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여성소비자의 재발견
김태용(광고1국3실)
개별소비자의 개성이 중시되는 소비시대
'90년대의 패션시장은 성장위주의 경제논리, 전례 없던 높은 교육열기 등이 본격적인 열매를 맺기 시작하면서 혜택을 받은 세대들이 소비를 하기 시작한 시기라 표현할 수 있다.
소비시장을 하나의 거대한 집합체로 인식하는 보편적인 가치관이 붕괴되고, 자신의 생활 한장면 한장면에 애정을 갖는 개별 소비자의 개성이 중시되는 소비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80년대가 브랜드 특성이 개별 소비자의 개성을 천편일율적으로 소화, 몰개성이 유행으로 뿌리를 내렸던 시기였다면, '90년대는 소비자 개개인이 디자이너가 되어 자신의 센스를 적극적으로 발견해 가는 시기라 할 수 있다.
태동을 시작한 소비자 시장, 그 중에서도 패션을 주도해 가고 있는 여성 소비자층을 Segmentation시켜 파악하지 않고는 의류업계에서 생존하기 어렵게 되었다. 여성소비자시장을 과거와 같이 단순히 연령별 특성, 결혼 유무 등의 잣대만으로 구분 짓는 것은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소비자의 개성을 무시하고 시장을 분석하려는 것과 같다.
더욱 세분화된 소비자층별 특징
여성소비자 시장이 달라지고 있다.
소비자들이 브랜드나 기호 등 사회적 보편가치를 자신의 패션 스타일로 이해했던 '90년대 이전에는 여성 소비자시장을 크게 결혼전의 미혼 직장여성 층과 전업주부 층으로 나누어 시장상황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흔했다.
그러나 사회 구조의 복잡성이 증대되고 사회 구성원들의 역할이 다양해지면서 여성의 의식 및 역할도 분화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아직까지는 DINK(Double Income No Kids, 자신의 일에 몰두하기 위해 아이를 갖지 않는 맞벌이 부부)가 우리 사회에 일반화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적어도 1자녀 출산 등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 속에서 육아에 대한 부담을 갖지 않으려는 여성이 급증하기 시작했으며, 결혼 후에도 가사일이 아닌 자신만의 일을 하고 싶어하는 여성이 늘어나게 되었다.
결국 여성 소비자 시장은 다양한 개성을 가진 소비자가 늘어난 만큼이나 분화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여성 소비자 시장을 크게 ①독신여성층 ②취업주부층 ③전업주부층 ④미시층으로 세분화 시키고, 이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패션 경향을 선도하고 있는 층의 실체를 파악해 보고, 아울러 변화한 소비자의 면면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①독신 여성층은 크게 아직 결혼 적령기가 되지 않은 '젊은 미혼 여성층'과 결혼 적령기가 넘었음에도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생활하는 '적령기를 넘은 미혼여성층'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우리는 후자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적령기를 넘은 여성층'이 '젊은 미혼 여성층'과 구별되는 점은 배우자가 없이 경제적으로 독립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결혼을 연기함으로써 남편, 자녀 등 가족 위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일반주부층과는 달리, 자신의 Life Style에 대한자부심이 강한 여성들이다. 시간이나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므로 주부층과는 달리 Total Fashion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T.P.O.(Time, Place, Occasion)에 따라 자신의 스타일을 주체적으로 연출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백화점을 비롯해 의류업과 관련된 업계에서 '90년대 이후 나타난 변화를 살펴보면 '결혼 적령기를 넘은 미혼 여성층'이 시장을 크게 움직였다는 사실을 잘 이해할 수 있다. 롯데 백화점에서는 여성복 매장을 2층의 영 캐주얼 群과 3층의 마담 사이즈 群으로 분리시키고 있다.
