연스러움, 혹은 후련한 느낌을 주기도 하여 어떤 소비자는 흥분 상태를 '물건과 사랑에 빠진 느낌'이라고 묘사하기도 한다. 첫눈에 어떤 상품에게 반하게 되면 그것은 진열대의 다른 상품들과는 전혀 다르게 독특하고 유별난 것으로 보이게 된다.
넷째, 때때로 소비자는 흥분을 넘어서 '동시성 (synchronicity)'의 순간을 맛보기도 한다. 이는 일종의 '신바람'으로서 오랫동안 찾고 있었던 물건을 이제 드디어 만난 것 같은 느낌을 가지며, 따라서 이 순간을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물건과 사람이 이 순간 이 곳에서 만나도록 '예정'되어 있었던 것 같은 기분에 사로 잡히며, 충동구매를 하고 난 후에는 귀신에 홀린 것 같았다, 꿈을 꾼 것 같다, 최면에 걸린 상태에서 구매가 이루어진 것 같다는 등의 묘사를 하기도 한다.
다섯째, 때때로 소비자는 제품이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물활론적' 경험을 하는 경우도 있다. 생명을 가진 제품은 소비자의 시선을 끌어당기고 행동의 방향을 지시하며 나아가서는 결과를 결정짓는다. 이를테면, 양화점 앞을 지나며 구경하는데 진열장의 어떤 구두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것 같다든지, 그냥 지나쳐갔더니 뒤에서 따라오며 뒷덜미를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든지 하는 식이다. 소비자들은 대부분 합리적인 판단과 사고 후에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가치관을 가지므로 충동구매 후에 느끼는 죄책감과 후회감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하여 제품이 자신을 유혹했다는 느낌을 가져 합리화하는 듯 하다.
여섯째, 구매충동에는 보통 '강열한 정서'가 수반되는데, 기분 좋고 행복하고 신나고 흐뭇하고 만족스러운 긍정적 감정을 느끼게 되므로 소비자가 약간 우울하고 기분이 저조할 때는 충동구매 후 회복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충동적 구매 후에 경솔함, 어리석음, 방종함, 후회 등의 부정적 정서를 경험하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이것이 심하여 허전하고 불안하며 나아가서는 자신의 충동을 통제하지 못하고 결국은 사고 말았다는 사실이 소비자를 무력감에 빠뜨리기도 한다. 이와 같이 충동구매에는 극단적인 쾌감과 불쾌감이 교차하는 등 극히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 수반되는 듯 하다.
끝으로, 구매충동이 유발되면 현실지향적 사고와 쾌락 추구적 경향성과의 상충으로 인하여 소비자는 '갈등'과 '양가감정 (ambivalence)'을 겪게 된다. 살 것인가, 말 것인가, 이것이 문제인 셈이다. 이러한 갈등은 긴장을 유발시키는데 긴장감에서 벗어나는 가장 손쉬운 길은 충동에 항복하여 빨리 구매하는 것이다. 그러나 충동적으로 무엇인가를 구매하게 되면 예산과 계획에 구체적인 차질이 생긴 뿐더러 죄책감에 시달리는 등 부정적 결과가 예상된다. 이러한 결과를 미리 예측하면서도 그것을 무시하고 가능한 한 생각하지 않으려는 것이 구매충동의 특성이기도 하다. 그 힘과 에너지가 워낙 강력하기 때문에 이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충동의 본질인 셈이다. 이상예서 살펴본 특성들을 종합해 보면 충동구매를 저관여 구매로 보는 기존의 가설에는 문제가 있는 듯 하다. 구매에의 충동을 느끼는 순간 소비자의 신체적·심리적 에너지는 크게 활성화되어 있으며 자아관여 수준도 높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충동구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할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