영 캐주얼 군은 본래 요즈음의 신세대라 불리우는 20대초반의 '젊은 미혼 여성층'을 겨냥한 패션 상품들인데, 이 영 캐주얼 군의 소비가 여성복 매출을 주도할 뿐만 아니라 젊은 소비자들의 디자인 및 신상품에 대한 요구가 급증하고 있다. '데코', '마인', '시스템', '쿠키' 등 캐주얼 의류들은 매출 증가 및 소비자의 요구에 힘입어 정상의 브랜드로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롯데 백화점에서도 이들 영 캐주얼 의류 매장의 디스플레이를 강조하거나 신규 영 캐주얼 브랜드를 런칭시키는 DM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물론 롯데 백화점 만이 경험하고 있는 변화는 아니다. 신세계, 현대 미도파 등 각 백화점마다 아주 자연스럽게 영 캐주얼존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같은 여성의류 중에서도 마담 사이즈 群보다 영 캐주얼 群이 시장 내에서 점차 안정된 위치를 확보해 나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비자층이 두터워졌기 때문이다.
롯데 백화점이 서울대 경영 연구소를 통해 실시한 백화점 이용행태에 관한 설문조사에서도 이러한 사실은 확인된다. 2,000명의 조사 대상자 중 롯데 백화점의 주요 고객은 20∼30대 여성층으로 이들은 전체 여성 고객의 절반을 상회하는 66.3%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중 일반주부 고객은 20%로 미혼여성 22.8%와 취업 미혼 여성 20.5%를 합친 43.3%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
한편 '결혼 적령기를 넘은 미혼 여성층'의 큰 특징은 '80년대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패션에 대한 선택기준의 변화이다. 같은 상품이라도 최고급 유명 브랜드(Designer Character Brand)라면 소비자들에게 주목을 받았던 '80년대 식의 감성 소비는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독신층 여성 소비자는 더 이상 일류급 브랜드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나만의 멋을 추구하되 합리적으로 소비하고 있다. 백화점에 수입완제품 매장이 축소되고 영 캐주얼류의 중저가브랜드 취급 매장이 확대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감성과 멋을 추구하면서 가격까지 고려하는 새로운 소비행태에서 비롯된 것이다.
②취업주부층은 맞벌이 부부의 증가 등 여성들의 사회활동 영역이 확대되면서 등장한 새로이 부각한 소비층이다.
이들의 패션 경향은 독신여성층과 전업주부층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이들은 전업 주부층에 비해 금전적 여유는 있으나 직장인, 주부, 아내, 어머니 등-人多役을 감당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의 운용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은 층이다.
이들은 전업주부층에 비해 디자인이 있고 패션성이 있는 옷을 선호하지만 독신 여성층 만큼 감성적인 스타일을 크게 선호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들은 전업 주부층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위한 연출보다는 가족 전체에 대한 관심이 강하므로 패션시장을 리드해 나가고 있는 층이라 보기는 어렵다.
③전업주부층은 여성 소비자 중에서 가장 알뜰한 성향을 갖고 있는 층이라 할 수 있다.
그 어느 여성 소비자보다 구매할 물건을 꼼꼼히 체크한 다음 쇼핑을 하며, 디자인이나 유행을 따지기보다는 가계부에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 구매하는(여성소비자가 분화되기 전부터 있어왔던)주부층이다.
따라서 이들은 어느 층보다 계획구매 성향이 강하며, 그 어느 것보다도 상품의 기능과 가격을 가장 중시하는 층이다. 독신여성층이 새로운 패션을 소개하거나 새로운 유행을 선호하는 Opinion Leader역할을 하는데 반해, 취업주부층이나 전업주부층은 모두 현실지향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구매행동에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④미시층은 '90년대 들어 새로 등장한 소비층으로 합리적 소비를 바탕으로 한 소비행태가 자리를 잡으면서 가격에 대한 부담을 갖지 않고 스스로를 연출할 수 있는 신세대 주부층이다. 이들 미시층은 결혼 후 아이를 양육하고 있으나 스스로 기성세대라는 의식을 갖고 있지 않은 층이다.
자신보다는 남편이나 자녀의 생활을 보조하는 수동적인 취업, 전업 주부층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자기 주장을 갖고 과감하게 일상생활과 자신의 Life Style을 연출하는 여성들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수요욕구가 독신 여성층에 결코 뒤지지 않는 이들의 소비 역량은 간과할 수 없는 정도의 규모를 갖고 있다.
서울 시내 G백화점의 미시 캠페인이 여성의류 부문에서 134%의 매출 성장을 기록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둔 사례나, 백화점을 비롯, 각 의류매장에서 미시 캐주얼 코너가 신설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들 새롭게 등장한 소비자의 비중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여성소비자 구매패턴의 변화
'80년대를 풍미했던 '감성' 이라는 선택기준은 고급 브랜드가 중심이 되고 높은 가격이 위주가 되었다. 유행과 스타일을 위해 상당히 많은 투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달라진 소비자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요즈음 여성들은 우선 충동구매를 가급적 자제하고 계획구매나 목적구매 형태의 쇼핑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과거와 같이 '널리' 유행하는 상품을 선호하는 비율은 크게 감소하였으며, '일상생활'이라는 현실에 바탕을 둔 실용적인 소비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아이 쇼핑을 나왔다가 자신도 모르게 비싼 물건을 구매하는 소비자라든가 시중에 유행한다고 해서 상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는 줄어 들었으며, 반대로 상품의 내적인 측면인 기능이나 A/S를 고려하는 소비자가 늘어났으며, <표 1> 더불어 상품구입 등 뚜렷한 목적을 갖고 백화점을 찾는 소비자도 많아졌다. <표 2>
또한, 쇼핑에 관한 정보를 평소 눈여겨 보았다가 바겐세일이나 기획판매를 이용해 구매하는 알뜰한 성향의 여성들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 <표 3>
"백화점이 개장하려면 1시간 30분을 족히 기다려야 한다는데도 백화점 앞에는 여러 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나는 9천원을 주고 마음에 꼭 드는 이불을 살 수 있었고, 그 기분이란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이나 가뿐했다.
그 후로 나는 신문이나 백화점 전단을 통해 정보를 제공 받고 일일 한정판매니 선착순 무료 증정이니 하는 백화점의 서비스 상품을 종종 이용하는 단골이 되었다" (마포구 성산동에 사는 K주부, 33세)
백화점이 '비싼 물건만 파는', '고가의 고급품만을 취급하는' 전문점이라는 인식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소비자들에게 백화점은 좋은 물건을 시장보다 더 싸게 살 수 있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신문이나 전단 등의 백화점 광고는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쇼핑정보를 제공해 주는 정보원이 되었다. 어느 때보다 소비자들의 광고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으며, 나침반이 없으면 낯선 사막에서 미아가 되는 것만큼이나 광고는 소비자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인 정보원이 되었다.
질적인 부분에서도 여성들은 이미지를 강조하는 광고에 대한 관심보다 품질이나 영업내용을 강조하는 광고에 더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업계에 '실질적인'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표 4>
여성소비자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중요
90년대는 어느 때 보다도 패션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이 늘어난 시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는 감성에 대한 욕구를 과소비로 소화시키지 않고, 점차 '필요'에 의해 구매하고 있다. 감성 소비와 합리적 소비가 결합된 형태의 새로운 소비문화가 자리 잡혀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여성지를 살펴보더라도 이태리나 프랑스의 유명의류를 특집으로 다루는 기사는 찾아볼 수 없으며, 소비자들의 관심에 부응해 실내 인테리어 정보나 실속쇼핑에 대한 정보 등 소비자들의 일상생활과 밀착되어 있는 기사나 단행본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패션 전문점을 표방하며 강남에 의욕적으로 오픈 했던 S백화점 매출이 기대이하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새로운 소비자의 특성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고 있다.